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요12:35-36 |
|---|---|
| 설교자 : | 김경형목사 |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2장 35절-3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35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이게 무슨 말이냐? 당시로 보면 예수님께서 33년 동안 이 땅에 잠시 계신 것을 말한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유대인 중에 제자들 가운데 있었다. 지금은 많은 교회 중에 진리본질로 하나님의 의사단일로 가는 교훈 중에 있다. 그래서 교회라고 할 때 라인이 있는 거다.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빛은 예수님 당신이고, 어두움이란 세상을 말한다. 세상에 해를 둔 것은 해를 보면서 우리로 빛에 대한 가치를 알라는 거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빛의 자녀인데, 빛이 가는 곳에는 모든 게 구별 분별이 된다. 모양, 형태, 색상, 멀고 가까운 거, 활동의 구별, 그리고 영적으로 보면 정신 활동의 구별 분별, 그리고 활동의 배후에 어떤 영감의 감화를 받아서 하는 건지 이런 게 다 구별 분별이 된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은 물질의 구별밖에 못한다.
물질성 위로 사는 사람은 사람의 정신세계가 죽은 정신인지 산 정신인지 구별을 못한다. 예수 믿는 사람도 살아있는 생각이 있고, 죽은 생각이 있는데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은 성령님의 감화로 된 생각이고, 세상을 생각하는 것은 마귀의 감화로 된 생각으로 죽은 생각이요 죽는 일만 만들어 놓는다.
세상은 어두운 곳이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이 어떤 말을 해도 선악과 먹은 저주받고 타락된 지식에서 나온 죽은 말이라서 인간에 대해 깨달을 게 전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자기를 깨닫게 하고, 살리고, 차원을 올리고, 수준을 올린다. 그래서 빛이 있는 동안에 다니라고 하는 거다. 다닌다는 것은 활동이요 교제를 하라는 거다.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운 사람들이 빛의 자녀를 붙잡으려고 한다는 거다. 그러니 거짓되고 이단적인 운동과 정신에, 이런 사람에게 붙잡히면 안 된다. 모르면 붙잡힌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빛으로 오셔서 잠깐 머물다 가신다. 그러면 당신 때문에 가는 거냐, 우리의 구원 때문에 가는 거냐? 당신이 하시는 일은 당신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은 없다. 전부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염두에 두고 당신이 알아서 하신다.
‘생명의 빛’은 영원한 것을 구별하고 분별할 수 있게 하고 영원히 살게 하는 빛이다. 인간은 이 빛 안에 살아야 한다. ‘어두움’이란 사망이요 멸망이요 심판이다. 무슨 일을 해도 심판이요 멸망이다. ‘주 안에는 정죄함이 없다’고 하는 것은 기본구원을 얻고 죄 사함 받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이룰구원 면에서 진리 안에 거하면 주님으로 닮아지는 것을 말한다. 예수 믿으면서 진리 밖에, 진리이치의 치리권 밖에 거하는 자가 많다. 이건 사망권이요 밟히는 거다. 이게 실감적으로 안 느껴진다면 진리 밖에서 살다가 사건 환경에서 짓밟히거나 녹초가 되어봐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믿음에 따라 대우를 하신다.
창세 이후로 지금을 거쳐서 마지막까지 인간들 앞에는 밝게 사는 길과, 어두움에 묻혀서 사는 두 길이 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자기는 목적적으로 하늘의 지식으로 살겠느냐, 땅의 지식으로 살겠느냐? 누가 어두움에 묻혀서 살겠다고 하겠느냐? 그러나 자기의 추구성 소원성이 세상이라면 마음과 정신이 어두움에 묻혀 있는 것이니 이런 사람은 빛과 어두움이 구별 분별이 안 된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나는 빛 된 길에서 참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의 온전의 사람으로 만들어지겠느냐, 아니면 어두움의 세상에 묻혀 살다가 형별과 멸망의 심판으로 사라지겠느냐?
말씀을 듣다 보면 지식이 생기게 되는데, 지식만 가질 게 아니라 이 지식이 자기 인격화 되면 그 다음에는 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나온다. 그런데 교회 안에 말쟁이가 많다. 소원 목적이 세상의 물질에 박힌 채 말만 하면 이 사람은 희망이 없다. 넓힘성이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 싶어 하시느냐? 자기의 지식이나 품행이 저질이 되면 다른 사람과 늘 대립이다.
생명의 빛과 교제를 하면 필연적으로 영능의 실력자 능력자가 된다. 빛을 붙잡으면 구별 분별이 되니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밤에 집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면 빛을 들고 나가본다. 빛을 드는 것은 구별 분별을 하려는 거고, 앞으로 나가려는 거다.
우리가 생명의 빛을 따라 교제를 하면 어떤 사람이 되느냐? 구별 분별의 사람이 된다. 어둠과 교제를 하면 어두움은 구별 분별이 없는 것이니 ‘예수 믿어서 부자 되고’ 라고 하게 된다. 이것은 어두움 가운데 있는 거다. 어두움과 교제하며 세상성으로 살다가는 눈멀고, 머리털이 뽑히고, 수염이 깎이고, 저주와 멸망으로 들어간다. 어두움에 살면 자기 일생을 다 도둑맞는다.
예수님의 교훈은 유대 지도자들과 달랐다. 이치를 깨닫게 하고 사람의 마음중심을 바꿔놓는다. 일반 도덕성적 의미가 아닌 영적이다. 인간 자기를 지으신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에 맞춰 살게 한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배우고 들었으니 율법사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비교가 될 텐데 왜 이걸 구별 분별을 못했을까? 문자적으로만 말을 하는 건지, 아니면 문자 속에 들어있는 마음을 말하는 건지 왜 구별 분별을 못했을까? 영적인 면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상으로 속화된 교회들의 주장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교훈의 질이 다른 점을 아느냐? 모르면 거짓 종들에게 이용당한다.
자기가 깨닫는 면에 눈이 어둡다면 진리의 안약을 사서 자꾸 눈을 닦아야 한다. 신앙을 가졌다고 해도 잘못된 신앙지식이 들어가면 사람이 망하는 일만 죽도록 하다가 멸망을 받는다. 집을 지을 때 허가대로 설계대로 지어야지 제 멋대로 지었다가는 시청직원이 와서 그 집을 부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영적인 면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비유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 인정정실에 치우치고 물질적 소원 목적에 이해타산을 두고 살면 물질적 이해타산에 따라 사람을 멀리 하거나 가까이 하거나 하기 때문에 이 사람은 결과적으로 자기 혼자 나뒹굴게 된다. 성경으로 볼 때 이런 사람은 몹쓸 사람이다. 부모 형제라도 그렇다.
생명의 빛 된 교훈이 무엇이며, 어두움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믿어갈수록 진리이치가 명확하게 깨달아지고, 말씀으로 인격화 되고, 성품화 되었다면 이 사람은 생명의 빛과 교제를 한 거고, 이게 없다면 어두움과 교제를 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지금 이 마지막 시대의 교회가 ‘키우자. 많이 모으자’ 라고 하면서 이 일에 충성봉사를 하라고 몰아붙이는데, 이게 문제가 아니라 신앙생명의 본질을 찾아서 자기 자체화 시키는 게 깨어있는 신앙이다.
예배당 건물이 없어서 교회를 못하는 게 아니라 건물이 있던 없던 어느 곳에서건 사람을 모아서 가르칠 수 있는 거다. 그런데 어찌하든 건물이 없으면 목회를 못하는 것으로 아는 목사와 신학생이 많다. 그러니 돈부터 긁어모아야 한다. 이 부작용으로 교회가 돈 때문에 안 좋은 소문이 나가서 욕을 먹고 전도가 안 되는 일이 많다.
36절: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이 말씀에는 자체화 되는 게 들어있다.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주님은 빛이시니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하나님의 본질로, 하나님과 의사단일로 나가는 교회는 빛이 있는 거다. 선지자가 있을 동안은 잠깐 동안 빛이 있는 것이니 이 때 말씀을 들어야 한다. 들으면 빛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고저와 장단과 자기의 과거와 현재가 구별 분별이 된다. 구별 분별이 되어야 ‘내가 미래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겠다’ 하는 게 나온다.
타락된 인간세상에는 진리생명의 빛이 없다. 구원의 빛 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오셔서 당신을 믿도록 해서 이 주님을 믿는 자는 빛의 아들이 되는 거다. 교회에 다니려면 빛이 있는 곳에 다녀라. 말씀 속에 들어있는 실속을 볼 줄 알아야 알맹이의 사람이 된다.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빛을 믿으려면 빛과 어두움을 알아야 한다. 빛이란 존재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적과 기사와 표적과 부활과 승천으로 빛을 보여주셨다. 구약 때는 무형적 선재적 그리스도로 계시면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과 이적과 기사와 천사와 예언 된 사건 등등으로 보여주셨다. 지금은 보혜사 성령으로 역사 되는 살아있는 진리생명의 이치의 말씀으로 보여주신다.
그러면 주님께서 왜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소돔 고모라 때와 같고, 노아홍수 때와 같다’ 라고 하신 거냐? 말세가 될수록 거짓 복음이 많고, 거짓 종이 많고, 이단자들도 많으니 말세를 사는 성도들은 자기가 보혜사 성령으로 역사가 되는 진리본질의 가르침에 거하고 있는지를 살피라는 거다. 세상 속화된 교회를 다니고 있는 건지, 빛 된 교회를 다니고 있는 건지를 살피라는 거다. 빛 된 교회와 어두운 교회를 구별 분별을 못하고 교회를 다니고 있지는 않은지를 살피라는 거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