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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자료(7)

무엇이든 복음............... 조회 수 1976 추천 수 0 2007.11.21 15: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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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자료(7)

건 강 과 행 복

건강은 인간의 첫째 의무이며, 기초 자본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에 가지가 무성하듯이 건강한 사람이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활동력이 왕성하면 왕성할수록 그 사람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왕성한 활동력을 가지는 민족이 위대한 민족인 것입니다.
우리는 일하기 위하여 태어났으며, 인생은 창조와 활동의 일터입니다. 왜 일을 해야 하느냐, 그 이유는 일을 해야만 보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람은 또한 뜻이 있고 가치가 있는 일을 했을 때에 느끼는 흐뭇한 만족감이며, 일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정신적인 기쁨입니다.
무엇을 이루어 놓는다는 것처럼 기쁘고 흐뭇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성취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취 동기가 강한 사람이 훌륭한 일을 해 냅니다. 성취 동기가 낮은 사람은 아무 것도 이루어 내지 못합니다.
보람을 느끼려면 바람직한 일을 해야 하며, 보람을 느낄 때에 인생의 행복이 있습니다. 행복은 보람의 나무에 피는 아름다운 꽃입니다. 보람이 없는 생활에는 결코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느냐, 그러면 보람있는 일을 하여라. 」
나는 이 간결하고 명쾌한 인생의 방정식을 여러분에게 제시하려 합니다. 건강해야만 일을 할 수 있고 일을 해야만 보람이 있고 보람이 있어야 행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건강은 행복의 시작이요, 행복의 제일보인 것입니다. 건강, 이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명제를 다시 한 번 깊이 깨달아 건강을 지키고 증진시키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敎師의 중요한 사명은 모든 의미를 밝혀주는것이 아니라, 정신의 門을 두드려 주는 것이다』 - 타고르 -
☞ 自覺(覺醒) : 정신의 잠을 깨는 것. 양심, 자아, 자기의 사명, 자유, 정의, 진리에 눈을 떠야 함
☞ 先覺者 : 우리보다 일찍 사물에 눈을 뜬 사람.
☞ 思想家 : 우리가 미쳐 모르는 일에 먼저 예리하게 눈을 뜬 사람
☞ 위대한 인물 : 우리보다 먼저 큰일에 크게 눈을 뜬 사람
※ 그러한 인물로의 발전을 위해 정신의 문을 두드려 주는것.

인생 관리의 다섯가지 근본

현대는 管理의 時代다. 관리에는 인사 관리, 국가 관리, 생산 관리가 있다. 그리고 ‘내가 나의 하나밖에 없는 人生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 하는 우리의 인생 관리론, 인생 경영학을 알아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善用하느냐, 惡用하느냐, 活用하느냐, 濫用하느냐에 따라서 禍福吉凶과 興亡盛衰가 좌우된다. 안병욱 교수는 인생을 바로 사는 지혜로 다음의 다섯 가지 영역을 들고 있다.
1. 體力(健康) 管理: 건강은 인생의 주춧돌이요, 기초 자본이다.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은 인생의 전부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2. 時間 管理 : 우리는 시간을 창조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낭비 중에서 최대최악의 낭비는 시간의 낭비다. 시간의 낭비는 생명의 낭비요, 시간의 존중은 생명의 존중이다.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의해서 인간의 화복이 결정된다.
3. 금전(金錢) 管理: 경제적 독립은 인간의 근본이다. 나와 내 가족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재력을 준비하는 일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의무의 하나다. 내 인생의 경제적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한다.
4. 才能 管理 : 내가 나의 재능을 어떻게 키우고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 나의 재능을 최대 한도로 개발하여라. 그리고 그 재능을 내 적성에 알맞게 활용하여라.
5. 精神(感情) 管理 : 인간에게는 이성과 감정이 있다. 감정의 순화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 즐겁고 화평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처럼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 또 있으랴!
나의 체력과 시간과 금전과 재능과 감정을 잘 관리하고 활용하는 지혜와 선용하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人生管理論의 核心이다. 그것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지혜의 문제이다.

「歲月은 누구에게나 平等하게 주어진 資本金이다. 이 資本을 잘 利用한 사람에게 勝利가 온다.」-이뷰.난드-
깊이 생각하는 생활

파스텔은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다”고 말하였다.
사람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아주 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사람은 “생각”이라는 무기를 가졌으므로 아무리 무서운 맹수도 다스릴 수 있다.
“생각”은 비단 무기로서 만의 뜻은 아니다.
생각하기 때문에 편리한 여러 도구를 만들 줄 알고 살기 좋은 아름다운 사회를 이룰 수가 있다. “생각”이 없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가장 욕된 일이다. 그래서 사람은 남에게 욕을 할 때 “저런 생각 없는 사람 같으니라구” “에게 정신나간 사람아” “이런 얼빠진 사람 보았나?”와 같은 말을 한다.
생각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착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착한 행동을 하게되고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은 나쁜 생각을 하게 된다. 이처럼 생각은 우리의 행동을 끌고 다니는 엔진과 같다. 우리는 낙관적이고 적극적이고 자주적인 생각으로 생활해야 하겠다.. 골똘히 생각하는 버릇은 자신의 올바른 행동에 도움이 되지만 공부하는 면에서도 도움이 된다. 어떤 사물이나 사실을 곰곰이 오래 관찰하고 생각하다 보면, 그 속에 참된 진리가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 늘 깊이 생각하는 생활을 합시다.
『사람이 智慧가 부족해서 실패하는 일은 적다. 사람에게 늘 부족한 것은 誠實이다』 - 디즈레일리 -
◎ 성실이란
☞ 목표를 꼭 이루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 달성하기 위한 온갖 정성과 지혜와 노력,
☞ 실패하면 또 일어나고 안되면 다시 도전하는 七顚八起의 지구력, 달성될 수 있다는 확신,
☞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면 열 한 번 찍고, 그래도 안 넘어가면 또 다시 찍는 굳은 의지
◎ 성실한 사람은
☞ 初一念을 변치 않음.
☞ 자나깨나 머리 속에 그것을 생각하고 밤낮으로 기도함.
☞ 꼭 이루게 해 달라는 간절한 悲願을 늘 가슴속에 간직함

긍정적인 생활태도를 갖자.

인간의 삶에는 대체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긍정적인 삶을 갖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삶을 갖는 태도입니다.
부정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은 그 생활이 어둡게 보입니다. 예를 들면 사막을 걸어가는데 물이 반병밖에 남아 있지 않아서 생명의 위험을 받고 있는 경우에 긍정적인 삶을 갖는 사람은 “아, 나에게는 아직도 물이 반병이 남아 있다. 나는 반드시 살아 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삶을 갖는 사람은 “아, 큰일났구나 물이 반병뿐이니 이를 어쩐담”하고 절망부터 하게 되어 미리 겁을 먹고 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긍정적인 생활태도는 매사에 그 행동이 긍정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반대로 부정적인 삶을 갖는 사람은 매사에 그 행동이 부정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속된 말로 비비꼬아서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사람은 항상 자기 주관적이기보다는 객관적인 면을 더 강조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긍정적인 삶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의식구조부터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히 생활 속에서 사용되는 언어면에서 부터 긍정적으로 표현이 됩니다.
‘동생을 때리지 말아라.’ ‘방을 더럽게 하지 말아라.’ 하는 것은 부정적인 표현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동생을 사랑하자.’ ‘방을 깨끗이 하자’ 는 긍정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학생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긍정적인 생활습관을 갖도록 노력해 나가기로 합시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달렸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결국 자신과의 투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따지고 보면 나로부터 세상이 시작되고 끝이 납니다. 이렇듯 세상에 가장 소중한 자신을 우리는 가혹 짜증나게 합니다. 병들게 합니다. 이것은 학대입니다. 자신을 병들게 하고 결국 죽음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생활을 하다보면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일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지만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주 불평불만을 하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해야하는 공부인데도 주위에서 공부이야기를 한다고 짜증을 내거나 왜 어른들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것인가 하고 불평을 합니다. 하지만 누구에게 하는 불평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자기 자신에게 하는 불평밖에는 없습니다. 자신이 감수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의 일에서 피할 수 있으면 피해 가십시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어 진다면 일을 즐겁게 하는 방법을 터득하십시오. 남의 눈을 의식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자신의 눈을 두렵게 보십시오. 남은 모르되 자신은 모든 것을 알고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병들게 하지 말고 기름지게 하십시오.
여러분들의 수준에서 예를 들어본다면, 청소 시간에 같은 당번중의 여러 명이 청소를 하지 않고, 놀고 있다고 불평을 합니다. 하지만 이럴 때 그들을 측은하게 생각하고 즐겁게 해보십시오. 남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청소를 하는데 불평을 하면서 하는 것과 즐겁게 하는 것의 차이점은 경험을 하지 않더라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한가지 예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선생님에게 여러분들이 벌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여러분들의 생각은 아마도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철수는 마음속으로 욕을 하면서 벌을 받을 것이요, 창수는 마음속으로 그래 이 기회에 체력훈련이나 받아 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누가 벌을 받되 오래도록 버티면서도 자신에게 만족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마음속의 생각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약간의 노력이 요하지만 좋은 생각만 하면서 생활하려고 한다면 모든 일이 즐거울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한다면 한결 쉽고 능률이 오르는 것은 당연지사겠지요.
긍정적인 사고와 행동이 여러분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생각에 모든 것이 좌우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이제부터라도 좋게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바랍니다.
낮은 차원의 욕구에 삶의 힘이 있다.

돈을 갖고 싶다. 여자에게 인기를 얻고 싶다. 유명해지고 싶다 - “당신의 욕망은 무엇입니까?” 하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한다면 아마도 빈축을 사게 될 것이다. 선을 보는 자리에서 상대방의 양친이나 중매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가는 틀림없이 “이 얘기는 없었던 것으로 합시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하지만 이 세 가지 대답은 미국의 유능한 젊은 과학자가 “당신이 열심히 연구하는 동기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대답한 말이다.
이것을 저속한 욕망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속하면 어째서 안 되는가? 이런 것들을 저속하다고 눈살을 찌푸리는 인간이 얼마나 고매한 욕망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그 대답을 듣고 싶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오십보 백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필요 이상으로 사람을 깎아 내리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세속적인 욕망을 무시하는 사람은 절대로 높은 곳에 이르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설은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누어 논했다.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사회적 욕구, 자기 존엄의 욕구, 자기 실현의 욕구의 다섯 가지이다.
돈이나 여자는 아무리 봐도 높은 차원의 욕구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매슬로우는 이 다섯 가지의 욕구는 인간이 절대로 회피할 수 없는 욕구이고, 더구나 최초의 생리적 욕구로부터 점차 차례차례 올라가는 것이라고 했다. 낮은 차원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높은 차원의 욕구로 나아갈 수 없다. ‘의식(衣食)이 풍족해야 예절을 안다.’는 말이 있듯이, 낮은 차원의 욕구를 무시하는 사람은 이미 그것을 충족시킨 인간들이거나, 아니면 자기를 속이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말이 된다.
그 어느 경우도 있을 법한 일이다. 낮은 차원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다음 단계로 들어간 인간이 “그런 저속한 욕구는 품지 말라.”고 말하는 경우이다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인간이 굶주린 사람더러 “먹을 것 때문에 눈빛이 달라지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과연 있을 법한 말이지만, 그러나 나도 그런 입장에 선다면 같은 말을 할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자기도 똑같은 욕구를 지니고 있지만, 마치 자기는 좀더 높은 욕구의 단계에 있는 것이 속이는 경우이다. 성욕에 대해서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인간이 적지 않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이러한 태도는 가짜이다. 낮은 차원의 욕구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생명력이나 정열의 원천이 주로 낮은 차원의 욕구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어도 성적인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일수록 생명력이 강하고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에너지를 변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섹스 에너지가 모든 성행위로 향하는 것이 아니고, 예술 제작 의욕이나 사업욕에 연관된다. 낮은 차원의 욕구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삶의 힘을 북돋우기 때문이다.
컴퓨터 시대일수록 감성을 길러라.

사람을 기다리게 해 놓고 식사를 할 때, “어서 드십시오, 천천히”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 말은 “빨리 먹어라”라는 말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찾고 싶지 않은 사람은 어쩐 일인지 딱 마주치고야 만다. 머피의 법칙이라는 것은 세상이 얼마나 얄궂게 되어 있는지 밝혀 낸 증명 같은 것이지만, 이것을 적용하면 현재와 같은 컴퓨터 시대에는 완전히 정반대의 것이 가치를 갖게 된다는 말이 된다.
워드프로세서가 출현했을 때, “이젠 일본어 가나 타자기는 못쓰게 된다”는 소리가 나왔다. 이것은 올바른 인식이다. 자동차가 보급되면 인력거는 필요 없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드프로세서가 보급되면 붓이 살아난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이것은 절반이 맞았다. 서예는 쇠퇴하기는커녕 도리어 번성하고 있고, 워드 프로세서까지도 모필 문자를 쳐내고 있다.
이것은 어떤 현상이냐 하면, 인간의 뇌가 무의식적으로 균형을 잡으려 하고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컴퓨터가 하는 일은 인간의 뇌로 말하면, 왼쪽 뇌가 하고 있는 일이다. 연산(演算), 언어, 기억 등과 같은 것이 왼쪽 뇌가 하는 임무이다. 인간의 왼쪽 뇌의 기능을 컴퓨터가 해 주는 것이지만, 만일 이 분야에서 컴퓨터와 시합을 하려고 해도 인간의 뇌로는 도저히 당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지지 않는 게 있다. 그것은 오른쪽 뇌가 하는 일이다. 감성은 오른쪽 뇌가 담당한다. 이 분야는 컴퓨터가 하지 못하는 분야이다. 그러므로 이 분야는 앞으로 소중히 여겨진다.
지금의 편차(偏差)값 만능의 교육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어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편차값 교육은 기억력의 시합이지만, 기억력은 이젠 컴퓨터에 맡기면 된다. 무엇을 잘 알고 있는 일에는 별로 가치가 없다. 그 대신에 기획력, 창조력이라든지 예술적 재능은 높이 평가받게 된다.
또 인생을 재미있고 즐겁게 살고 싶거든 유행을 쫓아다니면 안 된다. 유행은 변덕스러워서 일년 내내 변하고, 게다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 순환이다. 사회에서는 유행이 시대를 반영하는 거라고 여기고 있으나, 그 반영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인간의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취향과 싫증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지 결코 미래 예언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유행 따위는 관계없이 자기가 무엇을 해야 좋은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나는 앞으로는 감성 겨루기와 관계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예술 분야 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나에겐 예술적 재능이 없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예술 생산자가 되지 않더라도 주변에는 얼마든지 할 일이 널려 있다. 다만, 풍성한 감성만은 길러두지 않으면 안 된다.
오감(五感)을 작용시키면 감동은 깊어진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오감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감각이나 다 필요한 것뿐이다. 하지만 문명을 창조할 수 있는 인간은 오감의 대용품을 차례 차례로 발명하여 활용하는 한편, 선천적으로 주어진 오감을 자꾸만 마멸해 왔다. 그것이 지금 갈 데까지 갔다는 느낌이 있다.
시각과 청각은 아직도 잘 쓰고 있으나, 후각, 미각, 촉각은 특별한 용도 외에는 쓰지 않게 되었다. 예를 들면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어쩐지 구리다”고 느낀다든지, 사람의 용모나 행위에서 풍기는 맛에 대한 감각이 둔해졌다. 미각은 요리의 맛만은 아니다. 미각이 있기 때문에 ‘맛’을 이해할 수 있고, 후각이 있기 때문에 ‘냄새’를 맡아서 알 수 있다. 촉각이 있으니까 보들보들한 피부에도 가슴이 설렌다. 그렇게 오감을 한껏 활용하면 인생이 생기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일본어로 ‘향수(香水)’라고 번역되어 나온 아주 재미있는 소설이 있다. 주인공은 후각의 천재이다. 개의 후각 정도가 아니다. 모든 것을 냄새에 의해서 분간하고 기억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람을 식별할 때, 시각으로 기억한다. 얼굴을 보고 사람을 구별한다. 만일 시각을 잃는다면 청각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 사나이는 눈이나 귀도 멀쩡하지만, 사실은 어느 것도 필요치 않다. 한번 냄새로 기억하면, 잊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런 정도로 예민한 후각을 지니고 있다면, 세계는 어떻게 느껴질까? 나는 어린 시절에 읽은 헬렌 켈러의 전기가 생각났다.
청각과 시각을 잃어버린 그녀는 촉각으로 물질을 기억해 나갔다. 물에 닿음으로써 물이라는 물질을 알고, 그것이 물임을 손바닥의 촉각으로 기억해 나갔다. 후각과 촉각으로도 세계를 얼마든지 인지할 수 있다. 대부분이 사람들이 오감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좀 더 오감을 작용시키게 되면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고, 느껴지지 않는 것이 느껴지며, 맛볼 수 없는 것을 맛볼 수 있고,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을 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오감을 좀더 잘 작용시키는 좋은 방법은 우선 시각을 가려 볼일이다.
자연 속에서 새의 모양이나 울음소리를 즐기는 이른바 버드 워칭을 하러 처음 산 속으로 들어간 사람이 쌍안경으로 아무리 애를 써서 새를 찾아보아도 발견되지 않아 실망하고 있으니까, 경험이 풍부한 고참이 이렇게 일러주었다. “귀를 기울여 가만히 들어보세요. 그봐요 주위에 잔뜩 있잖아요?” 그 순간, 여러 종류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 왔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세계도 풍요한 세계이다.

국제협력과 우리의 자세

20세기는 제1·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세계적 혼란과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한 대변혁의 세월이었다.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최근의 냉전 시대까지는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하는 정치가 국제 사회를 지배하였고, 특정한 정치·군사·경제적 이해에 따라 국가간의 협력이 이루어져 왔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지구 건너편의 먼 나라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 냉전이 종식되고 난 후,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경제적 논리에 의해 국제 협력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났고, 세계는 급속한 교통·통신의 발달로 지구촌 화되어 가고 있으며, 금융·생산·소비의 모든 경제 부문에 걸쳐 국경 없는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울러 자유 경쟁을 저해하는 장애가 완화됨으로써, 국가를 비롯한 모든 경제 주체가 무한 경쟁에 대비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또한, 세계의 여러 나라는 자연 환경이 다르고 문화·역사적 배경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적 상황도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이해 관계를 같이하는 일정한 지역의 국가들끼리 정치, 군사, 경제,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상호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현재 세계에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군, 개발 도상 국가군 등이 각자의 협력 기구들을 구성하고 있으며, 각 지역에는 지역 공동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지역별 협력 기구도 많이 결성되어 있다.
1990년대의 국제화 시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지역주의의 확산, 세계 환경 보전 운동의 본격화,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을 통한 세계 무역 질서의 재편성과 선진국간의 정책 협력 강화, 신흥 개발 도상국의 부상 등이다.
광복 이후 우리 나라는 국제 냉전에 휘말려 미·일 중심의 외교와 경제 협력을 펴왔으며, 세계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것은 바로 ’88서울 올림픽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우리 나라와 세계 각국간의 경제적·문화적 교류는 급증하였고, 더욱이 중국·러시아를 비롯한 구사회주의권 국가들과도 협력이 이루어짐으로써 한국인이 발디딜 수 없는 나라는 이제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국제화 시대의 치열한 대외 경쟁을 극복하고 우리 나라가 선진 경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경제의 국제화, 개방화를 통하여 국내 경쟁력을 강화하고, 안에서 길러진 경쟁력을 바탕으로 하여 세계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해야 한다.
과거 개발 과정에서는 낮은 임금과 개발 의욕을 바탕으로 다소의 비능률적 요소가 있었더라도 고도 성장의 추진이 가능하였으나, 선진 경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모든 분야의 비능률이 제거되어야 한다. 즉, 앞으로의 우리 경제는 국제화, 개방화를 통하여 국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공정한 경쟁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선진화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우루과이라운드로 통칭되는 새로운 국제 경제 질서에도 적극 참여하고, 나아가 지구 환경 보전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부응하는 국내 산업 및 환경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학 생 의 날

( 11 월 3 일 )
1929년 11월 3일 광주 학생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 학생의 날이다. 당시 이 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동기 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광주 학생 운동은 광주 - 나주간을 기차 통학을 하던 한국 여학생에게 일본 학생들이 모욕적인 언동을 함으로써 발단되었다. 일제 치하에서의 울분이 일시에 폭발, 한국 남학생들과 일본학생들이 충돌을 일으키게 되었고, 이 충돌은 11월 3일에 이르러 시가전 양상을 띄고 확산되었다.
그런데 일본 경찰에서는 책임을 일방적으로 한국 학생에게 지워서 관련된 학생들을 검거하였다. 이에 광주의 학생들은 총 궐기하여 검거된 학생들의 석방과 아울러 민족 차별의 철폐, 약소 민족의 해방, 제국주의의 타도 등을 외치며 시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시위 운동은 광주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1930년까지에 걸쳐서 국내 각지에 파급되어 시위 운동에 참가한 학교가 194개교, 참가한 학생은 54,000명에 달하였다. 이로 인하여 퇴학 처분을 받은 학생은 582명, 무기 정학을 당한 학생은 23,330명, 피검자는 1,642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신간회도 조사단을 파견하고 민중 대회를 계획하는 등 학생들의 운동에 동조하였다.
이 광주 학생 운동은 일제 치하에서는 3. 1운동 이후 최대의 민족 운동이었다.
이 날을 맞아 우리들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다같이 생각해 봅시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최대한도로 활용하여 실력을 기르자』
☞ 언제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말라(나의 시간)
☞ 언제나 건강하리라고 생각하지 말라(나의 건강)
☞ 언제나 오리라고 생각하지 말라(나의 기회)

유 종 의 미

이제 금년의 종말을 알리는 종소리가 우리의 귓전에 다가오고 더 이상 넘길 수도 없는 한 장남은 달력이 펄럭인다. 또 다시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이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마음으로 묵은해를 냉정히 되돌아보고 대망의 새해를 맞을 일이다.
한 해를 마지막 보내는 시점에 이르러 우리의 성장과 노력이 한층 새로워지기만 한다. 자기주도학습의 자발적 정착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 온 한 해였다. 모든 것은 공들인 만큼 거둔다고 한다. 근면 성실하게 열심히 노력한 사람은 그만큼 성적이나 행동이 많이 향상되어 부끄러움 없는 세모(歲暮)의 한 해가 될 것이다.
옛 성현들의 말씀에 “오늘의 나를 발견하라. 그러면 반드시 앞날에 영광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세모(歲暮)의 순간에 나를 똑똑히 보아 새로이 발견하는 중요한 순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중요한 미래를 위해서는 항상 나를 채찍질할 때 ‘조금만 더 노력하자. 조금만 더 노력하면 훌륭한 학생이 될 것이며, 앞날에 축복 받는 젊은이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 속에서 꾸준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자세이어야 한다.
12월의 한 장남은 달력 속에 나의 현주소를 찾고 각오를 새로이 하는 연말이 되자. 유종의 미란 나의 지난날을 냉정히 반성하고 다가올 새해를 위한 힘찬 발걸음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나는 이 해에 얼마만큼 성장해 왔는가. 자문자답(自問自答)의 기회를 가져보자.

『기록하는 습관을 몸에 익혀라』
☞ 아인쉬타인 : 침대 옆에 항상 종이와 연필을 준비
☞ 중요한 것, 꼭 알아야 할 것, 사람의 이름, 전화번호, 약속 시간, 유명한 말, 꼭 필요한 지식, 좋은 아이디어 등을 항상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자.

뜻 있는 방학 생활

이제 한 학년이 거의 끝나 가는 시점. 겨울 방학에 들어간다. 희망의 새 봄에 심었던 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할 때이다. 그 동안 학습한 바를 방학을 통해 자신이 재단하고 요리하는 절호의 기회이다. 자기 발전의 시간이 되어야한다. 고르게 내리는 태양의 은총도 스스로를 더 많이 키워온 나무가 더욱 풍부하게 누린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이다. 정지는 제자리걸음이요. 오히려 퇴보를 의미한다. 계획하고 실천하고 생산적 의미의 부지런한 생활을 한 사람은 축복의 앞날이 기다린다. 이 기나긴 겨울방학을 계획도 없이 허송한다면 그 공허함은 물론 인생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계획과 결심을 가지고 출발하는 뜻있는 방학이 되게 하자.

공부, 운동, 기능 함양 등 무엇을 하든 첫째는 열심히 해야겠다. 그러나 수확부터 신경을 쓰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해보지도 않고 좌절하거나 노력하지 않고 결실을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노력한 만큼만 요구하는 사회가 양심 사회이다. 그 이상을 구하는 데서 모든 혼란과 괴로움이 시작된다. 둘째는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이 학생의 본분에서 벗어나는 행동이여서는 안 된다. 사고없는 건강한 일이어야만 한다. 계획이 없는 휴식은 시간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한다.

노력은 인생의 줄거움을 가져다준다. 무엇인가 자기 발전을 위한 참다운 방학생활이 되자. 그리고 건강한 얼굴로 새 학년도를 맞이하자.

인 내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인내란 어려움이나 괴로움을 참고 견디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과연 얼마나 참고 견디는 힘이 있을까요? 너무나 참고 견디는 힘이 미약한 것 같습니다. 성적이 떨어 졌다고 쉽게 목숨을 끊어 버리는 학생, 아버지에게 꾸중을 들었다고 집을 나가버리는 학생 등등, 자신의 마음을 작은 불쾌감 때문에 내 팽개쳐 버리는 청소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점점 인내하는 힘이 결여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참고 견디는 힘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란 늘 뜻대로 되는 일만 존재하는 것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참고 견디는 힘이 없다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렵고 힘든 일마다 좌절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되는지 자명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인류와 세상을 위해서 그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남달리 인내심이 강했으며 특별히 노력을 기울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이 세상에서 아무런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노력이 없이 이루어 진 듯이 보이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들대로의 노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뜻있는 일은 피나는 노력이요 그 결정체임을 알아야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 저는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은 말 한마디로 훈화를 마칠 까합니다.
“삶을 에이는 듯한 춥고 모진 겨울을 견딜 수 없는 꽃나무는 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 못한다고.”

미 친 리 더

“윗물 아랫물이 다 맑아야 하는 마음”이라는 표어가 말해 주듯이 누가 누구를 보고 맑아져야 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 초관리의 기본정신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것은 윗물 맑은 것을 보고 나서야 아랫물이 맑겠다는 것이요, “내가 아직 맑지 않은 것은 너 때문”이라는 핑계를 밑에 깔고 있는 것이다.
남을 볼 새가 없이 우선 나부터 맑아져야 한다. 하지만 우선은 윗사람이 저질러 놓고 보아야 한다. 무슨 일에든 시작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작하는 사람은 범상하지 않은 짓을 저질러야 한다. 혁신이란 지금까지의 익숙한 방식을 엎어 버리고 낯선 일을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거부반응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사람은 하던 대로하고 싶어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리더는 일단 미치고 보아야 한다. 마음속에 한 점이라도 미적거리거나 쑥스러워 하는 구석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맨 앞에 나서서 가시밭길을 뚫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삼국지에 보면 위나라 장군 등애가 촉나라를 치러 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촉나라의 서울인 성도로 들어가려면 중국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불리는 검각을 지나지 않으면 안 된다. 검각이란 칼끝같이 뾰족뾰족한 봉우리와 밑이 안 보이는 골짜기로 이루어진 험하디 험한 협곡이다.
이곳을 넘어 가자니 병사들은 기가 막힌 나머지 낭떠러지 아래를 보면서 한숨만 쉬고 있었다. 이때 등애는 앞으로 썩 나서서 담요 한 장을 몸에 두르고 “내가 먼저 가겠다!”는 외침과 함께 돌덩어리처럼 데굴데굴 굴렀다.
대장이 이러니 부하들도 머뭇거리고만 있을 수 없었다. 담요가 있는 병사는 그것을 감고 구르고 밧줄이 있는 병사는 밧줄에 몸을 매어 절벽 아래로 흔들흔들 내려가니 이 억척스러운 군대는 기어코 하늘 오르기 보다 더 어렵다는 검각을 넘고 말았던 것이다.
등애라고 낭떠러지가 안 무서웠을까? 담요를 두르고 한 발짝 썩 나섰을 때에 구름이 아른거리는 골짜기 아래를 보고 현기증이 안 일어났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굴러 내렸다. 내가 주저해서야 이 많은 병사들의 마음을 어떻게 설복할 것인가? 나는 내 한 몸이 아닌 것이다.
리더는 자기 한 몸이 아니다. 모두가 주시하고 있는 몸인 것이다. 내가 주저해서야, 내가 망설여서야 전체가 따라 줄 리가 없다. 내가 확신이 없는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확신시킬 수 있을 리가 없다. 내가 몸 바치지 않고서 다른 사람을 몸 바치게 할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리더는 미쳐야 한다. 그러나 바른 일에 미쳐야 한다.

내가 나를 아는 것

아는 것이 많으면 인간은 자만하기가 쉽다. 아는 것만 믿고 설치다 보면 무슨 덫에나 걸리게 마련이다. 사람이 무엇을 안다고 해 보았자 한 줌의 모래알에도 못 미친다. 그러나 인간은 지식을 좀 쌓았다 싶으면 고집스런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려고 한다. 그래서 편견도 생기고 독단도 생기고 시시비비가 일어난다. 이러한 병들을 고치는 데 무슨 약이 필요할까? 바로 지혜라는 것이다. 지식은 사물을 알게 하지만 지혜는 먼저 내가 나를 알게 한다. 지혜는 스스로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치수를 읽게 하지만 지식은 스스로를 과신하게 한다. 아는 것이 병이란 말이 여기서 비롯된다. 그러나 지혜는 나를 분별하게 하여 설자리를 알게 한다.
공자는 수분(守分)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분수를 지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공자의 분별은 시비를 가리기 위한 분별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느껴보고 생각할 것이며 이해하고 판단할 것이란 점에서 수분인 것이다. 이러한 수분은 아주 자연스럽게 내가 나를 알게도 하고 돌이켜보게도 하고 반성해 보게도 한다. 되돌아볼 줄을 안다는 것은 옛것을 돌이켜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옛것이 선한 것이면 택하고 악한 것이면 버릴 줄 알 때 사람은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된다. 우쭐해 하는 것보다 뉘우쳐 보는 경우가 사람을 훨씬 더 여물게 하는 법이다. 이러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겸허하며 스스로 정직하다. 공자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마음을 읽어보게 한다.

子曰 我非生而知之者 好古 敏以求之者
나라고 해서 나면서부터 저절로 아는 사람은 아니다.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찾아 배워 알게 된 사람일뿐이다. 이렇게 공자는 살폈다.

뛰어난 지혜는 ‘만족을 아는’ 데서 생겨난다.

하나님이 두 사람의 남자에게 토지를 내주기로 했다. “오늘 하루, 너희들이 발로 걸어간 범위 안의 토지는 모두 너희들의 것이다. 다만, 해가 질 때까지는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그는 서쪽으로, 그미는 동쪽으로 향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지점까지 걸어가더니 왼쪽으로 향하다가 마지막에는 북쪽으로 향해 걸어서 원래의 곳으로 해가 조금 지기 전에 돌아 왔다.
동쪽으로 향한 그미도 거의 그와 똑같은 행동을 했으나, 조금이라도 넓은 토지를 소유하려고 너무 멀리 간 탓으로 약속한 일몰 때까지 돌아오기가 힘들었다. 허겁지겁 달려서 간신히 제 시간에 돌아오긴 했으나 너무 힘들어 죽고 말았다.
어느 쪽이 좋은 생활 방식인지는 말할 것도 없다. 인간에게는 욕망이 있다. 욕망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도가 지나치면 자기 자신을 파멸시킬지도 모른다. 지금, 지구에서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우리의 무한한 욕망이 유한한 지구의 자원을 모조리 써 버리려고 하는데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more and more'사상은 얼마 전까지는 좋은 것이었다. ‘좀 더 좀 더’하고 바랐기 때문에 인류의 문명은 발전되어 왔다. 자동차가 이제 막 발명되어 나왔을 때, 인간이 이동하는 속도는 이젠 이 정도면 된다고 모든 사람들이 생각했다면,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나 비행기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적절하고 어디서부터가 지나친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다. 분명히 말해서 구체적으로 나타낼 척도는 없다. 어떤 사람은 고속도로의 제한 속도의 정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하지만 좀더 빠른 탈것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어디선가 선을 긋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선긋기가 아니다. 마음으로 만족하게 여기는 일이다.
‘만족을 안다’는 것은 ‘이젠 별로 필요 없다’는 게 아니고, 자기의 현재의 상황을 긍정하는 일이다. 그런 다음에 희망하는 것은 상관없다. 마음속으로 만족하게 여기고, ‘고맙다’고 생각하는 마음속에서는 뛰어난 지혜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석유 자원은 언젠가 고갈할 것이다. 그 때, ‘석유야 고맙다’고 하는 마음을 갖느냐. ‘숨겨 두었다가 나 혼자서만 오래도록 쓰자’고 하느냐에 따라 사태는 완전히 달라진다. 후자의 경우에는 분쟁의 원인이 될 것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다음의 대책을 위한 뛰어난 지혜를 결집할 수 있다. 인간의 지혜가 결집되면 어떤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만족’을 알면 길은 저절로 열리게 된다.

수수하고 평범한 인생이 멋지다

인간은 누구나 욕심이 많아서, 지금 당장 거기에 없는 것을 갖고 싶어한다. 욕망을 갖는 것은 인간이 의욕적으로 사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므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 불만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마이너스 작용밖에 하지 않는다. 그러한 태도로 살면 인생은 조금도 즐거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출세가 늦더라도, 아무리 월급이 적더라도 가족 전원을 굶어 죽게 하지 않는 세대주가 훌륭한 가장이다. 먼저 그 점을 똑바로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회남자(淮南子)』는 ‘복은 재앙이 없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고 가르친다.
불만이나 만족도 생각하는 습관의 문제이다. 그것은 단순히 습관이므로 습관을 바꾸면 현재의 상황도 완전히 바뀌고 만다. 불만이 많은 사람은 사고 방식이 마이너스 사고의 습관이 되어있을 뿐이다. 플러스 사고를 하면 그 순간부터 만족으로 변한다.
신체가 건강하고 모든 기능이 잘 되어갈 때 새삼스럽게 위나 심장의 존재를 의식하는 일은 없다. 모든 일에 만족하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여서, 특별히 자기가 은혜를 입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데 일단 위장이 욱신욱신 아프기 시작하면 그것에 신경이 쓰여서 견딜 수 없다. 인간은 좋은 일에는 둔감하고 나쁜 일에는 민감하다. 마이너스 사고는 내버려둬도 할 수 있다. 플러스 사고는 의식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인생을 재미없다고 느끼는 것은 색안경을 끼고 경치를 바라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무엇을 보더라도 그 안경의 색깔에 좌우되고 만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은 자기가 그러한 안경을 끼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플러스 사고의 안경으로 바꿔 끼면 되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즐겁다고 생각하는 것이 플러스 사고의 안경을 끼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그렇게 보인다. 수수하고 평범한 인생이야말로 자연에 가장 잘 맞는 인생이다.
자연에 맞는 인생 이상으로 멋진 인생은 없다.

입지적인 삶에 대하여

배는 언제나 행선지가 있어야 닿을 올리고 항해를 합니다.
전쟁에 출전하는 용사는 승리의 목표를 의식하고 전장에 나가게 됩니다. 우리 학생들도 매일같이 등교하는 것은 먼 장래에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학교에 등교합니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목적의식이 있는 삶을 생활하는 것이 독특합니다. 목적의식 없이 생활하는 사람은 인생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볼 때 인생이란 하나의 자기 경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경영을 잘해야 많은 이익과 회사의 발전이 있듯이 학생들도 자신이 자신의 경영을 잘해야 훌륭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계획만 잘 세웠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계획을 위해서 부단히 실천하여야 합니다. 속담에 ????구슬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목표를 실천하는데는 많은 노력과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고통이 따를 때 중도에서 포기하기 쉽습니다. 성현들의 삶을 볼 때 모두가 이 어려운 과정을 지나서 훌륭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인생 항로가 영구히 방황하지 않기 위해서는 목표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꿋꿋한 의지로 실천하고 또 실천해야 합니다.
불굴의 의지를 지녀야 합니다.

『내가 자유라고 일컫는 것은 오직 하나, 즉 秩序를 동반한 자유다. 질서 및 道義와 같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질서 및 道義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자유만 자유라고 일컫는다』 - 에드먼드 버어크 -

☞ 남의 자유를 억압하고 남을 노예로 삼아서는 안됨
☞ 무질서나 방종이나 無政府상태로 전락해도 안됨
☞ 도의를 무시한 자유 ⇒ 타락과 부패 위에 피는 자유가 되어 惡의 꽃이 됨
☞ 내가 남의 자유를 짓밟을 때 남도 나의 자유를 유린함
☞ 자유의 나무는 가장 가꾸기 어려운 나무⇒지혜와 자제와 용기가 필요
☞ 권력의 침해에서 우리의 자유를 지켜야 하는 동시에 우리의 자유가 무질서와 방종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道德이나 正義나 人道를 짓밟지 않도록 조심

성 실 과 노 력

조선 선조때 양사언은 성실한 정신과 꾸준한 노력만이 성공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이 한편의 시만 보더라도 그의 성실한 정신과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정성이란 ‘ 참되어 거짓이 없다’는 뜻으로 곧 사람이 사람됨에 있어 중요한 요건을 말하는 것으로 성실한 사람이란 정성스럽고 참되어 거짓이 없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우리 사회구조가 복잡 다양하여짐에 따라 모든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생활 방식이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근본 요건을 잃고 날로 어지러워지고 난폭하여 가는 것을 우리는 흔히 보게 된다. 목적달성을 위하여서는 정성을 다하는 꾸준한 노력보다는 안일과 요행을 바라면서 불로소득 하려는 거짓된 생활을 일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성실이라고 하는 것은 오직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곧, 꾸준한 노력만이 성실한 사람을 만들고 성실한 사람일수록 자기 생활에 자신과 안정을 갖게 되며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발전적인 전진을 기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옛말에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다. 성실치 못한 사람은 항상 거짓을 앞세워 공연히 잘난 체, 아는 체, 있는 체하여 과장된 허세를 부림으로써 그것을 자랑으로 삼고 즐긴다.
그러나 인간사란 매사 사필귀정이다. 사리란 반드시 올바른 이치로 돌아가는 것이 천리며 일시적인 거짓이나 허세가 결코 진리가 되고 바른길이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 원리원칙만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변함이 없는 것이다.
옛날 중국의 주자는, 성실은 오상 즉, 인, 의, 예, 지, 신의 근본이며 백행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옛 성인은 사람을 교육시키는 데 오상부터 하고 여력이 있으면 학문을 가르쳤다고 한다. 즉, 인간 교육을 가장 중시했다는 말이다. 제아무리 지적 능력이 뛰어나고 재주가 있더라도 사람으로서의 근본적인 요건을 구비치 않고는 사람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불굴의 정신으로 꾸준한 노력을 쏟아 쌓아 올리는 성실한 생활, 그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참된 인간의 길인 것이다.

어느 사자 왕의 이야기

옛날, 어느 깊은 산 속 바위 굴 속에 한 마리의 사자가 살고 있었다. 이 사자는 늘 “나는 모든 짐승 중의 왕이다. 그러므로 모든 짐승을 거느려 지킬 힘이 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사명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고 스스로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사자왕이 살고 있는 이웃에는 원숭이 부부와 새끼 두 마리가 살고 있어 사자와 원숭이는 잘 아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원숭이 부부는 사자를 찾아와서
“사자왕이여, 당신은 늘 모든 짐승을 보호해 준다고 하셨는데, 만약 그 말이 진실이라면 우리가 나가 먹을 것을 구해 올 때까지 이 새끼 두 마리를 좀 보호해 주십시오.” 하니 “그건 어려울 게 없지. 안심하고 갔다 오게.” 하고 사자 왕은 쾌히 승낙을 하였다. 그래서 엄마 원숭이는 새끼들을 사자 왕의 굴속에 맡겨두고는 이산 저산으로 먹을 것을 찾아 나섰고 사자 왕은 원숭이 새끼를 제 새끼처럼 조심해서 잘 돌보았다. 그런후 사오 일이 지난 뒤였다. 사자 왕은 새끼 원숭이를 데리고 굴 밖으로 나가 햇볕을 쬐며 놀다가 그만 몸이 노곤하여 바위에 큰 몸을 눕히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하늘을 날던 한 마리 독수리가 사자 왕이 깊이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새끼 원숭이를 확 움켜쥐고는 몹시 험하고 높은 바위 위로 날아가 버렸다. 얼마 후 사자 왕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보니 새끼 원숭이가 보이질 않았다. 어디로 놀러 갔거나 나무에 올라갔겠지 하고 둘레를 살펴보았지만 그 근처엔 새끼 원숭이가 그림자도 보이질 않았다. 정신이 퍼뜩 난 사자 왕은 새끼 원숭이를 잃어 버렸다가는 맡은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어 이거 큰일 났구나하고 다시 주위를 살펴보니 원숭이 새끼가 독수리에게 잡혀 높은 바위 위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걱정을 하였으나 독수리 밥이 될 새끼 원숭이를 구해 낼 방법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독수리에게 사정해서 구해 보는 수밖에 없겠다”라고 생각한 사자 왕은 ”독수리야, 내 소원을 들어주게. 그 새끼 원숭이는 내가 어미들로부터 부탁을 받은 것일세. 만약 자네가 원숭이 새끼를 죽여 버리면 나는 어미 원숭이에게 신용을 잃을 뿐 아니라 무참히 죽어야 하네. 그러니 그 새끼 원숭이를 돌려주게나. 내 평생에 한 번밖에 없을 부탁이네“ 하고 독수리 왕에게 애원을 하였다.
”사자 왕, 땅에서는 내가 자네를 따르지 못하지만 이 높은 공중에서는 나는 자네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네. 자네가 그처럼 원한다면 새끼 원숭이를 놓아 줄 수도 있지만 정말로 새끼 원숭이를 보호할 생각이라면 자네 몸뚱이를 내게 대신 줄 수 있겠나?“하고 독수리 왕은 큰 소리로 외쳤다.
”그건 어렵지 않네. 내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 몸을 기꺼이 자네에게 주겠네. 이 몸을 아까워한다면 나는 원숭이에게 거짓말을 한 셈이 되지 않겠나. 그래가지고는 내 꼴이 아무것도 안 되지.라고 말한 후 사자 왕은 주저하지 않고 높은 데로 올라가 몸을 던지려고 하였다. 사자 왕의 진실한 모습을 본 독수리는 급히 소리치며 말렸다.
”남을 위해 목숨을 버리면 곧 복을 받을 것이니 내 그대에게 새끼 원숭이를 돌려 드리리다. 바라건대, 사자 왕이여 스스로를 해치지 마시오.“ 그리고는 독수리왕은 새끼 원숭이를 사자에게 돌려주었다.
이리하여 사자 왕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모든 짐승 중의 왕으로 남게 되었다는 불교에서 전해지는 이 이야기는
첫째로, 사자 왕이 목숨과 바꿔 지킨 책임감이다.
비겁하게 사느니 차라리 목숨을 바쳐 내가 약속한 것은 꼭 지켜야 한다는 그 정신이 여러분의 가슴속에도 흘러 넘친다면, 놀랄 만큼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둘째는 독수리 왕의 깊은 용서 정신이다.
비록 높은 공중에서는 자기가 최고라고 하더라도 새끼 원숭이를 보호하겠다는 책임감에 감동하여 원숭이 새끼를 돌려주겠다는 생각은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책임감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는 비록 동물들의 이야기지만 우리 인간들의 생활을 반성하게 해 준다.
혹 내가 친구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내게 주어진 공부나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한 적은 없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그리고 우리 주위의 친구들이나 이웃들에게 눈을 돌려 책임감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삶을 본받아야 하겠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부모님께 효도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 나라에 목숨을 바친 군인, 이것들이 어찌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이겠는가. 지금 여러분들의 부모님들은 좋은 것 싫은 것 마다하지 않고 자식이 잘되고 성공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서슴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런 부모님을 위해 여러분들이 한 일은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훈계되는 말이라면 듣기 싫어하고 쉽게 돈을 내어놓지 않으면 집을 뛰쳐나가기 일수고……. 여러분들은 누구를 위해 하는 공부이기에 그렇게도 당당한가. 시간은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니 학생시절에 때를 놓치고 후회하지 말고 무슨 일이던 자기의 소질과 능력에 맞는 일을 찾아 최대한 노력하여 사회에 나아가 일 할 준비를 철저히 해주기 바란다. 그것이 장차 사회에 나아가 보람된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이다. 자기를 지키고 자기의 행복을 만들 사람은 오직 자기뿐이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는 삶

겨울이 된 뒤에야 소나무나 잣나무가 낙엽이 지지 않음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지금 첨단 과학의 발전으로 문명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편안함을 모르고 편안함에 쉽게 안주하려는 경향에 물들어 가고 있다. 우리들 청소년 여러분들은 기성세대가 이룩해 낸 부와 풍요를 마음껏 누리며 값비싼 메이커 옷에 필요 이상의 낭비를 하며 탈선하는 일이 많은데, 이것은 일시적인 청소년기의 현상이라고 할 지 모르겠지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그대로 방관할 수 만 없는 일이다.
이따금 보면 도벽 등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청소년들이 결손가정이 아닌 부유하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가정의 아이들이고 보면 이는 무엇인가 가정에 문제가 있다고 보야야겠다. 따라서 가정교육은 돈이나 지위로 되는 것이 아니요, 부모로서 자식이 올바르고 성실하게 그리고 떳떳하고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이다. .그러기에 교육은 먼저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하며 가정에서 바르게 자란 아이들이 열심히 학교 교육을 받고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아 착실하게 준비하고 노력할 때 자기의 삶은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언제부터인가 해 보지도 않고 노력도 없이 되는 대로 쉽게 살아가려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다.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삶의 목표를 뚜렷하게 가져야 하며 그 목표를 실현할 수 있도록 그 어떤 고통도 마다하지 않는 절제와 인고의 정신이 필요하다. 고통이 따르지 않는 보람이란 있을 수 없으며 보람이 없는 가치로운 생활은 더더욱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고통이 배지 않은 삶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으며, 진실할 수도 없다.
현재의 고통을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좀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큰사람’이 되기 위한 밑거름으로 생각하고 좀더 마음을 튼튼히 다져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 나가는 행복의 씨라고 생각하자.
땀 흘리며 사랑으로 가꾼 결실처럼 나에게 부딪치는 모든 것들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자.
참다운 삶의 방법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간에 시작이 있고, 행동이 있고, 그리고 결과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생에 세운 큰 설계를 실천해 나가는 데는 한 해 한 해의 설계가 있어야 하고 또한 하루하루 계획을 세워 실천하며 생활해 나갈 때 보람있는 삶이 될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소질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기의 재능을 파악하고 자기의 진로를 찾아 열심히 노력한다면 누구라도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아 꾸준히 끝없는 노력을 계속한다면 인생은 성장하며 성숙해 가고, 끝내는 소망하는 꿈을 성취할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향상을 꾀하자면 남보다 한 단계 높은 이상을 가져야 한다. 남이 하는 것을 흉내나 내고 겨우 따라 한다면 보다 훌륭한 자신의 성장을 바랄 수는 없다 그러나 행보는 신중히 하며, 남보다 조금 늦는다 싶어도 조급히 서둘지 않고 침착하게 걷는다면 남보다 앞설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서둘다가 실수를 하고 시행착오를 하게 된다면 그 길이 더 늦고 방향을 잃게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칫 저돌적이 되어 가끔 궁지에 빠지는 일이 있을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 내실을 위해서 긍지를 가지고 진취적인 자세로 임하며, 실제 생활에서는 신중하게 행동하여야 뜻하지 않은 재난을 막을 수 있으며, 영원히 남아 있을 자기 성취를 이루는 것이다.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 이라는 속담이 있다. 천천히 갈지라도 믿음직스럽고 이루는 바가 크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신중하고도 철저한 삶의 자세를 가르쳐 주는 말이라고 하겠다.
한 단계 높은 이상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삶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열심히 배우고 부지런히 노력하며 예절바른 생활을 실천하는 길이 새롭게 출발하는 참다운 삶의 지름길임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큰 뜻을 품고 살아가도록 노력하자.

雅 量 과 容 恕

◇ 하루 한 번 용서해 주기

인간은 일상 생활에서 순간마다 ‘사랑과 미움(Love & Hate)’이 교차하는 생활을 한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미워하는 마음이 많은 이는 나쁜 쪽의 사람이요, 사랑하는 마음이 많은 이는 좋은 편의 사람이라는 점이다. 더욱 훌륭한 사람은 ‘사랑과 미움’을 초월한 사람 일 것이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부처님은 온갖 중생을 모두 복되게 하라고 가르치셨다. 독사도 남이 해하지 않는 한 물지 않는다. 아무리 성질이 고약한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잘 듣는다.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은 된 사람이요, 용서하지 못하는 이는 아집과 고루한 생각의 포로가 된 사람이다. 용서할 때마다 그 사람의 영혼은 살찌게 된다. 교실에서나 밖에서나 일상 생활에서 남과 충돌할 경우 화내지 않는 사람이 되자. 남과 다투지 말고, 하루 한 번씩 용서해 주는 일을 생활화하자. 단, 용서와 묵인은 성질이 다른 것이다.

◇ 남 험담 않기

살다 보면 잘 한 일도 있고, 잘 못한 일도 있기 마련이다.
남의 잘못을 보고 없는 데서 말하면 험담이 되고, 면전에서 말하면 충고가 된다.
그러나, 상대가 안 받아들이면 싸움을 건 꼴이 되고, 받아들인다 해도 쾌히 받아들이는 경우는 드물다고 보겠다. 그 원인은 상대가 받아들일 태세가 갖춰지지 않은 경우, 즉, 수양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자기를 알아보려면 자기가 잘못했을 때 충고해 주는 이가 있는가를 알아보면 된다. 내가 덜된 사람일 때는 받아들일 태세가 안된 것을 알고 충고 해 줄 사람이 없을 테니까!
사람은 의식이 있는 한 생각을 멈출 수 없고, 또한, 말을 안할 수 없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므로 항상 심사 숙고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서 말을 해야한다.
우리 모두 ‘험담 않는 학생, 잘 해 주는 학생’이 되자.

◇ 내가 먼저 사과하기
일상 생활에서도 사과할 일이 생긴다. 교양있는 사람은 얼른 상냥하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구실 찾을 궁리로 뜸을 들인다. 그래서 그 태도를 보고 사람됨을 가늠한다.
사과를 많이 하면 겸손해지게 되고, 겸손해지면 지혜의 눈이 밝아지기 마련이다.
‘우리 모두 겸손하게 먼저 사과하는 사람’ 이 되자. 그런 사람이 된 사람이다

일하는 것과 움직이는 것의 차이

옛날 농부는 밤하늘의 별을 보고 올해의 기상을 판단하고 바람의 냄새를 맡고 비를 예측했으며, 흙의 성질, 종자의 성질에도 모두 능통했다. 나이 많은 농부는 오늘날의 농학자에 비교될 만한 농업의 전문가이었다.
그러나 공장의 근로자는 나사를 돌리는 사람은 나사만 돌리고, 기름을 칠하는 사람은 기름만 칠한다. 농부는 일의 전 과정을 관리하지만 공장 근로자는 전체 일의 극히 일부분만을 반복적으로 되풀이 할 뿐이다.
이렇게 하다 보니 공장 근로자는 단순하고 틀에 박힌 사람이 되었으며 농부가 갖고 있던 지혜와 멋을 잃어 버렸다. 일은 단조롭고 지루한 반복일 뿐이고, 근로자들은 오직 임금을 받기 위해서 일할 뿐이다. 일은 아주 단순하여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월급을 받는 것이다. 일은 재미없고 누가 해도 그만이고, 나는 시키는 대로하고 월급만 타 가면 그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생각을 깨뜨려야 할 때가 되었다.

일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들이 역사를 움직여 왔다고 한다. 하기 싫어서 하는 일과 즐겁게 하는 일의 차이는 엄청나다. 사람들에게서 일하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때에 사회가 발전한다.

로마가 게르만에게 멸망당한 이유가 무엇인가? 로마의 노예들은 채찍 아래 강제로 일했으나, 게르만의 농민들은 자기 땅에서 즐겁게 일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움직이는 것과 일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초관리의 눈으로 보면 생각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일하는 것은 일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라고 본다.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이라면 기계가 반복 작동되는 것과는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생각하면서 일한다는 것이다.

공장과 기계 시스템은 인간의 창의성을 부릴 여지가 없게 만들어 버린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기계는 어떤 공장에 들어와서 거기 정착하여 가동될 때까지 무수히 많은 창의성을 요구한다. 어디에 설치해야 할 것이냐 에서부터 시작해서 기존의 기계와의 연결은, 부품의 흐름은 다 어떻게 조절하고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모두 사람의 힘이 필요하다.

조그마한 개량이나 작은 변화의 여지도 무척 많다. 갖다 놓는다고 그 때부터 기계가 알아서 만사를 다하고 사람들은 그저 구경만 하는 법은 없다. 기계는 근로자와 서로 한 몸이 되어 최상의 팀워크를 이루어야 한다. 기계와 사람은 가까워지고 친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많은 아이디어와 창의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일하는 것이다.
성 탄 절

오늘날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백성들은 오랜 옛날부터 하나님을 그들의 유일한 신으로 믿고 살아왔다. 그들은 하나님과 기도로 대화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죄란 인간이 가져서는 안될 욕심, 게으름, 시기, 다툼 등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들은 점점 하나님의 뜻과는 다르게 죄를 많이 짓게 되었다. 그래서 인지 여러 차례 이웃나라의 침입을 받았으며 강대국의 통치하에서 압박과 설움을 당했다. 그럼에도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참아 내며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았는데 그것은 하나님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즉 하나님은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며 세상의 고통과 시련 속에서 구원시켜 줄 하나님의 아들을 그들에게 보내 준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일로 마태복음과 누가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쓰고 있는 서력 기원이 예수 탄생을 기준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기원전 4-5년경이라고 하며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을 구원해 주신다.”의 뜻이며,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즉 “구세주”를 의미한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우리 나라는 물론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쁨을 찬미하는 행사가 열린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불리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선물을 나누고 서로 축복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풍습이 전해진다. 전날 밤을 크리스마스 이브라 하여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흰 수염 붉은 모자, 붉은 옷에 선물 보퉁이를 메고 썰매를 타고 찾아와 집집마다 굴뚝으로 들어가 착한 어린이에게 양말 주머니에 선물을 준다는 이야기는 19세기초부터 시작된 일로 보여진다. 산타클로스는 3세기말 어린이를 보호하는 성 니콜라스의 애칭이다. 독일에서 비롯된 크리스마스 트리는 크리스마스 기간의 장식물로 가지가 곧은 푸른 나무에 양초, 완구, 인형, 종, 과자 따위를 달아매고 눈송이를 본떠 솜을 얹는다.
크리스마스는 이제 전세계의 축제일이다. 그러면 예수 탄생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성탄절을 보내면서 우리는 여기에 담겨져 깊은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http://je333.com(태릉고등학교 생활지도부 교사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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