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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메시아를 만났다

요한복음 조용기 목사............... 조회 수 1834 추천 수 0 2009.11.23 23: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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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43∼45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7. 10. 28. 주일설교 
<서론>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 이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만남은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지나가다가 옷깃만 스쳐도 우연이 아니라고 하는데 서로 얼굴과 얼굴을 마주대고 대화를 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는 부모를 만나서 인생을 알게 되고 선생님을 만나서 지식을 알게 되고 부부를 만나서 사랑과 공동체의 삶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만나고 천국인으로 변화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유대인 철학자 마틴 부버는 「나와 너」라는 자신의 책에서 인생을 '만남'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바른 만남은 인생을 올바르게 인도하지만, 잘못된 만남은 인생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변화되어 위대한 바울사도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성자 가가와 도요히코는 열다섯 살 때 폐병으로 죽어가다가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삶이 완전히 바뀌어
고베의 빈민굴에서 전도활동을 하면서 예수님처럼 생활하고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만남은 크고 작은 변화를 우리에게 가져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 가운데 최고의 만남은 바로 예수님을 만나고 천국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전도하시고 가르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결국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부활승천하신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삶을 우리가 면면히 만나고 한번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마음속에서 그 그리스도의 삶을 관조하면서 만나봐야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복음을 증거하시는 예수님
우리는 복음을 증거하시는 예수님을 만나봐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도하시는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시고 이 물질세계만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마음을 바꿔 먹게 하고 영적인 영원한 천국을 받아들이도록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타락한 이후로 영이 죽어서 영적인 눈도 어둡고 영적 귀도 멀어졌고 영적 마음도 깨달음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영의 세계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물질적인 세계만 보고, 듣고, 만지고,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세계가 사라질 때는 아무것도 없이 무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인간, 이 인간들에게 예수님은 육신의 물질적인 세계 저 건너편에 영원한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시기를 원했고 바로 그 길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가 전도를 받고 마음속에 하늘나라를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만 가지고 있던 우리들이 예수님을 만나야 하늘나라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한평생 왔다 갔다 하면서 예수님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종교는 만나 보았지만 예수님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천국을 소유하지 못합니다. 왔다 갔다 하면서 그저 마음에 세상이 가득할 따름인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전도를 받고나서 예수님을 마음속에 만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장 14절로 15절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속에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전도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유명한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원래 귀족 출신으로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살았으나 늘 죄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마음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부귀, 영화, 공명을 다가지고 있었어도 마음속에 죄책으로 몸부림치고 있었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길을 가다가 농부를 만났는데, 그의 얼굴은 유난히 평화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농부에게 가서 그처럼 얼굴에 평안을 가지고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가지고서 사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 농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기 때문에 마음에 늘 기쁨이 넘칩니다." 그날부터 톨스토이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았고 전심으로 찾는 톨스토이를 만나주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므로 그는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책에서 해방될 수 있는 체험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하나님을 아는 것이 곧, 사는 길이다." 여러분 하나님을 모르는 길은 죽음의 길인 것입니다. 마음에 기쁨과 행복을 찾지 못하고 살았다 하나 죽은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참 삶의 길인 것입니다.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려면 나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 진리의 빛을 받아 우주와 인생을 깨닫고 변화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상 우리를 가르치시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전도하는 예수님뿐 아니라 전도받은 우리들에게는 또 가르치는 예수님으로써 항상 우리를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배우므로 성장하는 하늘나라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천국을 소유하게 되지만은 그다음 예수님을 만나서 배우므로 하늘나라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때는 인간으로 태어나지만 성장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라나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믿고 천국을 마음에 소유 했을지라도 그 다음 계속해서 배워서 하늘나라 사람으로 장성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장성하지 못하고 늘 어린아이의 전도 상태로 놓여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대속의 은혜의 길을 알아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삶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 천국인이 되면 믿지 않는 자는 멸망하는 것을 알고 어찌하든지 그들을 구원하려고 애쓸 수 있는 마음의 지식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종말이 오고 반드시 심판이 오고 새로운 세상이 다가오며 그리스도가 강림하실 때 부활 승천한다는 지식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믿고 천국만 소유하고 왔다 갔다 하다가 이단과 사설에 떨어질 때가 많습니다. 확실히 깨달아 알고 믿고 확신을 가지고 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배워야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14절에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 세상은 반드시 끝 날이 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이대로 계속되지 않습니다. 매일매일 이 세상은 종말을 향해서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줄달음쳐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날에는 하늘이 큰소리로 떠나가고 이세상은 열렬한 불에 녹아지려니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새 하늘과 새 땅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2. 치료하시는 예수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도하는 그리스도를 만나고, 가르쳐주는 예수님만 만날 뿐 아니라 치료하시는 예수님도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 와서 전도를 받고 예수를 통해서 여러 가지 천국의 진리를 배우는 것 참으로 행복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전도만 하고 가르치시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해방시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이나 장터나 귀신이란 귀신은 다 쫓아내었습니다. 주님은 그대로 사람들을 내버려 놓지 않았습니다. 전도 받고 천국에 대해서 교육을 받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귀신에 묶인 자는 해방시키기 위해서 귀신이란 귀신은 가는 곳마다 다 쫓아낸 것입니다.
누가복음 4장 33절로 35절에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예수님께서는 귀신과 사람들이 함께 사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로 사람들은 하도 오래 귀신과 같이 살았기 때문에 귀신이 형제와 같고, 친척과 같고, 친구와 같이 되어서 아무 허물없이 귀신과 같이 지냅니다. 거짓말하는 귀신, 음란한 귀신, 방탕한 귀신, 속이는 귀신, 더러운 귀신, 악한 귀신, 귀신과 친척과 친구와 같이 살면서 귀신과 같이 사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오면 귀신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복음만 전도하여 천국만 주시고 가르쳐서 천국 인이 되게 장성하도록 만들뿐 아니라 사람들이 귀신과 접촉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귀신에게 묶여 있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주님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귀신이란 귀신은 다 쫓겨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실 때 마지막 부탁한 것도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너무 친숙하여 귀신인지, 친구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그런 장소에서 떠나 귀신을 쫓아내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병이란 병은 다 고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병, 육체의 병을 주님 원치 않았습니다. 전도만 하고 말씀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을 고치므로 치유를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23절로 24절에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병든 자들이 떼로 지어 왔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병든 자가 오는 곳입니다. 마음에 병든 자, 육체에 병든 자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오는 곳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천국만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서 교육만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면 귀신에서 자유를 얻고 온갖 병에서 고침을 받기 때문에 주님을 찾아 오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신 것입니다. 가버나움에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나인성에서 과부의 아들을 관속에서 일으키시고 베다니에서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살려 일으킨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12제자, 70인의 제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때는 반드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1절에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누가복음 10장 1절로 9절에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데 반드시 귀신 쫓아내는 역사와 병 고치는 역사가 따르도록 하신 것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귀신을 쫓아내고 치료하는 복음인 것입니다. 전도하는 것 반드시 해야지요. 가르치는 것 반드시 해야지요. 그러나 그것만 하고 두 손을 털어 버리는 성도들과 주의 종과 교회가 많습니다. 교회는 그냥 전도하고 가르치는 곳이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 고치는 것은 옛날 초대교회나 있었지 지금은 없다. 그런 말을 합니다. 초대교회 예수님 다르고 지금 교회 예수님 다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고 히브리서 13장 8절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두세사람이 함께 모였을 때 함께 계신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오늘날도 전도하시고 오늘날도 가르치는데 왜 그 예수님이 오늘날은 귀신 안 쫓아내고 병 안 고친다고 말하면 언어 부단인 것입니다.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병을 고치시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예수님도 만나고 가르치는 예수님도 만나지만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예수님을 만나서 귀신과 병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는 여러분이 되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3. 고난당하시는 예수님
그 다음 우리는 고난 당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당하는 예수님을 만나야 우리 가슴이 찡하게 얼마나 주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셨는가를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냥 가르치시고 전도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고치는 예수님을 만나면 기적을 받고 은혜를 받고 감사하지만 고난의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 마음속이 무너지고 깨어지고 주님의 그 감격적인 사랑에 흐느껴 울게 되고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뜰에서 얻어맞고 모욕을 당하신 것을 생각하십시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대제사장의 뜰에 끌려가서 수염이 뽑히고 침 뱉음을 받고 얻어맞을 필요가 있습니까? 주님이 여러분과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내어 놓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 모욕당하는 것은 나 때문에 모욕당하는 것입니다. 침 뱉음을 받고 매를 맞은 것은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것 입니다.
마가복음 14장 63절로 65절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그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이런 모욕을 당한 것은 바로 나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날 위하여 십자가 짊어지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대제사장들에게 맡긴 것입니다.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도록 맡겨 놓으니 온갖 희롱을 당한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우리가 바라보고 만나 보므로 예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빌라도의 뜰에서 채찍에 맞으신 예수님을 바라 보십시오. 인간의 질병을 지시고 그 아픔을 당하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오늘날도 병상을 찾아가서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암을 앓는 사람에게 얘야~ 네 암을 내가 대신 앓았다. 채찍에 맞을 때 내가 앓는 암을 내가 다 앓았으니 나를 믿고 암에서 일어나라!" 관절염으로 절뚝거리고 못걷는 사람에게 "얘야~ 네 관절염으로 고통하는 그 병을 내가 채찍에 맞음으로 다 짊어졌다. 너 아픔을 내가 다 담당했으니 아프지 마라. 일어나라!" 온갖 병든 사람마다 침상에 주님이 같이 계십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앓았다. 그 고통을 내가 안다. 내가 앓았으니까 내가 짊어졌으니까 너는 짊어지지 말기를 바란다. 나를 바라보고 나를 만나고 믿고 그 병상에서 일어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하고 있으며, 성경은 저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했다고 말했으며, 성경은 야훼께서 저로 상함 받기를 원하사 우리의 질고를 당케 했다고 말했으며 성경은 저가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날도 손을 내밀고 우리를 보고 "너 아프냐? 내가 너 대신 앓았다. 너 고통 내가 다 당했으니 너는 당하지 말라. 나를 만나고 나를 의지하고 그 병에서 일어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5장 14절로 15절에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라고 한 것입니다.
주님이 그 모진 채찍에 맞은 것은 그 채찍 하나 때릴 때마다 여러분의 병으로써 아픈 고통이 다 주님께 전가된 것입니다. 주님의 채찍을 헛되게 돌아가지 말게 하십시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앓았는데 우리가 또 앓으면 예수님 앓은 그 고통이 헛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고통당한 것을 무로 돌리게 되지 않습니까? 주의 대가를 우리가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물건에 돈을 안주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돈 줬으면 물건 가지고 와야지요. 주님이 채찍에 맞았으므로 치료를 가져와야 되는 것입니다. 대가를 반드시 요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원수 귀신아 예수님이 채찍에 맞았으므로 나는 고침을 받았다. 너희 마귀의 산물인 질병은 물러 갈찌어다. 떠나가라. 나는 너에게 묶여 있을 수 없다. 네게 눌려 있을 수가 없다. 나는 자유와 해방을 얻은 사람이다. 나는 나은 사람이다. 주님의 은혜와 그 믿음으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갈 찌어다." 우리는 진리를 알면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모르고 헛된 소리 하면은 협박 공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명명 백백히 알고 명하는데 마귀가 안 떠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알아야 돼요. 모르면 안돼요. 주님이 어떠한 일을 하신 것을 깨달아 알고 그 대가를 우리가 소유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갈보리 산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악인이 의인을, 죽을 인생이 영생하는 하나님을 못 박는 그런 우스꽝스러운 일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자기를 지은 하나님을 사람이 못박습니까? 어떻게 의로운 하나님을 죄 덩어리인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습니까? 어떻게 죽을 인생이 영생하는 하나님을 못 박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그 자신을 내어 놓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의롭게 해주시기 위해서 스스로 죄인 짐을 짊어 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것입니다. 십지가를 바라보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찌그러진 얼굴 가시관을 쓰시고 피를 흘리는 그 모습 양손과 양발이 대못에 박혀서 늘어진 그 모습, 온 전신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그 모습을 우리는 바라보고 예수님을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날 위하여 십자가에 크신 고통을 당하신 예수님을 만나 보아야 내가 마음이 깨뜨려 지고 얼마나 큰 죄인이며, 불의하고 추악하고 흉악한 나인가를 깨닫게 되고 나를 위해서 주님께서 얼마나 크신 사랑을 베풀었다는 것을 만남을 통하여 우리는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만나야 돼요. 그냥 이야기만 듣고 지나가면 안돼요. 그림 구경하듯이 구경하고 그냥 지나가면 안돼요. 나와 일대일로 만나야 돼요. 십자가 밑에 엎드려 예수님을 바라 보아야 돼요. 날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봐야 돼요. 우리가 아닌 것입니다. 인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나 한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고난당한 예수님을 바라보고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사야 53장 4절로 6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도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무덤마다 죽은 시체나 뼈가 있으나 예수님의 무덤은 텅 빈 무덤인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무덤 속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얼마있지 아니하여 시간이 지나면 관도 썩어 버리고 육체도 다 흙으로 돌아가고 하얀 뼈만 남습니다. 오래된 묘를 이장하려고 파보면 뼈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덤에 들어가서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덤에 가면 뼈도 없고 살점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누가복음 24장 1절로 3절에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어떠한 사람이 성지순례를 가는 모슬렘 성도와 함께 비행기를 같이 탔습니다. 모슬렘 성도는 자랑스럽게 "나는 성지에 가서 모슬렘 창시자의 무덤에 가서 경배하고 은혜를 받고 돌아올려고 한다. 당신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의 무덤도 없지 않느냐. 그러나 우리 마호메트는 무덤이 있어서 거기 가서 경배할 수 있다." 그러니 예수 믿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마호메트의 무덤을 보러 가지만 나는 텅 빈 무덤을 경배하러 간다. 예수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고 살아나서 부활해서 천국 보좌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 예수님은 우리 위해서 죽고 우리 위해서 무덤에 들어가고 우리 위해서 부활해서 우리 위해서 부활 승천하셨다."고 그렇게 증거했다는 글을 읽어본 적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무덤에 들어가신 것은 당신 스스로가 들어간 것이 아니라 나의 무덤에 들어간 것입니다. 주님의 무덤은 바로 내 무덤인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이 들어간 무덤은 여러분과 내가 들어갈 무덤인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파놓은 무덤인 것입니다. 우리 무덤에 들어가서 주님이 사흘 만에 나오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들어갈 무덤은 없어져 버리고 만 것 입니다.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바울이 말한 것처럼 사망은 여러분에게 없습니다. 여러분이 들어갈 무덤에 예수님이 들어가셔서 비워 버리고 만 것입니다. 청소하고 만 것입니다. 청산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의 무덤은 비었습니다. 이미 여러분의 무덤은 들어갈 장소가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망을 멸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당신을 통해서 무덤을 없애 버리고 부활 영생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6절로 7절에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그러므로 우리의 무덤에 우리를 찾아 들어가니 우리가 없습니다. 먼 훗날에 여러분 모두다 관속에 들어갈 것 아닙니까? 그것을 미리 바라본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여러분 무덤을 찾아 들어가서 여러분 시체를 찾으니까 여러분 시체가 없습니다. "어? 내 무덤에 왜 내 시체가 없냐?" 천사가 말할 것입니다. "허허허. 이미 2천년 전에 예수님이 너 대신 너를 끌어안고 부활해서 떠나 버렸네. 너 시체는 여기에서 찾을수 없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무덤 내 무덤,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예수 보좌 내 보좌가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 것입니까? 그리스도와 만나고 난 다음 내 마음과 생각이 변화 안 된다면 그것이 기적인 것입니다. 변화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 무덤을 비워 버린 것입니다. 나에게 영원한 부활을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의 무덤은 다시 없습니다. 여러분의 무덤은 다시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 철폐되고 만 것 입니다. 그리스도와 개인적으로 만날 때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예수님을 만나서 천국을 얻고, 가르치는 예수님을 만나서 신앙이 성장하는 천국인이 되고, 치료하는 예수님을 만나서 귀신과 마귀에서 해방되고 병에서 고침을 받고 죽었다가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므로 십자가 고통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므로 영원한 소망과 기쁨과 희망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4. 예수님을 만남과 변화
그러므로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를 받게 되어 있어요. 진리의 빛을 받아 우주와 인생을 안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땅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굼벵이처럼 흙만 파고 살았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만 따라 살았습니다. 죽고 난 후에 어떻게 될 것은 생각하기를 싫어했습니다. 생각하기 조차 귀찮았습니다. 죽는 것은 저 혼자 죽지 나 혼자 죽느냐. 그렇게 생각하고 자기는 영원히 안 죽을 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때가 오면 다 죽지요. 혼자서 외롭게 죽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 처절한 절망에 처한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인간은 절망을 가슴에 안고 사는 존재인 것입니다. 죄책과 절망, 허무와 무의미, 죽음과 무라는 절망을 가슴에 안고 사는 인생입니다. 아무리 절망이 없다고 고개를 돌려버리고 눈을 감아도 절망을 달려오는 기차와 같이 속도를 내서 내 가슴을 향해서 돌진해 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게 되자 진리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죄에서 용서를 받고 의로운 사람이 되고 우리는 허무와 무의미한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죽는데서 부활 영생 천국을 얻게 되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새 인생, 새 세계, 새 미래를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이니 얼마나 좋습니까? 육신의 인생이 신령한 인생으로 변화되고 마귀의 종이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고 죽을 사람이 영생한 사람으로 변화되니 생각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고 행위가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변화 안 받는 것이 희안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면 중단 없는 삶의 발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죽어서 끝이라고 생각하면 큰일인 것입니다. 이 세상 살면서 천국 영원의 삶으로 죽음의 종지부가 없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삶의 계속인 것입니다. 육신의 몸에 살다가 육신의 몸을 떠나서 영원한 신령한 몸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으로써 끝이 나는 인생이 아닙니다. 죽으면 그뿐이니까 먹고 마시고 살자, 놀자 놀자 젊어서 놀자 늙고 병들면 못 노리로다. 이와 같이 되어서 완전히 파탄된 퇴폐한 마음을 가지고 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명은 계속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로써 소년으로써 청년으로써 장년으로써 노년으로써 영생으로써 계속 되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속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사람을 입고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중단 없는 삶입니다. 죽음으로 종결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세상 사람은 이 세상에서 죄를 짓고 살다가 죽어 버리면 그뿐이다. 나그네 생활 죽음으로 끝나니까 그뿐이다. 굉장히 답답하고 괴로운 일 있으면 에라 죽음으로 청산하자. 목을 메고 청산가리를 마시고 높은 아파트에서 뛰어 내립니다. 그래서 죽음으로 종말 될 줄 아는데 인생에는 종말이 없습니다. 사람은 죽어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지 못하면 영원히 불과 타는 못에 참여하게 될 것이요.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한 극락과 천국에 들어가서 살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인생의 종말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3절로 4절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여러분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함께 죽고 장사지내고 함께 부활하사 함께 승천하사 함께 하늘에 앉아 있는 여러분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분이 얼마나 변화 되었습니까?
옛날에는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내 혼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덕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죽고 장사지내고 부활하고 승천하고 함께 하늘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인류가 발달 되어서 항공술이 발달되므로 비행기를 타면 비행기와 함께 서울에서 미국도 순식간에 가고 파리로 런던으로 아프리카로 어디든지 함께 갑니다. 내가 못날라 갑니다. 비행기와 함께 가는 것입니다. 비행기와 함께 하면은 이 지구 끝까지 20시간 이내에 다 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혼자는 못가지요. 그러나 비행기와 함께 하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내 혼자는 예수 없이는 죽으면 무덤에 들어가서 백골이 진토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 넋은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하면 죽어도 살고 살아도 살고 무덤에서도 부활하고 하늘로 영생 부활 승천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인생은 여러분의 신분을 완전히 변화시켜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품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먹고 자고 깨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고 부활하고 영생 천국에 올라가는 것이니 여러분의 신분이 변화되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삶의 목적과 의미와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생활은 사는 목적이 천국 가서 하나님을 섬기고 영원이 사는 것이 삶의 목적이지 이 세상에 살다가 죽어 없어지는 것이 삶의 목적이 아닌 것입니다. 삶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매일 매일 사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섬기고 찬미하며 영광 돌리고 사는 것이요 우리 삶의 가치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삶의 가치인 것입니다. 돈 많이 버는 것이 가치가 아닌 것입니다. 지위나 명예나 권세가 높아지는 것이 가치가 아닌 것입니다.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을 얻는 것이 가치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사는 것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을 쫓아 한 사람이라도 전도하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요, 기도하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요, 십일조 드리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요, 주의 사업을 위해서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봉사생활을 하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요.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가치가 나 중심의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고 사는 것이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삶의 목적이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는 것이 삶의 의미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삶의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서 살 것 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절로 3절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나님과 예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기쁘게 하고 사는 사람은 정말로 즐거운 것 아닙니까?
마태복음 22장 37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태복음 6장 33절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는 완전히 예수님과 함께 사는 인생인 것입니다. 복음을 증거하고 천국에서 상 받는 삶이 얼마나 좋습니까?
디모데후서 4장 2절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8절에는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니라"
이처럼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것이 우리 삶의 전부가 되어 되는 것입니다. 아침에도 예수로 잠을 깨게 하시고 저녁에도 예수로 잠을 자게 하시네. 예수님 내주여 내 중심에 오셔서 예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나이다.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영원히 변치 않는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지위도 떠나갑니다. 명예도 떠나갑니다. 권세도 떠나갑니다. 부귀도 떠나갑니다. 영화도 썩어 버리는 것입니다. 청춘도 사라집니다. 형제도 사라집니다. 사람이 세월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 가면 점점 잃어 버립니다. 젊을 때 어린 아이로 태어나면 자꾸 얻습니다. 유치원에 가서 얻고 초등학교에 가서 지식을 얻고 중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 다음에는 사회에서 취직을 하여 얻고 그 다음에는 아내를 얻고, 자식을 얻고 지위를 얻고, 명예를 얻으나 사람이 50이 넘으면 그 다음에는 잃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명예도 지위도 권세도 부귀도 영화도 점점 나를 떠나가고 나중에 자식들도 쌍쌍이 짝을 지어 떠나가 버리고 부부도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떠나가 버리고 인생은 결국 혼자만 되는 것입니다. 종국적인 인생은 지극히 외로운 존재인 것입니다. 아무도 함께 하지 못하는 나홀로 황막한 저 세상으로 걸어가야 될 것인데 예수 믿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젊을 때만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 늙어 백수가 되었을 때 더 주님이 같이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즐겁게 손잡고 인생을 살다가 우리 낡은 집 벗어 버리면 그리스도와 함께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고 고통당하는 아니하고 훨훨 천국으로 올라가서 영원한 낙원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사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결론>
한 대학교에서 시험을 치루고 있었습니다.
시험 문제에는 '물이 포도주로 변한 사건에 대하여 설명하라.'했습니다. 두 시간동안 학생들은 머리를 짜내어 답안을 작성하느라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런데 감독관이 보니까 한 학생은 글 한줄 써놓고 두 시간 동안 혼자 가만히 앉아 있거든 이상하게 여겨서 다가가서 답안지를 보니 딱 한 줄이 짤막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물이 그 창조주 예수님을 바라보고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가졌네." 그렇게 써놓았습니다. 놀라운 답안 아닙니까? 물이 왜 포도주가 되었느냐. 창조주 예수님을 만나고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져 버렸다. 그 한 줄을 써놓고 기다렸습니다. 그 글을 쓴 사람이 누구냐. 저 유명한 시인 바이론이었습니다. 나중에 그는 위대한 시인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물이 예수님을 보니까 얼굴이 빨개진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보니까 달라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달라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종교를 만나서 달라지지 않습니다. 교회를 왔다갔다 한다고 달라지지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예수님을 믿었다고 달라지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만나면 달라지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예수님을 만나면 천국을 얻게 되고, 가르치는 예수님을 만나면 천국인으로써 성장하게 되고 치료하는 예수님을 만나면 귀신에서 놓여 나고 병고침 받게 되고, 고통 당하는 예수님을 만나면 사랑을 받게 되고 사랑으로 가슴이 무너지고 변화받고 복종하고 순종하게 되고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영원천국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변화되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삶 속에 예수님이 빛으로 들어오시고 천국이 가슴 속에 임하시고 말씀이 삶의 지혜와 지식이 되시고 영원한 소망과 기쁨과 평안을 갖게 되는 것이 예수님을 만나므로 체험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지식이 아닙니다. 의식이 아닙니다. 종교가 아닙니다. 변화 받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내가 보기에도 새것이 되고 이웃이 보기에도 새것이 되고 하나님 보시기에도 새것이 된 변화 받는 사람이 되어야 크리스천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오늘날 가장 큰 문제가 교회 왔다가 가면 하면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 믿고 변화 받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예수쟁이가 되어 버리고 만 것 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지탄을 당합니다. 우리 아버지여 우리는 진지하게 내 자신을 그리스도 앞에 갖고 와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만나서 변화 받게 도와 주시 옵시고 새사람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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