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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79 추천 수 0 2023.10.01 09:5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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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20:9-18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209-18: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심히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도 상하게 하고 내어 쫓은지라 포도원 주인이 가로되 어찌할꼬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혹 그는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포도원 밖에 내어 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가로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그러면 기록된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뇨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로 가루를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궁색하고도 비겁한 속 보이는 변명을 들으시고 천국말씀을 주어야 할 아무 가치가 없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인지라 백성들에게 비유로 말씀을 주셨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올 마음으로 떠났다는 비유의 말씀이다.

 

 

공부를 하다가 선생님이 바쁜 일로 잠깐 밖에 나가면 교실 안이 난장판이 된다. 그런 것처럼 농부들의 입장에서는 주인이 없으니까 참 좋은 기회이다. 그러나 맡겨진 포도원을 내 것처럼 여기고 부지런히 연구도 하여 정성들여 잘 경작만 하면 날씨에 큰 이변이 없는 한 소출을 많이 얻을 수 있는 기회이다.

 

 

종들의 마음이 아닌 주인의 마음에 적절한 시기에 포도원 소출 얼마를 거둘 생각을 가지고 종을 보냈다. ‘이만하면 소출이 있겠구나하고 종을 보냈다. 큰 기대심을 가지고 보냈는데 포도원을 맡은 농부들이 보낸 종을 때려서 빈손으로 주인에게 돌려보냈다. 이건 주인에게 대한 도전이다. 다시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도 심히 때리고 모욕을 주고 또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세 번째 종도 그렇게 했다. 여기서 어떻게 보면 주인의 인자한 마음이 너무 지나쳐서 바보스럽게 보일 정도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내 아들에게는 그렇게 대하지 않겠지하고 아들까지 보냈는데 주인의 기대와는 달리 농부들이 하는 말이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하고 포도원 밖으로 좇아내어 죽이고 말았다.

 

 

이 말씀을 우리가 들을 때 우리 마음속에서 어떤 생각이 올라오느냐? 아무 생각도 없느냐? 이 말씀을 보면 우리 속에서 어떤 생각이 치밀어 올라온다.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내 옆에 있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 ‘종을 죽이소서할런지, ‘용서해 주십시오할런지?

 

 

16절에 보면 포도원 주인의 마음이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다른 사람에게 포도원을 맡겨야겠다고 하니까 듣는 사람들이 그렇게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다. 이 말의 의미가 종들을 선대했으면 좋겠다는 말인지, 아니면 빼앗아서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인지?

 

 

사람들의 심리를 보면 자기 잘못에 대한 형벌은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고, 또 자기 잘못에 대한 회개를 안 하려고 하는 마음도 들어있다. 다른 사람이 범죄 할 때 자기를 쳐다보며 자기 마음도 그렇게 안 되도록 경계가 돼야 하겠는데 다른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을 볼 때는 내 속에서 저 놈 죽일 놈이다하면서도 자기가 잘못했을 때는 회개할 마음도 없는 이게 사람의 심리인가 보다.

 

 

본문의 비유의 말씀의 그 역사가 이미 있었고, 또 앞으로 일어날 역사를 비유적으로 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이 비유 말씀의 역사가 이미 있었다는 것은 구약에 보면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으로 인도해서 살게 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범죄 할 적마다 선지자들을 보냈지만 핍박을 주고 박해를 하고 죽였다. 나무에 매달아 죽이고, 짐승의 먹이로 주었고, 또 돌로 쳐서 죽이고, 기름 가마솥에 넣어서 산 사람을 튀겼고, 웅덩이에 집어넣어 죽이기도 하고, 산 사람을 톱으로 켜서 죽이기도 하고. 선악과 따먹은 사람 속의 타락된 잔학성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신악에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까지 보냈는데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핍박을 주고 성 밖에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결국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로마를 들어서 쓴 하나님의 심판에서 역사적으로 사라졌다.

 

 

하나님의 보내신 선지자를 죽이면 자기의 미래도 죽는 거다. 하나님의 신실한 종을 죽이면 자기도 죽는 것이다. 진리핍박은 결국은 자기 구원이 자멸이 된다. 이룰구원에서 참 사람이 성장되고 장성하고 영능의 실력자로 돼야 하겠는데 그것이 중단되거나 차단이 된다. 육신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백 년 안팎이다. 그러나 참 자기의 구원은 자멸이다. 다시 말하면 그 인간은 자기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이건 타의 구원에 이용물이다.

 

 

인간이 오래 살고, 밥 먹고 똥 싸고, 그리고 그 육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손 퍼뜨리고 하는 게 귀하냐? 아니다. ‘그 속에 무엇이 들어가서 성장하느냐가 인간의 가치다. 그런데 그게 없다. 그러니 일반사람들의 사는 정신과 같은 거다. 인간의 인격의 가치는 하나님의 속성에 들어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속성적인 사람을 두고 지구의 역사를 진행시키고 돌리는 건데 인간이 그 정신 사상이 빠지면 아무리 교인이라도 너는 이용물이다.

 

 

진리이치를 깊이 새겨들을 줄을 모르고 경시하는 사람은 많은 사람으로부터 천대를 받게 된다는 것도 알라. 교회생활을 등한시 한다면 교인들이 그를 높여주겠느냐? 그러면 그런 교인이 세상에 나가서 자기 성격 성질대로 산다면 세상 사람들이 그 자기를 높여주겠느냐?

 

 

포도원은 주로 교회의 비유로 많이 쓰인다. 포도원을 주인이 만들어 주었다. 교회를 주님이 만들었듯이. 그런데 유형교회를 돈 많은 사람이 세상적인 비진리적인 신앙정신을 가지고 건물을 짓거나 빌려서 지붕에 십자가를 붙이고 대문에 간판을 걸고 하면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니까 교회라고 하는 그런 교회가 있고, :에 보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우리 주님이 보내신 성령의 받고 훈련을 받고, 그 감화 감동을 입혀서 보낸 주님의 종이 복음을 전하니 사람들이 모이게 되어 건물을 마련해서 된 교회가 있다. 여기엔 진리가 들어있다.

 

 

비진리적인 정신으로 사람들이 모여 예배당을 지어서 십자가를 붙이고 간판을 붙인 교회가 있고, 진리의 종이 진리를 전해서 사람들이 모여서 진리의 교훈으로 자라는 교회가 있다고 한다면 어느 것이 참 교회냐? 앞의 것은 십자가를 붙여도 불탈 곳이다. 교회가 아니다.

 

 

:에 보면 짐승이 머리도 많고 숫자도 많기 때문에 조직으로 연결이 돼 있다. 이것의 뜻을 모른다면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교 안에는 성경 학박사들이 많이 있었다. 율법사나 서기관들은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들이요 원문박사들이다. 그런 차에 대제사장도 있고, 성경구절대로 양 잡아 제사도 드리고 했다. 그러나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셨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몇 사람밖에 못 봤다. 그러나 하늘로 올라간 것을 본 사람은 많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바리새교인들처럼 모든 면에서 생활면에서나 집이나 옷을 입는 것이나 볼품이 없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자들도 학박사도 아니고 고기 잡을 때 입는 비린내 나는 옷을 입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성경을 가지고 교회의 본질을 볼 줄 안다면 어느 것이 참 교회라고 단정을 내릴 수 있는 거다. 오늘날도 의식이 거창한 유형교회가 있고, 의식이 전혀 없거나 있어도 몇 개 안 되지만 진리본질의 말씀을 따라가는 교회가 있다. 교회에서 예배식순의 순서가 있던 없던 그게 문제가 아니라 말씀이 본질이라야 옳은 것이다. 예수님이 그러셨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피로 사서 교회를 만들어 주셨다. 따라서 교회라 할 때는 그 바탕이 예수님의 생명을 먹고 예수님의 사람으로 되어지는 게 들어가 있다. 그러니까 교회는 세상 속화된 교인들이 세상정신으로 말하는 내 교회가 아니고 주님의 본질을 생각하면서 그 주님의 교회. 우리의 신앙도 하나님은 그런 의미로써의 내 하나님이 되는 거다.

 

 

교회는 교회의 인도자가 만드는 게 아니다. 사람이 볼 때는 그렇게 보이지만 진리진실한 당신의 종을 붙잡고 대우해서 주권자가 되게 해서 보내기도 하는 거다. 사람이 볼 때는 아무 교회에 목사가 오네. 전도사가 오네. 여기서 개척교회를 하는가 보다하는 거지만 진정한 의미에서는 주님이 진리진실의 종을 붙잡고 교회를 세우는 거다.

 

 

그러니까 교회를 세운다할 때 집(건물)부터 생각을 말고 교회는 사람을 의미하는 거다. 사람이 있으니까 모인 사람들이 비를 안 맞게 하려니 건물을 짓고 지붕을 만들고 해서 이게 예배당이 되는 것이다. 교회의 원리를 알아야 교인들이 교회의 정신이 드는 거다. 아무나 가서 사람 끌어 모으고 하면 , 실력 좋다하는 건 껍데기만 보는 눈이다. 교회는 그런 눈으로 보는 게 아니다. 사람을 볼 때도 그런 눈으로 사람의 껍데기만 본다면 처녀총각이 결혼을 했을 때 그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구원이 흐르는 가정이 되겠느냐, 실패가 되겠느냐?

 

 

만일 교회를 자기가 세웠다고 해서 교회를 자기 마음대로 한다면 이는 주님의 교회가 아니고 예수이름을 도용해서 밥 먹고 사는 목사다. 도둑이다. 삯꾼목자다.

 

 

자기 집 근처에 신실한 종이 있고, 그 교회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가 나온다면 그리로 나가야 할 텐데 그러지를 않고 자기 육신적인 사고방식의 이해타산적으로 누구 얼굴을 봐서, 누가 하기 때문에하며 진리의 교회인지 비진리의 교인인지 구별도 안 하고 그리로 나간다면 그는 이미 틀렸다. 교회를 보는 눈이 틀렸다. 물론 처음부터 어떻게 알겠느냐? 그러나 교회란다면 그걸 가르쳐 줘야 한다. 그래야 옳은 종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회가 분명히 있는데도 어떤 이유로서 건 비진리의 교회에 계속 머물고 있다면 그건 불씨가 돼서 언젠가 터지게 돼 있다. 그리고 신앙이 안 된다. 특히 목회자로 본다면 그런 목사는 인정정실 때문에 망한다. 인정정실에는 딴 이질적인 것도 다 달라붙는다. 물질선 생명선 초월을 못한다. 그래서 인도자의 사고방식부터가 바뀌고 뜯어고쳐져야 한다. 자기가 주님의 교회라고 인정이 되고 인정을 한다면 교인들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기준에 합격되게 양육을 해야 한다.

 

 

17: 건축자들이 기둥 밑에 바쳐질 기초돌을 내버린다면 어떻게 집을 짓느냐? 큰 건물을 보면 머릿돌이 있다. 초가집도 집을 지을 때 기둥 밑에 돌을 바친다. 그냥 흙 위에 집을 짓게 되면 헛고생이요 사람이 죽는다. 땅을 파서 그냥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지으면 그 집이 온전해 지겠느냐? 반듯한 돌, 머릿돌, 정초 혹은 초석을 놓고 그 위에 집을 짓게 된다. 거기에 시공 년 월 일시와 시공자 등을 새겨 넣는다. 모든 건축물에는 머릿돌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머릿돌이 있느냐? 신앙이 올라갈 수 있는 기초가 있느냐? 우리의 이룰구원이 그 기초의 주님의 성질처럼 성질적으로 똑같이 올라가는 게 참 교회요, 그 사상이 나오는 게 참 설교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서도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룰 수 있느냐? 없는 거다. 예수이름으로 세상 종교적 건설을 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거냐? 안 된다. 자기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구원의 이치로 인격적 속성적으로 성장이 되어야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바로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 너를 만든 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대로 바로 된 것이다.

 

 

이방세상은 이거와는 상관이 없다. 또 성경을 가지고 예수를 믿는다고 할지라도 세상적으로 흐르는 교회도 상관이 없다. :28에도 있지만 그런 자들에게 애굽에 내린 그 재앙을 너희들에게 내린다고 했다. 이건 너희들을 이방인들과 똑같이 대우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방인들이 믿는 자들을 보고 얼마나 손가락질이 되겠느냐?

 

 

이처럼 믿는 자들이 이방 불신자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할 때 누구의 얼굴이 화끈할까? 주님의 얼굴을 생각해 봤느냐? 그러면 그런 자를 주님이 가만 두겠느냐? 그런 자들에게 성경에 기록되지 않는 재앙까지 준다고 했다. 이건 괘씸죄까지 들어간 거다.

 

 

주님의 얼굴을 빛 되게 하면 자기 얼굴이 빛 되게 되는 것이니 자기가 높임을 받으려면 진리의 정신 사상을 굽히면 안 된다. 이러면 여기에는 말이 정확하고, 언행심사가 바르고, 많은 사람에게 화살을 꽂는 것 같아서 듣는 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일가친척 형제라도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 앞에 바로 세우는 게 옳은 거다.

 

 

교회는 하나님의 의사단일로 된 적중성의 신앙이라야 성령의 열매가 가득한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 우리교회의 교훈은 하나님의 의사단일성에 적중성이다. 화살이 과녁의 표적에 적중적으로 꽂히는 것과 같은 신앙을 원하는 거다. 그런 정신 가져야 한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의사단일로 적중된 신앙상태에서 환경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게 방편적으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되는 거다.

 

 

예수 믿으면 세상에서 부자가 되고 세상만사가 자기의 뜻대로 형통 된다고 가르친다면 이는 악한 농부들이 주인의 포도원을 불법으로 차지하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된다. 성경을 가지고 세상을 자랑하고, 불타고 썩어질 것을 참 축복인양 가르치는 자들은 집이 지어져 올라갈 수 있는 기초돌을 버린 것과 같다. 이는 천국복음을 버린 거다. 자기의 구원을 버린 것이다. 교회 안에 열심히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런 정신을 가진 자들이 있음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본문의 비유에서 보는 바리새교인들처럼 정신 사상이 세상 육적으로 흐르는 교회라고 한다면 그 교회에 주춧돌이 있느냐? 예수 그리스도라는 정신 사상의 주춧돌이 없다. 그래서 성전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법궤가 있어야 하는 거다. 교회란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즉, 진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온 교인들이 하나님의 의사단일성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하는 그 사상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진리가 없는 곳은 주춧돌이 없다. 아무리 예수이름을 부르고 아무리 별스런 성령을 받았다고 해도 그건 없다.

 

 

교회에서 하나의 종교사업을 하는 걸 볼 줄 알아야 한다. 진리진실의 종들이라고 하면서 천국복음을 무시한다면 이는 세상복음을 외치는 것이니, 교회에서 세상위주로 세상 물질축복하는 건 세상복음이다. 천국복음이 아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말씀하시더라, 천국복음을 전하시더라했는데 이 천국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자들은 진리진실의 주님을 핍박하는 것과 같다. 이치는 같이 들어간다.

 

 

사도바울이 사도가 되기 전에 사울로서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려고 다니니까 하늘에서 소리가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했는데 이는 주님을 핍박하는 자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라는 것이다. 그렇게 들어가는 거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핍박하게 되면 진리의 교인들을 핍박하게 돼 있다. 원리가 그렇게 된다. 그 때 당시에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동원된 자들 중에는 당시의 마리아, 또는 요셉의 일가친척들이나 형제들은 없었을까? 있었을 것이다.

 

 

인간수단으로 세워진 교회의 결국이 어찌 되겠느냐? 건축자가 건물을 지을 때 반드시 있어야 할 기초돌을 내버린 것처럼 교회를 한다고 하면서 인간 인본주의로 교회를 지어놓고 사람을 모으고 교인들을 세상정신으로 가르친다면 그 결국이 어찌 되겠느냐? :에서 보면 결국에 큰 성 바벨론은 쪼개지고 무너지고 불에 탄다.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가루가 된다.’ 이건 심판이다. ‘네가 너의 구원의 기초, 교회의 기초를 버렸지?’ 버린 그것이 이제는 자기를 심판이다. 예수님을 버렸으면 예수님이 너를 심판할 때 어찌 되겠느냐? 깨어지고 가루가 되면 인간의 형체는 없어진다. 말하자면 이는 심판성이 들어있는 말씀인데, 돌 위에 사람이 떨어진다는 것은 사람이 이미 돌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는 말인데 이는 인간의 교만성을 의미하는 건데, 주님이 심판을 할 때 그 교만이 안 깨어질 사람이 있겠느냐?

 

 

왜 돌 위에 사람이 떨어졌느냐? 일반적으로 보면 이건 자살인데, 여기서는 그 말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찍혔다는 것이다. ‘집을 짓는 자가 기초돌이 필요가 없다고 던지듯이 네가 참 사람으로 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 없다고 던졌으니 이제는 네가 하나님의 심판에 돌처럼 내어던져질 것이다그 말이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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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9 누가복음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눅17:31-37  김경형목사  2023-05-21 58
1388 누가복음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눅17:22-33  김경형목사  2023-05-14 66
1387 누가복음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17:20-24  김경형목사  2023-05-07 103
1386 누가복음 마지막에 관한 이야기 눅21:10-19  정용섭 목사  2023-05-02 90
1385 누가복음 기도의 신비와 능력 눅18:1-8  정용섭 목사  2023-05-02 134
1384 누가복음 하나님께 영광=예수께 영광! 눅17:11-19  정용섭 목사  2023-05-02 57
1383 누가복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눅17:16-19  김경형목사  2023-04-30 90
1382 누가복음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눅17:6-19  김경형목사  2023-04-23 68
1381 누가복음 신앙의 부부 눅1:5-13  강승호목사  2023-04-19 127
1380 누가복음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눅17:1-10  김경형목사  2023-04-16 87
1379 누가복음 만일 네 형 제가 죄를 범하거든. 눅17:3-5  김경형목사  2023-04-09 51
1378 누가복음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 눅16:19-31  정용섭 목사  2023-04-03 132
1377 누가복음 왜 예수 제자인가? 눅14:25-35  정용섭 목사  2023-04-03 69
1376 누가복음 복된 삶의 역설 눅14:1, 7-14  정용섭 목사  2023-04-03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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