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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시 유감이여?
큰 범죄를 지은 사회 지도층 사람들이 신문과 방송 기자들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꼭 "유감으로 생각합니다."하고 넘어갑니다. 잘못했다,
미안하다 사과한다가 아니고 '유감'이라니... 사회 지도층이 생각하는 '유감'이란 "지은 죄에 대하여 도덕적으로 약간의 책임은 질 수 있지만
해당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은 회피하겠습니다"란 뜻입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일본의 오부치(小淵惠三) 총리가 도쿄에서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이라는 긴 제목의 공동선언을 합니다. 여기에서 오부치 총리는 양국의 과거사에 대해 "통절(痛切) 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유감' 를 표명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유감'으로 번역된 '오와비'를 한국측은 '사죄'로 번역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일본측은 '사죄'라는 직접적 표현을 쓰지 않았다면서 이를 거절했습니다. 결국 한글 공동성명에서는 '사죄'로 일본어 성명서에는
'유감'으로 적히게 된 것입니다. 일본이 한국을 참략하여 36년 동안 괴롭힌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과 표현은 '말장난'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양국의 불행한 관계에 대한 한국측 설명에 유념하고'(65년), '유감스럽게도 불행한 역사'(83년), '통석(痛惜) 의
염(念)'(90년), '깊이 진사(陳謝) 드림'(93년) '통렬(痛烈) 한 반성'(95년)까지... 일본어엔 '사과'라는 단어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한국의 사회 지도층들이 '사과'라는 말 대신 '유감'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바로 일본의 못된 짓을 배운
것입니다. 오늘 아침 저는 '회개'라는 단어를 묵상하면서 가슴을 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혼 깊은 곳에서 죄에 대해 깊이 사죄하고 그
골짜기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주의 일이라고 해 온 것들을 늘어놓으며 "하나님 이 정도면 제가 지은 죄에 대한 대가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하면서 회개보다는 핑계를 대고 있었습니다. 아프지도 않은데 담요를 뒤집어쓰고 휠체어에 앉아서 들릴락 말락 하는 소리로
"유감입니다."하고 들어가버리는 잘난 양반들이나 하라는 '회개'는 안 하고 스스로 잘난 체 교만한 저나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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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티일기 - 어슬렁 어슬렁 동네 한
바퀴 ○지난일기 |
□ 그리운 그 이름들
양씨 집성촌이었던 우리동네는 북하 골짜기에 있는 여러 마을 중에 가장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20여집 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져 있고 웃깟,
아랫깟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장군봉과 촛대봉에서 흘러 내려온 비단옷이 진귀한 보물을 감추고 있는 듯한 형상이랍니다. 그래서 일본놈들이
보물을 감추고 있는 비단옷을 찟어버리듯 마을을 두 개로 나누고 원래 이름인 '풍년동'을 '풍기'로 바꿨다고 합니다. 대한독립 6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일제가 남긴 '풍기'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빨리 이름도 바꾸고 찢어진 비단옷도 꿰매야 할텐데... 내 어릴적
우리동네는 6학년때(1979년) 기준으로 아랫깟에 길복이네, 영복이네, 쌍둥이네, 성호네, 복순이네, 길수네, 동희네, 해일이네, 이준이네,
용우네(ㅎㅎ 우리집), 명선이네가 살았고 웃깟에는 형로네, 순뱅이네, 현아네, 광민이네, 경옥이네, 순임이네, 무당집, 영기네... 이렇게
살았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쌍둥이네, 성호네, 이준이네, 용우네, 명선이네, 형로네, 순뱅이네, 광민이네, 영기네집만 남아있고 모두
노인들만 살고 있습니다. 나머지 집은 모두 주인이 바뀌었거나 혈려버렸습니다. 새로 6채의 집이 지어져 새 사람이 이사를 와서 살고 있네요.
지금은 시골 고향에 가도 저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이렇게 나의 고향 마을을 떠올리며 친구들 이름을 불러보니 옛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납니다. 그 친구들 다들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최용우 20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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