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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생의 아침 풍경
-한 사람!-
서울을 처음 벗어나 딱 십 년을 목포에서 살았다. 바다가 있어서 좋았고 바다친구들의 화음에 끌려 더욱 좋았다.
돌아보면 헛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지금 보다는 손가락 한마디 만큼 더 행복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목포에서 만난 한 사람이 있다. 그는 학교 선배였고 덩치도 나보다 훨씬 컸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향해 배알도 없고 줏대도 없고, 이리 흔들 저리 흔들 거리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가 문약서생의 외모에 감춰진 내가 고수임을 알았다.
30 여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내가 목포에 갈 일이 있으면 또는 그 주변을 지나로라면 꼭 전화를 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 말고도 목포에서의 인연은 많은 사람들과 이어져 있지만, 그는 단 한 번도나의 전화나, 만남의 요청을 단 한 번도거부 하지 않고 득달같이 달려와 수다를 떨어 준다.
그는 단돈 1000 원에도 벌벌 떠는 척 하고, 돈 천원만 건네면 그 누구의 부탁도 거절 하지 않아서 사람들은 그를 보고 ‘1000원만’ 이라고 부를길 좋아했다. 성씨가 오씨이니 오 1,000만 된다. 그러나 그 선배가 받는 천원은 후배든 선배든 친구든 그들의 부탁에 대한 편안함을 주기 위한 최소의 대가임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지난 피정 때도 난 섬을 거쳐 목포로 향했고, 여지 없이 그는 나의 전화에 이르고 늦음에 상관 없이 득달같이 달려와 내 앞에 마주 앉아 주었다. 게다가 무려 35000원 짜리 한우 떡갈비도 사주고 헤어질 때는 내 주머니에 차비라며 돈을 찔러 주었다. 물론 그가 준 돈은 천원짜리 한장 뿐이다. 하지만 그 선배의 천원짜리 한장은 운전하는 차창이 흐릿하게 만드는 1000 원임을 누가 알겠는가.
나이가 드니 점점 편하게 전화를 돌리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게다가 전화 너머로 만나지 못 하는 이 저런 이유를 대는 사람에게는 더욱 전화 하기가 쉽지않다. 그러고 보니 막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에게 볼멘소리를 한 기억이 돋는다. 새벽 두시에 내게 전화를 한 사람이 있었는데, 아내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연결해 주지 않았다.
난 그런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록 늦은 시간, 이른 시간일지라도 꼭 연결해 주세요. 전화를 건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아마 내가 제일 필요하거나 간절하거나 했을 거니까요.”
지금이야 휴대폰이 있어서 그럴 일이 없지만, 그때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역시 목사라는 건가^^!”
왜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걸까?
아침 산책길, 발앞에 떨어져 있던 천원짜리 한장, 난 그것을 집어 들고 1000원이면 부탁한 모든 사람의 부담을 덜어 준 한 사람,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전화를 꼭 받아 주거나, 내 앞에 바람처럼 다가와 앉는 사람!
그 선배가 길에서 주운 1,000에 담겨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1,000원 줄게 전주에서 만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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