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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응하게

요한복음 최용우............... 조회 수 1861 추천 수 0 2008.12.05 01:2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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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9:31-42 
설교자 : 이재철 목사 
참고 : 주일 설교말씀 / 1997년 / 7월 20일 
제목:성경을 응하게
본문:요한복음 19 : 31∼42
설교:이재철 (주일 설교말씀 / 1997년 / 7월 20일)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기 직전, 사랑하시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누가복음 18장 31절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 즉 구약성경이 당신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는 바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인 즉은 유대인들의 음모로 체포되시어 희롱과 능욕 그리고 채찍질을 당하시며, 끝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 체포당하시기 전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지셨을 때에, 불안해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인자는 자기에게 기록된 대로 간다(마 26:24a)'고 말씀하시므로, 당신의 행동이 결코 당신 임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따르시는 것임을 재차 강조하셨습니다.

마침내 겟세마네 동산에서 군병들에게 체포당하실 때에 놀란 베드로가 스승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하여 검을 휘둘러 `말고'라는 사람의 귀를 쳤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의 귀를 고쳐주시면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영(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마 26:53∼54)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 당신께는 하찮은 군병들을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지만,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그렇게 하실 경우, 당신의 고난을 예언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성경말씀을 응하게 하시기 위하여 순순히 체포당하신다는 의미였습니다.

또 2주전에는 요한복음 19장 28절∼30절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오직 성경을 응하게 하시기 위하여, 타는 목마름에도 불구하고 식초같이 신 포도주를 삼키셨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당신에 대하여 성경이 예언하신 말씀을 훤히 아시고 그 말씀을 성취하는 삶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성경 말씀 중 그 분의 삶을 통하여 응하지 아니한 말씀이 단 한 말씀도 없었습니다. 그 분의 삶은 온전히 말씀을 위한 삶이었고 말씀에 의한 삶이었습니다. 아니 그 분은 말씀 그 자체이셨습니다.

그분을 구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말씀을 알고 좇고 자신들의 삶으로 성경말씀을 성취하려 하며, 또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즉 우리가 본받아야 할 주님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성경 말씀과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본문 31절을 보십시다.

"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달라 하니"

일반적으로 건장한 남자의 경우 십자가에 못 박히면 대개는 사흘,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일주일만에 죽었다고 합니다. 로마인들의 관습은 십자가 사형에 처해지는 죄수는 숨이 너머간 뒤에도 시체를 그대로 십자가에 매달아 새들의 밥이 되게 했습니다. 말하자면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히 범죄를 저지를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경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로마인들의 관습은 유대인들에게 대단히 곤란한 문제를 야기시켰습니다. 그들이 금과옥조로 삼고 있는 모세의 율법은 로마의 관습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신 21:22)

즉 모세는 나무 위에 달린 시체를 당일로 끌어내려 장사지내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은, 하나님의 땅을 더럽히는 일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을 못박던 그 날은 금요일이었기에 이제 조금 있다 해가 지면 그들의 성일인 안식일이 시작되는데, 그 날의 안식일은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유월절 절기가 시작되는 안식일이었으므로 죄인들의 시체를 매달아 둔 채 그 성스러운 절기를 맞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빌라도 총독에게 십자가 죄수들의 다리를 꺾은 뒤 해지기 전에 시체를 치워 버릴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원을 하였습니다.

당시 십자가 형틀에는 아래 쪽에 조그마한 디딤대가 붙어 있어 못 박힌 죄수들은 그 디딤대를 딛고서므로 양팔과 가슴을 압박하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고, 그 까닭에 사형수의 목숨이 생각보다 오래 부지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리를 꺾어 버리면 더 이상 죄수가 자기 몸을 지탱할 수가 없어 아래쪽으로 몸이 쳐져 버리는 동시에, 가슴의 압박이 가중되어 순식간에 질식하여 죽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유대인들은 죄수들을 인위적으로 빨리 죽여, 해지기전 시체를 치워 버릴 수 있기를 빌라도에게 부탁했던 것입니다.

로마인들 역시 필요한 경우에는 십자가 사형수들의 다리를 꺾어 빨리 죽이는 예가 있었던 터라, 빌라도 총독은 어렵잖게 유대인들의 청을 허가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32절이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표현을 부드럽게 했기에 `다리를 꺾는 것'이지, 실제로 로마군인들이 십자가 사형수의 다리를 꺾을 때에는 쇠망치나 몽둥이를 휘둘러 다리뼈를 으스러트려 버렸습니다. 이왕 인위적으로 빨리 죽게 할 바에는 충격을 주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죽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못 박혔던 두 강도는 그렇게 다리뼈가 으스러지면서 이내 질식해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이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33∼34)
 
예수님께는 몽둥이를 휘둘러 다리뼈를 으스러트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미 운명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군병이 정말 예수님께서 운명하셨는지 확인하려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흘렀다는 것입니다. 피가 흐르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겠으나 어떻게 사람의 몸에서 물이 흐를 수 있었겠습니까?

이에 대하여 영국의 의학박사 William Stroud는 그 해답을 이렇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사람의 심장이 파열하면 심장 속에서 돌고 있던 피가 심낭속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는데, 이와 같은 일혈(溢血) 현상이 일어나면 혈액이 원래 상태로 분리되면서, 일반적으로 말하여 물과 피로 나누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십자가 위에서 이미 운명하신 예수님을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며 찔러 올린 군병의 창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뚫고 심장에 가 꽂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본문은 계속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35)

이것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 사도가 자기 자신을 가리켜하고 있는 말입니다. 자신은 현장의 목격자이기에 자신이 하는 말은 참말이요, 자기가 그처럼 참말을 하는 것은 자신의 글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믿게 하려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도대체 성경 속에 참말 아닌 거짓이 있을 수 있습니까? 성경의 말씀 중 믿지 못할 말씀이 단 한 줄이라도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성경은 성경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요한사도는 왜 여기에서 구태어 참말을 강조하고 있으며 새삼스럽게 무엇을 믿으라는 것입니까? 오히려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구절처럼 보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지만 헬라어 원문을 보면 36절에는 `gar', 즉 `왜냐하면'이란 접속사가 붙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요한 사도가 엉뚱하게 보일 정도로 참말과 믿음을 새삼스레 강조하고 있는 이유가 36절 속에 나타나 있다는 말입니다.

36절을 보십시다.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꺽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골고다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위치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는 두 강도의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군병이 먼저 한 강도의 다리뼈를 으스러트렸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불문곡직하고 예수님의 다리를 으스러트려야만 합니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그는 예수님을 건너 뛰어 나머지 강도의 다리뼈를 먼저 부러트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앞으로 되돌아온 그는, 유독 예수님 앞에서만 신중하게 당신의 죽음을 확인하고서는 몽둥이를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유월절 제물로 드려지는 양의 뼈는 하나라도 꺾여져서는 안된다는 민수기 9장 12절의 말씀이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제물로 바쳐지는 유월절의 어린양이었습니다. 만약 로마군인이 몽둥이를 휘둘러 예수님의 다리뼈를 꺾어 버렸다면 예수님께서 인간을 위한 유월절 어린양이란 말은 거짓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또 37절이 이렇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몽둥이를 휘두르던 자가 예수님의 운명을 확인하고 몽둥이를 내렸다면 그것으로 모든 상황은 끝난 것입니다. 구태어 다른 병사가 창으로 찔러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한 병사가 그 누구의 명령이나 상의도 없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므로써, 예수님께서 창에 찔리우는 수난을 당하실 것을 예언한 스가랴 12장 10절 말씀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찌른다'는 동사 ekkent o는 성경에 딱 두번만 나타나는 특수한 용어로, 그 뜻은 찔러도 그냥 찌르는 것이 아니라 깊이 꿰뚫었다는 의미입니다. 즉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른 창이 깊숙이 박히어 예수님의 심장까지 관통할 것을 시사한 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만 유독 몽둥이를 멈춘 병사나, 느닷없이 예수님의 몸 깊숙이 창을 찔러댄 병사나, 모두 무심코 행한 행동이었지만 그러나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어김없이 성취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되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믿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로마군인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믿지도 않는 이방 불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졌습니다. 이번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로마군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직후 예수님의 속옷을 서로 갖기 위해 제비를 뽑았을 때, 그것은 시편 22편 18절 말씀을 응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본장 24절은 이미 증거하고 있습니다. 어찌 그뿐입니까? 로마군인들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예수님을 능욕하고 채찍질을 가하였습니다. 로마군인들은 모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을 통하여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알건 모르건 믿던 믿지않던 상관없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들은 예외없이 하나님 말씀의 도구들입니다. 단지 각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면 하나님의 어떤 말씀을 응하게 하는 도구인가 하는 것 뿐입니다. 사도요한이 이 본문 35절을 통해 자신의 말이 참말이므로 믿으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자만이 하나님 말씀의 바르고 선한 도구가 될 수 있는 까닭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삶을 통하여는 하나님의 어떤 말씀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지 우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생각해 보기로 하십시다.

잠언 10장 16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르느니라."

지금 여러분들의 삶을 통하여 무슨 말씀이 응하고 있습니까?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른다'는 말씀입니까?, 아니면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른다'는 말씀입니까?

잠언 14장 1절은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어느쪽 말씀입니까? 지혜로운 여인에 해당되는 말씀입니까?, 미련한 여인에 적용되는 말씀입니까?

다니엘 선지자는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지혜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5)

그런가 하면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이렇게 질타하셨습니다.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5)

지금 우리를 통해 어떤 말씀이 응하고 있습니까? 다니엘서 12장 5절의 말씀입니까? 아니면 마태복음 23장 15절의 말씀입니까?

또 주님께서는 마지막날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마 13:41∼43)

어떻습니까?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에 서는 날, 풀무불에 던지워 울며 이를 갈 것이란 말씀이 내게 응하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란 말씀이겠습니까?

몽고에서 라마교사원을 찾았을 때 사진이나 TV를 통해서만 보았던 마늬퇴를 직접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마늬퇴란 라마교 경전을 그 속에 써 넣어둔 크고 작은 원통들로써, 그 통을 한번 손으로 돌리면 그 속에 든 경전을 한번 읽은 것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따라서 사원에 설치된 마늬퇴를 모두 한번씩 돌리면 라마교 경전 전체를 한번 완독한 셈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도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차례로 마늬퇴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라마교 신자들이 얼마나 경전을 읽지 않으면 고육지책으로 그런 편법을 만들어 놓았겠습니까? 그러나 라마교신자가 라마교 경전 속에 무슨 말이 들어 있는지 한 번도 읽어보지 않고서야 어찌 참된 라마교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마늬퇴 따위를 용인하는 라마교와 같은 종교는 결코 참된 종교, 진정한 종교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말씀이시요, 그 말씀에 의해 창조된 것이 이 세상이요, 그 말씀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성육신 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알지 못하고서는, 다시 말해 마늬퇴 돌리듯 해서는 그리스도인은 결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의식하든 하지 않든 하나님 말씀의 도구들임을 잊지 마십시오. 이 사실을 믿지 못하고 망각한다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포악한 로마군병이나 주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와 같은 악한 도구가 될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날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가는 말씀의 사람들이 되십시다. 그때 우리는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말씀을 응하게 하는 바른 생명의 도구가 될 것이며, 그와 같은 우리의 삶만이 이 세상의 어둠을 물리치는 진리의 등불이 될 것입니다.

기도 드리시겠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1~6)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지금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어떤 말씀이 응하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살펴보게 하시니 무한 감사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날로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알아가므로 말씀의 바르고 선한 도구, 참생명의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말씀의 선한 도구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이 사회가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바른 열매를 맺으며, 이 시대 역사의 잎사귀가 마르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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