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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한다

요한복음 추응식............... 조회 수 1850 추천 수 0 2008.07.24 22: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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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8:31-38 
설교자 : 추응식 형제 
참고 : 새길교회2001.4.8 주일설교 
emoticon 저는 대학시절 예수를 처음 믿게 되었습니다. 제가 별로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 저에 대해서 기도를 하면 진주에 먼지가 끼인 것이 보인다고 하면서 하도 강권을 해서 억지로 교회에 가긴 갔지만 믿어야겠다는 마음은 별로 없었습니다. 시민법도 잘 지키지 못하는 제가 종교의 도그마까지 떠 안는다는 것은 정말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대로 믿지 않기 위해서 교회에 가기로 했습니다. 교회에 가 보니까 실제 이해되지 않는 면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자기 교회만이 최고라는 것이었습니다. 반드시 자기 교회에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교회에도 한 번 가보라는 아량은 별로 없었습니다. 교회는 사랑이라고 했고, 우리가 아는 사랑은 남을 먼저 배려하는 것인데......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사람에게 한번 물어 보았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것이고, 제가 또 하나님의 자녀라면, 모든 교회가 제 아버지 교회 아닙니까? 그러면 제가 아무 데나 간들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하니까 "그건 그렇지만......"하면서 썩 내켜하지 않는 표정이었습니다. 그것은 교회 입구에서 저를 반갑게 맞아주던 그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뒤에 교회지도자들이 '교회 일치'라는 말을 할 때마다 저는 이러한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의 사람들은 뭔지 모르지만 참 형식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장자를 읽고 있었던 저에게는 교회사람들이 너무도 왜소하게 보였고, 인간 본연의 자유도 향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무튼 저는 믿지 않기 위해서 갔던 교회에서 믿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첫 교회의 모습이 기독교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저보다 나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닐 때는 제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주부터 저는 매주 다른 교회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완전히 교회의 순례자가 된 것입니다. 아마도 저보다 많은 교회를 다닌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과천의 한 상가에는 교회가 서로 붙어 있었는데 방음이 잘 되지 않아서 주일날 서로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다니던 중에는 오산리 기도원에 금식기도 하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곳의 한 성전에서 기도를 한다고 옆 성전에 예배를 드리는 곳이 있어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의 예배는 광란이었습니다. 앞에선 설교자가 흥분하여 " 오늘 예수를 위해 모두 죽어 버립시다."하면 동시에 "아멘! 아멘!" 외쳐대는데 저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앞에서 빠르고 높은 톤으로 설교와 기도를 반복하는 동안, 몇몇 사람들은 아래 신도들 사이를 오가며 안수를 해주었습니다. 제가 눈감고 기도를 하고 있는 척 하는데 누가 제 머리 위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 때 저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동시에 앞에서 "아, 여기에 마귀가 있다!"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말이 꼭 저를 향해서 하는 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저는 두려움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저를 가리켜 "저 사람이 마귀다"하고 말한다면 저는 아마 맞아 죽을 것 같았습니다. 저를 때리며 예수 승리를 외칠 것 같았습니다. 저는 두려움에 떨다가 다시 기도하는 틈을 타서 그 집단 광란의 현장을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배도 고프고 해서 모처럼 작심한 금식기도를 포기하고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 온 적이 있습니다. 전에 부흥회 같은데서 열광적인 분위기는 더러 경험하였지만 이렇게 무시무시한 예배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이 시절, 교회를 참 열심히 다녔습니다. 주일예배는 물론 삼일예배도 빠지지 않고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점점 예수교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저의 의문에 성경이 답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진 않았지만, 제가 교회에서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되는 것마다 성경은 "네가 옳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제가 교회에서 느낀 것과는 달리 너무도 자유스러웠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와 들에 핀 백합화를 예를 들어 "먹고사는 것에 너무 용서지 마라, 다 되게 있다"라고 말씀하실 때는 장자적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범생 바리새인도 틀렸다하시고 천하디 천한 창녀를 어루만지시면서 "너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나의 사람이다"하실 때는 무한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안식일에 대한 여러 지적 말씀을 통해서 "껍데기는 아니다. 오직 중심이다"하실 때는 통쾌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에서 저는 고등학교 때 제 친구의 노트에서 언뜻 본 '주는 나의 자유'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의 성경책 앞에도 그렇게 '주는 나의 자유'라고 씌어져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 저는 사람을 만나면 제가 이겨야 할지 도와야 할지조차 몰랐습니다. 그런데다 저는 정신력도 약하고 지혜도 없어서 뒤에 정신병원에 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관해 저는 "나는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불안은 운명처럼 내 곁에 있었다"라고 적었습니다. 저는 이처럼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아 왔습니다. 종살이 구속생활을 해 왔으면서도 저는 제가 구체적으로 종인줄 몰랐습니다. 자유롭게 사는 길이 사람들이 만든 것 속에 있을 것으로 희미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옛날 거울을 보듯 희미하던 것들이 분명해졌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울러 믿기 전 제가 우려했던 종교의 도그마는 이제 자유의 절대조건으로 바뀌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절대조건은 구속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절대조건은 쉽게 이해되는 것들이었습니다. 저는 이 때 '하나님의 형상'이란 말씀이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실 때,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공유코드를 장착해 주셨다 라는 식으로 이해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기본코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사실 예수교 윤리규범은 교회 다니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는 것들입니다. 유치원 때 대부분 배운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성경공부도 옳게 하지 않은 어린아이를 닮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때로는 설교자들의 자상한 설명이 성경보다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믿기 전, '그렇게 하면 좋은 것'이라는 규범이나 가치가 믿음을 통해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디자인 일을 같이 하는 멤버들에게 아마추어 디자이너와 프로 디자이너의 차이점을 설명할 때 하는 말과 비슷합니다.
이즈음 저는 '비는 수직으로 내려 수평으로 흐른다'라는 글을 썼습니다. 수직으로 내리는 비가 없으면 수평으로 흐르는 물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도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자유롭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자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없으면 옆으로 흐르는 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새길교회에 오기 전까지 저는 이 교회 저 교회 다니면서 수직으로 내리는 비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느꼈습니다. 금식기도를 하러 간 것도 수직으로 내리는 비에 온 몸이 씻기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저에게 다소 실망을 준 교회들도 나름대로 저의 신앙에 도움을 준 것 같습니다. 그 교회들의 가르침으로 저는 '내리는 비와 옆으로 흐르는 물은 하나'라는 평범한 사실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의 마지막에는 '너희는 너희 아버지에게 들은 것을 행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너희는 수직으로 내린 비가 수평으로 흐르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가르친 대로 실천하면서 살라는 말씀 같습니다. 그래야 자유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저는 당시 인사동 어느 허름한 식당에서 보았습니다. 저는 어느 비오는 날 오전에 인사동 청소부들이 자주 오는 조그마한 밥집에서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 때 비닐을 덮어 선 초라한 할머니가 출입문에 고개만 내미시고는 나물을 사지 않겠느냐고 주인 아주머니에게 물었습니다. 그 때 주인 아주머니는 "나물 안 사"하고 말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것도 어머니 같은 사람에게 말은 막 했지만 속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가 문 앞에 머뭇거리고 계시자 아주머니는 "할머니, 밥은 먹었어?"하고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먹었어"하고 말했지만, 아주머니는 "할머니, 이리 들어 와"하시면서 자기들이 먹고 있던 밥상에 밥을 퍼 놓았습니다. 제가 밥 푸는 것을 자세히 보았는데 밥을 수북히 푸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하면서 할머니 밥 위에 반찬을 슬그머니 올려놓았습니다. 할머니와 아주머니가 말없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갑자기 목이 메여서 밥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아주머니는 교회에서 훈련을 받은 것 같지도 않은데.....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식사를 할 수가 있을까? 아, 하나님의 심성......
저는 순간 큰 매임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것은 성만찬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치 세례를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집을 나와 바깥을 보니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식당 옆 쓰레기리어카가 새롭게 보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새롭게 보였습니다. 어두운 하늘의 오전이 예수님 당시의 어느 하루 같았습니다. 무어라 표현 할 수 없는 큰 세상이 저에게 다시 주어진 것 같았습니다. 저는 골목을 걸으면서 "그래, 신앙은 사는 것이다. 사는 것이다"하고 혼자서 자꾸만 말했습니다. 확실하진 않지만 오늘 부른 찬송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넘치도록'을 불렀던 것 같습니다. 저는 신앙을 생각하면 20년 전의 이 일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 곳에는 초라함의 구속도 가난함의 구속도 종교의 구속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그렇게 흐르는 자유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진리가 말씀이 되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사셨습니다. 식사도 하시고 말씀도 하시고 웃기도 하시고 기도도 하셨습니다. 물론 화장실에도 가셨겠지요. 그리고 죽으셨습니다. 자유하게 사시고 자유하게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자유하게 하심으로 자유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예수의 삶을 따르고 배우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도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그 컨셉에 따라서 자유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점점 살기가 힘들다고 말합니다. 이런 오늘날의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은 화를 내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괴롭든지, 안 따먹고 자유하든지 네 마음대로 한번 해 봐라, 이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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