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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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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이 쓴 三國志, 三顧草廬 편을 보면 아직 강호에 출도하기 前인 公明 諸葛亮이 南陽 臥龍江 초막에서 지은 시 한편이 나옵니다. 一讀의 가치가 有합니다.
봉황은 하늘을 날되
오동나무 아니면 깃들지 않는도다 鳳翶翔於千仞兮 非梧不棲
선비가 한 곳에 엎드려 있는 뜻은
주인이 아니면 섬기지 않기 때문이라 士伏處於一方兮 非主不依
몸소 들에 나가 밭을 갊은
내가 내 집을 사랑함이요 樂躬耕於隴苗兮 吾愛吾廬
한 가닥 거문고와 서책으로 마음을 달래기는
어서 때가 오기를 기다림이 아니랴 寄傲於琴書兮 以待天時
봉황은 새는 새이나 그 뜻이 장쾌합니다. 이 새는 한 번 그 날개를 펴고 날으면 구만리 창천을 유유히 웅비하며, 맑은 이슬을 마시고, 대나무 열매로 먹이를 삼고, 오동나무 아니면 앉지 않습니다. 담백하고, 맑고, 고결한 품위를 가진 새입니다. 참다운 선비는 대우만 좋다면, 돈만 많이 준다면, 그 사람이 누구인들 어떠랴!하는 속물 처럼 살지 않는 법이라고 한 것입니다. 봉황이 아무리 대단하다 할지라도 어찌 사람보다 귀할까! 그런데 미물인 봉황도 앉는 자리를 가려 앉거늘 어찌 선비가 그 섬길 주인을 가리지 않을까!
섬길 주인을 가리다보니 실제 생활이 어렵게 됩니다. 내 사랑하는 처 자식을 굶길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선비의 뜻을 세우자니 경제가 어렵고, 경제 위주로 나가자니 선비의 뜻이 무너지는 딜렘마입니다. 많은 선비들이 이 딜렘마에서 고뇌하고 우울한데 이 시를 쓴 선비는 아주 건강합니다. 여기서 이 선비는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두 팔 걷어 부치고 쇠스랑 메고 호미 차고 들판으로 나갑니다. 뜻을 살리자니 경제력이 없다 그렇다고 무책임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몸소 들에 나가 밭을 갑니다. 고생을 두려워 않는 힘찬 기상이 있습니다.
뜻은 맑고 높은데 그에 맞는 일 자리가 없으니 얼마나 답답 할 것입니까? 뜻 높은 이 선비는 모든 것을 초월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도 인간입니다. 마음이 답답합니다. 내가 괜히 쓸데 없는 고집 부리는 것 아닐까? 이래 봤자 별 수 있겠나? 이러다가 귀한 세월 다 보내고 나이만 먹는거 아닌가?하는 인간적 고뇌와 의심, 회의가 왜 없겠습니까? 이 시에서 이 선비가 자신의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하다고 드러낸 것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고백입니다. 이 선비는 말합니다. 내 마음이 참 답답하다 그러므로 한 가닥 거문고로 이 답답함을 스스로 위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서 어서 내가 섬길 만한 주인과 만날 수 있는 그 때가 오기를 간곡히 소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그 때가 언제인지 몰라도 아니 그 때가 아니 온다고 할지라도 나는 나의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봉황은 하늘을 날되 오동나무 아니면 깃들지 않는도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그 안에 무슨 뜻이 깃들었는가에 달린 것 아닌가!
봉황은 하늘을 날되
오동나무 아니면 깃들지 않는도다 鳳翶翔於千仞兮 非梧不棲
선비가 한 곳에 엎드려 있는 뜻은
주인이 아니면 섬기지 않기 때문이라 士伏處於一方兮 非主不依
몸소 들에 나가 밭을 갊은
내가 내 집을 사랑함이요 樂躬耕於隴苗兮 吾愛吾廬
한 가닥 거문고와 서책으로 마음을 달래기는
어서 때가 오기를 기다림이 아니랴 寄傲於琴書兮 以待天時
봉황은 새는 새이나 그 뜻이 장쾌합니다. 이 새는 한 번 그 날개를 펴고 날으면 구만리 창천을 유유히 웅비하며, 맑은 이슬을 마시고, 대나무 열매로 먹이를 삼고, 오동나무 아니면 앉지 않습니다. 담백하고, 맑고, 고결한 품위를 가진 새입니다. 참다운 선비는 대우만 좋다면, 돈만 많이 준다면, 그 사람이 누구인들 어떠랴!하는 속물 처럼 살지 않는 법이라고 한 것입니다. 봉황이 아무리 대단하다 할지라도 어찌 사람보다 귀할까! 그런데 미물인 봉황도 앉는 자리를 가려 앉거늘 어찌 선비가 그 섬길 주인을 가리지 않을까!
섬길 주인을 가리다보니 실제 생활이 어렵게 됩니다. 내 사랑하는 처 자식을 굶길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선비의 뜻을 세우자니 경제가 어렵고, 경제 위주로 나가자니 선비의 뜻이 무너지는 딜렘마입니다. 많은 선비들이 이 딜렘마에서 고뇌하고 우울한데 이 시를 쓴 선비는 아주 건강합니다. 여기서 이 선비는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두 팔 걷어 부치고 쇠스랑 메고 호미 차고 들판으로 나갑니다. 뜻을 살리자니 경제력이 없다 그렇다고 무책임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몸소 들에 나가 밭을 갑니다. 고생을 두려워 않는 힘찬 기상이 있습니다.
뜻은 맑고 높은데 그에 맞는 일 자리가 없으니 얼마나 답답 할 것입니까? 뜻 높은 이 선비는 모든 것을 초월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도 인간입니다. 마음이 답답합니다. 내가 괜히 쓸데 없는 고집 부리는 것 아닐까? 이래 봤자 별 수 있겠나? 이러다가 귀한 세월 다 보내고 나이만 먹는거 아닌가?하는 인간적 고뇌와 의심, 회의가 왜 없겠습니까? 이 시에서 이 선비가 자신의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하다고 드러낸 것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고백입니다. 이 선비는 말합니다. 내 마음이 참 답답하다 그러므로 한 가닥 거문고로 이 답답함을 스스로 위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서 어서 내가 섬길 만한 주인과 만날 수 있는 그 때가 오기를 간곡히 소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그 때가 언제인지 몰라도 아니 그 때가 아니 온다고 할지라도 나는 나의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봉황은 하늘을 날되 오동나무 아니면 깃들지 않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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