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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구해야 할 이를 구하지 않은 죄
조선 예종 때에 남이장군이 역모혐의를 쓰고 국문을 당하는데 그 자리에서 남이는 영의정 강순을 지목하면서 함께 역모를 했다고 진술했다. 26세의 남이가 80세 고령의 강순을 끌고 들어간 것이다. 이로 인하여 강순도 국문을 받고 남이와 함께 능지처참을 당했다. 처형장으로 끌려가면서 강순이 남이에게 말했다.
“남이야, 너는 나에게 무슨 원한이 있기에 나를 무함하느냐?”
“원통한 것은 너나 나나 마찬가지다. 네가 영의정으로 있으면서 내가 억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구해주지 않았으니 원통하게 죽어도 싸다. 나같이 젊은 놈도 죽음 앞에 태연한테 머리털이 허옇게 센 놈이 죽는 것은 더 마땅하다.”
남이가 왜 강순을 끌고 들어갔을까? 이시애의 난 때에 강순은 진북장군이고 남이는 그 휘하 장수로서 난을 진압했다. 역시 여진족 토벌에도 남이는 강순의 휘하장수로 출전하여 공을 세웠다. 이시애의 난 진압과 여진족 토벌의 공으로 강순은 영의정이 되었고 남이는 병조판서가 되었다. 강순은 상관으로서 남이와 전쟁을 함께 치렀으니 남이의 사람 됨됨이를 그 만큼 아는 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강순이 남이가 억울한 역모혐의로 국문을 받는데 팔장만 끼고 보고 있다.
남이를 변호해줄 유일한 인물이 강순이다. “남이는 역모를 꾸밀 수 없다. 내가 있는데 어찌 감히 남이가 역모를 꾸밀 수 있는가?” 한다면 남이도 살리고 자신의 권위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강순은 침묵했다. 아마도 강순은 남이를 변호하다가는 자신도 엮일까 두려웠을 것이다. 그것이 죄다. 죄라기보다는 어리석음이다. 그의 사람 됨됨이가 그만큼 작아서다. 용케도 영의정의 자리에 까지 올랐지만 새파랗게 젊은 남이가 거침없이 “늙은 놈” 이라 할 만큼 소인배다.
강순은 높은 자리에 연연하다보니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아무도 동정하지 않는다. 동정은커녕 기억하지도 않는다. 죽음도 자신의 죽음이 아니라 남이 죽음의 덤으로 죽었으니 너무 초라한 죽음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영의정 지위에 있으면서도 억울한 이를 변호하지 않은 죄,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다. 마땅히 구해야 할 이를 구하지 않은 죄, 역시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다. 어쩌면 남이는 자신을 역모로 몬 유자광보다 강순이 더 미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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