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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과 결론의 부적절한 동거

가족글방 김한원 목사............... 조회 수 21 추천 수 0 2025.12.16 05:2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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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건과 결론의 부적절한 동거 >>
 
논리학에서 조건문이 참이 되려면 조건과 결론 사이에 타당한 인과관계가 성립해야 한다. 그런데 이 인과관계를 아주 교묘하게 비틀어 멀쩡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존재가 있다. 광야에서 예수를 시험했던 그자다. 마태복음 4장을 펴보면 그가 구사하는 화법이 아주 가관이다. 그는 끈질기게 가정법을 던진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Εἰ υἱὸς εἶ τοῦ θεοῦ).
헬라어 문법을 따지고 들자면, 여기서 쓰인 에이(Εἰ)는 사실 여부를 의심하는 가정이 아니다. 상대방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이미 알고 있거나 전제한 상태에서 던지는 조건절이다. 뉘앙스를 살리자면 이런 거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인 건 알겠는데, 그렇다면 이 정도는 보여줘야 증명되는 거 아니냐?" 이것은 명백한 도발이다.
문제는 그가 제시하는 결론이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거룩한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돌을 떡으로 만들거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기괴한 '행위'를 요구한다.
논리적으로 보면 이건 완전히 헛소리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존재론적 사실과,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다치지 않는 서커스나 스턴트 능력은 하등의 상관이 없다. 아버지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과, 자녀가 옥상에서 뛰어내렸을 때 슈퍼맨처럼 받아주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엉터리 논리에 너무나 쉽게 속아 넘어간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사기극을 벌인다. "네가 진짜 복 받은 사람이라면, 네가 진짜 능력 있는 리더라면, 이 정도 실적은 내야지. 저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멀쩡하다는 걸 증명해 봐."
뛰어내려라, 네 자신을 아래로 던져라 (βάλε σεαυτὸν κάτω).
그 달콤한 속삭임에 홀려 우리는 뛰어내린다. 당연히 다친다. 다리가 부러지고 피투성이가 된 채로 우리는 신음한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 봐." 아니다. 하나님이 버린 게 아니라, 세상의 꼬임에 넘어가 내가 쓸데없이 뛰어내린 거다.
예수는 그 유혹 앞에서 단호했다. 사탄이 뛰어내리라고 했을 때, 예수는 멋지게 비행해서 착지하는 것으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일갈했을 뿐이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Οὐκ ἐκπειράσεις Κύριον τὸν Θεόν σου).
여기서 예수가 사용한 시험하다(ἐκπειράσεις)의 원형 '에크페이라조(ἐκπειράζω)'는 단순히 테스트해보는 게 아니다. 앞에 붙은 접두어 '에크(ἐκ)'는 강조의 의미다. 이것은 끝까지 밀어붙여 보는 것, 상대를 믿지 못해 한계 상황까지 몰아넣고 반응을 떠보는 아주 무례한 도전을 뜻한다. 마치 "날 사랑하면 증거를 대봐"라며 상대를 벼랑 끝으로 미는 행위다. 하나님을 그렇게 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굳이 뛰어내려서 증명할 필요가 없다. 뛰어내리지 않는 것, 기적을 연출하지 않고도 하나님의 아들 됨을 의심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짜 실력이다. 굳이 증명하려는 행동에는 미묘한 불신과 불안함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세상이 주입한 가짜 논리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성공해야 증명된다", "유명해져야 쓰임 받는 것이다"라는 세상의 공식은 조건과 결론이 뒤틀린 궤변이다. 세상에 속지 마라. 화려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의 조건이 취소되는 게 아니다. 목회자가 꼭 대형 교회를 일구지 않아도, 성도가 세상에서 떵떵거리는 부자가 되지 않아도, 여전히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다.
합리적이지도 않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며 "나를 받아달라"고 하나님을 '에크페이라조' 하는 미친 짓거리는 이제 그만두자. 하나님은 우리를 서커스 단원으로 부르신 게 아니다. 굳이 위험한 난간에 서서 아슬아슬한 쇼를 하지 않아도, 당신은 이미 충분하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세상과 나 자신을 향해 선포해야 할 가장 위대한 복음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꼭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이제 그만 성전 꼭대기에서 내려가자.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계단으로 걸어 내려가면 된다.
세상은 뛰어내려야 박수 쳐준다고 속이지만,
그 평범하고 지루한 계단을 한 칸 한 칸 걸어 내려오는 우리의 반복되고 평범한 일상이,
무모한 점프보다 훨씬 더 거룩하고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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