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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여인의 딸을 고치심

신성종 목사(대전월평동산교회)............... 조회 수 2025 추천 수 0 2013.12.02 18: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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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여인의 딸을 고치심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페니키아(두로와 시돈)로 피신하셨을때 일어났다. 이 지역은 헤롯 안디바의 통치권 밖에 속한 곳이었다. 당시 세례 요한은 목을 베였으며 안디바는 예수님을 탄압했다.
21절은 기독교의 개방적인 성격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가나안 여인이란 말은 혈통적인 표현이다. 마가복음 7장 26절에 보면 수로보니게 여인이라고 했는데 이는 그 여인이 살고 있는 지역을 말해준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 “주 다윗의 자손이여,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라고 부르짖었다.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 것은 메시아란 칭호다. 따라서 유대교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뜻이지만 이 여인이 개종자라는 증거는 없다.
당시 개종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의의 개종자로서 완전히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하려면 유대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실제로 할례를 받아야 하며 성전에 모세가 명한 예물을 바쳐야 한다. 다음은 문의 개종자인데 이들은 할례도 받지 않고,성전에 예물도 드리지 않고 다만 유대교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바울의 활동을 보면 문의 개종자들이 그 핵심자들이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한 말씀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참지 못한 제자들은 이 여인이 시끄러우니 내보내라고 했다. 당시의 유대교 법대로라면 당연한 요구다. 왜냐하면 가나안 여인은 이방인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상면하지 않았던 것이다.

주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24절)고 말씀하셨다. 이 구절은 많은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예수님의 지상명령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충적인 말씀은 왜 하신 것일까? 예수님의 마음이 처음에는 좁았다가 나중에 더 관대해졌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중에 하나만 주님의 뜻인가? 필자는 주님께서 교육적 차원에서 하신 말씀으로 생각한다. 

놀라운 점은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의 침묵이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마가로서는 주님의 침묵이 제자들에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참지 못해 “보내소서”라고 한 것은 그 여인의 요구를 들어주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빨리 들어주시고 가자는 뜻이다. 그런데 24절에서 주님은 날벼락 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이 여인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당시 유대인들과의 관계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6절에서 유대인들을 자녀,이방인들을 개로 말씀하신 것은 이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가나안 여인은 위대한 신앙의 소유자였다. 27절에서 “주여,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28절에 주님께서 이 여인의 신앙을 인정한 것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여인을 칭찬한 것이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28절) 그 순간에 그 딸은 나음을 입은 것이다. 이것은 원거리에서 예수님이 고치신 세번째의 경우다(마 8:13,요 4:50). 마가복음에서는 “돌아가라,귀신이 네 딸에게 나갔느니라”(7:29)고 했는데 ‘나갔느니라’는 말씀은 완료형으로 돼있다.

이 이적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예수님께서 원거리에 있는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그의 병을 고쳐주셨다는 것이다. 둘째,귀신을 그냥 쫓아내시고 병을 고쳐주신 점이다.

그러면 이 가나안 여인의 신앙은 어떤 신앙인가? 첫째,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믿음이었다. 메시아가 오시면 모든 질병을 고쳐주신다는 구약의 예언을 믿은 것이다. 둘째,예수님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기다리면서 간구한 끈기 있는 믿음이었다. 셋째,인종적 모욕까지도 참고 기다리는 인내성 있는 믿음이었다. 넷째,예수님께서 칭찬하신 대로 큰 믿음의 소유자였다. 다섯째,무엇이든지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는(막11:24) 기대하는 믿음이었다. 오늘날 이런 믿음을 보기 힘든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신성종 목사(대전월평동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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