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먼저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차옥숭............... 조회 수 1561 추천 수 0 2008.09.08 00:49:39
.........
성경본문 : 마6:26-34 
설교자 : 차옥숭 자매 
참고 : 새길교회 주일설교 
제목: 먼저 의를 구하라
본문: 마태복음 6:25-34

요즈음 땅 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저기서 여린 생명들이 움트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겨울동안 휴식을 취한 대지가 모진 바람과 추위로부터 보호하고 품고 있던 생명들을 싹 틔우고 있습니다. 봄은 생명의 신비와 그에 대한 감사를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계절인 것 같습니다.

겨울방학 동안에 네팔과 인도를 여행했습니다. 3년 전에도 인도 여행을 했지만, 그때는 주로 비행기로 여행을 했고 이번에는 육로를 이용했습니다. 육로 여행은 비행기 여행에서 느낄 수 없던 것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인도인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20일 가량의 인도 여행은 고행처럼 느껴졌습니다.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과 동물들을 대할 때마다 저는 힘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여행지인 바라나시 강가 강변에 숙소를 정하고 며칠 동안 그 곳에 머물면서 삶과 죽음의 문제 등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지난번 여행에서 강가 강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지난번에는 태양이 떠오르면서 막 어둠이 걷히는 강가 강을 배를 타고 지나가면서, 사람들이 강가 신에게 바친 수 없이 많은, 꽃이 담긴 조그만한 나뭇잎 그릇과 거기 실린 촛불들이 강물 위에서 물결 따라 아름답게 흔들리는 모습, 강물에서 경건하게 목욕하는 사람들과 빨래하는 사람들의 모습, 화장터 장작불 위에 시체를 태우는 모습들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신화가 현실 가운데에 생생하게 살아 있을까, 성과 속이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모습이구나 등등 낭만적인 상념에 젖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난번과는 달리 굶주림에 시달리는 그들의 모습이 힘겹게 느껴졌습니다. 강가 강가에서 하염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 어린 젖먹이 동생을 가슴에 안고 손을 내미는 어린 거지 아이들! 굶주림은 인간만이 것이 아니었습니다. 동물들도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병들어 있는 굶주린 돼지들, 소들, 개들. 사람들이 무엇을 들고 가다 방심하면 쏜살 같이 나꿔채 달아나는 원숭이들...

어느 날 호텔에 들어가려다, 호텔 입구에 켜진 불빛을 따라 모여들어 벽에 붙어 있는 모기들을 혀로 핥고 있는 어미개의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여섯 마리의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이는 어미가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모기를... 하는 생각에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모든 삶에는 고통과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 곳 사람들의 삶은 너무 힘에 겨워 보였습니다. 더욱이 사성제에 속하지 못한 불가촉천민의 삶은 열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계급제도가 헌법상으로 없어진 지는 벌써 50년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만, 오랜 세월 유지되었던 카스트제도의 관습과 인식은 아직도 인도인들의 삶에 깊이 뿌리박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의 삶이 아닌 저곳의 행복과 평화를 끊임없이 갈망하며, 하염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것인가 봅니다.

유난히 바라나시 강가 강가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강은 인도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강은 생명력과 정화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인도에 있는 강들 가운데 강가와 야무나 등 일곱 강이 신성시되는데, 특히 강가 즉 갠지스 강이 신성시됩니다.

힌두교도들은 강가의 강물에 몸을 담그면 쌓인 죄를 씻을 수 있고, 강가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그들이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천상의 세계나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힌두교도들은 강가 강이 천상에서 발원한 강이라고 믿습니다. 힌두 신화에 따르면 지상의 바기라트 왕이 비슈누 신에게 고행을 통해 천상의 물을 지상으로 내려줄 것을 기원한 결과, 비슈누의 발꿈치에서 천상의 물이 흘러내려 쉬바의 머리타래를 타고 지상의 히말라야로 내려온 것이 강가라고 합니다. 따라서 강가는 때로 ‘천상에 이르는 계단’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바라나시를, 특히 강가 강을 죽음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장소로 여기게 했습니다.

힌두교도들은 현생에서의 복을 기원하기 위해 바라나시를 방문하기도 하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를 얻거나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사후 화장되기 위해 바라나시를 찾습니다. 바라니시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최소한 좀 더 나은 내생이나 천상의 삶 그리고 궁극적으로 생과 사의 끊임없는 윤회에서 해탈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죽음을 바라나시에서 맞는 것을 최대의 행복으로 여깁니다.

여기에서 화장의례는 일종의 희생제의로 해석이 됩니다. 평생의 삶 자체가 신에게 바쳐지는 제의이지만, 화장은 마지막 신에게 바쳐지는 희생제의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화장은 일종의 정화제의가 되기도 합니다. 불에 태워지면서 불의 신인 아그나에 의해서 모든 죄업이 정화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신성한 강가 강은 이른 아침부터 기도하는 사람, 명상을 하는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그런가 하면 빨래하는 사람 바로 옆에서 목욕을 하고, 신발을 닦고 있는 바로 그 옆에서 그 물로 이를 닦고 행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쓰레기가 둥둥 떠내려 오기도 하고, 심지어는 사람의 시체가 그대로 떠다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정화시켜준다는 강가 강에 대한 인도인들의 믿음이 이방인의 눈에는 놀랍기만 했습니다.

제가 묵고 있던 호텔 앞 강가 강가에 앉아 명상을 하던 수행자 한 분이 어느 날 그 앞을 지나가는 저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돈을 원하는지 먹을 것을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기다리라고 말하고 호텔로 돌아와 음식을 주문해서 준비된 음식을 가지고 그 분에게 가서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그 음식을 받아들고 주변의 사람들과 조금씩 나누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오늘의 성경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굶주리는 사람들을, 먹이를 찾아 헤메는 동물 등을 볼 때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 하지 말라...공중의 새를 보라...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 아시느니라.” 하는 말씀을 떠올리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나는 걱정을 떨칠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수행자의 행위를 보면서 문득 생각했습니다, 바로 저거구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하는 말씀의 의미가 이 것이로구나 하고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상황은 지금의 인도의 상황보다 더 열악하고 힘겨운 상황이었을 것 같습니다. 갈릴리 폭동, 기근 등 힘겨운 상황에서 하루 일해서 하루 먹고 사는 힘없는 민중들이 일손을 멈추고 희망을 찾아 예수 앞에 모여 앉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먹고 마시고 입는 것 걱정하지 말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의를 구하라는 의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겠지만 고통 받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돌봄과 나눔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수행자의 행위를 지켜보면서 말입니다. 작은 것을 나눌 줄 아는 행위, 고통 받는 이들을 향한 돌봄의 마음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24절에는 하느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결국 내일 걱정하여 쌓아놓지 말고 그때그때 나누라는 말씀이 아닌지... 하느님의 나라 그의 의는 거창한 것이 아니고 그러한 작은 마음 실천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 봉사부에서 행하는 무의탁독거노인들에 대한 돌봄 같은 작은 걸음에서 하느님 나라는 가까이 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도 여행을 하면서 많이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굶주리는 사람들을 보고 호텔에 돌아와서 배불리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음식물을 버리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일처럼 여겨졌습니다. 조금 먹고 나누는 것은 어떨지를 생각했습니다.

J Mc Daniel은 세계를 하느님의 몸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하느님이 세계 내에 존재하나 세계와의 비동일성 역시 강조됩니다. 세계의 창조물들이 신의 몸의 세포로 여겨져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것은 그것이 하느님 자신이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 생태계의 파괴가 하느님 몸의 상처가 되고, 하나님은 세계 내적인 고통에 대해 언제든 공감한다고 말합니다. 어린 아이가 어머니의 존재를 느끼듯 하느님은 어디에나 있는 주체로서, 세계 사건들에 응답하고 공감하는 분이란 말입니다.

멕 다니엘은 생태영성은 관계론적 관점에서 삶의 총체성을 지향하고, 삶의 그물망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존재하는 것 일체에 대해 경외감을 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물론 동식물 모두 생명공동체 안의 개체들로서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공속적 운명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인간에게서 발생하는 약탈이 최소화되어야 하고 생명 경외의 빛에서 최소한의 것으로 사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피조물에 대한 탐욕과 낭비야말로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지구 생명을 지탱하고 일체 생명의 지속은 그리스도교 생태영성이 추구하는 구원의 실상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멕 다니엘에 의하면 하느님의 의는 생태정의가 이루어지는 즉 사람들의 눈에서 억울한 눈물이 흐르지 않게 하고 문화적 다양성이 유지되고 인간과 자연에 대해 형평성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구의 어느 곳에서 굶주려 죽어가는 생명들에 무관 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마음, 우주의 마음으로서의 하느님의 고통에 우리가 무관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110 마태복음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마6:10  조용기 목사  2008-09-23 1654
109 마태복음 나라이 임하옵소서 마6:9-10  조용기 목사  2008-09-23 1276
108 마태복음 은폐와 노출 마10:26-31  정용섭 목사  2008-09-18 1382
107 마태복음 하나님 나라의 통치방식 마20:20-28  정용섭 목사  2008-09-18 1925
106 마태복음 평화에 대한 예수코드: 가장 큰 축복 마5:9  한완상 형제  2008-09-15 1506
105 마태복음 느리게 살기 마25:34-40  류상태 목사  2008-09-15 1478
104 마태복음 하나님의 자기 전달 마12:1-8  차옥숭 자매  2008-09-08 1277
103 마태복음 예수의 승리: 승리주의를 넘어 마4:8-10  한완상 형제  2008-09-08 1416
» 마태복음 먼저 의를 구하라 마6:26-34  차옥숭 자매  2008-09-08 1561
101 마태복음 일곱 원수를 쫓아내라 마11:22  조용기 목사  2008-09-06 1587
100 마태복음 예수님의 최고의 관심사 마6:9-10  조용기 목사  2008-09-06 1657
99 마태복음 용서 마6:12  조용기 목사  2008-09-06 1573
98 마태복음 수성(守城)인가, 공성(攻城)인가? 마16:18-19  김창락 목사  2008-09-04 1362
97 마태복음 왜 사느냐고 물으면 마16:24-26  류상태 목사  2008-09-04 1679
96 마태복음 휘장은 찢어져 있는가? 마27:50-52  한세희 형제  2008-09-04 1443
95 마태복음 스스로를 지우시는 하나님 마16:23-25  한완상 형제  2008-09-02 1288
94 마태복음 예수를 넘어지게 하는 한국교인들 마6:24  한완상 형제  2008-06-25 1703
93 마태복음 하늘과 땅엔 예수의 웃음이 마6:26-30  조태현 목사  2008-06-25 1794
92 마태복음 지극히 작은 자 하나 마25:34-40  한인섭 목사  2008-06-20 1971
91 마태복음 전통적 가치와의 갈등과 극복 마5:38-42  최만자 자매  2008-06-15 1603
90 마태복음 말씀과 실천 마7:24-27  정하영 목사  2008-06-06 1807
89 마태복음 죄짓게 한 자에게 화가 있다 마5:20-26  최영실 교수  2008-06-06 1655
88 마태복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마11:28-30  서중석 목사  2008-06-06 7843
87 마태복음 크리스마스의 기분과 예수가족의 아픔 마1:18-25  한완상 형제  2008-06-06 1948
86 마태복음 저주받은 도시들 마11:20-24  박광현 목사  2008-06-03 1840
85 마태복음 열정 예수 마9:35-38  이정선 목사  2008-06-03 2181
84 마태복음 잠만 주무시는 하나님 마8:23-27  이정선 목사  2008-06-03 2105
83 마태복음 새로운 세계, 새로운 관계 마11:2-11  이재정 목사  2008-06-02 1800
82 마태복음 추수할 일꾼을 보내주소서 마9:36-38  김경남 목사  2008-06-02 2205
81 마태복음 믿음과 삶 마17:1-7  박충구 목사  2008-05-30 2072
80 마태복음 원수와 악을 어떻게 사랑하나? 마5:38-39  한완상 형제  2008-05-30 1878
79 마태복음 6.25를 되돌아 보며 마5:38-48  조용기 목사  2008-05-19 1727
78 마태복음 행복 선언 마5:1-12  정양모 신부  2008-05-19 2087
77 마태복음 육신이 되신 말씀의 아픔 마25:31-46  한완상 형제  2008-05-16 1737
76 마태복음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마1:20-23  이경숙 교수  2008-05-16 2365
75 마태복음 세상을 구할 자 마4:1-11  길희성 형제  2008-05-16 1914
74 마태복음 추수의 보람과 나눔의 기쁨 마6:25-34  이재정 목사  2008-05-13 1585
73 마태복음 오직 생명으로만 마6:25-34  최만자 자매  2008-05-13 1557
72 마태복음 주님의 기도 마6:9-13  정양모 신부  2008-05-13 1763
71 마태복음 예수 없는 교회와 신앙고백 마11:1-6  한완상 형제  2008-04-25 1686
70 마태복음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 마13:1-9  조용기 목사  2008-04-18 3439
69 마태복음 일용할 배고픔 마6:11  서중석 목사  2008-04-18 1664
68 마태복음 예수님의 진노, 오늘 누구에게 향할까? 마23:29-36  한완상 목사  2008-04-18 1706
67 마태복음 삶과 죽음과 부활 마28:16-20  정양모 신부  2008-04-11 2260
66 마태복음 오직 하나님, 오직 예수님 마22:35-38  조용기 목사  2008-04-06 2635
65 마태복음 믿음으로 삽시다 마17:14-20  한태완 목사  2008-03-25 2607
64 마태복음 부자 청년의 경우 마19:16-23  손규태 목사  2008-03-17 2297
63 마태복음 제자들의 특징 마10:1-4  한태완 목사  2008-03-13 2458
62 마태복음 은총의 세계 마20:1-16  서창원 목사  2008-02-26 2188
61 마태복음 균형 마4:23-25  장경동 목사  2008-02-10 2460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