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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490 추천 수 0 2015.08.10 13: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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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3:13-19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3장 13절-19절: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 또 가룟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러라.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셔서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그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왔다.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 하는 여기에 딱 열둘만 산에 올라왔다는 것이냐, 다른 사람들도 산에 올라왔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냐? 다른 사람들도 올라왔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속 중심을 아시는지라 ‘너 너 너’ 하고 이름을 부르면서 ‘나를 따르라’ 한 것이다.


그런데 제자를 삼기 위해서 산 밑에서 부르셔도 되는데 왜 구태여 산 위에 올라와서 부르셨을까?


문제. 1. 그들의 믿음이 좋아서 산에서 부르신 것이다? 2. 평지에서 부르면 잘 안 들리기 때문에 산으로 올라서 큰소리로 부르신 것이다? 3. 일할 곳은 많고 당신의 일손이 모라라서 일 할 목적으로 불렀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에서 정답이 나왔느냐? 일반신앙으로 보면 첫째를 정답으로 안다. 그러나 정답이 아니다. 4. 영능의 실력적으로 높이 올려주시고자 불렀다? 정답은 4번이다. 그런데 1, 2, 3번 이것이 오늘날 교인들 속에서 얼마든지 정답으로 답이 나올 수 있다.


그러면 다른 교회에서 직분을 줄 때 믿음이 좋아서 주는 거냐, 교훈을 바로 듣고 그 직분을 가질 수 있는 실력으로 올려주고자 직분을 주는 것이냐? 믿음이 좋아서? ‘그 믿음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도 문제다.


충성봉사 많이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믿음 좋다고 하게 되면 안 된다. 그 사람 버린다. 모든 인격 면에서 영능의 실력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 즉 하나님의 지혜지식성 하나님의 도덕성, 이 도덕성은 선 사랑 진실, 또 하나님이 능력성, 이 능력성은 의와 주권. 하나님 안에 이게 있는데 우리가 이걸 닮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는 하나님만이 가지는 게 있는데 인간이 그 면은 닮을 수가 없다. 하나님만이 가지는 고유의 속성 즉, 비공유적 속성은 ‘자존성 영원성 완전성 단일성’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속성 중에는 우리 인간도 가질 수 있는 공유적 속성이 있는데 인간이 이 공유적 속성을 입으면 성품적으로 하나님의 본질과 똑같이 단일의 의사로 들어갈 수가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속성 인격에서 나온 거다. 그러니까 이 성경을 통해 이치를 깨달아 하나님의 영원 궁극적인 이해타산 평가성을 내가 가져야 한다. 그게 믿음 있는 사람이고 바른 믿음이다. 이게 아닌 충성봉사를 잣대를 가지고 믿음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불공평이 되고 성경해석이 안 돼 진다. 그리고 마귀가 또 그 수법을 갖고 온다.


돈 많은 사람, 충성봉사를 많이 하는 사람을 자꾸 믿음의 기준으로 세워놓으면 그 사람은 망한다. 이게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교회의 일에서 이게 복음이냐, 비복음이냐, 천국이냐 세상이냐’ 하는 것이 나누어지는 것이고, 마귀의 사역이 돼 나오기도 하고 주님의 사역 성령님의 사역이 돼 나오기도 한다. 그러므로 분명히 깨닫도록 해줘야 한다. 그리고 교훈이 그러니만큼 신앙하는 자세도 분명히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자기가 영원히 존귀 영광자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너를 영능의 실력적으로 높이 올려주시고자 불렀다. 머리 되게 하려고 너를 불렀다. 하나님의 본질로 나가는 그 머리는 이해타산 가치판단 평가성이 정확하다. 이런 머리는 일반 재판을 하는 머리는 아니다. 신적인 판단의 머리다.


국가에서 어려운 일이 일어나면 의례히 ‘누가 솔로몬의 지혜를 안 쓰나’ 하고 붙이지만 그게 아니다. 솔로몬의 머리는 ‘이게 산 거냐, 죽은 거냐’ 하는 생사를 구별해 내는 면이다. 신앙 면에도 죽은 신앙과 산 신앙을 구별해 내는 것이다.


교인을 딱 보고 ‘누가 이 사람의 신앙을 죽여 놨느냐?’ 그러면 교역자가 나오는 거다. 못 속인다. 교역자는 교인을 살려야 한다. 영능의 실력, 살아나오는 쪽으로 돼야지 그게 하나도 없이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면 이건 죽은 거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성경에 당신의 종들을 보내면서 죽은 자를 살리라는 것이다. 살리는 게 주님의 종이다.


그러면 무엇으로 살리겠느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인 구원도리를 가지고 살리는 거다. 정신이 살아나고, 모든 사고가 이해타산 평가하는 게 영원히 가는 것으로 판단이 나는 것이다. 이게 기독교 복음이다. 이게 성경 속에서 나오는 새로운 세계다.


자기를 썩어빠질 세상, 불타질 세상에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치지 말라. 그러면 다른 사람이 와서 자기를 밟는다. 왜? 자기가 자기를 무시하고, 무시하는 증거는 자기를 올려주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거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 자기가 자기를 무시하는 거다. 예수 무시는 자기 구원 무시다. 이건 자기 멸망이다. 그렇게 되니 하나님께서 사건을 막 몰아붙인다. ‘너는 밟혀라’ 하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성 밖으로 쫓겨나니 짐승들이 막 밟고 뜯어먹는다. 이 짐승은 이방사상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예수 믿으면서도 세상에 다 이용당한다. 교회 다니는 걸 우습게 생각지 말아라.


이방세상에서 사람을 부르는 건 돈을 벌기 위해서, 또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부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히 존귀 영광자, 하나님처럼 만들어 주고자 부르신다. 어느 종교가 자기를 그 목적으로 부르겠느냐? 어느 세상공부가 자기를 하나님처럼 인격과 성품을 질적으로 고상하게 만들어 주느냐? 없다. 그래서 일반세상에서 재판장이나 검사가 못 만들어지니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간다.


공부도 많이 하고 돈도 많이 들여서 키웠지만 감옥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 아무 것도 안 배우고 멍청한 게 어떻게 보면 훨씬 낫구나. 공부는 많이 했으나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간다면 공부한 보람이 뭐냐? 배운 보람이 뭐냐? 멍청이는 돈은 안 갖다 주었을 것이 아니냐?


남이 볼 때에 자기를 ‘밉게 생겼네 어떻게 생겼네, 키가 크네 작네’ 해도 예수님은 ‘내가 너를 최고의 존귀 영광자로 만들어 주고 싶다’ 하는 것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의도이다. 그러니 자기를 함부로 내동댕이치지 말라. 남이 아닌 네가 그러고 있다. 그러니 남 탓하지 말아라. 바른 깨달음을 갖고 믿어야지 안 그러면 자기는 저질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가만 보면 교회의 교훈을 듣다보면 영원히 존귀 영광성이 없는 교회도 있다. 그 교회 교인들을 보면 안다. 온 교회가 세상과 세상 것을 구하고 있다면 이거는 교인 하나하나마다 존귀 영광성이 없는 교회다. 다른 말로 하면 이루어지는 구원이 없다. 깨달음에서 실력이 올라가고 통치하고 지배하고 다스리는 이게 없다. 이것도 실력적 구원인데 그게 없다. 이런 교회가 많이 있다. 거짓교회가 그렇고, 이단자들이 그렇고, 세상 육적으로 나가는 교회가 그렇고, 비진리로 나가는 교회가 그렇다. 깨달음이 없다. 그러니 어찌 되겠느냐? 하나님 앞에 자기 꼴이 어떻게 되겠느냐?


그리고 이방종교는 세상의 것을 구하는 종교지 하나님의 성품을 입히는 종교는 아니다. 그러니까 이방종교는 일반세계에서 용어적으로 말하는 하나의 종교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본질로 들어가는 신앙은 아니다. 그래서 이방종교에서는 사람이 인격과 성품적인 면에 개혁이 안 된다.


혹 이방종교인이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자칫하면 하나의 기독교 일반적인 종교인은 될 수 있어도 자기의 속을 하나님의 것으로 갈아 넣는 신앙인은 안 될 수도 있다. 이런 걸 많이 본다.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은, 예수님의 사역은 우리의 모든 취미성 소원 목적성 지향성을 하나님의 것으로 완전히 바꿔놓는 것이다. 그게 신앙이다. 우리 신앙은 이거다. 그래야 옳다.


이건 인간 내가 기도하고 열심을 부린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신으로 되는 것이니 하나님의 신으로 될 수 있도록 자기가 말씀에서 늘 바로 서려고 자기를 살펴야 하고, 자기의 소원성이 ‘주님의 마음을 나에게 주십시오’ 해야 한다. 그 이상 뭐가 있느냐? 이건 하나님을 달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왜 기도로 세상 이런 거 저런 거를 달라고 하느냐?


통 크게 ‘하나님을 나에게 주십시오. 예수님이 매력이 있습니다. 그 지혜지식성이나 모든 신적인 도덕성이 욕심이 나니 나에게 주십시오. 나에게 주시려고 예수님이 오셨지 않습니까’ 하고, 판단은 늘 그 쪽으로 가져야 하고. 이러면 하나님의 역사가 있게 된다. 문제는 자기 속에서 그런 것이 소원성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못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 믿을 바에야 좀 그런 통 크게 가지고 믿어보자. 온 세계 만물이 그런 사람이 나타나길 원하고 있고 그런 신앙자가 나타나길 원하고 있다.


세상의 사건이라는 그 속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음성이 나오는 거다. 하나님께서 사건을 통해 너를 부르신다. 그 음성을 들을 줄 알아라. 쉽게 말하면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한 것은 믿는 사람들이 전부 세상 넓은 길로 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사건 상황을 보면서 성도들의 그런 신앙상태를 마음 아파하고 걱정해 들어가는 사람은 그 시대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가능성이 있다. 하나님께서 잡고 쓰시는 종이 된다. 하지만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의 성품을 입히지 못하고 세상에 속한 것을 구하고 있다면 이는 입는 구원이 없다. 교회는 교회인데 구원을 입히는 교회가 아니로구나. 예수자랑이 없으니 세상자랑밖에 없다.


예수님은 귀신을 내어 쫓으신다. 늘 말하지만 이 귀신은 그 사람의 성격 성질에 연합이 되어 있다. 결합이 아닌 연합이 되어 있다. 인간 아담 하와가 대표적으로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로 마귀에게 귀신에게 쉽게 노출이 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 속에 귀신 마귀가 들어가도 모른다. 그냥 노출이 돼 있다. 본인들이 그 자신이다. 이런 자기는 생명과를 먹되 이 세상에서 교훈적으로 오는 생명과 맛을 봐야 한다.


무당 점쟁이는 돈을 탐한다. 이방세상은 돈을 탐해서 무당 점쟁이에게 가서 점을 친다. 그러니까 사람보다 돈을 귀하게 여긴다. 예수님은 땅의 소원 목적적인 마음과 정신을 천국 쪽으로 바꿔지게 한다. 이게 복음이다. 교회가 그래야 한다.


예수님의 신실한 종들은 신령천국의 본질의 사람으로 속성적으로 성품적으로 인도하고, 오직 사람이 바꿔지고 깨닫는 그 일에만 수종들게 한다. 이게 주님의 일이다. 이게 주님께서 제자들을 뽑은 이유이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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