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장애, 장애가 아닌 인생

요한복음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864 추천 수 0 2009.12.26 15:53:54
.........
성경본문 : 요9:1-7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지난 20일이 제 21회 장애인의 날이었습니다. 1981년 '세계장애인의 해'를 계기로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지키며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은 UN 장애인 권리 선언에 의하면 " 선천적으로든 후천적으로든 신체적인 혹은 정신적인 원인으로 자기 자신의 힘으로 홀로 서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보건 복지부의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장애인은 작년말 기준 전체 인구의 3.09%인 145만명으로 추정되며, 이 중 95만 8196명이 등록돼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장애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세계 보건 기구가 인구의 10% 정도를 장애인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기준으로 하면 우리 나라 인구 5000만이라면 500만은 장애인에 속한다는 말입니다. 상당히 많은 수입니다. 복지부에 따르면 우리 나라 장애인은 89.4%는 질병. 사고 등에 의한 후천적 장애인이고 선천적인 장애인은 10.6%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산업 재해, 교통 사고, 약물 중독, 유행성 질환, 등으로 누구도 장애인 후보에서 제외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한해동안 발생하는 장애인수를 원인별로 분석해 보면 분만과정에서 생기는 장애아동이 2만8천여명(전체 70만명 중에서 4%),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가 2만5천여명, 산업재해로 인한 장애가 2만7천여명 등 1년동안 발생하는 수만도 8만1천여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한 장애인을 장애가 전혀 문제 되지 않는 장애가 아닌 인생을 살게 해 주시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장애인들이 장애가 전혀 문제되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우리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2-3)
예나 지금이나 장애인에 대한 편견들이 있습니다. 고대에는 장애자가 부족 사회에 무익하거나 유해한 존재로 인식되어 이들을 박해하고 추방하였습니다. 산중에 버리기도 하고, 악령이나 마귀가 붙은 것으로 생각 이단시했고 심지어는 귀족계급의 노리개 감으로 취급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스파르타 사람들은 리쿠르구스 법전(Lycurgus,B.C 800년경)에서는 장애인과 노약자를 산중에 유기할 것을 명시하였습니다. 로마인들은 장애인을 강물에 던져 익사시키거나 투기장의 주인공으로 삼았으며, 또한 뚜렷한 장애를 보인 아동들은 광장에 목매달아 죽였고 후천적으로 장애를 입게 된 아동들도 살해하는 것을 허용하였습니다.
요즈음은 그보다 덜하지만 그래도 역시 편견이 심합니다. 아침에 안경을 쓴 사람만 보아도 재수가 없다고 합니다. 택시 운전사는 아침에 장애인을 태우면 재수가 없다고 태우지 않으려고 합니다. 장애인 시설이 자신의 동네에 들어서는 것을 목숨 걸고 대모하며 막습니다. 심각한 문화적 편견들이 있습니다. 한국갤럽은 18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장애인의 생활실태와 비장애인의장애인에 대한 의식을 조사, 분석한 ’한국 장애인과 일반인의 의식’을 출간했습니다. 84년과 15년이 지난 99년의 의식을 비교 분석하였습니다. 결론은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장애가 있는 태아일 경우 출산하겠느냐라고 물었을 때 일반인은 '낳지 않겠다’가 99년 조사때 83.1%로, 15년전인 84년의 82.4%와 차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장애인과 결혼하겠느냐?는 질문에 찬성 비율은 16%에서 10%로 오히려 6%나 줄어 장애인에 대한편견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작년 10월에 보도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따돌림받는 장애 아들을 죽인 어머니가 신문보도에 나왔습니다. 아들이 선천성 유전병인 터너 증후군을 앓고 있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반 아이들이 송충이 같다며 따돌렸습니다. 어머니는 어차피 정상인으로 성장못할 바에야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아들을 목졸라 죽였습니다. 장애인을 표현하는 언어부터 편견이 심각합니다. 병신, 앉은뱅이, 문둥이, 벙어리, 미친 자 등 장애인을 비하시키는 말들입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정리해 보면 ①장애인은 성격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②장애인은 무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③장애인은 사회에 유익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④장애인은 늘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⑤ 장애인은 피해를 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⑥장애가 있으면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장애가 있으면 숨기려고 합니다. 형제들 결혼에도 지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잘못된 편견에 불과합니다. 감자가 작다고 해서 불량감자는 아닌 것입니다. 꽃잎 하나있다고 해서 나쁜 꽃은 아닙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 시각 장애인을 만났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대뜸 예수님께 묻는 것이 무엇입니까? 누구 죄 때문에 이렇게 소경이 되었습니까? 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 죄 때문입니까? 부모 죄 때문입니까?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죄 지어서 저주받은 거야? 부모가 죄를 지어 저주 받아 이런 아이를 낳은 거야?"라는 식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제자들은 소경이라고 말하는데 예수님은 소경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라고 합니다. 인격적입니다. 일부러 소경이라는 말을 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습니까? 그리도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장애에도 뜻이 있다는 말입니다.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편견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장애인이 장애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력 장애인 이삭을 축복의 전달자로 사용하였고, 시력 장애를 가진 바울을 세계 선교를 위해 사용하였고, 지체 장애인 야곱에게 축복의 증거를 보여 주었으며, 언어 장애인 모세를 사용하였습니다. 오른손 지체 장애자 에후를 사용하였습니다. 범죄하고 시각장애자가 된 삼손의 기도를 응답해 주었습니다. 장애는 결함이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의 차이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실 장애와 비 장애는 단지 시간과 공간의 차이일 뿐입니다.
레위기 19장14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얼마나 장애인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장애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내용만 본다면 예수님의 기사 절반 정도는 장애인과의 만남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장애인에게 편견을 가지신 분이 아니십니다. 장애인들을 돌보시고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접받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누가는 누가복음에 이러한 사실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1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 부분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역이 주님의 사역 중 중요한 부분인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7장20절 이하를 보십시오. 예수님이 메시아인가 아닌가를 묻는 질문에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22절을 보겠습니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가복음 14장15절에 보면 하나님 나라의 잔치가 나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어떤 사람을 부르십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중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인류가 가지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바꾸어 놓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가장 혁명적인 견해를 가지신 분이 아마 예수님 일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마음 속에는 장애인이 있었습니다. 비 장애인만 위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을 위해서도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난 5알 잠실 구장에서 열린 프로 야구 개막전 시구를 하던 애덤 킹을 보았지 않았습니까? 신문은‘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투구’라는 제목을 잡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투구는 킹의 투구보다는 그 투구를 있게한 그를 입양하여 기른 찰스 로버트 킹 부부였습니다. 친부모마저 포기한 장애아 그를 입양해 길렀습니다. 친자녀도 세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인 넷을 포함해 일곱자녀를 입양해 양육했습니다. 그는 “지난 7년간 아이들이 스물한 번 수술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술회했습니다. 편견을 갖지 않고 장애인을 밝게 키워낸 부모들과 기꺼이 그들의 친구와 배우자가 되어 주는 사회야말로 장애인을 장애가 없게 살게하는 첫 걸음입니다.

2.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이 하나님의 쓰임받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장애인 입장에서 도와 주어야 합니다.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장애가 되는 부분이 장애가 되지 않도록 누군가가 보완해주어야 합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 비장애인들처럼 버스를 탈 때도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이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 제도가 그렇게 되어져야 합니다. 다수가 전부다고 생각하고 다수의 유익만 쫓는 사회일수록 비문명적 사회이고 비 기독교적 사회이며 폭력적 사회입니다. 선진화 될수록 기독교화 될수록 소수를 위한 배려가 많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독일과 미국을 장애인의 천국이라고 합니다. 독일은 국교가 기독교입니다. 목사를 나라에서 월급을 줍니다. 종교세를 냅니다. 미국은 기독교인들이 만든 국가입니다.
모든 공공시설을 장애인을 배려해 만들고, 장애인 전용 지하철 엘리베이터, 휠체어를 타고 이용할 수 있는 공중 화장실이나 공중전화, 제일 좋은 자리에 마련된 장애인 전용 주차장 등 되도록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도록 사회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사회 전체의 배려 속에 정상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독일 장애인들의 권익은 헌법인 기본법에 명시하여 '어느 누구도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2주 전인 지난 6일엔 사회복지법을 개정해 장애인들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조금도 불편이 없도록 했습니다. 오는 7월 1일 발효되는 이 개정안에 따라 예컨대 직장생활을 하는 청각장애인은 수화 통역사를, 시각장애인은 문서를 읽어주는 사람을 노동부에 요구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예 개인 비서를 하나 두는 셈이 되었습니다.
미국 국민중 정신적 신체적 장애인의 수는 5000만명. 2억7000만명의 미국인구 중 18%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노인은 물론 만성질환자와 비만으로 거동이 불편해도 장애인이며 임산부도 일시적 장애인으로 분류됩니다. 그들은 장애인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도 않고 정상인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자연스럽습니다. 장애 등급, 능력에 따라 혜택을 받을 수 있기에 서둘러 장애인 등록을 합니다. 장애인이기에 당해야 하는 불이익이나 차별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장애인하면 천덕 꾸러기 취급을 받습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 스티븐 호킹이 알고 있는 근위축성 측삭경화증(루 게릭병)에 대해 방영해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국 사람과 한국 사람을 비교해 주는데 하늘과 땅차이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대통령을 뽑을 때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많이 하는 대통령을 뽑아야 합니다. 소수 약자에게 관심을 갖는 사회를 만들어야 바람직한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장애인이 장애가 아닌 삶을 살도록 도와 주십니까? 예수님은 장애인에게 필요한 방법으로 그를 도와 줍니다. 나에게 필요한 방법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장애인을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장애인을 치유하는데 독특한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병자를 치유할 때 똑같은 방법으로만 하시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말씀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안수함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명령함으로 치유시킵니다. 오늘 시각 장애인은 침을 발라습니다. 그리로 진흙을 바른 후 실로암 못에 가서 씻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구체적인 임재와 손길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질병을 고쳐 주심으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그를 통하여 분명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장애는 장애로서만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장애하면 불행이라는 등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장애하면 절망이라는 등식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시각 장애인에 대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장애를 가졌다고 가르치며 그 영광을 나타내도록 하셨습니다. 치유를 통해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냈습니다. 특별히 치유가 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도구가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장애인이 장애를 장애로 생각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의 손발이 되어주고 눈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얼마전 신문에서 감동적인 기사를 보았습니다. 장애인 친구를 위해 4년째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대학생의 이야기입니다. 기사의 주인공은 창원대학교 특수교육과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종인 군이었습니다. 그의 친구 이근경 군은 근육기능이 위축되는 희귀병인‘근이양증’을 앓고 있는 1급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는 이 친구를 진정 사랑하였습니다. 두 사람의 우정은 고교시절인 1998년 마산 창신고 2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김 군은 하반신이 마비돼 혼자서는 움직이기 힘든 같은 반 이 군을 교실까지 업고 다니는 도우미를 자원했습니다. 그는 친구 이근경 군을‘그림자 수발’을 하였답니다. 그런데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사관학교를 들어가고 싶었다고 합니다. 아버님이 그것을 특히 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친구를 위해 같은 학교에 들어가기로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친구를 구체적으로 도와주기 위해 같은 방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학교에 요구하여 같은 방을 배정받았다고 합니다. 이들의 아름다운 우정에 감동한 대학 측은 올 들어 두 사람이 사용하는 기숙사 방(2인 1실)을 3평에서 6평으로 넓혀주고 같은 과 학생들의 방을 인근에 배정해주는 등 배려를 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우정이 깊어진 것은 이 군이 고교 3학년 때 김 군이 다니던 교회를 같이 다니면서 부터였다고 합니다. 그는 친구를 교회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삶의 소망을 주었습니다. 친구는 장애가 있으면서도 가정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그는 친구가 교회에서 장학금을 받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주선을 하였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그는 숙식을 함께 하며 이 군이 화장실·강의실을 오갈 때 손과 발이 되어 주었답니다.

헨리 나우헨은 하버드와 예일 대학에서 교수로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교수직을 그만두고 캐나다의 토론토 근처에 있는 데이 브레이크 공동체라는 몇 사람의 장애인을 수용한 수용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장애인 아담 아네트를 돌보았습니다. 그는 아담이라는 책에서 아담을 돌보기 위해서 왔지만 오히려 아담이 나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나에게 축복이 되었다. 나는 아담을 통해서 예수님을 발견했다. 아담의 연약한 부분을 통해서 연약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발견했고 아담의 그 투병 과정을 통해서 나는 예수님의 광야 생활을 볼 수 있었다. 아담의 그 말할 수 없는 고난을 통해서 나는 예수님의 고난을 보았고 아담의 죽음을 통해서 나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소망을 발견했다. 아담은 아무것도 안 하고 거기 있었을 지 모르지만 아담은 나를 가르쳤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목욕시키고 면도를 시키고 이를 닦아주고 옷을 입히고 아침 식탁으로 그를 데려다 주고 숟가락질을 도와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통해 그가 받을 수 있었던 풍성한 축복의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3.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생명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여야 합니다.
오늘날 신앙인 장애인은 5%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장애인교회의 수는 농아인교회 1백 20여개, 맹인교회 20여개, 지체장애인교회 40여개 등이 있다고 합니다. 장애인의 교회접근이 어렵고 별다른 편의시설이나 배려가 아직도 낮은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가장 심각한 장애는 육체적 장애가 아닙니다. 영적 장애입니다. 눈을 뜨고 있지만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40-41절 한번 읽겠습니다. 누가 진정 소경입니까? 바리새인들입니다. 예수님이 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신 것은 무엇입니까? 영적 장애입니다. 오늘 시각 장애인의 육체적 눈 뿐만 아니라 영안을 열어 줍니다. 35이하를 보십시오.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의 고백을 보십시오. (1)처음은 사람이라고 주님을 불렀습니다.(11) (2)그는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불렀습니다.(17) 그러나 이제 (3)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였습니다.(38) 예수님을 영접한 후 이 사람의 삶이 얼마나 변했겠습니까? 기적을 체험하지 않았습니까?
장애를 장애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금 발전하면 차이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장애 역시 하나님이 주신 기회로 은혜, 선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렇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겠지요. 그러나 장애는 결코 내가 장애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적어도 내 자신에게 있어서는 장애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장애는 때로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일 수도 있습니다.
디모데 전저 4장 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딤전 4:4)" 우리가 장애도 기쁨으로 받으면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고 행복을 방해하는 것도 아니고, 불편한 것도 아니고 저주받은 것도 아니고 숨겨야 할 것도 아닙니다. 신체가 손상되고, 정신이 손상되었다 하더라도 개개인이 갖고 있는 능력에 따라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며, 사회에 진출하여 저마다의 존엄을 누려야 합니다. 비록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중증의 장애인도 그들이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사회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며, 비장애인들과 부딪기며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장애가 있던지 없던지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며,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께서 이 시대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실명, 이는 매우 끔직한 일이기도 하고, 회복할 수 없는 절망을 가져다 주기도 하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실명을 한 직후, 아니 실명을 했다는 것을 깨달은 직 후 어느 기간 정도는 심각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에게는 육의 눈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혜의 눈,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영의 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리고 이 눈이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인생을 180도 바뀌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위력이요, 예수 그리스도가 가져다 준 최대의 선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육체적 장애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장애 요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애가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송명희 시인의 간증을 들었을 것입니다. 찬양을 들었을 것입니다. "나 가진 제물 없어도 ....공평하신 하나님" 건강한 사람이 이 찬양을 부를 때는 별 은혜가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이 부를 때 얼마나 감동을 줍니까? 눈물샘을 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헬렌 켈러는 “당신은 때때로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두 눈을 뜨고 있지만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주께서는 제 영혼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수많은 찬송시를 지은 화니 크로스비 여사는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는 평생을 장님으로 살면서 찬송시를 무려 8천 여 편이나 썼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에도 24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주 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204장).
화니 크로스비의 행복은 주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비록 앞을 볼 수 없는 불행한 처지에 있었지만 그는 주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따라가는 감격으로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시각 장애인으로 박사 1호가 된 강영우 박사가 일리노이 대학 교수로 부시 행정부에서 교육부 산하 전국장애인자문협회 의장(차관보급), 대통령의 백악관 종교 및 사회봉사 부문 자문위원으로 내정되었습니다.
그분은 열다섯 살 때 축구를 하다가 공을 맞아 앞을 못 보게되었습니다. 망막이 떨어져나간 것이었습니다. 시력을 잃은 후 5년 간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불운했던 시기였습니다. 사고 1년 전에 아버지를 잃었는데, 어머니마저 아들이 실명한 데 충격을 받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또 부모를 대신해 공장에 다니면서 동생들을 돌보던 누나마저 과로로 사망했습니다. 학교도 다니지 못하게 되었고 당장 먹고 살길이 없어 여동생은 고아원으로 보내지고 남동생은 남의 집 철물점으로 보내졌습니다. 2년 동안 병원 치료를 받았고 2년간 하나님에게 기도로 매달렸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결국 1년간 점자와 한글 타자를 배워 맹학교 중등부에 들어갔습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 고통을 당하느냐’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팔자를 탓하며 세상을 비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앙으로 절망의 늪에서 일어났습니다. 연세대학에 입학하려 했습니다. 원서접수를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NCC 총무였던 김관석 목사님의 도움으로 결국 입학하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가려고 했습니다. 국제로터리 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았지만 당시 장애가 해외유학 결격사유라 학생여권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장애인 최초로 정규 유학생이 될 수 있었고 한국 최초의 맹인 박사가 되었습니다.
결혼을 하려고 했습니다. 숙명여대 영문과를 나오고 미국에서 유학한 석은옥씨입니다. 부모가 결혼시키겠습니까?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모를 끝까지 설득해서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큰아들은 하버드대를 나와 지금은 하버드 의대 안과전문의 과정을 밟고 있고 작은아들은 시카고대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하고 듀크대 법대에 진학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시각장애라는 역경을 극복하고 박사가 되고 대학교수가 되었으며 두 아들을 훌륭히 키워 내고 남부러울 게 없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세계장애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루스벨트재단 고문으로, 국제재활교류재단 회장으로 활동하며 장애인을 위한 사회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 유엔사무총장 등 세계 지도자들을 움직여 사회봉사를 하고있는 세계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실명을 하고 한때 세상을 원망했던 그가 이제 실명을 도구로 해서 세상에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저도 앞을 못보는 장애자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것은 재활을 통해 제게 주어진 시련과 역경을 축복으로 바꾸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난 속에서 주님의 얼굴을 보았고 인간의 한계상황에서 주님의음성을 들었습니다. 한때 원망했던 하나님이 선한 목자가 되어 고난을 승리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생애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이승리의 메시지를 학교와 교회에서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게 장애를 주셨지만 이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와 필요성을인정하고 내 약점을 자랑할 수 있는 용기와 신앙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장애인이 장애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 우리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2-3)
2.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이 하나님의 쓰임받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장애인 입장에서 도와 주어야 합니다.
3.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생명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여야 합니다.

장애, 장애가 아닌 인생/요한복음 9:1-7/김필곤 목사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306 요한복음 생명의 떡 예수 요4:26-35  우제돈 목사  2010-04-10 2849
305 요한복음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1:17-30  우제돈 목사  2010-04-10 2198
304 요한복음 나중이 더 좋은 포도주/ 나중이 더 좋은 사람 요2:1-11  이정수 목사  2010-04-04 3337
303 요한복음 예수 믿는 기쁨이 있습니까? 요10:10  이정수 목사  2010-04-04 2414
302 요한복음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요5:1-16  이정수 목사  2010-04-04 2989
301 요한복음 경계를 넘어서 요4:5-15  정용섭 목사  2010-03-30 2275
300 요한복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요14:1-6  조용기 목사  2010-03-29 3618
299 요한복음 진리의 성령 요16:5-16  우제돈 목사  2010-03-23 2217
298 요한복음 또 다른 양들 요10:7-16  우제돈 목사  2010-03-23 1663
297 요한복음 우리는 서로 사랑합니다. 요13:34-35  김필곤 목사  2010-03-21 2694
296 요한복음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는 믿음 요4:46-54  김필곤 목사  2010-03-21 2845
295 요한복음 부활의 주님을 만나자! ..... 요20:1-18  이정원 목사  2010-03-17 2447
294 요한복음 사랑과 계명 요14:15-21  정용섭 목사  2010-03-13 3514
293 요한복음 보이지 않는 현실성 요20:19-29  정용섭 목사  2010-03-13 2313
292 요한복음 보혜사 성령님 요14:25~26  조용기 목사  2010-03-12 3708
291 요한복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요15:1-4  조용기 목사  2010-03-12 4162
290 요한복음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요1:1-14  우제돈 목사  2010-03-11 2696
289 요한복음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라 ..... 요13:12-17  이정원 목사  2010-03-03 2184
288 요한복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요2:1∼11  우제돈 목사  2010-02-27 3450
287 요한복음 내 나라는 요18:33∼38  우제돈 목사  2010-02-27 2193
286 요한복음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요14:15-26  정용섭 목사  2010-02-16 2521
285 요한복음 인생 경기장에서 성도가 누리는 기쁨 요16:20-24  김필곤 목사  2010-02-14 2330
284 요한복음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평안을 누리는 삶 요14:25-31  김필곤 목사  2010-02-14 3017
283 요한복음 누가 내 어머니인가? 요19:25-27  정용섭 목사  2010-02-10 3341
282 요한복음 저 분은 주님이십니다! 요21:1-14  정용섭 목사  2010-02-10 2483
281 요한복음 죄인을 구원하시는 예수님 요4:4~10  조용기 목사  2010-02-08 3261
280 요한복음 길을 찾는 사람 요14:1~6  조용기 목사  2010-02-08 2753
279 요한복음 가장 귀중한 만남 요1:35-42  김필곤 목사  2010-02-06 3045
278 요한복음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요20:11-18  김필곤 목사  2010-02-06 2513
277 요한복음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요20:24-29  이정원 목사  2010-02-03 2362
276 요한복음 마리아의 나드 향유 요12:1-8  정용섭 목사  2010-01-29 7625
275 요한복음 성도의 신분 변화 요3:1~15  조용기 목사  2010-01-27 2459
274 요한복음 주님의 은혜 요1:1-18  최장환 목사  2010-01-23 2419
273 요한복음 포도주 사건의 실체와 의미 [2] 요2:1-12  정용섭 목사  2010-01-20 4682
272 요한복음 빚단련 요19:30  조용기 목사  2010-01-18 1684
271 요한복음 부족한 중에 감사하는 믿음 요6:4-13  김필곤 목사  2010-01-16 2913
270 요한복음 서로 사랑하라 요15:9~13  박노열 목사  2010-01-02 1900
269 요한복음 성만찬 공동체 요6:52-59  정용섭 목사  2009-12-29 2957
268 요한복음 하늘생명의 밥 요6:22-33  정용섭 목사  2009-12-29 2465
267 요한복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 요9:1~7  조용기 목사  2009-12-29 2458
266 요한복음 니고데모의 고민 요3:1~17  조용기 목사  2009-12-29 8113
265 요한복음 의미의 반석 요1:1-18  길희성 형제  2009-12-28 1967
» 요한복음 장애, 장애가 아닌 인생 요9:1-7  김필곤 목사  2009-12-26 2864
263 요한복음 이때를 위하여 ~ 요12:20~30  박노열 목사  2009-12-25 1611
262 요한복음 참빛 요1:9-13  강종수 목사  2009-12-20 1953
261 요한복음 사랑의 계명과 기쁨 요15:9-17  정용섭 목사  2009-12-15 2226
260 요한복음 사랑과 행복 나누기 요3:16  조용기 목사  2009-12-14 2552
259 요한복음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요18:33-40  이동원 목사  2009-12-10 2382
258 요한복음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요1:1-14  이동원 목사  2009-12-10 2719
257 요한복음 예루살렘 성전과 예수의 부활 요2:13-22  정용섭 목사  2009-12-10 1863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