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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실험하며 사시라.

마태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966 추천 수 0 2014.05.22 2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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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7:21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4.2.24 주일예배 http://sungamch.net 춘천성암교회 

진리를 실험하며 사시라.
마7:21





“초대 교회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근거로 하여 평등, 자유, 형제애의 집단이었다. 그런데 기독교는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이후 부와 권세를 가지게 되었고, 그러면서 기독교회는 그리스도의 정신과는 다른 권력 집단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톨스토이의 <고백록>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 말을 받아서 화이트 헤드라는 아주 유명한 철학자는 말하기(과정과 실재)를 “기독교가 로마를 정복하면서 거꾸로 로마는 기독교를 정복하였다.”고 했습니다. 왜 생각이 깊은 이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이런 표현을 하고 있는가 하면, 기독교가 물질적이고, 상업적이며, 기술적이고, 대중적인 분별 심 없는 현대 정신에 정복을 당했다는 뜻에서 이렇게 표현들을 하는 겁니다. 속이고 속여서 더 많이 갖고 더 크게 되려는 세상과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니체는 한 술 더 떠서 기독교를 이렇게 말합니다. “참된 기독교인은 한 사람밖에 없다. 그는 2천 년 전에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2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이게 교회와 교인의 본분입니다. 우선 이 세대가 어떤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는 마음을 고쳐먹어야 합니다. 그 고쳐먹은 마음이 자신의 삶을 변화로 이끄는 동력이 되어야 하고, 그 변화된 삶으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길을 가야 하는 겁니다. 이런 교회가 되어야 하고 이런 교인으로 사는 겁니다. 이게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정신이 사라진 교회는 예수 없는 빈 동굴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껍데기 옷으로 민중을 우매화 시키는 적그리스도의 사설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의 설교는 두 가지 핵심에 근거합니다. 하나는,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진리에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진리를 실천하라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이것은 절대 진리입니다. 참으로 이세대의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르침이고 진리가 될 수 없다고 여기지만, 이 걸 진리로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기독교인인 것입니다. 여기에 굳게 서라는 겁니다. 그러나 그걸 그저 믿는다고만 되지 않습니다. 말로는 누구나 ‘가난한자가 복이 있다’고 큰 소리로 기도할 수 있고, ‘믿습니다’며 고함을 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걸 실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진리에 대해서 헌신하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껍데기가 되는 겁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기독교인이 이런 껍데기가 되었다는 겁니다. 진리에 굳게 서 있지도 않고, 진리를 실행하며 살지도 않는 다는 겁니다. 말로는 그렇다고 하면서 뒤로는 세상 그대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가, 교회 다니는 사람이 모두 껍데기가 되었다고들 하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팔아 치부하고 권력을 향유하는 적그리스도의 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겁니다.

간디는 그의 자서전 제목을 <진리와의 실험>이라고 했습니다. 간디의 일생은 인도의 훌륭한 경전인 <바가바다 기타>가 제시하는 두 가지의 영적인 원리 곧 ‘진리’와 ‘비폭력’을 자신의 일생을 통해, 정치를 통해 실험하여 입증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간디의 일생은 <진리와의 실험>이었다는 말을 우리가 오늘 되새겨야 합니다.

종교적인 진리는 단순히 들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수긍한다고, 인정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진리는 그걸 주체적으로 받아들여 그 진리와 내가 하나가 될 때 그 가치가 있는 게 아닙니까? 이래야 최상의 진리가 되는 겁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솥에 넣어야 된다’는 말과 흡사합니다. 실행이 되어야 비로소 그 진리는 최상이 되는 겁니다. 진리는 각자의 인생 속에서 씨로 뿌려지고, 가꿔지고, 열매가 맺고, 거둬야 진리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실험을 거치지 않은 진리는 맹종입니다. 주체적인 진리가 아니고, 경험적인 진리가 아니고, 과학적인 진리가 아닙니다. 과학자들이 어떤 대단한 이론을 이끌어 냈어도, 그게 증명이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한 낱 가설인 것처럼, 종교인에게서도 진리가 각자의 삶에서 실험되어 증명할 수 없다면 그건 그저 수다한 사설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예수그리스도의 삶은 거품처럼 왔다가 꺼져 버리는 미혹하는 유행이 아닙니다. 혼돈된 견해나, 우매한 미신도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진리는 유행이 아니라 영원입니다. 그러한 영적인 진리를 우리의 삶을 통해, 인생을 통해 검증해보고, 실험해보고 하면서 열매를 맺는 것, 그것이 진리와의 실험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가 되려면 진리를 구체적으로 삶을 통해 실험해 보아야 하는 겁니다. 그 사람만이 진리를 실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식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말은, 앎에 그치지 말고 삶으로 실현하라는 것입니다. 이걸 키엘케골 이라는 철학자는 ‘진리의 주체성’이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아무리 맛난 천하제일의 짜장면 맛이라 해도 내가 아닌 남이 맛본 그 짜장면은 내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천하제일은 아니라도 내 입으로 먹어 본 그 맛, 그게 진짜라는 겁니다.

이제 교회나 교인들은 그동안 수도 없이 듣고 배운 ‘객관적인 진리의 말씀’들을 스스로 삶에 실험하여 ‘주관적 진리’로 실현해야 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만약 이러지 않는다면 모두 껍데기가 되는 셈입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빈 동굴에서 열나게 예수의 이름을 불러대는 꼴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말했지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럴 때 진리에 굳게 선다는 것은 자유케 하는 진리를 부동의 믿음으로 열매 맺기까지 삶으로 실험하고 실험하고 그래서 실현해보는 것입니다. ‘자유케 하는 진리’는 아는 것을 넘어서서 믿음의 삶을 통해 살아갈 때 쟁취가 되는 것이지, 머리로 외운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진리를 실험하다가 진리를 획득한 분, 마틴 루터킹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 그는 흑인이었고, 천대받는 종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었습니다. ‘진리는 자유다’ 그는 그걸 믿기만 하지 않았습니다. 일평생 그걸 실험하며 살았습니다. 실험하는 동안 엄청난 고난과 고통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험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부동의 믿음으로 그걸 실험하다가 자유를 실현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몸소 자유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소리쳤습니다. “주여, 마침내 자유를 얻었습니다. Load, we are free at last” 그러나 그는 자유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흉탄에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자유케 하는 진리를 주체적으로 증거 했고, 그 증거로 인해 수많은 흑인들이 자유인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진리의 실현인 것입니다.    

이제는 교회나 교인들이 딴 짓 하지 말고 ‘진리를 실험하는 삶’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진리를 분별하는 눈이 있어야 할 겁니다. 이른바 분별심(分別心)입니다. 둘째는 진리에 굳건히 서서 움직이지 않는 확신 즉 부동심(不動心)입니다. 저는 이 두 가지가 바른 신앙, 바른 인생의 근본지(根本智)라고 여깁니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 요소 없이는 신적인 진리를 우리의 삶에서 실험하고 실현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뭘 분별해야 합니까? 실재와 비실재, 진리와 허위, 절대와 상대, 영원과 찰나, 무한과 유한, 신과 피조물을 구별할 줄 아는 눈입니다. 그러면 분별심이 없다는 말은 이 두 현상 또는 가치를 뒤 섞어 이해하는 겁니다. 아버지를 어머니라고 하고 어머니를 아버지라고 하는 따위입니다. 이런 사람은 극히 분별심이 없는 것이죠. 그면 뭐가 있는 거고 뭐가 없는 거냐? 신적인 것, 영원한 것, 무한한 것들은 있는 것, 실재입니다. 그 반대는 모두 있으나 없는 것 즉 비실재입니다. 단순하게 말씀드리면 변화하는 것은 비실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리라고 할 때 그것은 신적인 것을 말합니다. 영원한 것이 진리입니다.

우리가 어디엔가 굳건히 서려고 하는데, 비실재를 실재로 알고, 허위를 진리로 알고, 상대를 절대로 착각하고, 찰나적인 것을 영원으로 집착하며, 유한을 무한으로 오해하며, 피조물을 신으로 알고 있는 한에는 ‘굳건히 서는 것’자체가 불행입니다. 마치 북한의 공산당원이 ‘당에 충성하는 것만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믿고 목숨을 바쳐’체제에 굳건히 서는 불행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안 되면 진리에 굳건히 선다는 말은 애시 당초 그릇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 부동심이 있어야 합니다. 영원한 진리를 분별한 다음에 이걸 나의 과녁으로 삼고 살아가려는 확고한 믿음, 움직이지 않는 믿음, 부동의 마음이요 부동의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동의 마음과 부동의 믿음은 요동하는 세상에서 진리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부동의 신앙이 있다면 인간은 모든 것을 성취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십 수 년 전에 저와 교제하던 박노해라는 이를 아십니다. 그는 과거에 정치적인 혁명과 체제전복을 도모하다가 사형수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는 거기에 그의 부동심을 걸고 혁명투사로 살다가 잡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형수가 되었을 때 비로소 분별 심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얻은 분별 심에 부동의 마음을 걸고 살아갑니다. 지금 그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사진전을 열고 있는데, 나는 그의 사진에서 그의 부동심을 읽고 있습니다. 그가 찾은 진리에 대한 부동심은 너무 확고하여 그가 혁명투사였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위로와 격려와 희망을 찾고 있습니다.

부동심이란 참으로 별거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별거 아닌 게 사실은 별것입니다. 라마 크리슈나의 이야기에도 나옵니다(예화 할 것). 바울도 고전1:8에서 말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굳게 믿는 믿음, 모세, 루터, 간디, 마틴 루터킹, 만델라.....이런 이들이 바로 부동심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사람들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교회와 교인들에게 필요한 것, 여러분과 내게 요구되는 신앙의 바른 길은 바로 이 세대 속에서 분별 심을 갖는 것이고, 그 분별 심을 따라 부동의 믿음으로 진리를 실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제는 진리를 실험하고 또 실험 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듣기만 마시고 들은 진리를 당신의 삶으로 실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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