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햇볕같은이야기는 최용우가 1만편을 목표로 1995.8.12일부터 매일 한편씩 써오고 있는 1천자 길이의 칼럼입니다. 그동안 쓴 글이 15권의 단행본으로 만들어져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판매중입니다.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동의 없이 가져다 쓰셔도 됩니다. 책구입 클릭!

성품(性品)의 불

2014년 인생최대 최용우............... 조회 수 1145 추천 수 0 2014.08.29 09:44:34
.........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5021번째 쪽지!

 

□ 성품(性品)의 불

 

일반인들이 기독교인들을 가까이 할 때 따뜻함을 느껴야 합니다. 불이 뜨거운 이유는 열이 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불의 종교이기 때문에 열이 나야 하고, 그래서 기독교인들을 만나면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편해지고 몸이 녹아야 정상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다면 성품이 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가짜 불은 마치 모니터 속에 있는 그림처럼 가까이 가도 아무런 열기를 느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찬바람이 쌩쌩 붑니다. 기독교인들 하면 자기 주장만 강하고, 말도 안 통하고, 비판, 분열, 완고함, 정죄함의 이미지를 준다면 그것은 확실히 잘못된 것입니다.
성령충만 하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기도를 많이 해서 목이 쉬어 걸걸해지거나, 태도와 표정이 근엄해지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눈빛이나, 자신 있게 말을 하고 전도를 하는 태도' 같은 것을 떠올립니다. 물론 그것도 성령충만 하면 나타나는 한 모습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불을 받은 사람의 진짜 큰 변화는 성품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하게 바뀝니다. 아무리 개성이 강한 사람이라도 부드럽고 너그러운 사람이 됩니다. 우선 말이 유연해집니다. 심한 말로 상처를 주던 사람의 말이 위로하고 염려하는 말로 바뀝니다.
우리는 자꾸 무엇을 하려고 하고,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자꾸 하는 것보다 자꾸 무엇이 되려고 해야 합니다. 모세도 자꾸 무엇을 하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광야로 보내 40년 동안 무엇이 되게 하셨습니다. 지나가는 불은 진짜가 아니고 번개처럼 1초도 안되어 사라집니다.
기독교는 성품의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온유와 겸손'의 삶으로 손수 그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 믿고 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리 내가 뜨거운 신앙고백을 해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최용우 

 

♥2014.8.29 쇠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294 2019년 하동 앞서가기 최용우 2019-02-15 200
6293 2019년 하동 아름다운 들꽃 최용우 2019-02-14 200
6292 2019년 하동 아직도 내가 최용우 2019-02-13 166
6291 2019년 하동 3M(쓰리엠) 최용우 2019-02-12 228
6290 2019년 하동 동행의 흔적 [2] 최용우 2019-02-11 272
6289 2019년 하동 두 나라 최용우 2019-02-09 277
6288 2019년 하동 생산자와 소비자 최용우 2019-02-07 223
6287 2019년 하동 유일한 것 최용우 2019-02-05 250
6286 2019년 하동 성령님과 기(氣) [2] 최용우 2019-02-04 242
6285 2019년 하동 인간과 짐승 최용우 2019-02-02 243
6284 2019년 하동 나의 진심 고백 [1] 최용우 2019-02-01 213
6283 2019년 하동 예복을 입어야 최용우 2019-01-31 233
6282 2019년 하동 말이 없는 사람 [2] 최용우 2019-01-30 540
6281 2019년 하동 말(言)이 필요 없음 [1] 최용우 2019-01-29 215
6280 2019년 하동 마음 말 행동 [2] 최용우 2019-01-28 289
6279 2019년 하동 온유하신 하나님 [1] 최용우 2019-01-26 247
6278 2019년 하동 여유로우신 하나님 최용우 2019-01-25 159
6277 2019년 하동 잠잠하신 하나님 [1] 최용우 2019-01-24 167
6276 2019년 하동 안식하시는 하나님 최용우 2019-01-23 157
6275 2019년 하동 여상하신 하나님 최용우 2019-01-22 174
6274 2019년 하동 인내하시는 하나님 최용우 2019-01-21 273
6273 2019년 하동 초연하신 하나님 [1] 최용우 2019-01-19 216
6272 2019년 하동 고상함과 여상함 [1] 최용우 2019-01-17 234
6271 2019년 하동 뽈레뽈레 [2] 최용우 2019-01-16 355
6270 2019년 하동 시끄러움과 조용함 최용우 2019-01-15 203
6269 2019년 하동 만남의 깊이 [2] 최용우 2019-01-14 288
6268 2019년 하동 하나님의 존재 인식 최용우 2019-01-12 268
6267 2019년 하동 하나님의 음성 [1] 최용우 2019-01-10 278
6266 2019년 하동 조용히 부름 [1] 최용우 2019-01-09 170
6265 2019년 하동 하나님 아버지 [1] 최용우 2019-01-08 206
6264 2019년 하동 인격이신 하나님 [2] 최용우 2019-01-07 211
6263 2019년 하동 할 수 있을까? [2] 최용우 2019-01-05 230
6262 2019년 하동 하나님을 깊이 알기 최용우 2019-01-04 269
6261 2019년 하동 솔직한 고백 최용우 2019-01-03 188
6260 2019년 하동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2] 최용우 2019-01-01 630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