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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마루(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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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 목사

2023.05.10 07:31

[인구 변화의 이유]
(민수기 26:1-51)
1. 인구의 번화
민수기 26장은 두 번째 인구 조사의 기록인데,
첫번째 인구 조사 때와 두드러진 차이가 보인다.
시므온 지파의 인구 변화다.
첫번째 조사에서 시므온 지파의 인구는
59,300명이었다.
<민 1:23, 새번역> 시므온 지파에서 등록된 사람의 수는 오만 구천삼백 명이다.
그런데 두 번째 조사에서는 22,200명이다.
<민 26:14, 새번역> 이들은 시므온 가족이며, 등록된 이들은 이만 이천이백 명이다.
광야를 거쳐오면서 시므은 지파의 인구가
37,100명이나 줄어든 것이다.
2. 이유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부분은 알 수가 없겠지만
두드러진 이유가 발견된다.
<민 25:14, 새번역> 미디안 여자와 함께 죽은 그 이스라엘 남자는, 시므온 가문의 지도자인 살루의 아들 시므리이다.
시므온 가문의 지도자인 살루의 아들 시므리가
미디안 여자를 데리고
이스라엘 장막에 들어가 행음한 사건이 있었다.
이 행음과 우상숭배 사건으로
이스라엘백성 24,000명이 죽었다고 성경에 명시되어 있는데,
그 사건과 하나님의 심판의 중심에
시므온 지파의 지도자의 아들이 있었다.
죄가 지파의 몰락을 가져왔다.
죄로 인하여 시므온 지파는
가장 미약한 지파가 되고 말았다.
3. 죄에 대한 자세
죄가 나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왜 죄를 떠날 수 없을까?
왜 죄를 계속 행하며 죄 가운데 머물까?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라기보다
죄인이어서 죄를 짓는다.
그렇다면 죄인이기에 죄를 지어도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죄를 지을 수 있고 어쩌면 죄를 피하기 어렵지만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럼 어떡해야 할까?
죄와 더불어 싸워야 한다.
얼마나 싸워야 할까?
죄와 얼마나 싸워야 할지
성경은 선명하게 말하고 있다.
<히 12:4, 새번역> 여러분은 죄와 맞서서 싸우지만, 아직 피를 흘리기까지 대항한 일은 없습니다.
죄와는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인생을 다 걸고서라도 죄와는 싸워야 한다.
죄에게 지면 삶이 몰락하기 때문이다.
4. 죄를 이기는 방법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 죄인이
죄를 이기는 방법이 있을까?
1) 일단 행동으로 짓는 죄는 피해야.
주님이 말씀하셨다.
미워하는 것이 살인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그러나 그 말은 '살인하지 않은 사람'에게 적용해야 할 말이다.
눈에 보이는 죄를 지은 사람은 삶이 망가진다.
그 사람이 삶을 회복하려면
많은 고통과 아픔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
그러니 일단 최선을 다해
죄 짓는 것을 억제해야 한다.
2) 행동으로 죄를 짓지 않으면 끝일까?
눈에 보이는 죄를 짓지 않는다면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눈에 보이는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죄가 있다.
교만과 정죄다.
나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교만과,
'너는 왜 죄를 지으면 그렇게 사니?'
라는 마음으로 죄 짓는 사람을 무시하는 마음도
행동으로 죄를 짓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죄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리새인들이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유명하다.
<눅 18:11, 새번역> 바리새파 사람은 서서, 혼자 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남의 것을 빼앗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와 같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며, 더구나 이 세리와는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행동으로 죄를 짓지 않고도
행동으로 짓는 죄보다 더 큰 죄를 지었다.
주님은 세리와 죄인이 아니라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정죄하셨다.
3) 그러면?
행동으로 죄를 짓지 않으려고 피흘리기까지 싸우면서,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일이 있다.
주님의 이 말씀을 적용하는 일이다.
<마 5:21, 22, 27, 28, 개정> (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문제가 있다.
이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다.
음행하는 것은 최선을 다해 억제해 보겠는데,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지 않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살인하는 것은 억제해 보겠는데,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은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
주님이 불가능한 요구를 하시는 것은 아닐까?
주님이 말씀하셨으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점진적 성숙이 일어나야 가능하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점진적 성숙을 이룰
자신만의 경건의 도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내면에 주의 은혜가 채워져 가면서,
인격이 성숙해져 간다.
그에 따라 사람을 훨씬 덜 미워하게 되고,
음욕을 품는 마음도 점점 약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신자는 인격의 성숙과 신앙의 성장을 주도할
자신만의 경건의 도구를 꼭 하나 가져야 할 것이다.
5. 나는?
과거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엉망이었다.
나는 20대 때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없다.
그때는 방황과 아픔과 갈등과 절망의 반복이
육체의 젊음과 생생함을 다 덮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였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지금 이 나이가 되었고,
다행히도 말씀 안에 거하면서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안정된 마음을
기적처럼 갖고 살아 가고 있기 때문에,
나는 20대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나의 모든 성숙의 과정에는
단연코 말씀이 있었다.
먹고 살고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해 일했지만,
점점 마음이 거칠어지고 세속을 닮아가는 것을 발견했다.
말만 신자이지 실제로 신자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매일 절망했다.
말 그대로 죽고 싶었다.
살기 위해 말씀을 붙들었다.
매일 아침 잠을 줄여 딱 한 시간을 만들어서
그 한 시간 동안 온 마음으로 말씀을 묵상했다.
왜 그렇게 힘들고 바쁜 삶을 사는 중에
더 힘들게 말씀 묵상에 집중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신앙적, 인격적 성숙을 이룰 방법이
말씀 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
그 때 말씀을 생명으로 붙들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말씀으로 인하여 내 삶은
예전의 내가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아름다운 삶이 되었기 때문이다.
가끔 내 삶이 이상하다고 생각된다.
많은 부분에서 여전히 문제가 있고
부족함도 많은 상황이지만
내 삶에 대해 여전히 감사가 넘치기 때문이다.
사실 제법 심각하다고 볼 수 있는 문제들이
내 삶에는 산적해 있다.
그런데 나는 감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음이
새삼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삶에, 나의 내면에 이 기적을 가능케 한 것은
단연코 말씀이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는 것에 삶을 걸었을 뿐인데
말씀이 나의 내면을 만지고 내 성품을 만져서
주어진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주어진 상황이 쉽지 않음에도
말씀이 있어서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목사라서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목사이든 아니든 말씀에 삶을 거는 것만이
신자가 신자답게 성숙해갈 방법이라고 나는 믿는다.
감사하게도 말씀에 삶을 거는 분들이
우리 교회 안에서도,
그리고 교회 밖에서도 한 분 한 분 일어나고 있다.
목사로 살아가면서 말씀에 삶을 걸자고 외치고,
그 삶으로 사람들을 초대하고,
그렇게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 뻘짓이 아님을
그분들의 고백을 통해서 확인하며 눈물 지을 때가 많다.
젊은 날에 그렇게 방황했던 나를
이렇게 살아가도록 인도하시고 이끄신
말씀이신 하나님을 온 맘으로 찬양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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