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예수님의 슬픔
유대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라고 예루살렘에서 처형 당하신 예수님의 일생은 한 마디로 슬픔이었다. 죄로 가득 찬 세상을 바라보는 것부터가 슬픔이었고 죄를 죄로 깨닫지 못하고 죄 가운데 **가는 무리를 바라보는 것도 슬픔이었다.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구원하러 이 땅에 오셨건만 오히려 자기 백성에게 외면 당하는 슬픈 현실을 겪으셔야 했다. 천국 진리를 가르치고 또 가르쳐도 완악한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는 무리가 슬프셨고 많은 이적을 통해 메시아임을 증거하셨지만 끝까지 메시아를 올바로 알아보지 못하는 백성들이 슬프셨다.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 당하고,제자인 가룟 유다에게 배신 당하고 심지어 가장 믿었던 수석 제자인 베드로까지 예수님을 부인하였을 때 예수님은 진정 슬프셨을 것이다. 이처럼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삶은 슬픔으로 점철된 생애였다.
슬픔의 겟세마네
예수님의 일생에서 슬픔의 극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슬픔이다. 마침내 십자가를 질 때가 돼 예수님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지신 후에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가셨다. 이때 예수님은 심히 고민하고 슬퍼하셨다. 예수님은 정말 죽을 만큼 슬퍼하셨다(마 26:37∼38). 과거와 현재,미래의 모든 인류의 죄를 한 몸에 짊어지시고 저주의 십자가에 달리게 되셨으니 그 영혼이 얼마나 외롭고 슬펐겠는가! 그리하여 예수님은 “아바 아버지여,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막 14:36)라고 기도하셨다. 이마의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애써 간절히 기도하셨다(눅 22:44). 진정 그 모습은 무거운 죄짐을 떠맡은 외로운 영혼의 슬픈 절규였다.
슬픔이 기쁨으로!
예수님의 슬픔은 예수님에게서 비롯된 슬픔이 아니었다. 그 슬픔은 인간들이 마땅히 느껴야 하고 울어야 할 슬픔이었다. 하지만 죄악에 찌든 인간들은 죄악 가운데서 **가고 있으나 그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우리 대신 우리의 슬픔을 지신 것이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이 사실을 예언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사 53:4) 그 결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슬픔은 기쁨으로 변했다. 예수님 역시 슬픔의 십자가를 이기고 기쁨의 면류관을 쓰시게 되었다.<성서원 회장>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