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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s://gcacademy.tistory.com/entry/비참한-현실과-역사적-진실-사이에서?category=2568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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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한 현실과 역사적 진실 사이에서
바른교회 회보(Goodchurch Report)/Column 2014.12.04 17:13
무리한 건축으로 파산하는 교회들이 속출하고 있다. 2013년 10월 23일자 CBS 노컷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해 경매에 붙여진 종교시설은 312건, 올해는 9월까지 벌써 257건에 달한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종교시설 경매 매물 가운데 8,90%는 교회가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파산으로 공사가 중단되거나 경매시장에 매물로 내놓은 경우뿐 아니라, 무사히 공사를 마친 경우라도 대부분의 교회건축은 엄청난 액수의 은행대출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현재 한국교회의 은행부채는 상상을 초월한다. 노컷뉴스는 이렇게 이어진다. “최근 금융권 자료에 따르면, 수협은행의 교회 대출규모는 1조 5천억 원, 18개 금융회사에서 교회가 빌린 돈은 4조 5천억 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럴 경우, 연간이자만 대충 6000억 원이란다. 그야말로 빚더미 속에 한국교회가 망해가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경이적인 성장을 이루던 시절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그때는 한국경제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던 시기와 일치했다. 국가 전체가 경제개발과 새마을운동에 몰두할 때, 사람들은 교회로 몰려들었다. 전국방방곡곡에 공장과 아파트가 건축될 때, 예배당의 벽돌도 함께 올라갔다. 현대와 삼성 같은 재벌들이 출현할 때, 금란교회와 순복음교회 같은 대형교회들도 탄생했다. 전국이 부동산열기로 들떠 있을 때, 교회들도 경쟁적으로 예배당을 건축했다. 이처럼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과 교회건축은 한국사회의 경제적 성장과 한국교회의 종교적 열정이 결합하여 발생한 흥미로운 역사적? 사회적 현상이다. 막스 베버의 분석을 빌린다면,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기묘한 융합 속에 한국교회도 자본주의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이다. 그 결과, 성장은 거룩한 슬로건으로, 적극적 사고방식은 시대정신으로, 그리고 교회성장학은 첨단신학으로 교회를 지배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성장지상주의에 대해 어떤 위기의식이나 아무런 저항도 없이, 오히려 그 체제와 자신을 배타적으로 일치시키며, 그 체제의 혜택을 탐닉했던 교회는 서서히 그 체제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성장’이란 기만적 이념에 세뇌되면서, 교회는 마치 전시동원체제를 방불케 하는 상황과 제도로 돌변했다. 이 과정에서 교회건축은 교회성장의 복된 결과가 아니라, 교회성장을 위한 효과적 전략으로 채택되었다. 이 전략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 한국교회는 하나님 대신 은행을 의존하기 시작했고, 교인들은 충성과 헌신이란 명목 하에 헌금과 전도를 위해 총동원되었으며, 심지어 성령마저 물질적 축복을 위한 영적 동력으로 기용되었다. 그렇게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교회는 각종 스캔들 속에 사회적 비난과 내적 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싸였고, 실망한 교인들은 집단적으로 교회를 탈출했으며, 남겨진 교회들은 빚더미 속에 파산하는 중이다. 파산한 교회를 이단에게 넘겨야 하는 이 참담한 현실은 이렇게 뒤틀린 역사의 논리적 귀결인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의 현실은 중세말기의 천주교 상황과 너무나 유사하다. 아니, 천주교회가 1500년에 걸쳐 도달한 지점에 100년 만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훨씬 더 경이롭다. 종교개혁을 초래했던 중세말기의 천주교는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부패했었다. 문제의 화근은 중세봉건제의 완성을 통한 토지생산력의 증가, 그리고 신대륙을 통해 유입된 막대한 자금이었다. 이런 경제적 호황은 교회권력자들 속에 내재한 건축과 예술의 열정을 자극하여, 중세의 모든 도시에는 궁전과 성당 건축으로 망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마치 이스라엘의 최전성기였던 솔로몬시대에 궁전과 성전이 건축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르네상스시대로 기억하는 중세문화의 전성기는 이렇게 경제적 호황과 문화적 열정, 그리고 ‘지름신의 강림’이 결합하여 탄생한 것이며, 그 중심에 중세교회가 있었다.
하지만 경제적 호황과 문화적 열정 속에 중세교회가 건축과 예술의 부흥에 몰두할 때, 교회는 돌이킬 수 없는 부패와 타락의 수렁으로 추락했다. 더 크고 화려한 궁전과 성전을 건축하려는 탐욕은 더 큰 경쟁심과 탐욕을 부추겼고, 그 결과 건축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결국, 부족한 건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성직자들이 동원되었고, 성직자들은 성공적 기금마련을 위해 성경을 왜곡하고 신학을 조작했다. 레오 10세 시절에 성베드로성당의 건축비 마련을 위해 성직매매와 면죄부 판매를 허용하고, 요하네스 테첼 같은 수사들이 기만적 설교로 교인들을 호도했던 것이 대표적 예다. 교회건축으로 가시화된 물질적 탐욕이 면죄부판매라는 참담한 목회와 기만적 신학의 출현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물론, 그 결과로 성베드로성당 같은 기념비적 건물이 건축되었으나, 성직자들은 종교개혁으로 그리고 민중은 농민전쟁으로 거세게 저항함으로써, 교회는 분열되고 중세는 막을 내렸다.
한국교회 목회자들 중, 중세교회의 이런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한국교회가 빚더미 속에 질식하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역사와 이런 현실을 잘 알면서도 여전히 성장신화에 현혹되어 교회건축을 성장으로 도구로 삼는 목회자와 교회들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자신들만은 그런 실패와 파산에서 예외라고 믿는 것일까?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자신들만은 어떻게든 보호하고 지켜줄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는 것일까? 어떤 경우에도, 그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 맹신이요 망상일 뿐이다. 지금이야 말로, 역사를 바로 보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교회가 탐욕에 물들었을 때, 그 끝은 개혁의 피바람이었다. 역사의 심판은 냉혹하며, 하나님의 정의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 첫걸음은 중세교회의 타락과 함께 종교개혁의 본질을 기억하는 것이리라. 탐욕으로 망할 수밖에 없던 교회를 되살린 것은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경”으로 돌아갔던 개혁자들의 결단과 희생이었다. 신자들이 하나님보다 면죄부를 의지했을 때, 중세는 연옥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나님의 은총 대신 성당의 영광이 세상에 가득했을 때, 중세는 암흑의 시대로 추락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대신 교황의 해석이 교회를 지배했을 때, 중세는 야만의 폭력 속에 신음했다. 하지만 개혁자들이 면죄부를 버리고 하나님을 선택했을 때, 중세의 연옥은 해체되고 근대의 계몽이 시작되었다. 개혁자들이 성당의 영광 대신 하나님의 은총을 구했을 때, 근대의 여명이 밝았다. 그리고 개혁자들이 교황의 해석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근대의 진보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21세기에 중세말기를 경험하는 한국교회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준엄한 역사적 진실이다. 비참한 현실과 역사적 진실 사이에서, 한국교회는 신속하고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한국교회의 기사회생은 거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배덕만 교수 /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고 있으며, 바른교회아카데미 연구위원으로 섬기고 있다.
출처: https://gcacademy.tistory.com/entry/비참한-현실과-역사적-진실-사이에서?category=256824
[바른교회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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