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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것을 의자하는 이스라엘

호세아 구하라 목사............... 조회 수 313 추천 수 0 2015.04.28 23:25:28
.........
성경본문 : 호8:1-14 
설교자 : 구하라 목사 
참고 :  

호세아 8장:1~14절


찬양: 597장 (이전에 주님을 내가 몰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원하는 것이 있을까요?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서 하찮은 인간에게 원하는 것이 있을까요? 실은 이 질문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왜냐하면 원한다는 것은 부족을 전제할 때 가능한 말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께서 뭔가를 원하신다는 말 자체가 모순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6) 그런데 분명히 하나님께서 원하는 게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하나님의 자체모순이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이 부족해서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원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이유로 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의 원하심은 하나님의 부족을 채우기 위한 원함이 아니라, 하나님 외에 다른 누군가의 부족을 채우기 위한 원함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누군가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하고 계신다는 것은 부족한 인간을 위해서 인간의 부족함을 채워주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기억을 하면서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제사를, 그것도 번제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번제를 원하신다는 생각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게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제사법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오제사법>입니다. 오제(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는 제사의 종류이고, 사법(화제, 요제, 거제, 전제)은 제사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오제사법>에 의해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를 드린 이유가 말씀에 대한 절대적 순종이라면 좋았겠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다했음을 드러내고 싶었다는 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 이면에 인간의 의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제야 비로소 하나님이 위대한 분이 되고, 전능한 분이 되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려 한 것입니다.

인간의 의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제사를 드렸기에 하나님은 그런 제사는 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신 인애를 원하고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히 레위기에서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호세아서에서 이처럼 말씀하시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은 인간의 착각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제사를 명하신 것은 하나님의 부족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이었는데, 인간은 자신의 행위가 마치 하나님의 부족을 채우는 의식인 양 착각한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자신을 위한 행동을 하고서 하나님을 도와드린 양 자신의 의를 드러낸 것입니다. 본말이 전도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행하는 모든 인간의 행위는 자기 의를 드러낼 뿐이며, 이는 우상숭배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선악과를 동산 중앙에 두신 이유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선악과를 인간의 눈에 가장 잘 띄는 동산 중앙에 두신 이유는 인간을 시험에 빠지게 하려고, 골탕먹이려고 두신 게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의 존재를 분명히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에덴동산의 인간은 하나님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 빼고는 말입니다.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있었고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선악과 마저 없었다면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는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악과는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의 차이를 알려주는 이정표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또한 피조물된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인간은 착각했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선악을 알게 될 줄로 착각했습니다. 하나님처럼 선악을 알게 된다는 것은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말이 아니라, 선악의 기준을 인간이 정한다는 말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처럼 행동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상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처럼 어리석은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를 할 수 밖에 없었고, 그에 대한 책망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우상숭배를 했는지 12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율법을 만 가지나 기록하셨습니다. 율법을 만 가지나 기록했다는 것은 그 만큼 세심하게 꼼꼼하게 하나 하나 자세히 알려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율법을 잘 지킬 수 있도록 배려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세심하게 배려하신 이유는 율법을 제대로 지킬 때만 인간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 가지나 기록한 율법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율법을 이상한 것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상한>의 히브리 원어는 ‘주르’인데, 이 단어는 ‘멀어지게 되었다, 싫어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을 위해 만 가지로 기록한 율법이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율법을 지키는 이유가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하나님의 부족을 자신이 채워드리기 위함이라고 착각한 결과, 율법을 지킴이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의 인생을 잘 압니다. 사도바울이 사울이었을 때, 그는 누구보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특심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을 핍박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그랬을까요? 자기 의가 앞섰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자기 의는 더욱 강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기 의가 앞서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구약의 시대나 신약의 시대나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구약은 오실 메시야를 믿는 믿음으로, 신약은 오신 메시야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행위로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자기 의를 앞세우는 사람은 믿음이 아니라 자기 행위로 구원받겠다는 사람이기에 겉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면서 비로소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지 않으면, 하나님을 위하는 열심이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비늘 같은 것이 무엇입니까? 앞을 제대로 못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것이 자기 의로움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자기 의로움을 내세우는 것이 가장 무서운 것은 잘못된 길을 걸어가면서도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그렇습니다. 2절입니다. “그들이 장차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 하리라” 그러나 3~4절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미 선을 버렸으니 원수가 그를 따를 것이라 그들이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난 것이 아니며 그들이 지도자들을 세웠으나 내가 모르는 바이며 그들이 또 그 은, 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결국은 파괴되고 말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부르짖지만, 하나님은 나는 너희를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른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바로 자기 의로움에 사로잡혀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는 것보다 무서운 것이 바로 자기 의로움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괜찮은 믿음의 소유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이 정도면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성경은 선 줄로 생각하거든 넘어질까 염려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켜 하나님을 아는 자라고 말했지만, 정작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자기 의에 사로잡혀 하나님 대신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자기 의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보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침기도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하찮은 인간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셨습니다. 그것은 제사를 원치 않고 하나님을 더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의식 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것임을 잊지 않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행하는 모든 것이 우상숭배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게 해 주옵소서. 그리하여 자기 의로움에 사로잡혀 하나님께 버림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철을 되밟지 않게 해 주옵소서. 우리를 위해 허락하신 말씀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된 삶을 살아가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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