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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5:17-20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5장 17절-20절: 저희가 예수께 그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허락지 아니하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하신대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기더라.


왜 예수님께 떠나시기를 간구하느냐? 이들이 사람 쪽을 택한 것이냐, 돼지 쪽을 택한 것이냐? 돼지 쪽이다. 그게 판단을 잘 한 것이냐? 돼지는 돈이다. 돼지를 팔면 돈이 되니까 돈 쪽으로 선택을 한 것이다. 이게 일반사람들의 선택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서 돼지에게 들어가게 한 걸 보니까 예수님은 어느 쪽을 선택한 것이냐? 사람을 선택한 것이다. 만약의 경우 돼지가 이만 마리였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느 쪽을 선택을 하실까? 그래도 사람이다. 20만 마리라도 사람이다.


그 지경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기를 바랐다. 그러니 이건 그 지경의 사람들이 예수님보다 돼지를 더 가치가 있다고 여긴 것이다. 사람 구원보다, 또는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그 실력보다 돼지가 더 가치가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돼지 쪽을 선택을 했고, 돼지를 팔면 돈을 번다는 쪽으로 선택을 했다.


우리가 살면서 그런 선택이 많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고 병행해서 나올 때 ‘어느 쪽으로 선택을 하느냐’ 하는 부분적인 면에서 잘못 선택을 하는 게 많이 있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돼지 쪽을 선택한 사람들은 자기 구원을 버린 셈이다. 예수=구원인데 이 예수를 버렸으니 이들은 구원을 버린 셈이 되고, 구원을 버렸으니 예수를 버린 셈이 되고, 또 예수=하나님이니 하나님을 버림 셈이 되고, 하나님을 버렸으니 하나님 앞에서 온전케 되는 분을 버린 셈이 됐다.


그 결과는 자기가 받게 된다. 뭘 어떻게 선택을 했던 판단을 해서 선택을 한 자기에게 그 결과는 돌아온다. 누구 탓이 아니고 자기가 선택한 결과는 자기에게 돌아온다. 따라서 우리 기독자들은 한 마디 한 마디 들으면서 그 결과를 미리 당겨놓고 현재에서 그 판단이 분명해야 한다.


짐승들 중에 돼지가 있듯이, 사람들 중에도 세상욕심 돈욕심이 있듯이 예수 믿는 교인들 중에도 세상 육적인 생각이 소원 목적적으로 잔뜩 살이 찐 교인들이 많다. 그러니까 세상생각과 마음으로 살이 많이 쪄 있다. 돼지처럼 마음이 세상으로 살이 많이 쪄 있는 교인들이 많다.


이런 말을 들으면 자기 속에서 자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느낀다는 건 벌써 자기가 함정인지 아닌지 찾으라는 거다. 이걸 못 느끼면 안 된다. 그 결과는 자기에게 다가온다.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했다. 교인들이 믿음에 살이 쪄야 할 텐데, 진리이치로 살이 찌고 진리이치로 부자가 돼야 할 텐데 말세에는 세상 목적적으로 잔뜩 살이 찐 교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말세의 교회들은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입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의사단일성의 신앙을 갖는 게 아니라 세상 불타질 것을 이루기 위해 충성봉사를 열심히 하는 자들을 믿음이 있다고 추켜올려 세운다는 것이다.


이건 마귀 짓이다. 교회에서 세상을 높이 드는 거, 교회에서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을 높이 드는 거는 마귀 짓이다. 교회는 하나님 앞이니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닮은 사람을 높이고 진리를 높여야지 세상에 속한 것을 자꾸 올리면 그건 마귀 짓이다. 예수님의 세 가지 시험에서 마귀가 자꾸 세상을 높이 올렸다.


아가씨들이 갑부 집으로 시집가서 장롱이고 피아노고 테레비고 사다놓고, 찍어 바르고 그려 붙이는 거 잔뜩 사다놓고 친구들을 불러서 그걸 구경시킨다. 그러면 친구들이 참 부러워한다. 또 옛날에 아가씨들이 시집갈 때 보면 찬장에 여러 가지 형태의 유리잔을 잔뜩 넣어놓는다. 그러면 그게 보기는 좋은데 그걸 언제 다 사용하나? 또 목사님들을 보면 방 사방에 책장을 놓고 책을 잔뜩 넣어놓는다. 그 목사가 그거 다 봤을까? 아무 짝에도 필요가 없다. 이사 다니려면 큰 골치다.


스승목사님이 말씀하셨는데 보수계통에서 성경해석 한 거, 그 다음에 일반 세상역사적으로도 역사를 낱낱이 액면적으로 풀어 헤쳐 놓은 거 하나, 그 다음에 제일 중요한 것은 성경을 진리이치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거만 있으면 된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 입장에서 성경을 진리이치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체계적 신앙신학’이 되겠다. 그것만 갖추어라.


내가 전도사 때 집회를 하면 기독교 백과서적이나 성경단어장 그런 걸 팔려고 책장사들이 온다. 그때는 ‘그거 필요하겠구나’ 해서 사다놓고 했는데 지금 보니 그런 게 아무 쓸 데가 없구나.


지금 나는 성경하고 체계적 신앙신학하고 성경단어 책, 그리고 헬라어 책 그런 거 몇 가지밖에 없다. 기독교 교양서적, 사모님 교육서적, 교회 부흥시키는 방법 그런 책 하나도 필요가 없다. 그거 읽을 새가 없다. 왜? 내가 가지고 있는 이것만 해도 다 못 한다. 그러니까 그런 거 읽느라고 시간낭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것가지고 해봐야 남의 말밖에 안 된다.


그리고 내가 늘 얘기했지만 말을 더듬는 사람이 설교를 하게 되면 그건 자기에게 주어진 구원이 아니다. 그걸 좀 알았으면 좋겠다. 말을 더듬는 거, 혀가 짧아서 말이 정확하지 못한 사람은 생각을 해봐야 한다. 심한 예를 든다면 벙어리가 전도할 수 있느냐? 안 되듯이 전하는 사람은 말이 분명해야 한다.


그리고 서울의 누구처럼 말을 빠르게 해서 듣는 사람이 숨이 가쁘게 만들지 말라. 말을 빨리 하면 말을 하는 사람도 숨이 가쁘겠지만 듣는 사람도 숨이 가빠서 힘들어서 못 듣는다. 전하는 사람은 차근차근 말을 하면서 듣는 사람이 잠깐이라도 말뜻을 헤아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말을 하는 중간 중간에 필요 없는 말을 아무 때나 끼워 넣지 말라. 주일학교 교사들은 말씀을 전하면서 그 말을 녹음해서 들어보고 쓸데없는 말을 자꾸 연거푸 하면 그거 고치도록 하라. 쓸데없는 말을 자꾸 끼워 넣으면 공연히 시간만 가고, 말씀의 전달도 분명히 안 된다. 그리고 말을 빨리 해도 뜻이 분명히 전달이 안 된다. 그러니 말뜻을 생각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히 말씀을 전해야 한다. 주일학교 가르치면서 이런 점을 주의해야 한다.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는 것도 심하면 그것도 조심해야 한다. 물론 강조를 할 때는 반복을 할 수도 있다. 자기 단점을 자기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지적해 줄 때 바로 고쳐야 한다.


전할 때는 ‘예수는 그리스도라’ 하고 분명히 전달이 돼야 하는데 전하는 입장에서 말뜻이 분명하지 못하거나 말 사이에 뭐가 자꾸 끼어있으면 듣기가 힘들어진다. 이런 면을 꼭 조심할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를 쓰고.


말세교회들은 일 해놓은 것을 가지고, 열심 충성봉사 사역을 해놓은 것을 가지고 자꾸 믿음이 있다고 추켜올린다. 이건 마귀 짓이다.


‘충성봉사 잘 한다. 이 사람이 뭘 이뤄놨으니 믿음 좋다’ 하는 이게 왜 마귀 짓이냐? 그렇게 하는 그 사상은 사람이 신앙사상적 본질적으로 신령천국으로 고차원적으로 올라가는 사상이 아니고 내리막길로 내리뛰는 식이기 때문이다.


내리막길로 뛸 때는 멈추지를 못한다. 굴러도 잘 내려간다. 내리막길이 가파르면 한 번 달렸다 하면 서지를 못한다. 지금 본문의 돼지 떼 운동이 바로 그런 것이다. 앞에서 스톱을 해도 뒤에서 치고 내려오므로 그냥 빠져 들어간다. 뛰어내리다가 물을 발견을 했다고 해도 그건 이미 늦은 것이다. 뒤에서 밀어버리니 그렇다. 이게 심판의 바다, 죽음의 바다, 멸망의 바다라.


우리교회 교인들은 충성봉사 잘한다고 추켜올려 세우면 그건 마귀의 말로 알아라. 내가 늘 목사님들에게 하는 말이 ‘충성봉사를 하건 못하건 그게 문제가 아니라 성도들의 정신을 창조의 목적의 틀에다 바로 놓아라’ 라고 한다. 하나님--> 인간--> 물질의 순으로 놓아라.


순위적으로 인간 위에 하나님이고, 인간 네 밑에는 세상이라고 하는 물질이다. 세상이라고 하는 물질은 사람을 위한 이용물이다. 그런데 안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없애버리고 물질을 소원 목적적으로 인간 위에 올려놨다. 이게 순서적으로 타락이고, 존귀적으로 타락이고, 소원 목적적으로 타락이다.


안 믿는 사람은 전부 타락이다. 왜냐? 그들에게 하나님은 없지, 인간 자기 위에 소원 목적적으로 물질을 놓고, 그 다음에 그 물질 다음에 인간을 놓고 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속한 교인들은 사실은 하나님은 없다. 그러니까 충성봉사 일이 제일 먼저고, 그리고 그 다음에 인간 자기요, 그 다음에 하나님으로 돼 있다. 하나님은 맨 밑에 있다. 자기 종으로 부려먹는다. 그러니 알고 보면 하나님은 그 자기에게는 없는 셈이다.


‘인간이 타락이 됐나 안 됐나, 세상속화가 됐나 안 됐나’ 하는 것은 말로 표명하는 것이 아닌 그의 소원 목적을 보면 알 수 있다. 어쨌든 하나님--> 인간--> 물질의 이 순서가 틀어져 있으면 이거는 속화됐거나 타락이 된 사람이다.


길거리에 나가서 술 먹고 똥오줌 싸고 길바닥에서 잠자고 하는 사람만 타락이라고 보지 말고 아무리 학박사라도,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해도 그 사람 머리 위에 하나님은 없고 세상으로 딱 돼 있으면 이 사람은 타락으로 보는 거다. 이게 정확한 거다. 하나님은 이치를 가지고 그렇게 보신다. 이제 사람 보는 법을 알겠느냐?


그리고 자기가 인간의 삶의 순위를 알고 있다면 앞에서 말한 타락된 그런 짓을 하지 말고 하나님을 높여라. 하나님을 높이면 하나님은 그 자기를 올린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올리는 사람을 끄집어 내리지 말아라. 왜? 끄집어 내리는 네가 다친다. 그러니까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과 싸우자고 하는 셈이다. 이러한 신앙의 옳은 진리지식을 알아라. 그래야만이 인간 간에 관계성이 바로 되고 사람을 바로 세울 수가 있게 된다.


이치가 틀어지면 안 된다.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 감정적이다. 자기 감정은 아무 것도 못한다. 이런 사람은 사람들이 다 싫어한다. 또한 자기 감정적인 사람은 남의 이용물이 되기 쉽고 자기 시험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치적인 사람이 되면 사람이 정립 정관 정시가 된다.


돼지가 비탈로 내리달아서 바다로 뛰어내리는 이걸 성령의 눈으로 보면 바다는 세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세상의 것을 이루려고 내리달아 세상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을 말해주는 것이니, 세상 육적인 신앙을 가진 자들이 그것을 볼 때 그들이 악령을 받아서 뛰어내리는 것으로 보일까, 성령을 받아서 뛰어내리는 것으로 보일까? 성령을 받아서.


성경에 ‘살았으나 죽은 자로다’ 했는데 그런 자들이 볼 때 ‘살았다’ 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고 하겠느냐?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 그래서 교회에서 ‘충성봉사 열심히 하면 천국에 가서 큰 상을 탄다. 면류관을 탄다’고 하니까 서로 상 타려고 충성봉사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것을 누가 보면 성령의 불이 붙어서 그렇게 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렇게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속을 들여다보니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뭐가 죽었다는 것이냐? 눈에 보이는 활동은 열심히 하는데 이룰구원으로 속사람이 성장하고 이뤄져야 하는 이 운동이 스톱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 ‘살았으나 죽은 자로다’ 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교회는 충성봉사를 강조는 안 하지만 자기가 아느니만큼 깨닫는 만큼 움직이라는 것이다. 성장하는 것만큼 움직이라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성장하지 못하면 가만있으면서 손만 까딱까딱 하고. 배가 고프면 울고, 좀 더 성장하면 기기 시작하고 뭘 잡고 일어나려고 하고, 더 성장을 하면 걸음마도 못하면서 뛰려고 하다가 넘어지기도 한다. 그런 것처럼 되느니 만큼 움직이는 것이다. 속사람이 된 것만큼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아느니 만큼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교회는 활동 강조가 많으나 우리교회는 충성봉사를 강조를 하지 않고 어찌하든지 주님처럼 온전하게 성장되길 바라는 거다. 그리고 모든 언행심사는 본인이 은혜 받은 데서 감사로 나오는 것이고, 감사하는 거기에서 또 은혜를 받고 하는 것이다.


충성봉사를 하고 안 하고는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이지 목사가 열심히 충성봉사를 하는 사람을 교인들 앞에 세워놓고 ‘이 사람이 제일이다. 이 사람이 최고다’ 하게 되면 그만 기준이 달라진다.


그런데 다른 교회에 다닐 때는 그 교회에서 충성봉사를 강조를 해서 그게 귀에 가시였는데 궁극교회에 오니까 충성봉사를 강조를 안 하니 그게 좋다고 하면서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있다면 자기가 자라겠느냐?


사람은 자기가 된 것만큼 움직이게 돼 있다. 마음에 기쁜 것만큼 찬송이 나오게 돼 있고, 마음이 편안한 만큼 자기 얼굴도 광택이 나는 거다. 마음이 불안하고 시험이 들면 자기 얼굴색부터 다르다.


돼지들이 물속에 빠져 죽었는데 이 돼지를 죽인 귀신들이 그 돼지들과 함께 물속에 빠져 죽었을까, 아니면 돼지들만 죽었을까? 돼지들만. 그러면 지금도 기독교인들이 세상욕심으로 가득 차 있으면 그 사람 속에서 귀신들이 장난을 할까, 안 할까? 한다.


사람의 생각이 그렇고, 이해타산이 그렇고 늘 돈부터 먼저라면 이건 더러운 것이다. 사람을 척 볼 때 ‘저 사람은 돈이 많게 생겼다. 저 사람은 돈이 없게 생겼다’ 하고 보는 건 더러운 마음이다. 사람과 사람은 인격 대 인격이다. 그런데 세상은 그걸 모르고 늘 돈이 먼저다.


그러면 남편이 열심히 노력 것 한다고 해도 수입이 별로 없다. 그래서 아내가 돈 안 벌어온다고 긁어쌓고 무시해쌓고 하면 그 여자의 정신이 더러운 거냐, 깨끗한 거냐? 더러운 거다. 사람을 물질을 기준해서 보면 안 된다. 그건 참 슬픈 일이다. 사람의 인격이 그래서야 쓰겠느냐?


위로부터 받는 건 없고 옆으로만(인간끼리) 돼 있으면 그건 인본주의다. 세상은 하나님이 없으니까 그렇게 되어 있다. 교회가 하나님과는 잘라지고 인간끼리 들어가 있다면 그 교회는 세상에 속한 인본주의 교회이다. 교회가 세상적 육적으로 나간다면 그 교회는 인본주의 교회이다.


이런 인본주의 교회에서는 예수이름을 열심히 부르면서 땅에 속한 운동으로 충성봉사를 강조한다. 그러니 이들은 돼지를 물에 빠뜨린 귀신들의 그 성질은 안 죽는다. 오늘날 교회에서 그런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세상 밑으로 치닫는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자기는 물질 이해타산으로 예수를 믿는 건지, 아니면 주님의 온전한 인격의 사람으로 되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건지? 오늘날 자기는 돈을 보면 성령의 감화가 갑절이나 오는 건지, 온전케 된 사람을 보니 성령의 감동이 갑절이나 오는 건지? 어느 거냐? 사람이냐, 돈이냐?


성육신으로 오셔서 사람을 온전케 하신 그 분이 오늘날 지금도 보혜사 성령님으로 오셔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훈으로 사람을 거듭나게 하고 사람을 온전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 계신다. 지금도 그 분은 살아계셔서 당신처럼 온전케 되는 그 일을 하신다.


18절-20절: 거라사 지방 사람들은 예수님을 떠나기를 바랐으나 더러운 귀신이 나가서 온전하게 고쳐진 사람은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실 때 자기도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원했다.


고쳐진 사람은 판단이 아주 잘 됐다. 정확했다. 고쳐지기 전에는 무덤 사이에서 옷도 안 입고 비석 세우는 일을 했다. 말하자면 의의 옷도 안 입은 채 사망권 안에서 자기 영웅 만들기 운동을 했다. 그러나 고쳐진 후에는 의의 옷을 입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른 선택을 할 줄 아는구나.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런 그에게 하시는 말씀이 ‘너는 집으로 가서 주께서 큰일을 행하신 것을 네 친속에 증거를 하라’ 했다.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


첫 번째로 이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지 말고 전도부터 하라는 그런 뜻이 아니라 본뜻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예수님을 만나서 온전케 된 것을 친속들에게 먼저 나타내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사망권 안에 살면서 세상 영웅이 되겠다고 하고 있다면 예수 믿는다는 가치가 어디 있느냐? 믿는다고 하면 예수님의 냄새, 예수님의 향기가 나타나야 한다. 말하자면 인격이 변화된 것을 보여줘라 그 말이다. 믿기 전이나 믿은 후나, 예수 믿은 지 몇 십 년이 지났음에도 믿기 전과 똑같다면 나이를 먹고 살아온 가치가 어디 있느냐 그 말이다. 예수를 오래 믿었다면 참 사람이 된 수준이 나와야 할 것이 아닌가?


예수님께서 ‘너는 집으로 가서 주께서 큰일을 행하신 것을 네 친속에 증거를 하라’ 고 하시는 것은 자기에게 생명의 교훈이 와서 역사가 된 것을, 자기 속에서 생명적 역사가 된 것을 집안 식구들에게 먼저 나타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자기를 생각해 볼 때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큰일을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사망권 사망계인 줄도 모르고 세상 정신 소원 목적으로 사느라고 옷도 안 입고 살던 그런 더러운 정신을 다 쫓아내 주시고 진리의 생명의 말씀으로 자기를 바로 잡아주셨다는 이것이 자기에게 있어서 큰일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이 마음이 온전해지고 정신이 흐트러짐이 없고 사람의 가질 바 정신이 바로 들어가는 거다.


이건 비유적으로 하는 말인데 아가씨들이 시집을 가기 전에는 마음이 막 돌아다닌다. 결혼 전 아가씨 때는 이걸 스스로가 잘 모른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어머니가 돼서 보니 과거 아가씨 때의 자기의 마음이 어땠나를 느끼게 된다.


시집을 가기 전에는 마음이 막 돌아다니지만 결혼 상대자가 생기면 자기의 마음이 그 쪽으로 집중이 되니 밤늦도록 돌아다니지를 않는다. 미래에 알콩달콩 살 생각만 하게 된다.


이것이 나쁘다고만 보지 말고 이것은 우리가 주님을 붙잡기 전에는 자기가 영웅이 되게 사느라고 자기 마음이 세상으로 막 돌아다닌다는 걸 말해주는 거다. 이것은 마음이 정착이 안 됐고 소원 목적이 정착이 안 된 것이다.


이처럼 마을을 세상에 정착을 둔 것은 정확한 정착이 아니다. 남자청년도 세상 소원 목적으로 들어가 있다면 그 사람은 정신이 정립이 안 돼 있고 정착이 안 돼 있는 것이다. 그러한 정신은 세상으로 막 돌아다닌다. 그렇게 해서 세상을 많이 가졌다고 해도 정착이 안 되고 여자를 여럿을 거느려야 된다.


아무리 좋은 신랑감을 만나도 먼저 첫째는 하나님이다. 이거는 변하지를 말아라. 아무리 좋은 신랑감을 만나도 이게 흐트러지면 안 된다. 그 다음에 사람을 생활로 접촉하는 건 두 번째다 그런데. 이걸(사람) 첫째로 놓으면 그 사람이 우상이 된다. 이게(사람) 우상이 되면 그 사람이 잘못되면 자기의 소원 목적이 다 무너진 것처럼 생각을 하게 되고 세상을 다 산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어떤 인간이건 날 버리고 먼저 갈 수도 있는 것이니 사람을 하나님처럼 우상시하지 말아라. 사람을 하나님처럼 여기면 우상이 돼버린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이 사람을 우상시 했는지 안 했는지는 그 상대자를 잃으면 알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아, 이거 잘못 예수를 믿었구나’ 이게 나오는 거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정신을 똑바로 가져야 한다. 사람 때문에 사람 따라다니느라고 예배정신도 다 내버리고 옳은 깨달음도 다 내버리고 하면 100% 시험에 걸리게 돼 있다. 시험에 들면 사람이 추해진다. 자기 인생이 거기에 다 달린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두 번째는 무덤 사이에 사는 사람을 귀신을 쫓아내시고 복음 증거자로 만들어 주신 것이다.


세 번째는 복음 증거자는 세상이라는 사망권 안에서 살고픈 마음이 안 된다는 것.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인도자들이 사망권 세상권 안에서 자꾸 왕이 되려고 한다. 복음 증거자는 반드시 세상이라고 하는 사망권에서 탈출을 해서 예수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아 천국 생명권으로 소속과 입장이 돼야 한다.


이 데가볼리는 열 성읍으로 된 지방이라는데, 귀신이 나간 사람이 데가볼리 전역을 다니면서 예수님의 큰일을 전하니 듣는 사람마다 다 놀랐다. 왜 놀랐느냐? 이 사람이 그 전에는 군대귀신이 들렸었는데 예수님을 만난 후로는 완전히 딴 사람 되어서 감탄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가 고쳐진 사람이 데가볼리의 사람들과 같은 수준일까, 아니면 본질적으로 천국복음을 가진 수준으로 고쳐진 것이냐? 후자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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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58 시편 물질을 누리는 축복 시127:1-5  이한규 목사  2016-09-28 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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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56 창세기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사람 창33:5-20  이한규 목사  2016-09-28 704
13655 히브리서 모이기에 힘쓰라 히10:19-25  강승호 목사  2016-09-28 1642
13654 갈라디아 신앙은 열매로 증명된다 갈6:7-9  강종수 목사  2016-09-25 716
13653 마가복음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막14:1-9  김경형 목사  2016-09-25 464
13652 마가복음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일 방책을 구하며 막14:1-2  김경형 목사  2016-09-25 195
13651 히브리서 예수를 바라보라 히12:2  이형열 목사  2016-09-24 1005
13650 사무엘상 인정받는 신앙을 원하십니까 ? 삼상18:5-30  전원준 목사  2016-09-24 472
13649 이사야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사60:1-5  한태완 목사  2016-09-23 1266
13648 로마서 복되고 보람 있는 인생을 살려면 롬14:8  한태완 목사  2016-09-22 834
13647 누가복음 영혼을 위한 준비 눅16:19-31  강승호 목사  2016-09-21 482
13646 잠언 부지런한 사람이 되자 잠6:6-11  한태완 목사  2016-09-20 937
13645 창세기 죄를 다스리라 창4:7  강종수 목사  2016-09-18 540
13644 마가복음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깨어 있어라. 막13:28-37  김경형 목사  2016-09-18 382
13643 마가복음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막13:28-33  김경형 목사  2016-09-18 301
13642 전도서 청년의 때에 전12:1-2  강승호 목사  2016-09-17 1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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