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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말라기 궁극이............... 조회 수 349 추천 수 0 2015.01.16 13:29:36
.........
성경본문 : 말1:1-2:15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2000년대 설교 

1장 1절-2장 15절,


기도: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부족하고 연약하고 죄 많은 저희들을 불러주셨사온즉 이 시간에 진리이치로서 저희들을 깨닫게 해 주시고, 영의 눈이 밝아서 세상 사건적으로 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잘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 저희들의 부족하고 병든 것, 미달되고 굽어지고 비뚤어진 것을 낱낱이 고쳐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먼저 생각을 하고 지나가겠습니다. 말라기는 예수님 초림으로 오시기 직전 약 400년 전의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입니다.세례요한은 예수님께서 초림으로 오시기 직전에 여섯 달 먼저 와서 예수님을 소개하고, 회개의 세례를 베푼 선지자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그 때 당시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세상에 속화되고 타락된 신앙상태를 잘 지적을 해 주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역할과는 약간 차이가 있지요?

말라기 선지자 그 때의 신앙상태처럼 세상이 마지막 때도 그와 같은 사상이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강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때고 교회의 타락은 항상 종교지도자들로부터 먼저 속화되어 가는 겁니다. 알맹이 없는 진리, 진리 없는 외식운동, 너도 나도 가견적 확장운동으로 치닫게 되는 겁니다. 오늘날 그러한 운동을 많이 볼 수가 있어요. 신앙 사상적으로 요한계시록에서 더욱 자세하게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선민 이스라엘이 조상들에게 구원역사 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의 역사적 사건들을 모두 다 잊어버리고 산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언제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랑해 줬습니까’ 하는 그 말을 하고 있다 그 말이요.


야곱의 역사적 신앙은 인간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만이 산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래, 그러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라’ 하고 그 뜻으로 준 이름이 얍복강 가에서 ‘이스라엘’ 이라고 하는 이름을 야곱에게 다시 지어준 것입니다.


야곱의 후손들이 야곱이 개칭된 이스라엘의 신앙을 부여받아 가지고 살게 되는데 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그만 국호가 된 겁니다. 신앙사상 면에서 국호가 됐단 말이요.


하나님의 축복을, 즉 장자권을 물질과 바꾸어 먹은 야곱의 형 에서의 물질적 사상을 이어받은 후손들은 에돔족이라는 이름으로 영영한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종말을 이스라엘로 하여금 두 눈으로 보도록 하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을 알게 하는 겁니다.


6절: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제사장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함이 없다고 그랬지요? 제사장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를 했다고 그랬지요.


공경성은 ‘그 분이 어떤 분이시다’ 하는 것과 그 분의 은혜를 알았을 때에 공경성은 나타나고, 인격적으로 그 분을 바로 알았을 때에 또 공경성이 바로 나옵니다. 모르면 나오지를 않아요.

당시의 제사장들은 자신들이 제사장이니만큼 하나의 제도와 형식으로 지킬 뿐이었습니다.


멸시는 자기가 어떤 분보다 무엇이든지 지위적으로나 명예적으로나 권세나 그러한 것을 가졌기 때문에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이 될 때에 상대에 대해 멸시가 나옵니다. 상당히 이기적이고 자기의 분수를 모를 때에 남을 멸시하는 것이 나오게 되지요.


멸시의 행동에는 1장 7절에 보니까 여호와 하나님 앞에 더러운 떡을 드렸다고 그랬지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또 희생의 제물을 짐승으로 드리는데 그 짐승들은 눈먼 것,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렸던 겁니다.


어른을 멸시하는 마음은 주로 보면 행동에서 나타나고, 말에서 나타나고, 한 집 식구 같으면 음식에서 또 나타납니다. 말로, 행동으로, 음식으로 이렇게 나타나요. 뭐든지 좋은 것은 자기부터 우선적으로 챙겨놓고 어른은 항상 뒷전으로 나가지요.


신앙도 마찬가지. 하나님 앞에 하는 것은 뭐든지 찌꺼기를 바친다고 하는 겁니다. 병든 것, 눈먼 것, 저는 것, 이거는 찌꺼기라 그 말이요. 생생하고 건강하고 좋은 것은 우선적으로 자기가 취하고, 찌꺼기를 하나님 앞에 드리고 그런다 그 말이요.


사실 이 찌꺼기를 남 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찌꺼기 같은 사람인고로 찌꺼기 같은 합당한 대우를 자기가 받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혹 여러분들이 일반적인 생활에서 이웃집에 뭘 갖다 드린다고 할 때라도 제일 좋은 거, 하나라도 제일 좋은 그런 것을 대접을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욕먹어요. 주고도 욕먹고 그럽니다. 찌꺼기 같은 사람이 돼서는 안 됩니다. 제일 좋은 것으로 대접할 줄 알면 그 사람은 사랑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찌꺼기를 갖다 바치면서 하나님께 은혜를 아무리 구하여도 벌써 하나님의 은혜는 떠났다고 그랬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는 머무르고 있을 수가 없어요. 1장 11절에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딴 데로 갑니다. 이스라엘에서 어디로 가는가 하니 이방으로 가버립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에서 크게 될 것이라, 이방에서 공경함을 받을 것이라’ 그랬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사랑을 받은 자들이 주님의 구원역사를 망각하면, 또 깨우쳐줘도 듣지 않고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 대적하는 마음을 가질 때는 성령은 떠나고, 하나님의 사랑이 딴 데로 가서 축복의 역사를 한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되는 그 곳에서는 그 사람이 올라갑니다. 차원적으로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올라가요. 왜 그런가 하니 그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높이고 옳게 공경을 하니까 그렇다 그 말이요. 축복을 받는다 그 말이요.


육적 혈통적 제도가 문제가 아닌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민족에 대해서 육적 혈통적 제도를 가지고 상당히 과시했다 그 말이요.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는 무조건 혈통적인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우선적으로 제일 첫째로 공경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고 높이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2장에서도 역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말씀을 주시고 계시는데 하나님께서 이르는 말씀을 마음에 명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니 하면 제사장 너희들의 얼굴에다 희생된 짐승의 똥을 칠을 하고 저주를 내려 없애겠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 말씀을 새겨들으면 하나님께서 제사장이 정말 미워서 한 게 아니라 하나님 당신처럼 영화롭게 존귀 영광자로 만들어 주고 싶어서 강권적으로 하시는 말씀인 것을 알 수가 있고, 또 하나는 이 제사장 직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얼마나 무거운 중책이냐 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왜 세웠느냐 하면 하나님과의 언약된 생명과 평강을 주시려고! 이 생명과 평강은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평강입니다. 세상에서는 줄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충만하게 받아 가지는 것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사는 겁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통치를 잘 받으면 하나님의 성품으로 입어지는 삶이라 그 말이요. 축복된 삶이라.


이러한 삶이 바로 되려면 제사장의 입에 진리의 법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 제사장에게는 하나님의 법이 있어야 된다고 그랬지요?


진리법은 세상법은 아닙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법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이요, 이 하나님의 법은 육신, 육을 목적으로 해서 있는 법이 아니라 우리의 영, 혹은 영혼, 혹은 신앙 면에서 영적인 영혼의 기능의 성장을 위해서 이 목적으로 주신 법입니다.


그 다음에 제사장은 또 화평과 정직에서 동행을 한다고 그랬지요? 화평은 세상과의 화평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화평입니다. 이 화평은 의사단일이라야 화평이 되지 의사단일이 아니면 화평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이 세상과 의사단일성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과의 화평이 안 되고, 하나님과는 충돌과 마찰과 대립이 됩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이 아니니까 하나님의 징계나 재앙을 만나게 된다 그 말이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의사단일의 화평을 가져야 한다 그 말이요.


정직은 진리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법대로 사는 것이 정직입니다. 그러니까 일반정직하고는 근원이 다른 겁니다. 일반 정직은 자기의 양심대로 사는 것. 이게 일반 정직이지요? 하나님 앞에의 정직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리대로 사는 것.


일반양심의 정직과 그 사상과 그 정신은 소원 목적이 전부 다 땅으로, 세상으로 향해져 있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정직은 그 사상과 그 정신과 소원 목적이 신령한 천국으로 향해져 있습니다. 다르지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하나님과 의사 단일성적으로 된 화평이 신앙사상의 화평입니다. 우리가 이룰 화평이지요? 세상 의사적 화평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 진리대로 사는 정직과 항상 대립이 돼 있고, 일반양심의 정직을 뿌리를 캐보면 이거는 땅입니다. 세상이라 그 말이요. 신앙양심의 정직을 뿌리를 캐면 이거는 진리입니다. 근원적으로 다르다 그 말이요.


그런데 대부분 보면 성경을 읽거나 화평이나 정직을 말할 때 일반 도덕성적 개념적 사상에다 뿌리를 박아놓고 하나님의 계명인양, 하나님의 말씀인양 화평을 부르짖고 정직을 부르짖는다 그 말이요.


세상의 개념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인 양 화평을 부르짖고, 정직을 부르짖는 이것은 거짓적인 지도자들이라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거짓적인 지도자들이 성경을 그렇게 보는 겁니다.


그 다음에 제사장은 많은 사람을 죄악에서 돌이켜 떠나 하나님께로 오도록 하는 겁니다.


세상사람들은 자기가 알던 모르던 모두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세상을 소원 목적하고 세상의 것을 전부 다 하나님으로 삼고 세상길 넓은 길로 가고 있는 겁니다. 이게 선악과 따먹은 사람들입니다. 모두 다 하나님 앞에 죄악 된 길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죄이라 그 말이요. 뭐 세상 죄를 지어서 죄인이라고 하는 그런 개념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 선악과를 따먹었으니, 세상으로 향하여 가고 있으니 하나님 앞에 이거는 죄악 된 길이다. 죄악 된 길로 가는 사람들이다. 이 길로 가면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진리신앙으로 사는 길은 이 죄악에서 돌이킨 길이요, 하나님 앞으로 돌이킨 길입니다. 이 신앙의 노선에서 생명이치의 말씀을 먹으면 사람의 영혼이 살고, 자기의 영적인 기능과 지능 면이 살아나게 되는 겁니다. 죄악에서 떠나서 하나님께로 진정 돌아온 자들은 이런 삶을 경험적으로 체험적으로 실질적으로 느끼게 되는 겁니다.


진리의 노선에서 신앙 이치적으로 깨달아 가면서 아닌 말로 적게는 한 달, 길어봐야 일 년 안에 자기가 이치적으로 깨달아 나가고 있구나 하는 이것을 확실하게 자기가 알 수 있을 정도로, 다른 사람이 알 수 있을 정도로 느끼게 된다 그 말이요. 확실한 삶이라 그 말이요.


그런데 그것이 없으면, 하나님께로 돌아왔다고는 하겠지만 그러나 영적 지능과 기능 면이 조금도 자라지를 못하고 있다면 이것은 아직까지 신앙의 깊은 뜻을 모르고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것이 아니면 또는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속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에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확실하게 알고 찾아야 하는 겁니다. 심사를 해 보고.


그 다음에는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한다고 그랬지요? 이 지식은 일반 사회적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지식입니다. 이 진리지식은 하나의 종교적인 지식은 아닙니다. 일반종교하고 같은 그런 지식은 아닙니다. 영적 개념적 진리지식입니다.


가치 평가 판단 이해타산 결론을 내리는 것이 궁극적 개념입니다. 영원 궁극적 그 결과에다 총 결산을 하는 지식입니다. 신령천국에 관한 궁극적인 진리지식이고, 이 진리지식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직접적 지식이 되는 겁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일반지식은 소유적 지식입니다. 활용적 지식입니다. 진리지식은 직접적인 기준적 지식입니다. 일반세상 사람들은 영혼에 관한 영적인 진리지식은 모릅니다. 알 리가 없습니다. 일반세상 지식을 자기의 주격적 지식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 일반세상 사람들이라 그 말이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 신자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는 이렇게 기준적인 지식이 다릅니다. 확실하게 다릅니다. 지식이 달라요. 겉으로 보면 너나 나나 똑같은 사람인데, 다 학문을 연구하고 학교공부를 하고 했지만 속에 들어 있는 기준적 지식이 다르다 그 말이요.


예수 믿으면서 일반지식을 기준적 지식으로 하고 있다면 사람이 바꾸어지지를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은 예수를 믿으면서 항상 예수님에게 대해서,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대해서 불신성이라고 하는 성분이 가득히 들어있다 그 말이요. 예수 믿으면서 그렇다 그 말이요. 지식이 안 바꾸어지니까 예수 안 믿는 사람의 소원 목적과 정신사상과 똑같다 그 말이요.


말세교회의 속화되고 타락된 세상으로 흐르는 교회들은 교회 안에 이제 말씀드린 그런 교역자, 일반지식이 주격적으로 된 교역자, 목사, 그리고 그런 교인들이 교회 안에서 주도권을 잡고 나간다 그 말이요. 이것이 말세교회의 현상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우리가 많이 들었지요? 짐승이 머리가 많고 뿔이 많아요. 그것이 이제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짐승이라 그 말이요. 사람이 바꿔지지를 아니했다 그 말입니다.


많은 사람이 제사장의 입에서 율법을 구합니다. 본문에 나타나 있지요? 세상지도자나 이방종교 지도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율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의 입에는 하나님의 율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인간의 영과 영혼의 주격으로 하고, 영혼이 잘 되라고 주신 법입니다.


이 제사장의 입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구할 수 없다면 그러면 제사장의 입에서 무슨 법이 나오겠느냐, 또는 누구의 법이 나오겠느냐? 보나마나 세상자랑밖에 더 나오겠느냐 그 말이요.


율법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삶의 기준이요, 신앙생활의 척도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말라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보니까 오히려 제사장들이 율법으로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율법은 사람을 세우는 것인데, 제사장은 율법을 가지고 사람을 세우는 건데 영혼을 위해서 영혼 잘 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육의 것이 잘 되라고 하는 식으로 가르쳤다면 이는 여지없이 걸려 넘어진 겁니다. 사람이 넘어졌다 그 말이요.


사단 마귀가 사람을 넘어뜨리는 아주 고차원적인 수단 방법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사람을 즐겁게 하고, 넘어뜨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하는 방법을 쓰고 있는 겁니다.


교리적 이단은 그래도 쉽게 나타나지만 성분적인 이단은 쉽게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성경구절을 가지고 이리 붙이고 저리 붙이며 자신의 목적에, 세상적인 목적에 너무나도 잘 이용을 하기 때문이고, 성경구절을 가지고 이용을 하기 때문에 잘 모른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성경구절 가지고 말을 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이거니’ 하고 다 속는다 그 말이요.


우리는 목적관으로 판단을 해야 합니다. 심사를 해야지요. 성경구절을 가지고 목적을 어디다 붙이느냐? 세상 종교사역적인 종교업적 면에 붙인다면 이것은 거짓 운동이고 사단의 운동입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 얼마든지 마귀가 성경구절을 가지고 덤벼든단 말이요.


성분적인 이단은 왜 못 알아보는가 하니 세상이 알아주고, 종교계가 알아주는 조직 속에 숨어있기 때문에 모릅니다. 보수라, 정통이라 하는 조직 속에 사단의 역사가 숨어 있으면 전혀 몰라요. 그러니까 한 그물에 싸인 고기처럼 ‘다 진짜거니’ 한다 그 말이요.


사단 마귀의 운동, 사망운동을 하고 있는데 모르는 사람들은 보수 정통의 조직 속에 들어 있으면 ‘아, 저것도 복음이지, 하나님의 말씀이지’ 그런다 그 말이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 교회는 어느 조직 속에 들어 있습니까’ 하고 묻는단 말이요. 파를 묻는단 말이요.


엊그제 저기 전라도 여수에서 한 교역자가 전화를 했습니다. 얘기 가만 들으니까 서부교회에서 아마 활동을 하다가 거기도 뭐 분파가 생기니까 혼자 있는지 날보고 그러더구만. ‘지금 어느 소속입니까?’ 난 ‘나 혼자 있다’고 그랬지. 가만히 얘기 들으니까 부산 백목사님 설교나 김석준목사님 설교, 70년대에 설교한 테이프를 얻으려고 그러는 것 같아요. 없다고 그랬지요. 내가 그랬지. ‘그만큼 받으셨으면 성경을 연구 많이 하라’고 그랬지.


그러니까 아마 부산 백목사님도 칼빈을 우상을 삼지 말라고 그랬던 모양이요. 그 말씀은 맞는데, 그런데 어제 전화한 그 목사님은 한 사상 가지고 파야 돼요. 그거 수집하고 이러다 보면 세월 다 넘어가요. 못 쓴다 그 말이요. 그것도 자기가 자기에게 속는 거야. 진리운동만을 해 나가면 되는 건데.


가만히 보면 교훈적인 이단도 모르고 성분적인 이단도 모르는 사람은 누가 어느 조직 속에 들어있으면 이단이 아닌 것처럼 생각을 하고, 조직 속에 안 들어 있으면 이단시하고 쳐다보는데 이거는 성경적인 신앙에서 보면 틀림없이 주님과 다른 이단적인 성분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나타난 교리적인 면에서는 이단이 아닌데 신앙사상과 성분적인 면으로 볼 때 주님하고는 다르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성분적인 면에서 이단이라 그 말이요.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보면 교리적 문자적 성문적 교리 때문에 두들겨 패는 게 아니고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 네가 누굴 닮았느냐’ 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자녀들을 때린다 그 말이요. 그걸 잘 알아야 되는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걸 알게 하려면 얼마만한 시간이 걸리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사이가 엄청나게 벌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진리신앙 사상적 소원 목적관을 모르면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 입장에서 성화구원을 모릅니다. 캄캄해요. 겉으로 보면 부흥 같은데 영적인 면을 보면 걸려 넘어진 교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도를 지키지 않는다고 그랬지요. 하나님의 도를 몰라서 안 지키고, 세상을 따르느라고 못 지키고. 도를 지키면 자기의 인격이 올라갑니다. 자기의 신앙생명이 지켜집니다.


그 다음에 또 보면 사람에게 편벽되이 했다고 그랬지요? 편벽은 자기의 감정에 따라 하고, 상대방의 조건에 따라서 하게 되니까 도의 기준이 없어져 버립니다. 형편에 따라서, 자기 마음이나 상대의 형편에 따라서 하니까 기준이 없어져 버려요. 그래선 안 된 다 그 말이요.


하나님은 사람 불쌍하고 가난하고 이거 안 봐줍니다. 하나님의 당신의 도의 기준에 맞느냐, 안 맞느냐에 따라 하나님은 행하더라 그 말이요.


이 도의 기준이 없어져 버리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도 넘어지고, 인간 앞에서도 모두 죄를 짓게 되는 겁니다.


나라 안이 어지러워지려면 세상 국가의 법도 기준이 없어져 버리지요. 법관이 법을 어기고 그런다 그 말이요.


모두 다 죄를 짓게 되니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영적 차원이 낮으면 인격적 차원이 낮아지고, 하나님의 말씀의 도를 전부 다 없애버리니 제 마음대로 하니까, 그리고 이성의 판단하는 게 영육 분별이 없이 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본능적으로 살게 돼요. 하나의 본능적 자연인으로 살게 되고, 결국은 하나님의 진노로써 이방민족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민족들, 이방우상에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다 그 말이요. 그들이 와서 강압적으로 누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멸시와 천대를 받는다.


멸시와 천대성을 꼭 무슨 사건이 와서 사건이 터진 후에 있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사건이 터지기 전에 영적 신앙 인격적인 진리이치를 모르면 모르는 그 상태로 있으면 세상에게, 사건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는 일이 필연코 온다고 하는 것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하는 겁니다.


2장 10절: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의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궤사를 행하여 우리 열조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형제에게 궤사를 행했다고 그랬지요. 예수님 당시 때에 제사장들이 예수님께 한 짓이 생각이 나요.


또 궤사란 거짓말. 거짓말엔 간사가 들어 있습니다. 간사하고도 교묘한 행동을 가지고 형제를 속이는 겁니다. 아주 간사와 교묘한 술책으로 형제를 속이는 그게 궤사라 그 말이요.


형제에게 궤사를 행했다: 형제는 한 아비의 혈통이지요. 한 믿음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면 한 형제요.


형제가 형제를 속이는 형제가 많지요. 그러면 부모가 욕을 먹습니다. ‘어떻게 교육을 시켜놨기에 저 모양이냐’ 그런다 그 말이요. 그런 것처럼 열조의 언약을 욕되게 해 버립니다. 형제끼리 싸움이 일어나고, 서로 속여먹으니까 그 다음엔 살인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되면 그 한 집안에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평강은 없어집니다. 공포와 불안이 조성되고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11절입니다.


11절: 유다는 궤사를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의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이방신을 섬기는 자의 딸들과 결혼을 해 가지고 선민이요 성민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이것을 욕되게 한다 그 말입니다.


신앙의 지도자들이 속화되고 타락이 되면 옳은 신앙의 길에서 이탈이 돼 버리고, 신자들은 그 신앙성분이 전부 다 세상화 되어져 버립니다. 세상을 붙잡고 살게 된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거룩하다, 깨끗하다, 정결하다, 청결하다’ 하는 이것은 없어집니다. 정신이 추잡하게 되고, 소원 목적이 추잡하게 되고, 생각하는 것이 저질이 돼 버리고 그렇단 말이요.


12절: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서 끊어 버리시리라.


이런 행악하는 모든 자들은 지도자들이고 백성들이고 간에 모두가 야곱의 신앙혈통으로부터,(이스라엘이지요?) 즉 하나님의 축복으로 산다고 하는 그 정신에서부터 끊어지겠고,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다스림에서 다 끊어져 버린다고 하는 말입니다. 저주가 돼 버린다 그 말이요.


13절: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우게 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이때까지 지은 죄도 차고 넘치는데 뭐가 부족해서 또 무슨 죄를 더 짓느냐 그 말이요.


14, 15절: 너희는 이르기를 어찜이니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찌기 증거 하셨음을 인함이니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궤사를 행하도다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여자 하나를 지어 아내로 삼은 것은 많이 짓지 않았다 그 말이지요. 그러니까 어려서 취한 자기 아내에게까지 궤사를 행한다고 하는 것이지요.


어려서 취한 아내는 세상살이의 경험이 부족한 여자요, 그만큼 이스라엘의 순수성을 보전한 여자요, 마음이 여린 여자요, 오직 남편만 믿고 바라보는 여자요, 좋은 진리이치를 배우면서 얼마든지 성장을 할 수 있는 여자입니다.


이런 축복으로 준 아내를 내버리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방신을 섬기는 딸을 취하고, 자기 진짜 본 아내를 학대를 하고, 어린 아내를 내어 쫓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하니까 본 처가, 어린 아내가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와서 눈물바다로 잔을 가리우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죄라고 하는 데는 하나님 앞에서의 죄만 생각하기 쉬운데 아내 앞에 아내에게 지은 죄도 죄가 되는 겁니다. 그런 죄도 있다 그 말이요. 첫째는 아내는 하나님께서 남편 자기의 몸으로 만든 자기의 몸이요, 자기 몸처럼 아끼고 사랑할 대상자이지요. 이 사랑스런 아내를 사랑을 안 해 주는 것도 죄이고, 아내 앞에 죄 짓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만 죄 짓는 게 아니고 아내 앞에서도 죄 짓는 겁니다.


두 번째는 사랑의 대상자를 바꿔버리는 것도 아내 앞에서 큰 죄를 짓는 겁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버리는 것, 사랑치 않는 것, 고통을 주고 슬프게 만드는 것도 죄입니다.


네 번째는 자기 아내를 구타하고도 일반적 양심의 가책조차도 없으면 그러한 남편은 앞으로 얼마든지 더 큰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들어 있습니다.


일반인들도 말하는 것을 가만 보면 ‘하늘이 짝지어 주셨다’ 그러지요. 부부가 아들 낳고 딸을 낳고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잘 누리며 살라고 축복을 하지요. 그런데 성경,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늘이 짝지어 주었다고 그럽니까? 아니지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하는 것인데 믿는 사람이고, 안 믿는 사람이고 오늘날 너무나도 쉽게 나누어지고, 너무나도 쉽게 짝 짓고 하는 것을 너무나도 쉽게 볼 수 있다 그 말이요. 마치 길에 다니는 짐승을 연상케 한다 그 말이요.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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