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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15:3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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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기성 목사 |
참고 : | 네이버: 말씀의 숲 교회(서울 은평) |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라
(막15:33-41)
여러분, 혹 지금 이 시간에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받으시겠습니까? 두 손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어떤 분은 그저 두 손을 모아서 표현할 수도 있고요. 어떤 분은 정말 크게, 두 팔 벌려 표현할 수도 있겠지요. 저는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두 팔 벌려 기다렸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많은 사건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고통을 당하시고, 돌아가시는 그 순간,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는 사건이 있었어요.
구약의 성전에는 크게 두 군데로 나누는데, 성소가 있고, 지성소가 있어요. 성소까지는 들어 갈 수 있는데, 지성소는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지요. 그곳은 하나님의 임재와 언약궤가 있는 곳으로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어요.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무척 사랑했어요. 신약시대의 교회와 구약시대의 성전의 개념은 달라요. 문제는 오늘날 교회가 너무 많아서,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너무 교회가 많아서,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리고 너무 쉬우니까 너무 우습게 여기지요. 그것은 교회가 없어서 못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너무 많아서 안가는 경우가 더 많이 있어요.
그러나 구약시대는 성전이 하나밖에 없었어요. 예루살렘 성전 하나밖에 없었어요. 예루살렘 근처에 사는 사람들도 성전을 사랑했지만,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은 한 평생 성전에 올라가서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소원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돈을 모으고 또 모아서 여유가 생기면, 일평생 한번 소원을 이루기 위해 가족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으로 예배 한번 드리러 가지요.
성전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이 일생의 꿈이 예요. 그것을 목표로 삼았던 사람들이 참 많았어요. 그 여행을 한 사람 중에,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사람이 있었어요. 구레네 사람 시몬이지요.
구레네 사람 시몬이 살고 있는 곳은, 북 아프리카 리비아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는 직선으로도 1300키로가 넘는, 대 장정의 길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 평생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구레네 사람 시몬과 그의 가족은 예루살렘으로 향한 것이죠. 그리고 예루살렘에 도착했는데, 그날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랐던 날이었지요.
그런데 일평생 꿈이었던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도, 절대로 성전 근처에 접근하지 못하는 장소가 있었어요. 바로 지성소였어요. 먼 곳에서 왔어도, 절대로 그 지성소는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었어요. 그곳을 함부로 들어가는 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어요.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인 우리가 절대로 들어가지 못하는 출입금지 구역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는 지성소라는 곳이지요. 그러나 또 다른 의미도 있어요.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신다는 것이죠.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죄인인 우리가 그곳에 들어가면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들어가지 못하게 만든 곳이, 지성소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두꺼운 커튼을 쳐 놓으셨어요. 오늘 성경에는 ‘휘장’이라고 하지요. 어떻게 보면 이 휘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커튼하고는 달라요. 구약에 보면 청색, 자색, 홍색실로 짜서 높이가 14미터(28규빗), 가로가 2미터(4규빗)가 되고요, 칼도 잘 들어가지 않는 두꺼운 천으로 만들어졌어요. 이 휘장은 절대로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금지 구역의 상징이었지요.
그런데 이곳에 접근 가능한 사람이 한 사람 있었지요. 대제사장 한 사람만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것도 아무 때나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일 년에 딱 한번만 들어갈 수 있었어요. 대 속죄일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일 년에 한번, 온 백성들의 죄를 가지고, 어린양의 피를 들고,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대제사장도 혹 자신이 죄가 있고, 하나님 앞에 청산하지 못하는 죄가 있다면 들어가자마자, 그 자리에서 즉사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대제사장이 들어갈 때도, 예복을 입고, 그리고 그 예복에 방울을 달았어요. 그리고 줄을 길게 매달고 들어갔대요. 움직이면 소리가 나는데, 혹시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즉사한 것으로 알고, 죽은 시신을 꺼내기 위해 밖에서 밧줄로 잡아당기게 그렇게 만들어 놓았지요.
그래서 불완전한 인간이 너무나 사모하는 장소가 성전이지만,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장소가 성전 안 지성소였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높이가 14미터 되는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서 찢어졌다는 거지요.
여러분, 휘장이 찢어질 때의 모습을 오늘 성경은,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는 것이지요. 사람이 그 긴 14미터 정도가 되는 천, 휘장을 찢는다면, 밑에서부터 위로 쫙~ 찢는 것이 더 쉬울 수 있고, 굳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기 위해서는 사람이 14미터나 되는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 힘들게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람이 쉽게 찢는다면, 밑에서부터 위로 올려서 그 천을 찢었을 것이지요.
그러니까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는 것은,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인간의 죄를 위해 처절하게 죽어가는 당신의 아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하신 손길이, 성소의 휘장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 내는 하나님의 결단이, 그 찢어지는 휘장 안에 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그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이제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예수님을 통해 열렸다는 거예요. 죄로 인하여 도저히 접근 할 수 없었던 죄인들에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으로,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들어 갈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놓은 사건이지요.
이 사건 이후로 하나님은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분, 가까이 갈 수 없는 분, 쳐다 볼 수 없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인하여, 누구나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담력을 얻고, 은혜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담력을 얻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쉽게 만날 수 있고, 부를 수 있고, 접근할 수 있고, 다가갈 수 있는, 그런 나의 아버지 하나님이 되셨다는 거십니다. 예수의 그 십자가를 믿는 누구에게나 담대하게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사건이, 오늘 본문의 사건이지요.
여러분, 지금이야 성전을 장식할 때 많이 없어졌지만, 저희들이 어렸을 때, 교회 성전의 대표적인 모습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강대상을 중심으로 이 뒤에 긴 커튼이 있었어요. 상징적인 의미로 자주색 커튼이 있었고, 그리고 가운데 십자가를 걸어 놓았지요. 아마 대부분의 교회들이 그렇게 했었어요. 지금이야 없지요.
그렇게 장식하는 데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요. 그것은 성소와 지성소의 의미를 커튼으로 장식 한 거예요. 그리그 그 커튼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세워 둠으로써, 그 십자가로 인하여 성소의 휘장을 찢고, 우리가 담대히 그 지성소 안으로 들어 갈 수 있는 은혜를 상징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그것을 예배 때마다 바라보며, 정말 지성소로 들어가는 마음으로 예배하고, 그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거예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기 위해, 그 보좌의 문을 활짝 열고,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의미가 그것에 있는 거지요.
여러분 그렇다면 지성소가 열렸다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것은 하나님이 그 은혜를 우리에게 열어주셨는데, 우리는 정말 그 은혜를 누리고 있는가? 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어쩌면 쉽게 드나들 수 있으니까, 구약 백성들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려고 그토록 사모했는데, 우리는 쉽게 나올 수 있으니까, 오히려 이 은혜를 우리는 누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여러분, 문제는 내 마음에 ‘휘장’이예요. 예수님은 고통 가운데 죽으시면서, 성소의 휘장을 찢어 놓으시면서, 이제부터 내가 하나님과 너 사이에 담장을 허물었고, 하나님과 너 사이에 화목하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내 마음의 ‘휘장’을 열지 않고, 닫아놓고 있지 않는지, 뒤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여러분, 십자가 앞에는 더 나은 사람도 없고요, 더 부족한 사람도 없습니다. 십자가 앞에는, 늘 은혜로 사는 사람들 밖에 없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에게 그 은혜를 주시기 위해 두 팔 벌려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는 내 안에 휘장을 열지 못하고, 이 자리에 있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없다는 거십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지금 이 예배의 자리에 왔는데도, 지성소를 경험하지도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거예요. 예배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거예요.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장소가 됨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지성소를 들어가기 위한 조건이 있어요. 그것은 예수님과 같은 마음이 아니면,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으면, 그 지성소로 들어갈 수 없다는 거예요. 예수님의 몸이 찢기듯이, 내 마음을 찢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그 은혜를 받을 수 없다는 거예요. 진정한 마음으로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면, 우리의 모든 예배는 살아날 것이고, 우리의 신앙도 회복될 거십니다.
여러분, 정말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에 정성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으로 예배한다면,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를 주실 거십니다. 여러분의 삶에 능력을 베풀어 주실 거십니다. 은혜의 보좌로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은혜를 하나님이 준비해 주셨기에, 우리는 그 은혜를 사모하며 그것을 구할 때, 여러분 안에 죽어가는 모든 것들이 다 살아날 것을, 저는 믿습니다.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청년들과 함께 목회를 할 때, 주일 아침이면 청년들을 저의 차에 실어 날랐어요. 주일이면 청년들이 더 자고 싶고, 쉬고 싶을 텐데, 벨을 누리고, 전화를 해서 교회가자고 하면, 힘들어도 차에 타는 청년들이, 저는 그렇게 고마웠어요.
한 차, 두 차, 세 차 어떤 때는 그 이상, 저의 차로 동네를 돌면서, 청년들을 데리고 오면서도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요. 그 청년들 중에, 정말 믿음이 있어서 교회에 나온 아이들 보다, 한 주 동안 한국 김치가 그리워서, 김치에 밥을 먹고 싶어서, 나온 청년들도 있었고요. 한인들을 만나기 위해서 나온 청년들도 있었고,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해 교회로 나온 청년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청년들 중에 하나님을 경험하는 거예요. 그 청년들 중에, 생전 자신하고 관계가 없을 것 같은 그 하나님을 어느 날 만나는 거예요.
한번은 예배가 끝나고 집에 데려다 주려고, 한 청년을 기다리는데 교회 밖으로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한 청년을 시켜, 교회 안에 들어가서 빨리 나오라고 시켰어요. 그런데 그 청년이 혼자 나오면서, 지금 예배당 안에서 울고 있다는 거예요. 무슨 일이 있나 제가 안으로 들어갔지요.
그때 그 청년은 하나님을 만나고 있었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새롭게 다가오고 있었던 거예요. 그 은혜에 감격하여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었던 거십니다. 전혀 하나님을 만날 것 같지 아니하고, 그리고 그저 교회가 좋아서 놀러왔던 그들에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던 거이지요.
그리고 그 청년들이 세례를 받고,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직장을 찾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그리고 교회에서 헌신하며, 집사가 되어, 그때 만났던 그 하나님을 잊지 아니하고, 그 은혜를 늘 예배때 마다 사모하고, 또 은혜를 받고, 믿음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예배의 자리에 나온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거십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 하나님을 정말 더욱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처음 어떤 마음으로 왔던, 예배에 정성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하나님은 휘장을 열어 놓고, 여러분에게 주실 은혜를 준비해 놓으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혹,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예배에 더욱 정성을 드리는 거예요. 내가 영적으로 메말라 있고, 낙심되어 있다면, 무엇보다도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 정성을 드리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지성소가 열려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예배이든, 매 시간마다 지극한 정성을 드려 온 마음으로 예배드린다면, 분명 하나님은 여러분을 만나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죽어 있던 모든 것들이 살아날 줄 믿습니다.
예배 때 마다, 그 은혜를 사모하며 담대히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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