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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생명으로만

마태복음 최만자............... 조회 수 1557 추천 수 0 2008.05.13 21: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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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6:25-34 
설교자 : 최만자 자매 
참고 : 새길교회 
10월 마지막 주일을 개신교에서는 종교개혁 주일로 기념합니다. 1517년 10월 31일 말틴 루터가 구텐베르그 성당 앞에 95개 조항의 개혁문을 내걸고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개혁이 요청되는 한국교회에서 저는 한 주일 앞당겨 종교개혁 당시의 역사를 회상하고 그 개혁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루터는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총'(sola gratia) '오직 성서'(sola scritura)만으로라는 개혁 원리를 주장하면서 당시 교회의 불의를 개혁코자 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오직 생명으로만'이라는 제목으로 루터 당시의 개혁 원리에 대한 반성과 오늘의 개혁을 위하여서는 새로운 개혁 원리가 필요함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루터가 제시하였던 원리들은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개신교 신앙의 본질과 형태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 원리들이 점차 고정된 절대적 원형으로 고착되어 개혁의 의지와는 다르게 개신교 신앙을 굳게 하고 죽은 정통주의의 지배 아래 놓이게 하여 본래의 힘과 의미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왜곡되기까지 했습니다. 루터의 개혁 원리는 고정된 특정원리 운동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특수한 상황과의 관련성 속에서 일어난 개혁운동으로, 그 상황과의 관계 맥락에서 제시된 원리이지 결코 고정된 불변의 원형은 아닙니다.
돌아보면 루터의 종교개혁은 교회의 부패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 중세교회는 교황권을 절대화하는 교권주의의 극대화, 성직자를 우월시 하는 성직중심주의, 그리고 교회의 재산증식에 집착한 물질주의로 매우 타락해 있었습니다. 기독교의 부패는 313년 콘스탄틴 대제에 의하여 기독교가 로마국교로 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교회는 각종 세금, 부역, 병역 등의 면제를 받으면서 사회의 특권계층이 되었습니다. 또한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이 많이 개종하여 교회에 참여함으로 인해 교회가 부를 소유하게 되면서 맘모니즘(mamonism)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렇게 권력과 부로 인해 교회는 타락의 역사를 계속합니다. 여기에다 봉건 영주제 구조를 내면화하면서 교황권을 절대화 해나갔는데, 590∼604년 그레고리 1세 때는 베드로의 사도직과 교황권을 연계시켰고, 11∼12세기(레오 9세)에는 교황의 군주화, 교황 무오설, 로마교회 무오설로 확대됩니다. 그리고 13세기에는 교황 절대권을 모든 인간사에 실천토록 강조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교황권이 성서보다 우위가 되었습니다. 부의 소유에 대한 교회의 집착은 성직 매매, 성직 세습과 같은 타락상을 성행시켰으며 이를 막기 위해 성직자 독신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445년 교황 레오 1세에 의해 선포되고 1123년 라테란 공의회에서 의결됨). 이는 성직자가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재물을 탐하는 것을 막고, 도덕적 순결을 갖도록 하려는 노력이었습니다. 그러나 16세기까지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교회가 재물을 탐한 타락상은 13-15세기 동안 있었던 마녀사냥 사건 때에도 나타나는데, 부유한 독신 여성들이 마녀로 몰려 죽임을 당하였고 교회는 그 재산을 몰수하기도 하였습니다. 교회의 물질 탐욕의 극치는 면죄부 판매로 나타났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은 1450년에 시작하여 1626년에 완성되었는데 176년 동안에 걸쳐 지어진 이 성당은 면죄부를 판 돈으로 지어졌습니다. 면죄부란 사람들이 그것을 사서 돈을 헌금 통에 넣는 순간 연옥에 있는 다른 영혼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면죄부 판매는, 오직 가톨릭 교회에만 구원이 있다는 보편적 교회로서의 가톨릭교회의 절대권, 성령의 은혜를 돈으로 살 수 있다는 물질주의, 교회가 은혜를 중개하고 배급하여 준다는 교권주의의 착취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루터가 오직 믿음, 은혜, 성서를 부르짖은 것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으로 너무나도 당연한 주장이었습니다. 루터가 주장한 율법의 행위란 구체적으로 평신도에게는 면죄부를 사기 위해 헌금을 하는 것과 교회법의 준수이며, 수도사에게는 선행과 고행을 통한 하나님의 의를 화답함과 교회법을 준수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인간이 거듭나서 새롭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용서는 하나님만이 하시는 것인데, 중세교회는 이 은혜를 교회의 권위로 중개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루터가 주장하는 '오직 믿음'의 원리는 면죄부 돈이나 선행으로는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이며 성서와 하나님의 은총이 배제된 교권과 맘모니즘에 의한 신앙행태에 대한 강력한 거부요 반발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맥락을 빼고 '오직 믿음으로만'을 강조하여 신앙지상주의를 고집하는 개신교의 신앙행태는 신앙의 실천적 윤리적 동기부여를 저버리고 오직 개인 심령구원에 집착한 관념적이고 도구적인 믿음의 행태만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이런 신앙지상주의는 물량적 기복신앙과 결합되어 헌금을 신앙의 척도로 보는 풍조를 한국교회에 만연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의 신앙지상주의적 신앙행태는 외적으로는 비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독교가 굉장히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종교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사실 루터의 '오직 믿음으로만'의 원리는 사도 바울의 신앙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갈 2:16, 3:11-13. 3:26 등에 보면 그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돌아가셨고 부활하셨음을 믿는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고 의롭다 함을 얻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이 주장도 율법주의에 의해 극도로 형식주의화된 유대교 신앙의 허위를 벗기고 참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길이 예수에게 있음을 제시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원 뜻과 루터의 원래 의도가 왜곡된 배타적이며 기복적이며 그리고 실천적 윤리가 배제되어 버린 '오직 믿음으로만'의 신앙에서는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구하는 것을 얻는 도구로 전락됐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예수의 삶과는 무관하게 되었으며, 오직 신적 존재의 숭배를 통한 종교적 행위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으로 만'이 바울과 루터가 원래 개혁을 위하여 제창한 원리라 할지라도 오늘의 상황에서는 이 말 자체가 가지는 위험성에 대하여서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서에 나타난 바울의 '오직 믿음으로만'이라는 말씀을 우리는 보다 면밀히 살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바울의 '오직 믿음으로만'의 신앙은 '십자가 위에서 죽고 다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신앙의 출발점으로 하는 바울의 이 신앙을 학자들은 '그리스도 케리그마'라고 합니다. 학자들은 대체로 초대교회 때 복음운동을 두 가지로 보고 있는데 하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부터 시작하는 바울의 복음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의 삶과 교훈과 이야기'를 통한 복음운동입니다. 이 예수의 삶을 중심으로 한 복음운동 전승은 복음서들 안에 포함되어 있는데, 복음서 기자들은 그 복음운동의 문서들을 예수신앙전승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씌어진 것이 마가복음인데 기원 7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어록과 이야기들을 전승시킨 복음운동은 예수께서 세상을 떠난 기원 30년경부터 마가복음이 씌어지기 전까지의 40년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예수운동'이라고 합니다. 복음운동의 이 두 가지 전승은 동시대에 이루어지면서도 각각 다른 특성을 가졌는데, 바울의 복음운동은 헬레니즘세계에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선교하기 위한 목적으로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한 예수의 그리스도 됨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운동은 그가 살았던 팔레스틴 안에서의 이야기들과 교훈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데 집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역사적 예수의 삶이 간과된 신적 그리스도를 전파하였고, 예수운동은 역사적 예수의 삶 자체의 이야기와 기적사건 등을 전하였습니다. 예수운동의 신학에서는 무고한 예수의 죽음을 가장 정결하다고 자칭하는 유대인들에 의한 것으로 보았고, 제도권적 12제자보다는 여성과 이방인 그리고 어린아이가 가장 모범적인 사람들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행한 기적들은 생의 한 가운데서 생명, 새삶, 생기를 부여하는 사건으로 보았으며, 정결하거나 부정하거나,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권력자이거나 무력한자이거나, 남성이거나 여성이거나, 딸이거나 아들이거나 모두 조건 없이 치유되어서 새 생명을 얻는 포괄적 공동체의 형태를 보입니다. 또 첫째가 꼴찌가 되고 섬기는 자가 되는 높음과 낮음에 대한 가치의 역전, 사회적 무근성(가지는 것 없음)의 급진적 윤리 등으로 당시의 사회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비유 이야기들은 참으로 가치전복을 보이는데, 아흔아홉마리라는 많은 양들을 버리고 오히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모습, 말 잘 듣는 첫째 아들이 아니라 탕자가 된 둘째 아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는 아버지의 모습을 하늘나라의 질서로 말합니다. 특히 예수어록에서는(Q공동체) 가난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빈곤을 종교적 상징으로 가집니다. 그리고 종교를 내세가 아니라 현세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수운동의 신학에서는 그리스도 케리그마 대신에 예수의 말씀과 행위와 삶의 역사지평 위에 구현된 하나님의 나라를 가장 핵심적인 상징으로 제시합니다.
신앙지상주의에 빠져서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 오늘의 한국교회는 바울에게서 루터에게로 전해진 '오직 믿음으로만'의 원리로는 개혁이 어려워졌습니다. 바울신앙의 탈 역사화가 한국교회를 묵시 종말적 내세신앙으로 발전케 하였고, 비정치화 시켰으며, 타계주의로 이끌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중세의 교권주의, 성직중심주의, 그리고 맘모니즘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는 바울신학 근거의 케리그마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으로에서 벗어나 예수운동의 말씀과 이야기에 더 귀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수운동은 생명, 살림을 그 중심에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에 나타났듯이 예수운동의 진리 이해는 진리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이며 자연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자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인간을 향하신 뜻을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예수운동의 생명성은 공동체로부터 소외된 육체적 불완전자, 문화적 변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 늘 관용과 돌봄과 위로를 필요로 하는 우는 자, 핍박 받는 자, 주리고 목마른 자, 그리고 사회의 밑바닥 삶에 내동댕이쳐졌거나 그 문화의 틀 속에서 일탈된 타락한 자들을 생기 있고 살맛 나고 떳떳한 존재로 세우는데 있습니다.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상징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운동은 생명, 살림의 신학이었지 교조주의적인 것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오직 생명'이 기준이 될 때에만 우리는 모든 교리와 종교의 벽들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예수의 삶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의 삶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은 그의 삶의 길에 참여하고 그 길을 증언하며 함께 걸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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