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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 책벌레 202호 | <다윗의 장막> <예배인가, 쇼인가>

마중물............... 조회 수 2777 추천 수 0 2004.12.19 22:5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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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충남 연기군 조치원읍에서 서창교회를 담임하시는
이운영 목사님께서  보내 주신  <다윗의 장막>과  <예배인가, 쇼인가>
서평을 보냅니다.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책벌레지기

# 나눔 1  

토미 테니 지음 <다윗의 장막>(토기장이 발행)
하나님의 배고픔, 우리의 책임이다

올해 기독 서점가에서는 예배에 관한 책들이 눈에 많이 띄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게만 그렇게 기억된 것인지 어쩌지는 몰라도 여하튼 예배에 대한 개혁을 외치고,

참예배의 회복을 외치는 책들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예배가 그 본질에서

어딘가 빗나가고 있다는 반증은 아닐까?

저자 토미 테니는 이미 <하나님 당신을 갈망합니다>로 잘 알려진 열정적인 복음주의자이다.

그는 이 책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의 장막을 재건하고 싶으셨던 이유를 추적해간다.

화려하게 꾸며진 건물들에 비하면 정말 볼품없었던 다윗의 장막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참된 예배가 있었기에 하나님은 그 장막을 다시 세우고 싶어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예배당에서, 사이버 공간에서, TV와 라디오 등에서 수없이 밀려오는

예배의 홍수 속에서 그 거친 물살에 밀려 대책 없이 떠내려가는 우리의 예배를

되돌아보게 한다.

저자는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먹고 사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하나님은 배고프실 때

우리의 예배를 먹고 사신다. 그렇다면 예배는 하나님의 음식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을 배고프시게 하고 있다. 분명 다윗의 시대보다 더 풍성한 예배라는 음식이 우리에게

있지만 하나님이 아주 맛있게 드실만한 제대로 조리된 음식은 없다. 오늘날 하나님은 ‘홍수에

마실 물 없는’ 그런 격이 된 우리의 예배 때문에 배가 고프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

때문에 무척 야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한없는 미안함과 새로운 각오를 가지게 한다.

음식의 맛은 조미료가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에는 첨단

디지털 기기와 값비싼 음향과 영상 기기라는 화학조미료가 비정상적으로 첨가된다.

거기에 비해  ‘신령과 진정’이라는 천연조미료는 찾아보기 힘들다. 예배가 하나님이 드시는 음식일진데

오늘날 우리의 예배는 천연조미료보다 화학조미료가 비정상적으로 더 첨가되어

천연조미료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의 입맛을 잃어버리게 만들어 하나님을 배고픔으로

내몰고 있다.

하나님은 “교회에 와서 감동만 받고 변화되지 않는 것에 지쳤다”고 한다. 온전한 예배를

회복하고, 예배드리는 자세로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이 달라지고 새롭게 될 때 배고프신

하나님은 더 이상 굶주리지 않으시고 기뻐하실 것이며, 우리의 삶이 새로워지고 세상이

변화될 것이다. 내가 만족한 것이 하나님께도 만족이 되는가? 인간의 첨단이 하나님의

첨단인가? 아니다. 이 책을 자세히 읽어보면 단순히 예배의 회복을 촉구하고 열망하는

책이 아니라 삶의 회복을 외치는 책임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곧 예배드리는 자이며, 그 예배는 예배당 안에서의 예배가 아닌 삶의

예배일 때 진정한 예배이다. 그래서 ‘쉬지 말고 예배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원하시며, 그것에 배고파하고 계신 것이다.


# 나눔2


예배, 신령과 진정에게 리콜(Recall)하라
-<예배인가, 쇼인가>

신앙생활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나는 ‘예배드리는 생활’이라고 하고 싶다.

신앙생활을 하나님을 예배하는 생활이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생활의 여러 영역에서

예배는 가장 중요한 영역이다. 성경에는 인간이 창조된 목적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라고 했고, 이 책의 첫 장에도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예배하는 것이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그러기에 예배의 중요성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예배에 대해서 너무나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너무나 습관적으로, 형식에 치우친 예배를 드리는 것 같다. ‘신령과 진정’이 아닌

습관과 형식으로 예배드리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참으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런 느낌은 목사인 내가 선두에 선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배드리며 산다고 하는 나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부교역자 시절을 되돌아보면 나는 예배 ‘드리는’ 자가 아닌 예배 ‘관리자’로서의

역할에 더 충실했던 것 같다. 물론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겠지만, 예배를 관리해야

한다는 그런 사명감(?)에 충실해서 예배드리는 일 보다는 그 예배를 관리하는 데에

치중하여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담임목사가 된

지금도 그런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예배를 위해서 사회를 보고 설교를

해야 하는 위치에 서서 정작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만 예배를 ‘드리기’보다는 예배를 ‘관리’하려고 하는 그런

생각과 습관들이 내게 깊이 베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강단에

서면 나는 성도들이 예배를 잘 드릴 수 있도록 관리해 주면 되는 것 같은 착각에 나도

모르게 빠질 때가 많다. 그래서 예배의 본질보다는 형식에 치우치려 한다.

나는 목회자이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올바로 예배 드려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예배를 위해 사회를 보는 위치에서 성도들과 함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렇지 못할 때가 많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성도들이 예배를 잘 드릴 수 있도록

관리하고 감시하는 그런 역할에만 그치려고 한다. 그래서 성도들에게는 예배 ‘본다’는 말을

사용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정작 내 자신은 예배를 ‘보는’ 데서 그칠 때가 많았다. 그런 심각한

오류에 자꾸만 빠져드는 나를 이 책을 읽는 가운데 구해낼 수 있었다.

저자는 예배에 대해서 마치 구약의 선지자들의 외침처럼 외치고 있다. 온몸에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예배에 대한 선지자적 외침으로 가득 차 있다. 때로는 섬뜩할 정도로 우리의

잘못된 예배에 대하여 메스를 가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특히 이 시대에 전해지는 복음이

영혼을 구원할지 몰라도 성숙한 예배자를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다고 외치고 있다.

그래서 교회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임에도 하나님의 임재가 사람들의 마음과

분위기를 압도하지 못하고 그저 “이단이 아닌 정통교리, 흥겨운 노래들, 재미있는 교제,

종교적 오락에 의지하여 겨우 버텨내고 있을 뿐이다.”

이 말을 곱씹어 보면 참으로 섬뜩한 말이다. 이건 곧 오늘날 우리가 ‘예배’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의식이 얼마나 비뚤어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했는데, 오늘날의 교회가 그런 예배자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고, 그건 곧 목회자가 정작 자신은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지 못하고 예배를 관리나 하려고 하는 그런 비뚤어진 태도를 가지고 있기에 빚어진

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내 자신부터가 엄청난 죄를 범해왔던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교회 문제의 본질이 형식주의로 흐르는 예배에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사랑이나 의미가 없는 의식을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의식과는 상관이 없이 사랑과 의미를

원하신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마도 예배를 ‘드리지’않고 ‘보기’만 하고도 만족해하는

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기보다는 받는 데만 익숙해져 있는 우리의

저질스런 이기심과 공짜의식의 발로로 생각된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려야’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꾸만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려고만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떻든지 상관 않고 내 마음이 흡족하고 기쁘면 그것이 마치 하나님께서

예배를 기쁘게 받으신 것처럼 여기는 어리석음을 범해왔던 내 모습들이 이 책에 가득 실려 있었다.

언젠가 어느 교회 예배에 참석했는데 영상 시설을 이용해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찬송가 가사와 성구가 멋진 영상과 함께 스크린에 비쳐졌고, 강단에 서 있는 목사님의

얼굴도 멀리서도 잘 볼 수 있도록 크게 비쳐졌다. 그런데 주위를 돌아보니 찬송가나

성경책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구태여 일일이 찬송가나 성경책을 찾지

않아도 되는 편의(?)가 제공되고 있었다. 무언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나의 시선은 자꾸만 영상으로, 스크린에게로만 향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내

마음도 스크린에 비쳐지는 영상에로만 자꾸 쏠리고 있었다. 성찬식 때는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영상이 비쳐졌다. 떡과 잔의 의미를 생각하기에 앞서 나는 영상 그 자체에

더 시선이 쏠렸다. 결국 성찬식보다는 고난 영상이 내게 은혜(?)를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건 내 자신의 미숙함에서 오는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현대 교회와 목회자들이 지나칠 정도로 종교적 소도구나 음향, 영상 기기에 대한 관심이

예배를 타락시킬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 책은 예배에 대한, 아니 나의 신앙생활 전반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

예배 시간만의 예배가 아닌 삶의 예배를 강조하고 있고, 예배 현장만 나서면 냉랭해지는

우리의 신앙생활의  근본적인 회개를 외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문득 ‘리콜(Recall)’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어떤 회사가

판매한 제품에 이상이 생겼을 때 리콜하는 것이 막대한 손실을 가져오지만, 결국 먼 앞날을

내다볼 때 당장 리콜하는 것이 그 회사가 생존하는 길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 예배는

리콜 대상이 아니었는가? 나는 목회자로서 올바른 예배자를 만들어 왔는가? 이 물음에

나는 나의 예배는 리콜되어야 한다고 대답해야겠다. 신령과 진정에게로, 하나님에게로

나의 예배는 리콜되어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 영원히 하나님을 예배해야할 자로서 지금

여기서 올바로 훈련받고, 올바로 훈련시켜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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