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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분위기

마태복음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57 추천 수 0 2016.12.06 23:5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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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7:1-5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16.6.12 여의도순복음중앙교회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태복음 7장 1∼5절)

 맑고 아름답고 온화한 날씨는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을 줍니다. 삶의 분위기도 이런 날씨와 같습니다. 기쁨과 행복을 주는 삶의 분위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대화를 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기쁨과 행복은 서로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살벌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행복한 삶을 기대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특히 가까운 사이에 오고가는 대화는 아무리 사소해도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오곤 합니다. 형제, 부모, 자녀, 친척이나 친구 등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일수록 대화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기쁨과 행복을 주는 삶의 분위기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위기는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저는 말씀을 전할 때,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제가 적극적으로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아야 은혜가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인도에 선교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가기 전, 만나는 사람마다 인도가 매우 덥다고, 영상 40도 이상이니까 더울 때 입는 옷을 단단히 준비하고 가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가서보니 얼마나 추운지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 이튿날 아침 제일 먼저 전기담요를 갖다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담요를 깔고 잠을 자니, 천당 근처에 온 것 같이 좋았습니다. 이번 성회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갔지만, 30여 만 명이 모였습니다. 사방천지에 사람들이라 앉아도 사람, 서도 사람, 옆을 봐도 사람, 뒤를 봐도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희망을 바라고 모여드는 것을 봤습니다. 우리 한국은 인도에 비교하면 참으로 행복하고 평안하게 잘 사는 나라입니다. 우리 나라를 복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유대인들이 성경처럼 여기는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왕이 신하 두 사람을 불러서 한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 가장 악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라”고 명령하고, 또 한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 가장 선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 두 신하가 왕에게 각자 알아온 것을 보고했습니다. 악한 것을 알아본 신하는 “다녀본 결과 혀가 만물 중에 가장 악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선한 일을 조사해 온 신하는 “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입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성경에도 잠언 25장 11절에는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고 말씀하셨고, 반면 야고보서 3장 8절에는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혀가 은쟁반 위의 금 사과가 될 수도 있고, 사람을 죽이는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소한 말이라도 함부로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1. 부정적인 비판을 삼가라


 사소한 말이라도 부정적인 비판은 불행을 가져옵니다. 흔히들 “너는 제대로 하는 게 없다” “시키는거나 잘 해라” “너는 늘 그것이 문제다” 등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별로 사나운 말같지는 않지만, 이런 말을 듣는 당사자는 모욕감을 느낍니다. 혹은 분노 및 불안감, 모멸감을 느낍니다. 이런 감정들이 우울증과 불안장애, 인격장애와 같은 정신적 질병을 일으키고 자살 충동까지 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언어폭력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고 좀처럼 잊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 2장 8절로 9절에 보면 다윗이 자기 아들에게 쫓겨서 시골로 피신을 할 때 다윗의 경쟁자인 사울왕의 친척이 다윗을 따라오면서 욕을 했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주 받을 녀석, 잘 가라. 다시는 오지 말라”고 저주한 것입니다. 그 저주했던 이는 다윗이 다시 복권되자, 유다까지 찾아가 자신이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에 “저주받아 잘 가라. 떠나가고 다시 들어오지 말라”고 했던 말을 변경시켜서 “환영합니다”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다윗은 자기는 칼로써 그를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아들 솔로몬에게 “절대로 저 놈 편안하게 이 세상을 떠나지 않도록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그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악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그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므로 내가 야훼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그러나 그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이므로 그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의 백발이 피 가운데 스올에 내려가게 하라”(왕상 2:8∼9).
 이렇게 말을 잘못하면 큰 비극을 가져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로부터, 부부로부터 듣는 잔소리 때문에 힘들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잔소리가 계속 되면 언어폭력이 되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24절에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잠언 18장 6절을 보면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고 기록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0절로 11절에는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고 하셨고, 고린도전서 1장 10절에는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혀를 절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고,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그것을 따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 방영되었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는 폭력을 쓰거나 욕을 하거나 누가 봐도 매우 심각한 문제를 가진 어린 아이들이 나왔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고 꾸중하며 잔소리만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잔소리하고 야단을 쳐도 아이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부모들이 아동 심리 전문가의 조언을 따르자 아이들이 순식간에 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문제는 그 행동과 원인이 다 부모에게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을 훈육할 때, 무조건 잔소리를 하고 야단만 치지 말고, 서로에 대해 알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21절을 보면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도 자식을 이해하려고 애를 써야하고, 자식들도 부모를 이해하려고 애를 써야 되는 것입니다.

 ‘결혼생활 중 가장 참기 어려울 것 같은 배우자의 잔소리’에 대해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남녀 똑같이 ‘퇴근하고 곧바로 집에 오라’(남 40.9%, 여 28.1%)를 가장 높게 꼽았다는 것입니다. 이어 남성은 ‘처가에 신경 좀 쓰라’였고 여성은 ‘시댁에 신경 좀 쓰라’는 말을 듣기 싫다고 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다 비슷합니다. 남편이든 아내든 잔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2. 희망을 주는 말을 하라


 우리는 희망을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희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만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게도 희망을 주는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비평하는 평론도 굉장히 나쁜 것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됩니다. 자기 자신을 향해 희망을 주는 말을 하십시오. 많은 사람이 우리를 향해 좌절적인 잔소리를 해도 낙심하고 절망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시편 42편 5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고 시편 기자는 자기 스스로를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용기를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래도 칭찬하면 춤을 춘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저는 고래가 춤추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이 말은 항상 상대의 장점을 파악하고 칭찬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잠언 27장 21절에는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고 말한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사소한 대화가 희망을 싣고 우리의 삶에 흐릅니다. 제가 제자들이나 후배를 만나면 많이 듣는 말이, 옛날에 제가 한 한마디가 자신들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대화할 때 격려하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자신에게 중요했었다고 간증하는 것을 듣습니다. 잠언 18장 20절로 21절에는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자기도 살리고 이웃도 살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는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말씀하셨둣 우리는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언어폭력’이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말이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영국의 한 광고회사에서 만든 광고가 SNS에서 주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 광고를 보면 한 장님 노인이 길거리에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옆에 놓인 널빤지에 “I’m a blind. please help me.(저는 맹인입니다.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돈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때 지나가던 한 여자가 그 널빤지 뒷면에 뭐라고 글을 쓰더니, 장님에게 널빤지를 잡게 하고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기적 같은 일이 생겨났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돈을 주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인이 쓴 글을 본 사람마다 돈을 주고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성이 적은 문구는 이렇습니다. “It’s a beautiful day, but I can’t see it.(아름다운 날입니다. 하지만 전 이것을 볼 수가 없네요)”. “도와주세요”라는 말 대신에 긍정적인 단어를 사용했더니, 긍정적인 글을 읽은 사람마다 동전을 주고 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 한마디가 사람들의 반응을 다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라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계속 드리면, 하나님도 달라지십니다. 골로새서 3장 16절로 17절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서로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고 감사하는 말을 하는 것이 큰 효과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감사의 노래를 들을 때 영화로움을 느끼십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찬송을 부르고, 더욱 감사하면 하나님이 그 제사를 즐겁게 받고 응답해 주신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9절로 20절에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기록했듯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하나님은 감사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감사와 찬양을 하면 하나님이 굉장히 기뻐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하면 하나님이 찌푸리시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따라 광야를 이동하는데, 너무 불평을 말하니까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서, 불뱀이 사람들을 무차별로 물어 죽였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백성들이 와서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라고 하자,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놋뱀을 만들어서 매달으라”고 하셔서,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았더니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마다 살아난 것입니다. 놋뱀 같이 뱀을 매달라는 것은 마귀와 같이 원망 불평 탄식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평 탄식은 하나님도 굉장히 듣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만든 예배 분위기는 놀랍습니다. 빌립보에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 가지고 실컷 얻어맞은 바울과 실라가 감방에 갇혔습니다. 그들은 저녁도 먹지 못했고, 실컷 얻어맞았고, 누워서 잠도 못 자게 쇠고랑에 묶어 놨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가 불평을 말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쇠고랑을 철거덩 철거덩 서로 부딪혀 가면서 찬송을 부른 것이었습니다. 그 분위기가 얼마나 좋았던지 다른 죄수들도 시끄럽다고 하지않고 그 노래를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철거덩 철겅…. 그러니까 하나님도 그 찬송 소리를 듣고 계시다가 그 박자를 맞추셨습니다. 빌립보 감옥이 옥토가 되어 흔들리고 쇠고랑이 다 풀려버리고 아주 분위기가 좋은 가정과 같이 된 것입니다. 죄수가 감옥 문이 열리고 쇠고랑이 다 풀려지면 어떻게 합니까? 도망을 쳐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간수장이 죄수들이 다 도망치는 줄 알고 자살하려고 하니까 바울이 “자살하지 마라. 한 사람도 안 달아났다”고 말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찬송하고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구성지고 그들 마음에 은혜가 됐던지 아무도 달아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만큼 감사와 찬송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죄수들도 영향을 받아서 더 듣고 싶어서 도망을 안쳤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생활 속에서 감사와 찬송을 억지로라도 많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벗어진지라”(행 16:25∼26). 실제로 매인 쇠고랑이 다 벗어졌는데, 안 보이는 마음의 쇠고랑이 안 벗어질 리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혼자서 살 수 없고 두 세 사람이 함께 대화하면서 살아갑니다. 이 대화가 희망을 주는 격려의 대화가 되기도 하고, 상대를 짓누르는 언어폭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먹으로 얼굴을 치는 것만 폭행이 아닙니다. 조용한 언어로 말하더라도 상대가 모욕감을 느끼고, 기분을 상하게 만들어 스트레스를 느끼게 하는 것은 폭력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의 사랑을 갖고 언제나 용서와 더불어 희망을 갖고 대화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마귀를 쫓아내는 데는 찬양이 제일입니다. 감사와 찬양은 마귀를 쫓는 무기가 됩니다. 사무엘상 16장 2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감사와 찬양은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역대하 20장 21절을 보면, 여호사밧 왕이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야훼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야훼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라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찬송을 하자 하나님 역사가 나타나서 전투를 하는 적군들이 사기를 다 잃어버리고 혼비백산 하고 도망을 치고 여호사밧 왕이 큰 승리를 얻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전쟁이 벌어지면 원망하지 말고 노래를 불러야 됩니다. 우리가 사업을 해도 사업에 성공하려면 사원들과 매일 노래를 부르고, 가정이 화평하고 좋으려면 가정에 노랫소리가 끊어지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중국 속담에 ‘일언기출 사마난추(一言旣出 駟馬難追)’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한번 뱉은 말은 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로도 쫓아가기 어렵다’라는 뜻입니다. 말은 우리 안에 있을 때 우리가 통제할 수 있지만, 입 밖에 나가면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엎질러진 물’이요, ‘시위를 떠난 화살’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할 때는 신중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해 놓은 말 도로 주워 담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입술의 말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슬픔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조화된 삶을 살 수 있게 하고, 원한에 사무친 삶을 살게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하고, 남의 장점을 찾아서 그 장점을 늘 시인해 주고, 자기 자신도 격려해야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생각과 믿음을 가지고 나와 가족, 이웃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말을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언제나 꿈과 희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말이 은쟁반 위의 금 사과가 될 수도 있고, 사람을 죽이는 독이 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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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3 마태복음 이 모든 일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마1:22-25  김경형 목사  2016-11-13 196
1472 마태복음 저에게 잉태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마1:20-21  김경형 목사  2016-11-13 173
1471 마태복음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마1:17-19  김경형 목사  2016-11-06 303
1470 마태복음 다윗과 족보에 기록 안 된 왕들의 신앙 마1:1-16  김경형 목사  2016-11-06 632
1469 마태복음 다말 라합 롯의 신앙 마1:1-16  김경형 목사  2016-10-30 570
1468 마태복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신앙. 마1:1-16  김경형 목사  2016-10-30 703
1467 마태복음 시험 이기니 천사 나타남 마4:1-11  강승호 목사  2016-10-28 363
1466 마태복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마1:1-16  김경형 목사  2016-10-23 521
1465 마태복음 성경을 바로 이해하기 위하 서언(3) 마1:1-16  김경형 목사  2016-10-23 174
1464 마태복음 천국의 열쇠 마16:13-20  김부겸 목사  2016-10-19 445
1463 마태복음 예수의 <생각의 길> 마15:1-20  김부겸 목사  2016-10-19 366
1462 마태복음 옷깃만 만져도 병이 나았다 마14:34-36  김부겸 목사  2016-10-19 839
1461 마태복음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는 ‘믿음’ 마14:22-33  김부겸 목사  2016-10-19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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