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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같은이야기는 최용우가 1만편을 목표로 1995.8.12일부터 매일 한편씩 써오고 있는 1천자 길이의 칼럼입니다. 그동안 쓴 글이 15권의 단행본으로 만들어져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판매중입니다.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동의 없이 가져다 쓰셔도 됩니다. 책구입 클릭!

화광동진(和光同塵)

2016년 하나님의 최용우............... 조회 수 701 추천 수 0 2016.02.27 07:3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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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5442번째 쪽지!


□화광동진(和光同塵)


자기의 지혜(智慧)를 감추어 나타내지 않는 것을 화광(和光)이라고 하고 속세(俗世)에 파 묻혀 사는 것을 동진(同塵)이라고 합니다. 사전에는 화광동진을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는 일 없이 오히려 그 지혜를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에 동화함’이라고 설명하네요.
노자는 ‘참으로 아는 사람은 그 앎을 말하지 않으며, 앎을 말하는 사람은 아는 사람이 아니다. 진정한 앎이 있는 사람은 그 이목구비를 틀어막고 지혜의 문을 닫으며, 지혜의 날카로움을 꺾으며, 지혜로 인해 일어나는 혼란을 풀고, 지혜의 빛을 감추어 나타내지 않고, 속세의 티끌과 하나가 된다.’고 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뵈옵고 계명을 받아 내려오니 사람들이 모세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얼굴에서 눈이 부실 만큼 환하게 빛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의 그 얼굴이 화광(和光)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얼굴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을 만난 후 얼른 손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어떤 성경에는 수건으로 가렸다고 나옵니다. 그 후 모세는 얼굴을 가리고 동진(同塵)으로 살았습니다.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손으로 얼굴을 가린 사진으로 올렸더니 왜 얼굴을 가렸냐? 무슨 죄를 지었냐? 하고 묻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냥 모세가 얼굴을 가린 것이 좋아 보여 흉내 낸 것뿐입니다. 제 얼굴에서도 광채가 나거든요. 비비크림을 듬뿍 바르면 누구나 얼굴 때깔이 환해지고 반짝반짝 광채가 납니다.^^
화광동진(和光同塵)은 제가 평생 추구하며 살아오고 있는 삶의 최종 목표입니다. 아직은 갈 길이 까마득하게 멀기만 합니다. ⓒ최용우


♥2016.2.27. 비오는 흙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和光同塵.jpg

樂石(요석) 金相弼


댓글 '1'

들566

2016.04.12 14:13:33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사람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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