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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토대

누가복음 정용섭 목사............... 조회 수 208 추천 수 0 2025.08.30 19: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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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1:1-13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1105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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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보기 : https://youtu.be/E87r2K4IueY 

성경본문 : 누가복음 11:1-13 

기도의 토대

눅11:1-13, 성령강림 후 7주, 2025년 7월 27일

 

주기도의 위험성

 

눅 11:1 이하를 따르면 제자들은 세례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었듯이 자기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예수께 요청합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의 내용이 2-4절에 나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주기도 내용은 누가복음이 아니라 마태복음에 따른 겁니다.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의 주기도는 약간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비슷합니다. 우리 교회도 매 주일 공동예배 시간에 주기도를 드립니다. 요즘은 곡조가 붙은 주기도 찬송가를 부릅니다. 저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사도신경을 암송하고, 이 주기도 찬송가를 부릅니다. 오늘 하루도 이 주기도의 내용에 충실하게 살았는지 반성하면서 잠을 청하는 겁니다. 여러분도 기도 생활을 루틴으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하루에 한 번 주기도만이라도 드려보십시오. 세월이 지나면서 주기도가 여러분의 영혼에 깊이 각인될 것입니다.

 

주기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의 전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기도가 주기도를 기본으로 합니다. 그런데 진정성 있게 주기도문으로 기도드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 내용이 우리 일상과 너무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실감이 가지 않는 거지요. 왜 그런지 주기도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봅시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주기도는 세 단락입니다. 한 구절에 한 단락씩 나옵니다.

 

1) 2절에는 아버지의 이름과 나라가 나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왜곡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높이는 데에 관심이 많아서 주기도를 바치기가 힘듭니다. 약간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자기 이름에 매달립니다. 아버지의 ‘나라’(바실레이아)가 임하기를 원한다는 말은 이미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할 때 선포한 첫 메시지에도 나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통치)는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평화이며,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보다는 자기의 업적과 능력이 인정받기를 갈망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기를 바란다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비유적으로, 편리하고 재미있는 삶에만 마음을 쏟는 사람이 어떻게 지구의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살겠습니까.

 

2) 3절에는 일용할 양식을 허락해달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내용은 현대인들에게 그 무엇보다도 더 힘듭니다. 아무도 일용할 양식만을 기도하는 방식으로 살지 않습니다. 최소한 일 년 치 양식을 구할 겁니다. 일 년 치로도 만족하지 못하겠지요. 세상살이에서 당일 벌어서 당일 먹고 사는 방식만을, 그래서 나중 일은 나 몰라라 하는 방식만을 무조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노후를 위해서 어느 정도의 재산은 필요합니다. 늙어서도 헤프게 쓰면서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렇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용할 양식이 가리키는 영적인 경험과 그 세계입니다. 구약 성경은 고대 이스라엘이 매일 만나를 먹고 살던 광야 40년 생활에서 그것을 경험했다고 말합니다. 현대인 그 누가 만나만 먹으면서 떠돌이 생활을 했던 광야로 돌아가기를 원하겠습니까.

 

3) 4절에는 죄 용서가 나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 ” 시험에 들게 하지 말게 해달라는 기도 역시 죄 용서와 관계된 것입니다. 사람 사이에는 서로 잘못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개인 사이에도 그렇고 국가 사이에도 그렇습니다. 일일이 시시비비를 따지기 시작하면 평화는 요원합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죄 지은 모든’이라는 단어에 각주가 달렸습니다. ‘빚진 모든’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빚 탕감을 의미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사회에서는 빚을 갚지 못하면 종으로 팔리는 일이 자주 벌어졌습니다. 죄 용서라는 기도 역시 우리에게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용서받으려고만 하지 용서하는 데서는 인색합니다. 최근 아무개 국회의원이 보좌관에게 행한 ‘갑질’로 인해서 장관 후보직에서 탈락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사퇴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했으나 실제 보좌관들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갑질은 자기만이 아니라 다른 국회의원들도 하는 것이니까 억울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자기는 용서받고 싶어 하고, 남은 용서하지 않는 경향이 사람에게는 아주 강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라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신뢰 문제

 

주기도가 가리키는 세계의 깊이로 들어가기가 힘들며 주기도 내용대로 살아가기가 힘든 이유는 주기도의 내용이 우리의 일상에서 경험하는 세상살이의 메커니즘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는 겉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이유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크게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한마디로 믿음이 없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오죽했으면 예수께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믿음은 없거나 크게 부족한데, 기도는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크고 작은 문제들이 기도 생활에서 벌어지는 겁니다.

 

이 문제를 병행구인 마 6:5절 이하에서 예수께서는 아주 날카롭게 짚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정도로 ‘래디칼’한 분이었습니다. 대충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본문에서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큰길에서 사람들이 보란 듯이 기도하는 사람들처럼 기도하지 말라고 이르셨습니다. 아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그런 방식으로 기도했나 봅니다. 광장이 아니라 골방에 들어가서 은밀하게 기도하라고 이르셨습니다. 이어서 7-8절에서는 오늘 우리가 들어도 마음에 찔릴만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들어보십시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예수께서는 여기서 당시 종교 전문가들의 기도 행태에 나타나는 두 가지 오류를 경고하신 겁니다. 하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건성을 보이고 싶어 하는 기도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기도입니다. 전자는 주로 바리새인들에게, 후자는 주로 이방인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오늘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종종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기도의 영성은 자기의 힘을 빼는 것인데, 오히려 거꾸로 힘이 들어갑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알고 얼마나 진실하게 따르는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거나 가르치고 싶어지는 겁니다. 소위 ‘대표 기도’를 맡은 이들의 기도가 기도라기보다는 설교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두 오류 모두 근본 원인은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기도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의 절대 신뢰를 전제합니다. 절대 신뢰가 없으면 남에게 신경 쓰고, 자기 확신에 매달립니다. 잘난 체하는 겁니다. 일종의 교만입니다. 저의 삶에서도 종종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말이 절대 신뢰이지 인간으로 살면서 어떻게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나, 하는 질문이 가능합니다.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신뢰가 아니라 오히려 의심과 불신을 삶의 토양으로 삼고 있으니까요. “믿을 놈 하나 없다.”라는 말이 우스갯소리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의도적으로 속이는 사람도 있고, 어쩔 수 없이 속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라와 나라도 서로 믿지 못합니다. 이익이 되면 동지가 되고, 손해가 되면 원수가 됩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기도 합니다. 이런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신뢰 자체를 외면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유전자 결정론이 현대인의 의식을 지배하면서 더 심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유전자 결정론에서는 인격과 품성과 의지 등등, 유기체의 특성들은 무의미합니다. 개인과 사회의 모든 결정은 유전자에 의해서 일어나는 거니까요. 도덕과 윤리도 무의미합니다. 인간을 숙주로 삼는 유전자가 인간이라는 몸을 이용하는 과정일 뿐이니까요.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가 이런 신다윈주의를 대표합니다. 그는 심지어「만들어진 신」이라는 선정적 제목의 책까지 냈습니다. 유전자 결정론과 뇌 결정론이 과학계와 철학계에서 이미 그 정당성을 잃었는데도 여전히 현대인의 사고방식과 무의식을 여전히 지배합니다. 이런 유전자 숙명론에 근거한 불신과 의심과 경쟁 만능과 적자생존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의 이런 삶의 태도를 세상 사람들은 광신이라거나 미신이라고 깎아내리지 않을까요? 세상살이에서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하나님과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사는 게 좋을까요? 여러분 각자가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기도를 가르친 뒤에 다음의 내용을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비유입니다. 밤중에 이웃 친구가 찾아와서 먹을거리가 빌려달라고 했다. 그 친구는 멀리서 온 손님에게 대접할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정을 전해 들으면 친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9절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내용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무슨 말씀인가요?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마치 택배 배달 오듯이 우리에게 배달해 주신다는 건가요? 아닙니다. 이 말씀도 하나님을 근본에서 신뢰하라는 뜻입니다. 그냥 신뢰하는 게 아니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겁니다. 그런 차원으로 들어간 사람에게는 자기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자기가 구한 것이고, 찾은 것이고, 문을 두드린 것입니다. 거꾸로 그는 하나님께서 주실 것만 구하고, 찾아질 것만을 찾고, 열릴 문만 두드립니다. 하나님께 자기의 운명을 완전히 맡기니까 이런 일이 가능한 겁니다.

 

예수의 하나님 신뢰

 

여러분이 다 알다시피 예수께서 바로 그렇게 절대 신뢰 가운데서 살았습니다. 그의 첫 메시지는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입니다. 하나님 통치가 ‘여기에 지금’(here and now)에 왔다는 사실을 믿으니까 그 하나님께 자신의 운명을 완전히 맡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부터 시작해서 골고다 언덕에서의 죽음입니다. 십자가 운명을 앞에 두고 예수께서 제자 몇 명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십자가의 운명을 피하고 싶으나 자기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바란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십자가에 처형당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의 이런 선택을 어리석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일단 억울한 죽음은 피하고 살아남아서 나중에 하나님의 일을 도모하는 게 옳은 선택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제자들이 바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만약 제자들의 생각대로 예수를 제거하려는 음모가 불거질 때 예수께서 일단 예루살렘을 떠나서 북쪽 오지인 갈릴리로 몸을 숨겼다가, 불교 창시자인 싯다르타나 이슬람교 창시자인 모하멧처럼 늙어서까지 살면서, 제자 조직과 세력을 단단하게 만들었다면 그리스도교가 훨씬 빨리 세계 종교로 성장했을까요? 그걸 누가 다 알겠습니까? 역사가 진행한 뒤에는 그런 질문은 의미가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가까이 온 하나님 나라에, 즉 하나님의 통치에 자신의 운명을 완전히 맡겼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는 특별한 인물이라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자신의 운명을 하나님 손에 맡길 수 있었으나 우리는 그렇게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단 하루로 조용할 날이 없다는 듯이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버텨내려면 챙겨야 할 게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삶 자체가 불안하고, 그 불안을 잠시라도 잊게 하는 무언가를 찾으려고 우리는 바쁘게 삽니다. 지금은 그런 준비를 어렸을 때부터 경쟁적으로 합니다. 이런 세상에 열중하는 현대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절대 신뢰가 더 중요하고 더 본질적이라는 말은 귀에 들리지 않을 겁니다. 이런 세상의 메커니즘에 완전히 속박당하거나 매료된 젊은이들에게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세상살이에 관한 모든 일을 끊어내고 하나님만 생각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야 하고, 책임 있는 존재로 살아야 합니다. 최소한 일용할 양식을 스스로 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면서도 우리의 영혼 중심에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 신뢰를 통해서만 구원받는다는 사실이, 즉 생명을 얻는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합니다.

 

1) 저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 신뢰가 없이는 모든 인간이 이르게 될 죽음이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돌파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죽는 순간에 혼자 죽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사실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변화한다고 말입니다. 그 사실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증거가 있나, 하고 세상 사람들이 묻겠지요. 우리에게는 약속이 있습니다. 증거보다 약속이 더 중요합니다. 물리학과 생물학 전문가들도 완벽한 증거가 있어서 새로운 과학 원리를 발견하는 게 아닙니다. 먼저 그 세계를 추정하고 믿습니다. 그런 믿음으로 실험하고 조사하고 연구하면서 물리학과 생물학이 발전하는 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이 들이대는 ‘증거’라는 말을 무시해도 안 되나 거기에만 예속돼서도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성경의 약속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약속의 보증입니다.

 

2) 절대 신뢰를 통해서 죽음의 순간을 돌파할 뿐만 아니라 죽음과 비슷하게 작동하는 지금의 죄까지 돌파할 수 있습니다. 죄는 우리를 세상에 대한 부러움과 두려움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우리 생명의 주인이라고 믿기에 주기도가 이끌어가는 삶에 만족할 수 있습니다. 득음의 세계에 들어간 소리꾼처럼, 언어의 발걸음을 들은 시인처럼 주기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은 온갖 일로 잘난 체하는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산티아고 순례에 나선 사람처럼 사는 겁니다. 그렇게 살고 싶으나 현실이 안 따라줘서 어렵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에게 맞춤한 방법을 저는 모릅니다. 이렇게만 권면할 뿐입니다. ‘키리에 엘레이손!’이라는 찬송을 열린 마음으로 불러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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