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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16: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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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중곤 목사 |
참고 : | 들풀쉼터교회 |
부활주일 새벽 예배(2023. 4. 9.)
성경 : 막16:9-11
제목 : 부활의 의미
찬송 : 160(150), 167(157)
막16:9-11
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중심은‘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온갖 고난과 핍박과 저주를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보혈의 은혜로, 심판과 저주를 받아 죽어야할 죄인들이, 주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함을 얻으므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아 누리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마16:21-25절에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주님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하고 항변하다가, 주님께“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16:23)라고 책망하시고,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4-25)말씀하셨습니다.
초대교회 첫 순교자 스데반 집사님은 예루살렘 교회 일곱 집사들 중의 한 사람으로,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하였는데,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행6:15)고 하였고, 스데반 집사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7:56)고 말하자, 그들이 돌로 치니 스데반 집사님이 부르짖으며,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7:59-60) 기도하고, 돌에 맞아 죽는 순간에도 분노와 증오와 저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실 때,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스데반 집사님도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나타내 보이고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의 현장에 증인으로 있었던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돌에 맞아 죽어가는 순간에도, 돌을 던지는 사람을 위해 간구하는 스데반 집사님의 기도를 들으면서 아마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이라는 청년은 주님의 제자들에 대하여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다메섹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면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사울이 놀라 “주여 누구시니이까”그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9:1-5)는 음성을 듣고, 사울은 그 때부터 회개하고 주님의 제자가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을 증거 하는‘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만 전하는‘사랑과 섬김’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고전2:2절에‘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고,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12:10)고 하였으며,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고 고백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 후,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와 부활’하심을 믿음으로 살다가 주님을 위한 순교자가 되었고, 주님의 뜻을 이루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 오늘 우리에게까지 복음을 증거하고 전한 주님의 제자요 사도로 사명을 다였습니다.
우리나라에도‘일사 각오’(一死覺悟)로 순교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주기철’(朱基徹; 1897-1944) 목사님은 신사 참배를 반대하다가 1938년 2월 8일 1차 검거 된 이후, 1940년 9월 4차 검거되어 4년간 옥중 생활을 하다가 1944년 4월 21일 47세에 순교의 제물이 되어 주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1938년 8월 2차 검거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른 후 석방되어 1939년 2월 첫 주일 아침 평양역에 도착했습니다. 그 길로 주기철 목사님은 섬기시던 산정현 교회로 가서 성전에 엎디어 기도하는 동안에 자기는 죽어 하늘나라에 가서도 조선 교회를 위해서 기도를 계속하겠다는 결심으로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다섯 종목의 나의 기원’이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설교를 했습니다. 이 설교에는 주님께 대한 주기철 목사님의 절대 충성과 헌신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 설교의 일부입니다.
1.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위하여 열 번 죽고 백 번 죽어도 좋지만 주님을 버리고 백 년 살고 천 년 살면 무엇 합니까? 오 주여! 이 목숨을 아끼어 주님께 욕되지 않게 하시옵소서. 이 몸이 부셔서 가루가 된다 하여도 주님의 계명을 지키게 하옵소서.
오 주여! 주님은 영원토록 찬양 받으실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두 손과 발이 쇠못에 찢어져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다 쏟으셨습니다. 주님 나를 위하여 죽으셨거늘 내 어찌 죽음을 무서워하겠습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의 사람은, 살아도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죽어도 그리스도인답게 죽어야 합니다. 죽음이 무서워 예수를 저버리지 마십시오! 풀의 꽃과 같이 시들어 떨어지는 목숨을 아끼다가 지옥에 떨어지면 이보다 두려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 번 죽어 영원한 천국의 복락을 얻는다면 이보다 즐거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내 주님 밖의 다른 신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살 수는 없습니다. 더럽게 사느니보다 차라리 죽고 또 죽어 주님 향한 정절을 지키려 합니다. 주님을 따라 나의 주님을 따라서 가는 죽음은 나의 소원입니다. 소나무는 죽기 전에 찍어야 푸르르고, 백합도 시들기 전에 떨어져야 향기롭습니다. 세례요한은 33세, 스데반도 청장년에 뜨거운 피를 뿌렸습니다. 이 몸도 시들기 전에 주님 제단의 제물이 되겠습니다. 나에게는 오로지 일사각오(一死覺悟)가 있을 뿐입니다.
2.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옵소서.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이제 받는 고난은 길어야 70 년이요, 장차 받을 영광은 천 년 만 년 영원무궁합니다. 지금 받는 고난은 어차피 한 번 죽어 썩을 몸이 죽는 것뿐이요, 장차 받을 영광은 예수의 부활하신 몸과 같이 영생불사의 몸이며 영원 영화의 몸입니다. 주님 재림하시는 그 날, 우리 모두는 부활할 것이며, 우리 앞에는 천국 가는 밝은 길이 펼쳐질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 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겠습니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수욕(羞辱)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이 "너는 내 이름과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3. 노모(老母)와 처자(妻子)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저에게는 주님께서 맡기신 양떼, 사랑하는 교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저들 내 양떼를 뒤에 두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험한 세대, 악한 세상의 이리떼 중에 내 양들을 두고 떠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람이 제 몸의 고통은 견딜 수 있으나, 부모와 처자를 생각하고 철석같은 마음도 변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자식이 목메어 우는 소리에 순교의 길에서 돌아선 신자도 허다합니다.
인간의 얽히고 얽힌 인정의 줄이여, 나를 얽어매지 말라! 부모나 처자를 예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우리 주님께 합당치 아니합니다.
4. 의에 살고 의에 죽도록 하여 주옵소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의가 있습니다. 나라의 국민이 되어서는 충절의 의가 있고, 여자가 되어서는 정절의 의가 있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의 정조가 있습니다.
예수를 사랑하니 용광로 같은 풀무불이 두려우랴! / 예수를 사랑하니 굶주린 사자 굴도 두렵지 않도다! /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고,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렸습니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신부는 다른 신에게 정절을 깨뜨리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신사(우상)에 절하지 못합니다. 이 몸이 어려서부터 예수 안에서 자라났고 예수께 헌신하기로 열 번, 백 번 맹세했습니다. 이 목숨이나마 주님께 드리리다. 칼날이 나를 기다리느냐? 나는 저 칼날을 향하여 나아가리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이 몸 죽고 죽어 열백 번 다시 죽어도 주님 향한 대의정절 변치 아니하겠습니다. 십자가, 십자가, 주님 지신 십자가 앞에 이 몸 드립니다. 우리 초로인생 살면 며칠입니까? 인생은 짧고 의는 영원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의에 죽고 의에 살으십시다! 의를 버리고 더구나 주님께 향한 의를 버리고 산다는 것은 개짐승의 삶만 같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십니다. 부디 예수로 죽고 예수로 살으십시다.
5.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오 주님! 십자가를 붙잡고 쓰러질 때,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혹여 옥중에서나 사형장에서나 내 목숨 끊어질 때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더러운 땅을 밟던 내 발을 씻어서 나로 하여금 하늘나라 황금 길을 걷게 하시옵고, 죄악 세상에서 부대끼던 나를 깨끗케 하사 영광의 존전에 서게 하옵소서.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나이다.
주기철 목사님의 유언적 설교의 한 부분으로‘일사각오’(一死覺悟)의 믿음을 잘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오리!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수옥(囚獄)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다음 주님이 "너는 내 이름으로 평안과 즐거움과 영광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내 무슨 말로 대답하랴!
주님을 위하여 오는 십자가를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다음 주님이 "너는 내가 준 유일한 유산(遺産)인 고난의 십자가를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내 무슨 말로 대답하랴!“
주기철 목사님은 순교의 형장을 바라보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십자가와 부활’을 몸에 지니시고 죽음의 형장으로 가셨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순교를 각오하고 처절하게 기도한 대로 1944년 4월 21일 밤 9시 30분 경 평양 감옥에서 47세를 일기로 순교의 제물이 되어 주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우리나라에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증거 하신, 그래서 우리나라에 참 된 그리스인의 삶을 죽음으로 지켜내신 참되고 진실한 ‘축도록 충성한’ 그리스도인의 모범이 되신 주님을 위한 순교자였습니다.
이 시간은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고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 모두의 구주가 되시고 길이 되시고 생명이 되시는 부활 주일 아침입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십자가와 부활 신앙’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주님을 핍박하던 바울사도도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다 순교의 삶을 살았으며,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순교를 당하신 주기철 목사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자신의 안일함 보다, ‘축도록 충성한 일사각오’의 순교자였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부활 주일을 맞이하는 우리는 지금 어떤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주님지신 십자가를 우리도 지고 주님을 따르고 있는지, 세상의 안일함에 빠져 주님을 떠나 살고 있는지, 주님과 믿음의 선진들이 그렇게 원하셨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섬김과 용서의 삶을 우리는 살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합니다.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8-10).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사랑과 은혜로, 위로와 평안과 기쁨과 소망을 베풀어 주셔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답고 놀라운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믿음으로, 주님께서 명령하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섬김과 용서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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