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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초대

마태복음 나무............... 조회 수 2268 추천 수 0 2009.03.22 10: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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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11:28-30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http://je333.com 
 마"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장 28절)

손수레에 사랑과 행복을 주워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천대명교회 이필란 사모는 매일 밤 9시 손수레를 몰고 집을 나섭니다. 길거리에 버려진 폐지와 빈병 등 쓰레기를 주워담아 귀가하는 시간은 새벽 3시. 그때부터 쓰레기를 분류하고 가족들을 위해 아침을 준비합니다. 이필란씨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한 장애인에게 조그마한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녀는 쓰레기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장애인을 돕고 지역의 노인 70여명을 초청해 경로잔치를 열고 있습니다. 선교사들에게 생활비도 지원합니다. 가끔 남편 조평연 목사도 아내를 따라 손수레를 끌고 쓰레기를 줍습니다. 처음에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교인들도 손수레를 끄는 사모를 보며 내핍 생활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사모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작은 사랑을 실천합니다. 남모르게 남을 섬기며 이웃에게 기쁨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수시로 어려운 사람들을 집이나 교회로 초대하여 베풀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웃 사람을 집으로 초대해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초대에 응하지 않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마22장 1- 14절에 보면 혼인잔치의 비유가 나옵니다. 한 임금님께서 많은 신하들을 초청하고 산해진미의 잔치상을 배설하였습니다. 그리고 잔치시간이 되어 초청한 자들이 초청을 선택하여 오기를 기다렸으나 오지 않음으로 종들을 보내어 초청에 응하여 잔치에 오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마22장 5절 이하를 보면 하나는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심지어는 그들을 청하러 간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는 자도 있었습니다. 저들의 선택은 자신들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 믿고 임금을 향해 왜 귀찮게 구느냐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왕이 노하였습니다. 즉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살라버렸습니다.그리고 종들에게 이르기를 청한 자들이 합당치 못하니 사거리 길에서 나가 만나는 사람 중에 오기를 원하는 자들을 초청하라고 하였습니다. 드디어 잔치자리는 만원이 되었습니다.
임금님이 손님들을 만나려 왔는데 잔치에 입는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온 자를 발견하고 저를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운 곳에 내어던지라고 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일을 잠시 멈추고 잔치 초대에 응할 것을 명령하시고 있습니다. 농사짓는 일도 장사하는 일고 개인적으로 중요하고 바쁜 일일지라도 멈추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일들은 우리에게 진정한 배부름을 주지 못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우리의 아품을 치유해 주시며 우리의 안타까운 일들을 해결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잔치에 참여할 자는 참여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초청되었다고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온 것이 아닙니다. 다 집에 가서 예복을 챙겨 입고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왔을 때 저는 왕으로부터 심한 꾸중을 듣고 수족이 묶여 밖 어두운 곳으로 던져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먼저 은혜를 받을 준비를 하십시오,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복을 받을 준비를 하시고 예수님의 초대에 응하십시오. 예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실 줄 믿습니다.(시107:9)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셨을 때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오라고 초대하셨고 오늘날도 초대하고 계십니다. (요 6:35).
그런데 예수님과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선물을 가지고 우리를 초청하실까요?

1. 구 원
예수님을 주님으로 구원자로 믿는 것만이 죄를 용서받고 천국을 약속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5).

2. 위 로
온갖 환난이나 슬픔 가운데서 위로의 하나님이 되시며, 모든 고난과 역경과 시험 중에서도 우리를 도우시고 위로하십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1: 3- 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살후2:16)

3. 지 혜
어떤 결정들을 내릴 때에 우리의 지혜보다 더 뛰어난 지혜가 필요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훤화하는 길 머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가로되"(잠1:20- 21)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4. 힘
"우리가 지칠 때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시29:1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46:1)

5. 풍성한 삶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풍성한 삶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예수님께서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요 6:37)고 말씀하셨습니다. 주 예수님께로 오십시오!
예수님은 지친 사람들을 부르시고 목마른 사람들도 부르고 계십니다 지금 당신이 생명의 양식에 굶주려 있다면 "오라" 하시는 주님의 부드러운 음성에 귀 기울이십시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사55:1-3) 이러한 예수님의 초청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본문은 바로 우리 인생에 감동적이고 잊지 못할 초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초대'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삶에 지친 사람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 그리고 문제와 염려 속에 있는 사람들을 안식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어떤 곳에서도 느끼지 못한 편안함, 세상의 어떤 사람에게서도 듣지 못한 진리의 말씀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를 향해 초청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위로와 힘을 주는 말씀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자세히 보시면 예수님의 초대에는 분명한 대상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과연 예수님은 어떤 사람을 초대하고 있을까요?

첫째는 '수고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우선적으로 '수고하고...' 라고 말씀하시면서 수고하는 자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님 앞에 나와 안식과 기쁨과 평안과 위로를 얻을 첫 번째의 대상은 수고하는 자들입니다. 만약 우리가 수고하는 자가 아니라면 이 초대에 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 가운데 수고하는 자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귀를 막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수고의 삶입니다. 수고하지 않는 것은 인생이 아닙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에게 주어진 결과였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이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종신토록 수고하며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의 가장 큰 어려움은 사는 것입니다. 사는 게 가장 힘든 것입니다. 수고의 인생인 것을 알게 하는 통로가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 몸에서 배출되는 3가지의 액체로 압니다. 우선 '땀'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땀을 흘리며 삽니까? 지난 한 주간도 삶의 현장에서 땀을 흘렸습니다. 땀은 수고의 결과입니다. 수고할 때 반드시 땀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땀은 인생이 수고하며 산다는 것을 우선적으로 증거해 줍니다. 그리고 '피'입니다. 피는 몸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입니다. 피는 우리 몸의 내부에서 순환됩니다. 그런데 가끔 피가 밖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을 보며 많이 놀라고 두려워합니다. 우리 몸에서 피가 나오는 것은 속에서 감당할 수 없는 수고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수고하다가 결국 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흘리신 피가 소중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수고의 결과입니다. 주님은 피를 흘리시기까지 크게 수고하셨던 것입니다. 또 하나는 '눈물'입니다. 눈물은 감정의 표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눈물은 인생의 수고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 인생을 삽니다. 아파서 울고, 슬퍼서 울고, 괴로워서 울고, 힘들어서 웁니다. 우리 삶에 잠시라도 눈물이 그치지 않습니다. 바로 수고의 인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가면 눈물부터 닦아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눈물은 수고의 결정체입니다.
땀과 피와 눈물이 바로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렇게 인생은 수고하며 삽니다. 그런 수고하는 자를 지금 주님이 초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수고하며 살았습니다. 지난주에도 많이 수고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수고하며 살아야 합니다. 땀을 흘려야 하고, 눈물이 그치지 않고, 피를 쏟아야 합니다. 그런 수고하는 인생을 향해 주님이 안식과 평안으로 초대하십니다. 주님 앞으로 달려나와 수고하는 우리를 감싸주시는 주님의 따뜻한 위로로 힘을 얻으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무거운 짐 진자'입니다. 계속되는 예수님의 음성이 어떻게 이어지는 가를 보십시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무거운 짐 진자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무거운 짐이 무엇이겠습니까?
유대인에게 적용할 때 이 짐은 의식과 율법입니다. 율법이 그들에게는 멍에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29절에 멍에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처음 율법을 주었을 때의 목적과는 다른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율법은 멍에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감사와 은혜로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사람들이 율법을 멍에로 알고 그것을 메고 지고 갔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율법의 짐, 의식의 멍에로 고통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것을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율법의 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고, 그것을 위해 예수님이 오셨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여전히 율법이 그들의 멍에요 부담이요 짐이었습니다. 당시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 적용할 때 이 무거운 짐은 고민과 문제, 염려와 걱정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를 풀면 또다시 접근하는 문제들, 한 고개를 넘으면 깊은 골짜기가 있는 인생의 염려, 바로 그것이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 문제를 풀고, 그 짐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주변에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가난과 억압과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예수님만이 그 무거운 짐을 풀어 주실 수 있는 것을 알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 나온 것입니다. 이처럼 바로 인생의 고민과 염려가 여기서 말하는 무거운 짐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여기에서 근본적으로 말씀하시는 무거운 짐은 바로 죄입니다. 죄가 사람을 짓누르고, 죄가 인생을 비참하게 합니다. 주님은 지금 죄인을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죄인을 부르십니다. 죄가 우리 인생을 가장 무겁게 하는 짐입니다. 이것이 늘 우리의 부담입니다. 너무도 무거운 짐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 라는 유명한 작가를 아실 것입니다.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문학가입니다. 그가 쓴 소설 중에 '죄와 벌'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어느날 주인공이 자기철학과 관념 속에 빠져 고리대금업자를 살해합니다. 악덕한 사람, 부당한 사람은 죽여도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행위는 뜻밖에도 그를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괴로워하는 비참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결국 자기 이론의 추악한 투영을 보고 마침내 자수하여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강조하려는 것은 바로 죄의 짐과 그리스도안에서의 해결입니다. 작가는 젊은 시절 죽음의 고비를 넘겼던 사람입니다. 시베리아로 유배되어 지내는 동안 그는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은혜를 알기까지 그를 편치 않게 했던 것이 바로 '죄'였습니다. 그는 죄가 가장 큰짐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만이 그것을 풀 수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절대적인 진리 위에 죄와 벌이 쓰여진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무겁고 비참한 것은 죄요, 그 짐을 풀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만이 가능함을 작품을 통해 보여준 것입니다.
여러분, 죄가 가장 무거운 것입니다. 죄가 우리를 짓누르고, 편치 못하게 하고, 우울하게 하고,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는 평생 부담을 안고 삽니다. 업적을 남겨도, 뭔가 큰 일을 해도,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죄의 짐을 벗지 못하면 죄와 벌의 주인공처럼 자기철학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죄의 짐을 지고 가는 인생을 향해 주님이 초대하고 있습니다. 이제 모든 무거운 죄의 짐을 내려놓고 가볍게 다시 시작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고, 참된 안식을 원한다면 먼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합시다. 주님은 무거운 죄와 질병과 율법의 짐에 시달리는 상한 심령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마음을 배웁시다. 주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빌립보서 2장 5, 8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주님의 멍에를 멥시다. 우리가 주님의 멍에를 메지 않으면 주의 길로 온전히 갈 수 없습니다. 여기의 멍에는 예수님의 교훈을 가리키고 있으며, 우리를 자유케 하는 멍에인 것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 8:34).

셋째는 '모두 다'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초대는 모두 다 부르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특징은 여기 '다'에 있습니다. 기독교는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부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보편적인 것입니다. 모두 다 예수님의 초대를 받고, 모두 다 예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여기에서 보는 것처럼, 예수님의 초대는 인종을 초월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백인이나 흑인이나 모두 다 초청합니다. 예수님시대 유대인은 자기만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방인은 사람으로 취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방인도 사랑하셨습니다. 사마리아여인도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점에는 인종의 구별이 없었던 것입니다.
한때 백인은 흑인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링컨이 해방을 선언하기까지 흑인들은 백인의 노예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백인과 흑인의 갈등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습니다. 미국은 인종간이 갈등이 아주 심각한 나라입니다. 겉으로는 모든 인종을 운운하지만, 속으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와 성도입니다. 사회가 그렇다고 해도 교회는 성경의 본질과 예수님의 본심을 잘 헤아려 바르게 실천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지금도 미국에는 여전히 흑인교회가 있고, 백인교회가 있습니다. 오늘날도 이 정도인데, 옛날에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노예시대 흑인들은 백인과 같이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배당이 아닌 들판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의 서러움과 한을 노래한 것이 흑인영가입니다. 흑인영가는 당시 고통받았던 인종의 갈등을 잘 대변해 줍니다.
예수님의 초대는 계층도 초월합니다. 종이나 주인이나, 가진 자나 없는 자나,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어린아이나 성인이나, 모두 다 예수님이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는 계층이 있습니다. 심하고 아주 노골적입니다. 지방색도 있고, 우열도 있습니다. 상하의 구분이 뚜렷하고, 넘어서지 못할 벽이 장대와 같이 높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지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계층을 초월합니다. 어느 특별한 계층을 선호하거나 옹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필요한 자라면 모두를 품어야 합니다. 최근까지 한국교회 안에도 특별한 계층이 모이는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체육인들이 모이는 체육인교회, 연예인이 모이는 연예인교회, 젊은이가 모이는 젊은이교회, 부자들만 모이는 부자교회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교회가 계층을 초월하지 못하고, 보편성을 잃어버리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교회일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누구에게라도 문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문턱이 높지 않아야 합니다. 다양한 사람이 모이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 다양함 속에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속성이이요, 본질입니다.
예수님의 초대는 성별도 초월합니다. 남자나 여자 모두가 초청대상자입니다. 역사적으로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모든 숫자에는 한결같이 여자가 제외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기도문에 여자로 태어나지 않는 것을 감사했습니다. 우리 나라도 오랫동안 남성우월주의가 팽배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남녀평등을 넘어서 여자우월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에는 남자가 여자를 구타하여 문제가 되었는데, 요즘은 여자가 남자를 구타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옛날에는 아내들이 남편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했는데, 이제는 남편이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치우친 것입니다. 이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그리스도 안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종이나 주인이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하나입니다. 모두 예수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요, 모두 예수님 앞에 나와야 할 초청대상자입니다. 예수님은 모두를 부르고 계십니다. 교회는 모두를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신앙의 세계는 치우침이 없어야 합니다. 특별한 의식이나 계층을 형성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지 결코 하나님의 본심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다 부르십니다. 인종을 넘어, 성별을 떠나, 계층을 지나 모두를 초대하십니다. 이 은혜로운 초대에 우리가 부름을 받은 대상자인 것을 아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본심을 따라 우리도 모두를 수용하고 사랑하고 품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은 오늘 여러분과 저를 은혜와 안식으로, 구원과 소망으로 초대하십니다. 세상에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 은혜로운 초대에 모두가 응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이 초대장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들을 예수님에게로 이끌어야 합니다. 수고하는 자, 무거운 짐을 진자, 그리고 인종과 성별과 계층을 초월한 모든 자를 부르시는 이 주님의 초대에,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안식과 평안과 구원과 해결을 보며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죄 많은 저를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능력에 의지하여,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살려고 하다가 많은 상처를 입고 고통가운데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을 믿음으로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은혜로, 믿음으로 살아가게 도와주옵소서. 우리는 주님이 함께 가시니 어디로 가든지 안전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전도하기 힘쓰게 하시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주님의 초대를 거절하지 않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 멘
/한태완 목사(등대교회, 태릉고등학교 교사)

* 2부 분반(구역) 공부 자료

1. 말씀: 나에게 오라

예수님의 부르심은 언제나 개인적입니다. 그분은 “와서 교회에 참석하라” 또는 “와서 헌금을 하라” 또는 “와서 세례를 받으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언제나 “나에게 오라 그러면 너는 채움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실 뿐입니다. 프랑스 철학자인 파스칼은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공백”이 있다고 했습니다. 공백을 채우려는 것은 자연의 본성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채우시지 않으면, 다른 것이 그것을 채우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쓰레기로 마음을 채운다. 우리가 이렇게 불행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한 직장에서 다른 직장으로,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옮겨 다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손을 펴서 구슬을 버려야 다이아몬드를 잡을 수 있는데도 구슬을 버리려 하지 않는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영원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 주말 계획을 포기하라고? 아니 그럴 수 없어.” “깨어진 결혼 생활과 실패한 일을 내어놓고 평화와 용서를 받으라고? 말도 안돼.”
수세기 전, 어거스틴은 이 문제와 해결책을 동시에 제시했습니다. “오 하나님, 당신은 당신 자신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마음은 당신 안에서 안식을 찾을 때까지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을 최우선 순위에 놓기 전에는 결코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구원은 가난한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당신이 지금까지의 당신의 삶에 지쳐 있다면, 지금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이 세상 어디에도 쉴 곳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 안에 안식이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십자가 보혈을 믿는 자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 믿으십시오. 예수를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리고...
고뇌의 시간을 보내고 계신 당신의 마음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초대에 응하셔서
꼭, 행복의 열쇠를 찾으십시오

2. 묵상 및 토의
0 나는 주님의 초대를 거절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0 나는 주님의 혼인잔치 초청에 예복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0 내 생애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있는가?
0 나는 현재 행복하다고 생각하는가?
0 내 마음이 가난합니까? 부합니까?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돼지의 구원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신학자 중에 우찌무라 간조 선생이 있다. 그는 어느 날 한 부자로부터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 이 부자는 저녁을 성대히 잘 차려 놓고 극진히 선생을 대접하였다. 선생이 식사를 잘 마치고 집을 나서면서 부자에게 인사치레를 했다.
"잘 먹었다, 이 돼지야!" 순간 부자는 심한 모멸감에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집으로 들어온 부자는 분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세상에 이럴 수 있는가? 그토록 존경받는 사람이 기껏 식사 대접을 했더니, 그런 식으로밖에 인사를 못하는가? 돼먹지 못한 인간 같으니라고 .' 씩씩대며 잠을 못 이루었다. 한참 뒤척거리다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마음 한구석에서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찌무라 간조는 존경받는 인물이요,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 아닌데 어째서 내게 그런 몰지각한 말을 했을까? 그분의 성품으로 보아 절대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닌데, 뭔가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자신의 삶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내 삶이 그분이 말한 돼지와 다를 바가 뭔가? 나 혼자 이렇게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어버리는 것, 그러다가 끝장나는 인생. 이게 돼지지, 별 게 돼진가!' 다음날 부자는 일찍 일어나 선생을 찾아가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 예화(2): 한성교회 여집사

5년 전,뉴욕 한성장로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였다. 30대 젊은 집사 내외분이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다며 강사인 나와 담임목사를 집으로 초대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담아 가져왔다. 그들은 수건과 새 양말을 준비해놓고 내 발을 씻어주겠다는 것이었다. 몇 차례 거절했다. 그러나 사연을 듣고서 발을 내밀었다. 그녀는 목사의 딸이었다. 아버지 뜻대로라면 당연히 목사 사모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자신도 없고 소명도 없다는 핑계로 도망치듯 미국에 유학와 지금의 신랑을 만나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목사님들이 뉴욕에 오신다는 말만 들으면 반드시 집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한 후 발을 씻겨드린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모가 안된 불효를 씻겠다는 것이었다. 그날 그토록 피곤했던 몸과 마음이 그 집사 부부의 정성스런 섬김으로 모두 풀렸다.
/고훈 목사 (안산제일교회)

* 예화(3): 대접하는 특권

성경은 우리에게 형제를 사랑하라는 명령과 함께 나그네를 사랑하라고 명령합니다. 피를 나눈 형제도 사랑해야 하지만, 피를 나누지 않은 사람도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부자는 끼니를 잇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 때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천사 대접하듯이 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독특한 삶의 양식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구역 예배를 통해 자기 집을 공개하는 것도 이런 훈련 중 하나가 됩니다. 동창회 같은 것 말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초대한 일이 몇 번이나 있습니까?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당신이 목회자를 초대하면 정성껏 식사를 대접할 것입니다. 거지도 그런 마음으로 대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 대접할 가치가 없는, 대접할 대상이 아닌 분들을 예수님 모시듯이 잘 대접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대인 관계의 독특성은 고난 받고 있고, 학대받고 있고, 감옥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이라면 고난 받는 형제들에 대한 깊은 긍휼과 애정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눈물 어린 긍휼을 기억하며, 지체를 대해 보십시오. 그 긍휼의 풍성함으로 사람을 대해 보십시오. 그 사람뿐 아니라 당신에게도 놀라운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4. 찬송: (360장) 예수 나를 오라 하네

1.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2. 겟세마네 동산까지 주와 함께 가려 하네 피땀 흘린 동산까지 주와 함께 함께 가려네
3. 심판하실 자리까지 주와 함께 하려 하네 심판하실 자리까지 주와 함께 함께 가려네
4. 주가 크신 은혜 내려 나를 항상 돌아보고 많은 영광 보여 주며 나와 함께 함께 가시네

[후렴] 주의 인도하심 따라 주의 인도하심 따라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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