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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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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6호> 못한 말, 못하기. 2003년 06월 05일
- 수고했어요!
솔직히 요즘엔 이 말이 제일 좋다.
독서실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사람에게만, 관리하시는 할아버지가 해 주시는 그 말이 좋아서 일부러라도 더 오래 책상 앞에 앉아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아니, 나로서는 아무도 몰라서 더 좋다. 인사를 받으며 괜한 쑥스러움에 나 자신이 그동안 인사에 인색하지 않았나 돌아본다. 아주 짧은 인삿말 한마디에 감격스러워하는 팍팍한 감성이라니.
"감사합니다" 혹은 "고맙습니다" 같은 인사치레용 말조차 듣기도, 말하기도 참 오래된 일인 것 같다.
항상 옛날을 떠올리면 지금보다 더 나았다 싶은 건 왜인지. 잠언 기자는 그런 거 물어보지 말라고 하더만.. --+
직장인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 1위가 바로 "고생 많죠? 수고했어요." 란다.
고시생도 학생도 군인도 집사님도 기타 등등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 힘들고 어려울 때, 그냥 상투적인 인사라 할지라도 상대가 건네는 말 한 마디에 힘을 얻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뿌듯한 보람을 느끼고 싶은 게 당연한 일인데.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가슴 속으로는 고마움과 감사함을 절절히 느끼면서도 그 말을 하고 싶은 순간에는 막상 머뭇거리며 '에이, 그 사람 말 안해도 알겠지.' 하는 자기무마용 생각을 꺼내들고는 말았다. 어쩌면 사람들이 살면서 해야하는 말은 이런 건지도 모른다. 진실이라는 말은, 일상의 상투성과 진부함을 넘어선 그 무엇에 담겨있는 것일테니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은 대부분 '말'이었다.
그 어떤 순간도 영원하지 않았으나 말은 남았다. 차디찬 비난의 목소리, 수줍은 사랑 고백, 무뚝뚝한 반응, 까실까실한.. 말 한마디에 수많은 순간들이 기록되어서 기억에 저장되곤 한다. 내 말은 누군가의 기억창고에 어떻게 쌓여있을까. 내가 듣지 못했던 말들은 어디에 쌓여있을까. 언어가 되지 못하고 내 안에 들어차있는 생각과 마음들은 언제쯤 남루한 언어의 옷을 입고 등장할까 - 언어는 늘 남루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진실을 말하는 데 서투르다. 적당히 포장하고, 알맞은 수위를 조절해 가면서 말하기는 쉬운데 날것으로 무언가를 내놓는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어디 내놓는 것만 익숙치 않은가. 보는 것, 듣는 것 역시 낯설기만 하다.(우리가 지금 저어가고 있는 노무현 호를 보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비비꼬고 비틀고 비틀어서 나온 말들은 그저 그런 말로 지나가고 말았다. 오히려 정곡을 찌르는 말 한마디에 자극을 받고, 위로가 되었던 시간들을 기억한다. 말다운 말을 듣고, 할 수 있었으면 좋겠음.
돌아보니 여전히 못한 말 투성이다. 못할 말 한 것도 투성이인데..
지지난주에 목사님 설교에 은혜 받았다는 것도 말씀 못 드렸고, 맛있는 거 사주려고 불러낸 친구한테 "니가 있어서 요새 내가 살 맛 나고 행복하다."라는 말도 못해줬고, 만날 때마다 예쁘다고 추켜세우는 고등학교 후배 녀석들 덕분에 지칠 때마다 힘난다는 말도 안 해 줬고, 동생 연주회 때 언니인 내가 혹여나 소외감 느낄까봐 예쁜 정장을 사주고 한 치수 위로 바꿔오시느라 고생하신 엄마한테 옷이 너무 붙는다고 투덜거리기만 하다가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고, 군인 친구들 전화받을 때마다 심심함을 잊게 해 줘서 고맙다는 말대신 구박만 했고.. 암튼 그랬다. 무슨 못한 말이 이렇게도 많은지, 참.
이참에 확..
사랑한다고 말해 버릴까.
^^*
농담이다. 농담!
- 수고했어요!
솔직히 요즘엔 이 말이 제일 좋다.
독서실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사람에게만, 관리하시는 할아버지가 해 주시는 그 말이 좋아서 일부러라도 더 오래 책상 앞에 앉아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아니, 나로서는 아무도 몰라서 더 좋다. 인사를 받으며 괜한 쑥스러움에 나 자신이 그동안 인사에 인색하지 않았나 돌아본다. 아주 짧은 인삿말 한마디에 감격스러워하는 팍팍한 감성이라니.
"감사합니다" 혹은 "고맙습니다" 같은 인사치레용 말조차 듣기도, 말하기도 참 오래된 일인 것 같다.
항상 옛날을 떠올리면 지금보다 더 나았다 싶은 건 왜인지. 잠언 기자는 그런 거 물어보지 말라고 하더만.. --+
직장인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 1위가 바로 "고생 많죠? 수고했어요." 란다.
고시생도 학생도 군인도 집사님도 기타 등등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 힘들고 어려울 때, 그냥 상투적인 인사라 할지라도 상대가 건네는 말 한 마디에 힘을 얻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뿌듯한 보람을 느끼고 싶은 게 당연한 일인데.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가슴 속으로는 고마움과 감사함을 절절히 느끼면서도 그 말을 하고 싶은 순간에는 막상 머뭇거리며 '에이, 그 사람 말 안해도 알겠지.' 하는 자기무마용 생각을 꺼내들고는 말았다. 어쩌면 사람들이 살면서 해야하는 말은 이런 건지도 모른다. 진실이라는 말은, 일상의 상투성과 진부함을 넘어선 그 무엇에 담겨있는 것일테니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은 대부분 '말'이었다.
그 어떤 순간도 영원하지 않았으나 말은 남았다. 차디찬 비난의 목소리, 수줍은 사랑 고백, 무뚝뚝한 반응, 까실까실한.. 말 한마디에 수많은 순간들이 기록되어서 기억에 저장되곤 한다. 내 말은 누군가의 기억창고에 어떻게 쌓여있을까. 내가 듣지 못했던 말들은 어디에 쌓여있을까. 언어가 되지 못하고 내 안에 들어차있는 생각과 마음들은 언제쯤 남루한 언어의 옷을 입고 등장할까 - 언어는 늘 남루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진실을 말하는 데 서투르다. 적당히 포장하고, 알맞은 수위를 조절해 가면서 말하기는 쉬운데 날것으로 무언가를 내놓는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어디 내놓는 것만 익숙치 않은가. 보는 것, 듣는 것 역시 낯설기만 하다.(우리가 지금 저어가고 있는 노무현 호를 보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비비꼬고 비틀고 비틀어서 나온 말들은 그저 그런 말로 지나가고 말았다. 오히려 정곡을 찌르는 말 한마디에 자극을 받고, 위로가 되었던 시간들을 기억한다. 말다운 말을 듣고, 할 수 있었으면 좋겠음.
돌아보니 여전히 못한 말 투성이다. 못할 말 한 것도 투성이인데..
지지난주에 목사님 설교에 은혜 받았다는 것도 말씀 못 드렸고, 맛있는 거 사주려고 불러낸 친구한테 "니가 있어서 요새 내가 살 맛 나고 행복하다."라는 말도 못해줬고, 만날 때마다 예쁘다고 추켜세우는 고등학교 후배 녀석들 덕분에 지칠 때마다 힘난다는 말도 안 해 줬고, 동생 연주회 때 언니인 내가 혹여나 소외감 느낄까봐 예쁜 정장을 사주고 한 치수 위로 바꿔오시느라 고생하신 엄마한테 옷이 너무 붙는다고 투덜거리기만 하다가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고, 군인 친구들 전화받을 때마다 심심함을 잊게 해 줘서 고맙다는 말대신 구박만 했고.. 암튼 그랬다. 무슨 못한 말이 이렇게도 많은지, 참.
이참에 확..
사랑한다고 말해 버릴까.
^^*
농담이다.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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