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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믿음

요한복음 이동원 목사............... 조회 수 3546 추천 수 0 2009.11.21 12:3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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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4:46-54 
설교자 : 이동원 목사 
참고 : 지구촌교회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믿음(요 4:46-54)

유서 깊은 무디 교회 목사인 어윈 루쩌(Erwin Lutzer)의 "7가지 대표적인 기적"이라는 책(Seven Convincing Miracles)에 보면 이런 유머스러운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느날 교회 옆에 위치한 술집 주인이 이웃교회 교인들이 자기가 경영하는 술집이 천둥 벼락을 맞아 없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몇주후 진짜 그 술집이 천둥 벼락을 맞아 불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술집 주인은 변호사를 고용하여 교회를 고소하고 손해 배상을 청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교회측을 대표하는 교회 지도자가 나와서 스스로의 입장을 변호하며 아무리 교인들이 그런 기도를 했기로서니 술집이 그 결과로 천둥 벼락을 맞았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수 있는냐는 식으로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고심하던 재판관은 마지막 최후 판결을 다음과 같이 내렸다고 합니다.--"술집주인은 기도를 믿었고, 교회는 기도를 믿지 않았음"

오늘 본문에 보면 믿음과 본래 상관이 없었던 한 사람이 보여준 믿음과 그 믿음으로 인생의 위기를 극복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가 왕의 신하였다고 기록합니다. 당시 갈릴리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던 헤롯 안티바스의 고위층 신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권력과 재력,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는 자신이 가진 권력, 재력 그리고 영향력을 총동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에게는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죽음의 징후만 더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절대 절명의 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무렵 예수께서 갈릴리 지역에 다시 오셨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었습니다. 전에 갈릴리 가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기적의 주인공에 대한 소식은 갈릴리 지역에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소식은 왕의 신하에게는 마지막 잎새 같은 희망이었을 것입니다. 이 희망을 근거로 그가 믿음으로 예수께로 나아왔을때 마침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위기가 기적의 기회가 된 것입니다. 본문은 이것이 갈릴리 지역에서 예수께서 행하신 두번째 기적이었다고 기록합니다(54절). 자, 그러면 이 위기를 기적으로 만든 이 아버지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을까요?

첫째는, 표적에 매달리는 믿음입니다.

이 아버지의 믿음의 시작은 적어도 표적에 매달리던 믿음이었습니다. 기적을 바라던 믿음이었습니다. 인간적인 모든 치유수단이 자신의 아들을 살리지 못하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 아버지의 믿음은 그렇게 시작할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기복적인 믿음이라고 너무 서둘러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로서 아들이 살아야 한다는 것은 '절실한 필요'(felt-need)가 아닐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아버지에게는 자기 아들을 살릴수 있는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에게는 희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께 나아와 믿음으로 매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내 아들 살려 달라고". 47절을 보십시오."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 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그런데 이런 간곡한 호소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차라리 냉정하기만 합니다. 48절을 보십시오."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저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이 아버지에 대한 책망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 아버지로 하여금 더 큰 믿음으로 나아가도록 격려하기 위한 도전이요 자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표적에 매달리는 믿음은 믿음의 출발로서는 수용될수 있지만 결코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이 왕의 신하는 예수께서 자기 아들의 병상까지 내려와 자기 아들의 이마에 손을 대시고 기도하셔야만 행여나 기적이 일어날수 있다고 믿은 원시적이고 미성숙한 믿음의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또한 그런 유형의 믿음의 자리에 머무르고 있었고, 이것은 오늘날의 21세기 과학의 세기에도 변하지 않은 인류의 일상적인 믿음의 수준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일찌기 고린도의 성도들에게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라고 말한 것입니다. 표적에 매달리는 믿음--시작으로서 필요하지만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될 믿음인 것입니다.

진정한 기적을 경험하기 위해 이 왕의 신하에게는 다음 단계의 믿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기적이 이런 표적에 매달리는 믿음에서 시작된다는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위기에 처해 계십니까?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희망이 필요하십니까? 예수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분의 능력을 믿어 보십시오. 그분에게 표적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분에게 매달려 보십시오. 표적에 매달리는 믿음-유치하지만 기적의 시작입니다. 우선 거기에서부터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위기는 믿음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다음 믿음의 단계로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왕의 신하가 보여준 믿음의 다음 단계는 무엇입니까?

둘째는,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아직도 예수님의 기대를 알아차리지 못한 왕의 신하는 또 한번 예수님께 요청합니다.49절입니다. "신하가 가로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전에 내려 오소서." 이때 예수님의 반응이 무엇이었습니까? 그의 아들이 아파 누운 곳으로 내려 가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냥 말씀으로만 선포하십니다. 50절입니다."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고. 그와 함께 그의 아들의 병상에 내려가 그의 이마에 손을 얹으시고 안수하여 기도하실 수도 있으셨지만 그렇게 아니하시고 그는 다만 치유의 말씀을 선언하시는 것으로 반응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저는 예수께서 이 반응을 통해 왕의 신하의 믿음의 성숙을 기대하신 것이었다고 믿습니다. 진정한 기적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방법 곧 표적으로만 아니라 말씀에 의지하고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을 가르치고 싶어한 것입니다. 그리고 왕의 신하는 이런 주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숙함으로 반응하였습니다. 다시 50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여기 믿음의 근거로 이제 말씀을 붙들고 있는 이 아버지의 모습을 보십시오.

저는 이 순간 이 아버지의 믿음의 근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믿습니다. 이제 더 이상 자기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희망(바램)이 믿음의 근거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 믿음의 근거가 된 것입니다.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만일 우리의 믿음의 근거가 단순히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주관적인 기대치라면 그 기대치가 흔들릴때 우리의 믿음도 함께 흔들릴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믿음의 근거가 상황에 따라 가시적으로 변하지 않는 영원하신 주의 객관적인 말씀이라면 우리의 믿음도 그 만큼 견고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친히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바울사도도 로마서 10:17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미성숙한 믿음과 성숙한 믿음의 차이, 기복적인 믿음과 성경적인 믿음의 차이는 믿음의 근거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믿음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아직도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희망이나 기대이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십니까? 이 왕의 신하의 믿음은 짧은 순간에 놀라운 믿음의 변신을 가져 왔습니다. 표적에 매달리는 믿음에서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옮겨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말씀에 대한 믿음이 결정적인 기적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가 말씀을 붙드는 순간 이제는 말씀이 그를 붙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가슴속에는 이미 찬양이 샘솟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 아버지는 집으로 뛰어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기적의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현대어 성경은 51절의 시작을 "서둘러 집으로 가고 있는데--"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기적은 이미 그의 아들뿐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을 바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말씀이 그의 인생을 그의 발걸음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R.A.토레이 목사님이 성경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을 인터뷰하면서 물었습니다. "자네는 날마다를 믿음으로 승리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그는 대답하기를 "예, 제가 말씀을 붙들고 사는 것이지요" "틀리지는 않는 말이네. 그러나 자네가 말씀을 붙들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네" "뭡니까?"묻는 그에게 토레이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네가 말씀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이 자네를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순간 이 말씀이 우리를 붙들어 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의 왕의 신하처럼 말입니다. 그가 만난 위기속에서 주의 말씀을 신뢰함으로 그에게 말씀이 그를 붙드는 새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믿음-무엇입니까?

셋째는, 가족을 구원하는 믿음입니다.

왕의 신하의 믿음은 자신의 아들만 구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 전체를 구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53절을 읽어 보십시오."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 때인줄 알고 자기와 그 온집이 다 믿으니라" 빛을 숨길수 없는 것처럼, 살아계신 주님의 일하심을 경험한 사람들의 간증도 숨기워 질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간증은 가장 가까이서 간증의 실제를 목격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영향력의 가장 실제적인 결과가 가족 구원인 것입니다. 자, 이제 이 가족들을 주님께 나아오게한 이 기적의 놀라움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것은 무엇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주님의 역사하심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 왕의 신하의 처음 요청처럼 그의 아들이 누워있는 곳으로 찾아가 기도하시지 않고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그냥 말씀으로만 "네 아들이 살았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50절)
당시 예수님은 갈릴리 가나에 있었고 이 왕의 신하의 집은 갈릴리의 좀 더 북쪽인 가버나움에 있었는데 거리상으로 16마일 이상 떨어진 곳이었는데 길이 불편한 산지이어서 걷자면 7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이 왕의 신하가 믿고 자기 집으로 내려 가던중 자기 집에서 주인을 만나러 오고 있는 종들을 만나게 됩니다. 종들은 주인의 아들이 열이 떨어지고 살아났다고 보고합니다. 주인이 그 시간을 물었을때 종들은 그 때가 제7시(우리 시간으로 오후 1시)였다고 보고합니다. 53절에 의하면 그때가 바로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고 선언하시던 때였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가족들이 알았을 때 그 감격은 어떠했을까요? 그런 주님이라면 의지하고 따를만한 분이라고 느끼지 않았겠습니까? 우리 인생은 누구나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고 사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이 날 이 가정이 경험한 주님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일하시는 인간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그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곧 메시야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장 가까운 사랑하는 가족들이라도 서로가 서로를 도울수 없는 안타까운 순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가족들이 서로가 떨어져 있으면서 어려운 순간을 지날때 걱정한들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얼마나 고통인지요? 그런데 이때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우리를 묶어 주시고 도우시는 주님이 우리의 주님이심을 아는 가족의 행복을 아시는지요?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가정의 위기가 오히려 가정을 기도로 묶어주고 믿음으로 하나가 되는 기회가 될수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이 왕의 신하의 가정처럼 말입니다. 아들이 죽어가던 위기, 이 위기 때문에 이 가정은 주님께 나올수 있었고 주님을 신뢰함으로 함께 기도하는 가정, 그리고 구원받는 가정이 될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실시하는 중보 기도 세미나가 열릴 때마다 제가 나누는 저의 가족 간증 이야기를 다시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1995년 5월 첫 주간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미국에서 나와 우리 교회를 개척하며 가족들과 떨어져 있었습니다. 저의 아이들이 아직 고등학교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저의 아내가 미국에서 아이들을 뒷바라지하고 있었습니다. 5월 첫 주일을 지난후 월요일 저녁 저는 그 다음 날인 화요일 오전에 양수리에 있었던 한신교회 주최 목회자 세미나 강의를 준비한후 월요일 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고 마음이 불안하여 뒤척이다가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습니다. 한밤중이 훨씬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아내 생각, 아이들 생각이 났습니다. 마음이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이 기도시키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거실 의자에 앉은채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한 30-40분간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니까 마음이 평안해 졌습니다. 다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 이튿날 화요일 오전에 양수리 수양관에서 강의한후 교회 사무실로 돌아 왔는데 미국 지구촌 교회에서 전화가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전화했더니 받으신 분이 "목사님, 큰일이 아니니까 절대로 놀라지 마셔요"라는 말을 두번이나 되풀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꼭 놀라라는 소리같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더니 저의 둘째 아이가 운전면허 시험장에 면허 시험을 치르기 위해 친구차 빌려 저의 아들이 운전하고 친구가 곁에 타고 자기 엄마가 뒷자리에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만나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입니다. 황급하게 차하나가 자기 선으로 들어오니까 운전이 서툰 우리 아이가 당황한 나머지 그 차를 피하려 핸들을 꺽는다는 것이 지나쳐 하이웨이 옆길로 들어가 담벽을 박고 섰다고 합니다. 나증에 사고 처리하는 차와 구급차가 도착하여 제 아들이 운전한 차를 톱으로 썰고 꺼냈는데 아들과 친구는 조금 다쳤지만 바로 퇴원했고 저의 아내는 피흘리고 그 자리에서 기절하여 무의식(코마) 상태에 들어갔지만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고 곧 깨어 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알려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간밤에 기도하던 생각이 떠오르면서 몸에 전율이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미국 교회로 전화를 걸어 사고가 일어난 시각이 몇시냐고 물었더니 정확히 제가 밤잠 이루지 못하고 기도하던 시간이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주님이 아직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분으로 믿으십니까? 오늘의 본문이 그 사실을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왕의 신하의 호소를 들으시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던 예수님, 그분은 오늘도 여러분과 저가 그분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수만 있다면 지금도 우리 가운데 우리 가정안에서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천년전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를 질머지고 피흘리신 그분, 그리고 다시 사시사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자 부활하신 그분은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의 우리를 돕고자 하십니다. 그는 자신이 밟고 다니던 팔레스틴 땅이라는 공간을 뛰어넘어 오늘의 답답한 한국의 허리짤린 반도에서 고생하며 사는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고자 공간을 넘어서서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페쇄된 유배지에서 삶의 무게에 눌려 신음하는 오늘의 우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리고 그 신음소리가 하늘에 올려지는 순간 주께서는 그의 전능하신 사랑의 손을 펼쳐 주십니다. 그리고 그의 손길이 내리시는 거기에 기적은 일어납니다. 바로 그 기적으로 오늘의 고난을 헤치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설교 적용 질문>

1. 본문의 대의는 무엇입니까?

2. 왕의 신하의 믿음의 발전 과정을 묘사해 보십시오.

3. 이 표적을 통해 나타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4. 우리 각자가 처한 위기와 이 위기를 극복할 자신의 믿음의 변화에 대하여 나누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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