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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11:50-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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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경형목사 |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1장 50절-53절: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이 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50절-52절: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대제사장 가야바가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라고 한 것은 예수님을 존경하는 뜻으로 예수님의 구속으로 죄에서 해방이 된다는 뜻으로 말을 한 게 아니라 로마를 의식하며 육적인 유대민족을 염두에 두고 말을 한 거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을 전 세계적인 당신의 백성을 염두에 두고 가야바로 하여금 이 말을 하게 한 것이고, 기록영감을 받은 자로 통해서 이 말을 성경에 기록해서 우리로 보게 하는 거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당시의 유대인들만이 아닌 아닌 이방인들도 포함이 된다. 그래서 이것을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믿는 자가 이방나라에 살고 있어도 그 중심은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한다. 따라서 한국에서 예수를 믿는 우리도 영적 이스라엘이요, 아브라함의 신앙사상을 이어받고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이 있는 백성이다. 따라서 믿는 사람은 설교도 그렇고, 신앙의 성질도 그렇고, 세상을 살아가는 이해타산도 그렇고 전부는 아브라함의 신앙정신이 들어있어야 한다. 이해타산과 성격과 성질은 순 세상성이면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이어받았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거짓말쟁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 같은 말을 하는데도 도무지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왜 안 통하는 거냐? 서로의 신앙이 영적인 신앙과 육적인 신앙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통역관이 상대방의 의사성을 모르고 내 마음대로 통역을 하면 큰일 난다. 성경을 해석하는 것도 모든 성경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려는 목적으로 기록이 된 것이니 어느 구절이라도 이게 나와야 옳은 해석이다. 그래서 교회의 설교를 한 사람이 들으나, 백 사람이 들으나, 만 사람이 들으나 창세 이후 마지막까지 변질이 없고 변함이 없는 구원도리 구원이치의 말이라야 하나님의 말씀인 거지 나라나 시대나 환경에 따라 해석하는 기준이 달라진다면 이것은 인본주의 설교고, 이런 설교는 구원이 안 된다.
이룰구원의 사상으로 보면 세상의 어떤 정치인이 기발한 정책을 내놓아도 그 질은 육이다. 육에 속한 거다. 정치인들이 세상 육적인 것을 위해 성경구절을 붙여서 말을 하는 일이 흔히 있는데 이건 안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사건 환경을 어떻게 움직이시던 우리는 자타의 구원을 위해 이걸 이용 사용 활용을 해야지 물질에 이해타산을 두고 움직이면 안 된다.
세상은 항상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곳이니 우리는 어떤 상황이 오던 거기에 휘말리지 말고 구원만 잘 이뤄가면 된다. 그러니까 세상의 사건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항상 사람이 문제다. 사건 환경에 휘둘리면 사람이 망한다. 사람이 망하면 그 사람의 집이나 가정이나 회사나 사회가 다 망하는 거다. 세상에 사건 환경이 늘 교체가 되는 것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온전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함인데 이 목적은 창세 이후로 마지막 그 날까지 절대로 움직이거나 변경되지 않는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영인성장에 소원을 두고 살아가는 자에게는 구원이 되고, 육적인 면에 소원을 두고 살아가는 자에게는 형벌과 심판이 오게 되어있다. 자기가 이것을 부정해도 소용이 없다. 인간 자기가 시간을 붙들어 놓을 수 있다면 모르겠으나 어느 인간이라도 시간을 붙들 수 없으니 시간 속에서 구원을 이룬 자와 못 이룬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과 심판을 피할 자는 아무도 없다.
모든 인간이 시간 속에 사는 것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손안에 들어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늘 물질을 접하며 물질을 통해 자기의 자연목숨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물질의 이해타산은 피부적으로 잘 느끼지만 영적인 면은 눈에 보이지 않고 당장 피부적으로 느껴지는 게 아니라서 이 면에 대한 이해타산을 실감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이 뜨인 사람은 영적인 면을 육적인 면보다 더 실감적으로 느낀다.
가야바의 육적인 생각과 육의 이해타산 안에는 하나님의 큰 구원설계가 들어있지를 않다. 다만 허용적으로 들어있다. 간장종지 속에 큰 대접이 안 들어가듯이 인간이 잔머리를 굴리는 속에는 하나님이 안 들어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유를 강압적으로 꺾고 당신의 마음대로 우리를 운전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가야바의 육적인 생각을 활용해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는 구원의 도리를 말을 하게 한 거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가야바가 좋아서 쓰시는 거냐, 우리에게 뭘 깨닫게 해 주려는 거냐? 후자다.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설계로 된 거냐, 인간의 설계 안에 하나님의 인간을 위한 구원설계가 들어있는 거냐? 하나님의 설계로 된 거다. 이걸 하나의 지식이 아닌 인격적으로 따질 줄 아는 게 믿음의 사람이다. 육의 사람들은 영의 사람을 볼 때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인다.
‘영원’이라고 할 때 인간의 생각으로 100년, 또 100년, 또 100년 해서 수 천 년이 흘러가면 이것이 영적인 영원이 되는 거냐, 이건 아무리 가도 육적인 것으로 계속 나가는 거냐? 후자다. 학계에서 지구가 수억 억 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멀리 있는 별이 ‘반짝’ 하고 비췬 빛이 수억 억 년을 날아와서 지구에 있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이 별이 그렇게 먼 거리에 있기 때문에 영원부터 있는 거냐? 물질세계도 사람의 생각이 미치지 못할 정도로 광대한 건데 영원한 영적인 세계는 가늠이 안 되는 거다.
에덴동산이 만들어진 후에 아담이 만들어졌는데 이 아담이 지구가 언제 생겼다는 것을 알았을까? 천 년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무한한 기간으로 생각을 하는데 그러나 천 년을 말하는 것은 육의 생각이다. 이 육의 생각 안에 하나님의 영원히 가는 천국성은 들어가지 않는다. 임시성적인 신앙사상 안에 하나님의 영원이라고 하는 성질은 들어가지지를 않는다.
53절: ‘이 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이 날부터’란 대제사장 가야바가 백성을 위해 예수가 죽어야 한다고 말을 한 후부터를 말한다. 어느 누가 하나님의 큰 궁극적인 구원에서 빗나간 말이 나온 발단이 된 건지? 내가 한 말이 인간구원에 적중한 발단이 된다면 좋은데 그러지 않고 비단일적인 발단이 되었다면 문제가 심각한 거다. 우리 교회 교인 중에 누가 한 말이 구원에 유익이 되는 발단이 되어야지 옷을 이상하게 입은 게 발단이 되어서 이것이 유행이 되어서 전 지구상에 퍼진다면 그런 재앙이 없다.
우리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말의 뿌리가 무엇이며 어디에 해당이 되는 건지 생각을 해야 한다. 세상에는 어떤 소리라도 빈 말이 없다. 흉보는 소리나 저주하는 소리가 누구로부터 발단이 되었나? 흉보는 말이나 저주하는 말이 나로부터 발단이 되어서 전 세계로 퍼지게 하면 안 된다. 비구원적인 행동이 누구로부터 발단이 되어서 온 교회에 물이 들어버렸을까? 불행적인 게 자기로부터 발단이 되면 안 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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