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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3대 재림 이유

요한계시 이한규 목사............... 조회 수 789 추천 수 0 2014.12.22 02: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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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계19:17-21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실 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443) 2014.9.1 

요한계시록(82) 주님의 3대 재림 이유 (계19:17-21)

 

< 너무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

 풀과 자녀는 잡아당기면 자라지 않고 끊어집니다. 그래서 바른 성장을 원하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급히 서두르면 더 일이 안 되고 더 일만 생깁니다. 대개 일은 어느 정도의 기다림 후에 성취됩니다. 기다리는 마음은 성숙과 희망의 원천입니다. 특히 성도의 희망은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 있기에 소망이라고 합니다. 소망이 있으면 어떤 상황도 이겨낼 수 있지만 소망이 사라지면 인생의 내면에 어둠이 깃들게 됩니다.

 기다림은 사람을 들뜨게 합니다. 사람은 뭔가를 기다리면서 행복을 느낍니다. 믿는다는 것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특히 주님 만날 날을 기다리는 소망은 현재의 고난을 이기게 만듭니다. 성도의 고난은 장차 주어질 영광과 감히 비교 상대가 안 됩니다. 고난은 잠깐 이 땅에서 훈련용으로 주어진 것이지만 영광은 영원히 누릴 것입니다. 그런 영광의 때를 기다리는 마음이 삶에 용기를 주고 사람을 여유 있게 만듭니다. 또한 그런 기다리는 마음이 있기에 헌신도 가능해지고 거기서 지혜와 창조성도 생깁니다.

 왜 사람이 공허함을 느낍니까? 뚜렷한 삶의 목적이 없고 기다릴 것이 없으면 공허해집니다. 기다리는 마음은 만족을 낳고 만족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여유를 낳습니다.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차량 사고의 제일 원인은 서두름이고 인생 사고의 제일 원인도 서두름입니다. 설익은 과일은 먹지 못합니다. 인생 마라톤도 단거리 하듯이 달리면 금방 지치고 더 뒤처집니다. 출애굽 했어도 40년의 광야 기간 후에야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가 많습니다.

 인생 성패는 기다림에 달려 있습니다.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의 성패도 기다림에 달려 있습니다. 기다릴 때는 막연히 기다리지 말고 하나님의 뜻과 약속 안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원수를 갚고 모든 설움을 날려버릴 날을 벼르지 말고 하나님이 모든 원수를 갚아주시고 모든 설움을 날려주실 날을 기다리십시오. 은혜 없이 벼르면 기다리는 과정에서 자기부터 망가지지만 은혜 안에서 기다리면 기다리는 과정 자체도 기쁘고 행복해집니다.

 기다리는 마음은 가장 하나님을 닮은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많이 기다리는 줄 알지만 사실상 기다림의 진짜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사람들은 가끔 이렇게 하소연합니다. “하나님! 왜 하나님의 때가 이렇게 더디 옵니까? 왜 그가 이렇게 더디 변화됩니까?” 그러면서 기다림에 지친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아들아! 딸아! 나는 네 변화를 기다리고 있단다.”

 하나님은 계속 우리를 기다리시면서 우리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한 번도 지친 마음을 표시하지 않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람의 변화가 얼마나 힘들고 더딥니까? 그래도 하나님은 계속 기다리십니다. 때로는 훈련으로 밀고 때로는 위로로 당겨주시는 ‘밀당’을 하시며 기다리십니다. 삶은 주님 만날 때까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구름에 가려 태양을 볼 수 없어도 구름 위에는 태양이 있습니다. 때가 되면 구름이 걷히고 태양이 드러납니다. 그때까지 기다리면서 조급함의 날숨을 내쉬고 느긋함의 들숨을 들이마십시오. 조급하면 실수도 많아지고 사고도 많아집니다. 결정할 때도 때로는 단호하게 하되 전체적으로는 너무 서둘지 말아야 합니다. 과일도 조급하게 따 먹으면 시어서 맛이 없지만 느긋하게 때를 맞춰 따 먹으면 달게 먹을 수 있습니다.

 마귀의 최대 공격 무기는 ‘조급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급성장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리더는 성장하지 않았는데 교회만 성장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마귀에게 당할 일이 많이 생깁니다. 급성장은 ‘하나님의 은혜 주신 표식’이 아니라 ‘마귀의 좋은 이용 도구’가 될 때가 많습니다. 급성장하고자 하는 마음은 상당히 위태한 마음입니다. 영성과 조급함은 거의 반대개념이고 성숙과 급성장도 거의 반대개념입니다.

 단번에 관문을 통과할 수는 있어도 단번에 성숙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단번에 이루겠다고 하면서 기다릴 줄 모르는 마음이 바로 기복주의입니다. 하나님이 쓰신 사람을 보면 대개 오랜 훈련기간이 있었습니다. 요셉과 다윗은 13년의 죽음의 고통을 겪었고 모세도 40년의 광야 체험을 했습니다. 여호수아도 40년 이상 모세의 시종으로 지내다가 가나안 정복전쟁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빨리 자라면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쓰임 받는 거목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조급해하지 말고 넉넉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 주님의 3대 재림 이유 >

 본문에는 재림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원수들이 철저히 패망하는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때 한 천사가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이게 해서 주님을 대적한 왕들과 장군들과 장사들과 말들과 말에 탄 자들과 자유인들과 종들과 큰 자들과 작은 자들의 살을 먹게 합니다(17-18절). 이 하나님의 큰 잔치는 본문 앞에 나오는 즐거운 어린양의 혼인잔치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피의 잔치로서 모든 대적들을 멸망시키는 무서운 잔치입니다.

 그때 주님과 대적해 전쟁을 일으킨 적그리스도와 표적을 행하며 적그리스도를 선전하던 거짓 선지자가 잡혀서 산 채로 유황불 못에 던져지고 그들을 따르던 무리들도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검으로 죽어서 새가 그 고기를 배불리 먹습니다(19-21절). 얼마나 생생한 묘사입니까? 그 주님의 재림은 조만간 실제로 있게 될 것입니다. 그때 악인들은 철저히 패망하고 의인들은 가슴에 맺힌 것이 뻥 뚫리는 최상의 보상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장면을 통해 주님이 재림하셔야 할 이유를 실감하게 됩니다. 왜 주님은 재림하셔야 합니까?

1. 성경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성경은 약속의 책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초림이 300회 이상 예언되어 있고 예수님의 재림은 그 2배 이상 예언되어 있습니다. 한 성경학자는 예수님의 초림 예언은 구약에 456회 나오고 예수님의 재림 예언은 신구약에 1899회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처럼 성경은 무수히 주님의 재림을 언급하고 있고 주님도 다시 오시겠다고 직접 여러 번 말씀했습니다. 사람도 힘써 약속을 지키려고 하는데 하물며 예수님은 재림 약속을 더욱 분명히 지키실 것입니다.

 신천지에서는 구원받기로 예정된 14만 4천명이 채워지면 경기도 과천 청계산에 천년왕국이 펼쳐진다고 하면서 왕국을 세울 땅을 보러 다닌다고 했습니다. 과거 이단 교주들의 선례를 보면 그런 말에 미혹되어 물질을 바치면 대개 교주 일가가 다 챙깁니다. 결국 신도들의 고혈로 천년왕국이 아닌 교주 일가의 왕국을 세우는데 일조하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이 이번 구원파 사건을 통해 얼마나 잘 드러났습니까?

 사탄이 애용하는 뻔한 작전이 있습니다. 자기 앞잡이를 보내 재림주라고 미혹하고 거짓 종말론을 내세운 뒤에 영혼과 재산을 강탈하는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그렇게 종말시한을 내세워 틀리게 함으로 마치 주님의 재림 약속이 거짓인 것처럼 인식시켜서 사람들의 종말신앙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주님의 재림 약속이 틀린 것이 아니고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예언이 틀린 것입니다. 그것을 잘 구분해서 거짓 종말론에 속아도 안 되고 재림신앙이 약해져도 안 됩니다.

 십자가 신앙이나 부활신앙 못지않게 재림신앙도 중요합니다. 바른 성도들이 재림신앙을 외면하면 이단들이 거짓 재림신앙으로 미혹해서 내세의 축복을 미끼로 사람들의 마음과 물질을 빼앗아갑니다. 바른 재림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잘못된 재림신앙에 빠지지 않습니다. 바른 재림신앙을 가지면 소망이 커지고 소망이 커지면 삶을 지탱시키고 비전을 지속시키는 힘도 커집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다락방에서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인도하리라!”는 약속을 이루시려고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

2. 성도의 기다림에 응하기 위해서

 수많은 성도들이 일생을 다 바쳐 예수님을 사모하고 기다립니다. 만약 예수님이 재림하지 않는다면 그 기다림은 헛될 것이고 오래 기다렸던 사람들은 가장 비참하게 될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는 지하 무덤에서 몇 십 년을 기다린 사람도 많았습니다. 지금도 그런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 권사님과 집사님들 중에도 존경심이 들 정도로 그렇게 주님을 기다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이 있기에 주님은 재림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절망이 없습니다.

 왜 사람이 절망합니까?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기대할 것과 기다릴 것이 없고 기다릴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성도에게는 절망이 없습니까? 주님과 만날 날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신실한 성도의 기다림과 기대를 결코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주님의 재림 전에 먼저 천국에 가면 주님을 만나고 싶어서 간절히 기다라다가 천국에 간 성도를 누구보다도 기쁘게 맞아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은 잃어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마음만은 잃지 마십시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현대 교회의 위기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마음이 약해진 것이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기다림을 포기할 때 영적인 혼돈이 생기고 교회와 성도도 제 위치를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마음만은 잃지 마십시오. 그러나 일부 극단적인 종말론자들처럼 일터를 박차고 나와 일손을 놓은 채 주님을 기다리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되 조급한 마음을 가지지 말고 일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때로 하나님은 성질 급한 사람은 못 견딜 정도로 느리게 일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지만 늦는 법도 없이 늘 때에 맞게 일하십니다. 바쁘다고 기차 안에서 뛰어도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기다리면서도 때로는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자기 할 일을 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그처럼 때 문제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맡기고 열심히 일하며 기다리면 언젠가 기적적인 역사를 체험하고 예수님을 기쁘게 뵐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3.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기 위해서

 성도들은 사도신경을 외우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저리로서’란 말은 ‘하늘로부터’라는 말입니다. 주님은 하늘로부터 산 자와 죽은 자를 의롭게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성경을 불신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심판에 모순이 많은 것 같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심판은 가장 의로운 심판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최종적인 의로운 심판을 위해 주님은 반드시 재림하셔야 합니다.

 의로운 심판 날이 되면 우리의 정성 어느 것 하나도 헛되이 사라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그런 의로운 심판이 없다면 악인에게는 얼마나 수지맞는 일이 되겠습니까? 만약 주님의 의로운 심판이 없다면 인생은 모순과 혼동에 빠지면서 어떤 경우에도 행복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오시지 않을 일은 결코 없습니다. 주님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반드시 오시고 그때 성도의 수고도 넘치게 보상해주실 것입니다.

 가끔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일을 이렇게 만드셨을까?” 그런 의문은 연약한 인간인지라 가질 수 있지만 주님이 재림하시면 그 모든 의문이 다 풀어질 것입니다. 지금 당장 악인을 멸망시켰으면 좋겠지만 하나님은 악인이라고 마구 처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가장 선한 목적과 계획을 위해 악인도 활용하십니다. 악인의 처단에도 다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선한 사람이라고 마구 다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도를 훈련해 주님의 증인을 삼겠습니까? 훈련되지 않은 삶이 결정적인 때에 얼마나 무력하게 되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심판과 보상을 잠시 유보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처럼 심판의 유보는 있어도 불의하고 불편부당하고 부조리한 심판은 없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무디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왜 예수님이 재림하셔야 합니까?” 그때 무디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믿음을 지키려고 숱한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 몸과 마음과 정성을 바쳤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확인시키기 위해 주님은 재림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신앙 때문에 당한 모든 손해를 갚아주시고 신앙 때문에 한 번 더 참았던 것과 참으면서 맺혔던 가슴속의 응어리들도 다 풀어주실 것입니다.

< 기다림의 축복 >

 때가 되면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그 재림의 날을 참고 기다리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참고 기다리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깁니다. 참고 기다렸는데 마지막 순간에 망하는 일은 없습니다. 기다림은 무한정 계속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인내나 막연한 인내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기다림은 끝날 날이 옵니다. 그때까지 기다리십시오.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불행이 아니라 기다림을 포기하는 것이 불행입니다.

 믿음의 실천덕목 제 1호는 인내입니다. 참을 줄 알아야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참고 인내하면 결국 이깁니다. 부부싸움을 하면 누가 이긴 것입니까? 참은 사람이 이긴 것입니다. 게다가 웃음까지 머금고 마음에 조금도 섭섭함이 없으면 완전히 이긴 것입니다. 참음과 인내와 사랑으로 승리하십시오. 다툼이 생겨도 “내가 10년을 참았다!”고 소리치지 마십시오. 그것은 10년을 참은 것이 아니라 10년을 두고 보자고 벼른 것이다. 벼르면서 버틴 것은 인내가 아닙니다. 사랑하면서 참은 것이 인내입니다.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답니다.

 또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릴 때는 등과 기름을 준비하고 기다린 다섯 처녀처럼 준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등이 예배하는 삶을 상징하고 기름은 성령의 인도를 상징합니다. 그처럼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뜻대로 최선을 다해 살면 미래는 그런 사람의 것이 됩니다. 주님 만날 날을 준비하지 않으면 미래는 도둑같이 다가오는 두려운 날이 되지만 주님 만날 날을 잘 준비하면 미래는 연인처럼 다가오는 희망의 날이 될 것입니다.

 다니엘서 12장 4절을 보면 말세는 ‘스피드 시대’와 ‘지식 시대’가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인터넷 광속 지식 시대가 된 것을 보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날이 점차 가까이 왔다는 뜻입니다. 물론 주님의 재림 전에는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되는 대환난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언뜻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인간존중의 시대가 될 텐데 그런 야만시대가 정말 올까?” 지금 겉으로는 연쇄 살인마도 사형시키지 않는 인간존중의 시대가 된 것 같지만 한 사람만 히틀러처럼 미쳐도 인간존중의 시대는 순식간에 끝나고 대대적인 살육시대가 올 것입니다.

 캄보디아의 폴 포트 정권이 수백만 명의 시민들을 죽인 잔인한 킬링필드 사건은 원시시대에도 없었던 사건입니다. 그때 부자와 지주들을 모조리 잡아 죽였고 손에 굳은살이 없는 사람과 안경을 쓴 사람은 지식인이라고 무조건 죽였습니다. 원시시대가 아닌 20세기 후반에 벌어진 일입니다. 또한 역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문명이 시작되고 19세기까지 사람이 사람을 죽인 총 숫자보다 20세기 한 세기에 사람이 사람을 죽인 총 숫자가 많다고 합니다.

 사람에게 죄성이 있는 한 미래는 결코 낙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극심한 대환난도 7년만 지나면 끝납니다. 고난은 항상 한시적입니다. 그래서 기다리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늘 고난과 은혜를 함께 엮어놓습니다. 절망적인 밤에도 하나님의 불기둥은 있고 뜨거운 사막에도 하나님의 구름기둥은 있습니다. 고통과 문제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는 삶의 이면에서 면면히 흐릅니다.

 그런 숨은 은혜를 생각하고 기다리는 마음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인내하며 기다리면 비전 성취의 때는 반드시 옵니다. 현재의 처지로 남과 비교하며 자신을 비하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의 처지가 하나님이 허락한 최선의 처지임을 믿고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면 조만간 최선의 상황이 펼쳐질 것입니다. 신앙의 핵심요체는 기다림입니다. 자녀교육의 핵심요체도 기다립니다. 기다릴 줄 알아야 축복의 열매도 맺힙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우리보다 더 인내하며 기다리신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상 우리가 현재 살아있는 것도 하나님의 인내의 증거이고 예수님의 재림이 늦춰지는 것도 하나님의 인내의 결과입니다. 주님도 빨리 재림해 성도들을 위로하고 세상을 공평과 정의로 통치하고 싶겠지만 한 명이라도 더 회개할 시간을 주시려고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기다림을 생각하면서 자신도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때와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19세기에 영국이 한참 믿음으로 뜨거웠을 때입니다. 그때 의회 회의 중에 번개와 천둥이 무섭게 치자 한 의원이 말했습니다. “의장! 하늘의 상황을 보니 주님이 곧 재림하실 것 같습니다. 회의를 중단하고 주님 맞을 준비를 합시다.” 많은 의원들이 동조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때 한 의원이 일어나 말했습니다. “의장! 정회하기보다는 주님이 맡기신 일을 하다가 주님을 맞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회의를 통해 좋은 결정을 하는 것도 주님의 일로 여기고 계속 회의합시다.” 그 말이 옳다고 여기고 결국 회의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성도는 간절한 재림신앙을 가지면서도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일하면서 기도하고 일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이 더딘 것 같지만 하나님께는 더딘 것이 아닙니다. 주께는 천 년이 하루 같고 이천 년이 이틀 같습니다(벧후 3:8). 그러므로 성도들도 넉넉한 마음으로 거꾸로 하루가 천년 같고 이틀이 이천 년 같은 창조적인 삶을 살아서 인생의 끝을 잘 마무리하도록 열심히 준비해야 합니다.

 그 동안 저희는 문서선교에 심혈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문서를 완성했습니다. 그 준비했던 것들이 이번 <월새기(월간 새벽기도)>로 열매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이틀 전에 김 권사님이 월새기를 하루 만에 다 읽어본 후에 말했습니다. “목사님! 월새기를 매일 읽으면 자살이나 왕따나 폭력 등은 생각조차 못할 것 같아요.”

 월새기에는 이해하고 배려하고 나누고 섬기자는 따뜻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지금처럼 학교폭력과 군대폭력이 문제시되는 때에 좋은 독지가와 연결되어 <사랑나눔 기증>을 통해 학생과 군인들에게 월새기가 많이 보급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더 나아가 영어로도 번역되어 매월 전 세계에 보급된다면 그 동안 품었던 <세계선교의 비전>이 구체화되면서 얼마나 가슴 벅찬 기쁨이 있겠습니까? 그 날이 속히 오도록 기도해주시고 이 사역이 주님 오실 때까지 잘 지속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도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시작은 거창한데 끝이 흐지부지될 때가 많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은 겨자씨처럼 작아도 나중에는 큰 겨자나무처럼 되는 것입니다. 시작도 잘해야 하지만 끝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독일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엔데 � 알레스 �(Ende gut, alles gut, Ends good(well), all's good(well),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어떻게 끝을 좋게 만듭니까? 잘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잘 참고 기다리면 바보 취급을 받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반면에 무조건 밀어붙이면 요구를 관철할 수 있는 것 같고 능력과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조건 밀어붙이는 사람보다 참고 기다리는 사람을 더 기쁘게 보십니다. 결국 참고 기다리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무엇이 증거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삶이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참담한 일을 당하셨고 최후에는 십자가를 지셨지만 결국 대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천국에 가든지 주님이 이 땅에 오든지 조만간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그 동안 참았던 것에 대한 넘치는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때 모든 설움과 고독과 상처가 말끔히 씻길 것이고 주님은 우리의 눈물을 친히 닦아주시면서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신 말씀대로 가장 영광스런 위치에 세워주실 것입니다. 그처럼 주님이 갚아주실 때를 기다리면서 잘 믿고 잘 선교하고 잘 나눔으로 믿음과 인격과 영향력이 성장하고 마침내 때가 되어 주님을 기쁘게 만나 뵙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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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64 마태복음 때를 아는 성도 되자 마24:42-46  강종수 목사  2015-08-30 608
12463 갈라디아 십자가만 자랑하라 갈6:14  강승호 목사  2015-08-29 1105
12462 역대상 다윗이 받은 복 대상14:1-12  김창인 목사  2015-08-29 925
12461 역대상 하나님께 문제를 물어보자 대상14:10-11  이성희 목사  2015-08-29 860
12460 역대상 하나님께 물어보고 합시다 대상14:8~17  최일환 목사  2015-08-29 593
12459 역대상 하나님께 묻고 행하라 대상14:8-17  김영헌 목사  2015-08-29 661
12458 역대상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여 대상14:8-17  이수영 목사  2015-08-29 376
12457 역대상 하나님께 묻는 자 대상14:8~17  김광일 목사  2015-08-29 696
12456 역대상 하나님께 묻는 기도 대상14:8-17  박찬길 목사  2015-08-29 744
12455 역대상 다윗이 받은 복 대상14:1-12  이희대 목사  2015-08-29 587
12454 역대상 깨달음의 신비를 깨닫게 하소서 대상14:1-2  강문호 목사  2015-08-29 548
12453 역대상 명령하신 대로 대상14:8-17  윤현택 목사  2015-08-29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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