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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보기)부활 속의 부활성을 붙잡아야 부활신앙이다/외.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37 추천 수 0 2023.06.27 11:4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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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2:27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생명과를 따먹으라고 했는데 생명과는 안 먹고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생명과의 지식 외에 선악과의 지식이 하나 더 생겼다. 아담은 모든 인류의 대표자라서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류도 타락되어서 선악과의 지식으로 살게 되었다. 이런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과 인간을 만드신 목적을 가르쳐 주려고, 하늘의 지식을 가르쳐 주려고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오셨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로 이 땅에는 생명과의 지식 외에 선악과를 먹고 나온 지식이 또 하나 생겼는데, 이 지식을 가지면 시간 속에 들고 눈에 보였다 없어지는 임시적인 것을 소원 목적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것은 언제 없어져도 없어지는 거고, 이것으로부터 된 만족과 기쁨과 행복도 언젠가는 반드시 없어진다.

 

 

세상 것은 아무리 좋고 아름다워도 다 시간에 속한 것이라서 변질 변동이 된다. 시간 속에 든 것은 크고 아름답고 인간에게 좋을지라도 천국과 비교할 때는 좋은 게 아니다. 세상 것이 아무리 좋아도 천국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하늘나라를 깨달으라고 눈요기로 조금 보여주는 거다.

 

 

아담과 하와가 생명과 대신 선악과를 따먹어서 인간에게 죽음과 병과 고통이 왔는데, 성경을 통해 이것을 알게 된 사람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안 따먹었으면 내가 고통도 겪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을 텐데하는 말을 잘한다. 그런데 이 말의 뿌리를 캐면 자기가 당하는 육신의 고통을 놓고 하는 말이기 때문에 육에 속한 말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하나님 쪽으로 눈이 밝아졌다는 게 아니라 세상 쪽으로 눈이 밝아져서 육신 위주로 살게 되었다는 거다. 이게 타락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을 소원 목적하는 성정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성경을 읽어도 항상 세상과 육신 쪽으로 받아들인다. 인간이 예수를 믿고 생명과를 먹어야, 즉 예수님의 피와 살을, 예수님의 언행심사를 먹어야 하나님의 생각이 나온다.

 

 

주님의 부활 안에는 지식적 부활, 지혜적 부활, 선적 부활, 사랑적 부활, 거룩적 부활, 진실적 부활, 의적 부활이 들어있는데, 한마디로 본질적으로 주님을 닮은 것은 다 부활하는데 믿는 사람 중에 많은 사람이 이건 모른 채 예수 부활했으니 나도 부활한다는 것만 안다. 예수님의 33년 삶의 언행심사는 죄적이고, 사망적이고, 죽을 것, 죽은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전부 부활했다. 우리도 이래야 한다.

 

 

신앙생활이란 성경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완전한 것을 발견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거다. 그래야 믿음이 성장한다. 영원하고 완전한 것은 하나님 것뿐이다. 그런데 자꾸 뭔가 새롭고 듣지 못하던 말을 해서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려는 욕심에 빠진 사람이 많다. 특히 목사님들 세계에 이런 게 많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해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돋보임을 받더라도 물질계에 속한 정신과 소원 목적은 부활할 때 부활하지 못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려면 물질계 밖으로 가야 찾을 수 있다. 이게 영교다. 하나님과 사귐이다. 이렇게 되려면 성령님의 감화를 입어야 한다.

 

 

교회의 가르침이 물질개념으로 되면 이방종교와 다를 게 없다. 예수를 믿더라도 그 중심 사상이 회개가 안 되면 이방인에 비해 예수를 믿는 것만 다를 뿐이지 선악과를 따먹은 개념으로 말을 하기 때문에 마귀의 말이 된다. 에덴동산에서도 그랬고,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그랬다. 마지막 때의 거짓 종도 이단자도 성경을 보지만 마음의 중심은 세상성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사단일로는 못 올라간다. 하늘로 직행 되는 게 없다.

 

 

이 시대에 이름 없는 내가 이렇게 말을 하다가 죽겠지만 오늘날 믿는 사람들이 왜 인간성을 탈출하지 못할까? 이건 마귀의 마음이다. 용의 부하나 마귀의 부하란 다른 게 아니라 자기의 중심이 세상성으로 되어있는 것을 말하는 거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고 했으니 믿는 우리가 주님의 성품으로 닮은 성분만 하늘나라에 올라간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하늘나라를 위해 살지 않으니 지금의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거다. 이런 모습을 보면 세상을 사는 게 뭔지? 예수를 믿는다는 게 뭔지? 씁쓸하고 답답하다.

 

 

:에 철학자들이 나오는데, 주후 300년에 아덴(아테네)에서 철학자들이 많이 나왔고 이단자들이 많이 나왔다. 이 철학자들도 성경을 봤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구약의 어느 부분만 받아들였고 어떤 사람은 신약의 어느 부분만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이방 종교인들이 공들이고,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들었고 하는 것과 혼합해서 자기만의 무언가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도 이런 일이 많은데, 예를 들면 각 사람이 나름의 조직신학을 만들어서 주장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여러 사람의 조직신학을 합쳐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또 다른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는 누가 무슨 말을 하건 성경으로 들어가서 성경이 뭐라고 말하는지를 봐야 한다.

 

 

이 목사가 말한 것과 저 목사가 말한 것을 합쳐서 또 다른 말을 하는 것은 네 말일뿐이다. 물론 어릴 때는 그럴 수도 있는 거다. 아이가 어릴 때는 어른의 말을 흉내 낼 수도 있는 건데 그렇다고 해서 어른들이 하는 욕이나 남을 흉보는 것을 따라 하면 안 되듯이 이치에도 맞지 않고 성경의 본질의 정신에 맞지도 않는 이런저런 말을 합쳐서 자기 것으로 주장하며 가르치면 그 심판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 이런 사람은 책 장사꾼일 뿐이다. 그래서 스승 목사님은 신학자들이 가장 믿음이 없다고 말씀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교회 교인들은 소설가가 되면 안 된다. 소설가는 거짓말을 잘해야 하고, 자기가 실질적으로 경험을 해야 한다면서 죄가 되는 일을 하기도 한다. 또한 춤추고 노래하는 유흥계나 연예계로 나가면 안 된다. 우리 교회 교인들은 모든 철학의 사상의 배후에서 성령이 활동을 하는 건지, 악령이 활동하는 건지 알아야 한다. 목사님의 설교도 성령의 감화로 하는 건지, 악령의 감화로 하는 건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사람 속의 심행이나 영행을 잡고 씨름하는 거다. 성령에 감화된 역사는 하나님의 성품의 온전으로 들어간다. 우리 교회 교인들은 이걸 분석해내는 영력을 가져야 한다.

 

 

못 배워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고, 일반적으로 잘 배운 사람이 있고, 또 하나는 철학적 종교적 세상에서 최고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 때 마귀가 이 중에 누구를 붙잡고 써야 수입이 많을까? 누가 마귀에게 쉽게 넘어갈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일을 시키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하게 된다. 그러면 많이 배운 사람이 남을 잘 속이겠는지,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이 남을 잘 속이겠는지? 전자다. 마귀도 마찬가지다. 에덴동산에서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교인(아담)에게 덤벼들었다. 또한 천국에 대해 제일 잘 아는 주님에게 덤벼들었다.

 

 

거짓 종이 교인들을 속이는 게 수입이 많을까, 목사 하나를 속이는 게 수입이 많을까? 후자다. 뱀이 먹잇감을 머리부터 삼키듯이 마귀는 그 수법이 목사부터 삼킨다. 그러면 교인들은 씹지도 않고 통째로 삼킬 수 있다. 그러니 교회 인도자들이 어디에 먹혔는지 잘 봐라. 주님은 세상의 선악과를 먹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다 구분하신다. 세상의 왕 중에 죽음과 유혹과 미혹과 죄를 이긴 왕이 있느냐? 없다.

 

 

사망의 성질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선악과를 먹은 악성도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런 성질 성분 성격이 은연중에 우리를 좀 먹고 들어가면서 나를 죽인다. 그러니 우리가 아무리 못 살고 가난하고 어려워도 성령의 감화를 입고 말씀을 통해 교훈의 성격을 구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은 역사 속에, 존재 속에, 사건 속에, 말 속에 하나님의 뜻을 담아서 우리에게 전해주기 때문에 성경 속의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가 버렸지만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사건이나 존재를 붙들지 말고 사건이나 환경이나 존재 속에 들어있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붙잡아야 한다. 즉 그 속에 들어있는 우리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붙잡아야 한다. 사건이나, 일이나, 존재를 붙들고 그 위주와 목적으로 나가면 인본주의가 되고, 타락성이고, 선악과를 먹은 지식으로 사는 거다.

 

 

다윗이 음행 죄를 짓고 부하를 죽인 것을 보고 다윗은 믿음이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죄를 지었느냐?’라고 하지 말고 나도 그럴 수 있지하면서 자기를 돌아보고 겸손해야 한다. 주님이 돌아가신 후에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예수님의 무덤에 들어가니 흰옷을 입은 한 청년이 나타나서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라고 했는데, 지금의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자기의 사상이 갈릴리로 가야 하는데, 즉 신앙의 정점을 찾아가야 하는데 나는 베드로가 아닌데하면서 마음이 세상에 그대로 있으면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한 거다.

 

 

열심히 예수를 믿어라하면 교인들이 의례 성경을 많이 읽고, 새벽기도에 잘 나가고, 성수 주일 잘하고, 헌금을 많이 내라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이런 활동이 시간 속에 든 거냐, 안 든 거냐? 행동 활동은 다 시간 속에 든 거다. 시간 속에 든 행동이나 활동을 기준 해서 잘 믿고, 못 믿고를 판단하는 것은 생명과의 지식이 아닌 선악과의 지식이다. 그렇다고 해서 행동이나 활동을 보고 저건 믿음이 아니다라고 단정하면 안 된다.

 

 

왼쪽에 있는 자들이 내가 말씀대로 이것저것을 다 했습니다라고 하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그건 다 안다라고 하시면서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셨다. 이것은 행동 활동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것을 통해 주님의 성품을 입어야 하는데 이 일이 안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행동 활동이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이해타산으로 그런 일을 해야 하고, 또한 그런 일을 통해 하나님의 중심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자기의 이해타산이 주님으로 들어있으면 지식적으로 지혜적으로 도덕성적으로 관계성적으로 옳은 행동과 활동이 나오게 되는 건데 이건 모른 채 행동이나 활동을 기준으로 믿음이 있네. 없네하는 것은 선악과의 지식이다. 마귀는 이런 자를 붙들고 쓴다. 가견적 가식적 현상적인 것을 기준으로 세워서 믿음을 논하면 거짓 종이다.

 

 

오늘날 교회가 왜 이렇게 문제가 많은 거냐? 물질이 없어서냐? 육적인 사랑이 없어서냐? 변하지 않는 실상과 인격과 성품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시간을 안 타고. 세상바람을 안 타고, 안 죽고, 시공간을 초월하신다. 우리의 마음도 믿음도 그래야 한다. 이게 한결같이 옳은 믿음이다. 마지막 시대의 교회는 성령의 운동과 악령의 운동을 구별하지 못한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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