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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의 고민

요한복음 조용기 목사............... 조회 수 8113 추천 수 0 2009.12.29 00: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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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3:1~17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8. 6. 15. 주일4부설교 원고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니고데모의 고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합니다.
한때 우리 성령운동 한다고 굉장히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한다고 이단이다 삼단이다 하는 굉장한 핍박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는 자는 마음속에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은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핍박하기 때문에 괴롭고 우리가 받은 성령의 체험이 진실하고 참되고 참 은혜로운 것인데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마음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이와 같이 똑같은 갈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대교의 최고기관인 산헤드린회의 정회원인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결론하고 자꾸 욕을 하는데 니고데모는 보니까 예수님이 비상한 분이고 이단이 아니라고 마음에 알고 있는데 전부 동료들이 예수님은 이단이고 죽여야 마땅하다고 말을 하니까 거기에 대해서 마음에 갈등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니고데모는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님은 보통 분이 아니라는 것을 마음에 알고 있는데 동료들은 그렇지 않다고 하니까 마음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본론>
1. 니고데모의 첫 번째 고민
첫째, 니고데모의 고민은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의 완고한 저항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엄청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대의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지 율법을 지키지 않고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단정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했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게만 하지 죄를 씻을 수 있는 힘이 없으니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그렇게 예수님이 가르치고 예수님은 당신이 하늘에서 온 하나님의 아들로써 당신은 구주로 오셨으니 당신을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니까 유대인들에게는 눈에 가시처럼 되고 이단과 이방인처럼 보여 졌었습니다. 그래서 엄청나게 예수님에 대해서 저항을 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그 가운데 있는 니고데모에게는 굉장한 마음에 고통과 갈등이요, 고민이었던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볼 때는 물론 율법을 지켜야 되겠지만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예수님을 이단으로 삼단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에 고통이 있을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각 종교마다 구원에 대한 이야기가 다릅니다. 이슬람교는 선행과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통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불교는 욕망을 끊으려는 자신의 극한의 노력을 통해서 해탈에 이를 수가 있고 낙원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불교에서는 참선과 같은 인간의 노력을 강조합니다. 샤머니즘은 신을 달래고 구슬리는 행위를 통해서 복을 받을 수 있고 좋은데 간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라마 불교도 공덕, 즉 덕을 쌓아야 지선의 경지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예수님을 이단이라 하며 완고한 저항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율법 행위가 아닌 자기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고 가르치고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온 구주라는 것을 주장했기 때문에 도저히 유대인들은 상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그들은 대적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율법에 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기들의 율법에 의한 행위에 자존심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그 영광스러운 은혜를 알고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목회하는 어느 목사님이 구원의 확신이 없는 어떤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병상에서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빨리 병원에 가서 그를 전도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누가복음 23장에 나오는 강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선생님,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함께 처형당한 강도 중 한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가 많은 죄를 지었으나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할 때 십자가상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선생님도 지금 강도처럼 회개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성을 확 내면서 "누구를 강도취급 하느냐? 내가 어디 강도냐? 나는 강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강도도 구원 받는데 선생님도 회개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니까 "나는 강도가 아니니까 회개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서 끝까지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지 아니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자존심 하나 때문에 자기는 강도가 아니고 강도보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종교는 가졌어도 구원은 받지 못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율법을 지킨 의인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완고하게 대항하고 반항했던 것입니다. 자기들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백일천하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적을 부인하려는 태도가 니고데모에게는 굉장히 괴로운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보니까 아무리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켜도 예수님이 행하던 그런 기적을 본적이 없습니다. 율법을 행해서 하나님께 인정받았으면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나야 될 것인데 유대인들이 아무리 율법을 지키면서 기도해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 것을 보니까 하나님과 통하지 않는 것을 알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무나 괄목한 기적을 행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통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보낸 분이 아니고는 이런 기적을 행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하루는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어스름한 달밤에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예수님 계신 곳에 숨어서 찾아온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2절에 보면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니고데모는 비록 산헤드린회원의 회원이요, 율법의 선생이었지만 완고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행하는 기적을 볼 때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고는 절대로 이런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정체성을 그는 마음속에 깨달아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는 이런 일이 없으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은 정체불명의 사람이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죄인이고,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 구원도 받지 못하고 하나님과 통하지도 아니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니고데모의 가슴속에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빠졌습니다. 자기는 분명히 하나님께로부터 온 분이 아니고는 이런 기적을 행할 수 없는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율법을 주장하고 지키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 가운데 갈등을 느끼고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 니고데모의 두 번째 고민
둘째로, 니고데모의 고민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거듭나야 하늘나라에 간다는 말에 기절초풍을 했습니다. 자기는 내내 가르친 것이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어야 행위로써 구원을 받는다고 했는데 예수님은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듭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말씀했는데 니고데모는 영적인 일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는 깜짝 놀라서 주님을 쳐다보고 정색을 하고 "주님 사람이 늙어서 어떻게 거듭납니까?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태어나야 되는 것입니까?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그는 영적인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3:4~6)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하기를 "하늘나라 가는 사람은 종류가 다르다. 세상에 아담의 후예들은 모두다 영이 죽고 육만 남아있는 사람인데 육을 통해서는 하늘나라에 올라갈 수가 없다. 죽은 영이 도로 살아나서 새사람이 되는 거듭나는 역사가 일어나지 아니하면 안된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태어나야 영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예수님이 가르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니고데모가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는 육으로 태어나서 육의 생각인 율법을 지켜야 구원 받는다고 하는데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예수를 통해서 거듭나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 때문에 기가 막힌 것입니다. "도대체 이 일일 왠일인가. 내가 어머니 뱃속에 이 늙은 나이에 들어갔다가 도로 태어날 수 없는데 이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야 된다고 하니 이 왠 말인가. 또 그냥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된다. 물과 성령은 또 무엇인가." 그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걱정 근심이 꽉 들어찼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고 교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거듭나지 않고 육으로써 아무리 훈련을 해도 그것은 빛난 육체에 불과한 것입니다. 육체에 좋은 옷을 입히고 화장을 하고 향수를 뿌린다고 해서 육체가 변화되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속이 달라져야 사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허수렁한 옷을 입고 치장을 안해도 속이 달라지면 달라지지 겉을 아무리 꾸며 놓아도 속이 달라지지 아니하면 변화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나는 옛날에 목포에 부흥회를 갔는데 목포에 집사님 한분이 양손에 손가락이 없이 몽당손을 가지고서 헌금을 거둬요. 그래서 하도 이상해서 예수를 필하고 난 다음 그 집사님을 사무실로 불러서 물었습니다. "왜, 몽당손이 되었습니까?" 그러니 그 사유를 설명하기를 하도 도박이 좋아서 자나깨나 도박 생각밖에 없어서 부모가 유산으로 준 재산 다 도박으로 말아먹고 나중에는 집안에 있는 물건 다 갖다가 도박을 말아 먹으니까 그 형제들이 잡아 가지고서 도박을 못하기 위해서 작두에다가 손가락을 넣어서 작두로 밟아 버렸습니다. 열 손가락이 작두에서 달아났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아물 때까지 붕대를 감아놓고 있다가 아물고 나니까 손가락이 없는 몽당손으로 또 도박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자기 부인에게 돈 안 빌려 온다고 주인을 죽이겠다고 하므로 부인이 달아났습니다. 달아났는데 끝까지 따라가서 산에서 붙잡아 가지고서 바위 끝으로 끌고 가서 너는 죽으라고 바위에서 밀어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부인이 마지막으로 내가 기도 한번 하고 죽을테니까 기도할 때까지 밀어내지 말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 기도해라! 기도하면 내가 밀어 떨쳐 버리겠다." 그 부인이 간절히 기도하는데 "하나님, 저는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가니까 여한이 없습니다만 이 사람은 도박을 하다가 이 도박에 미쳐서 살다가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질 것이니 너무나 불쌍하니 제가 죽더라도 이 영혼을 구원하여 주시옵시고 이분에게 행복을 달라"고 기도하니까 아무리 목석같은 인간도 죽는 부인이 자기를 위해서 흐느끼며 기도하는데 마음이 감동이 되어 "내가 정말 미친 사람이고 못난 사람이구나." 그래서 부인이 기도하다가 들으니까 뭐가 바삭 하더랍니다. 돌아보니까 몽당손을 입으로 깨물어 가지고서 피가 줄줄 흘러요. 그러면서 "내가 각오하고 새사람이 되겠는데 아무리 결심을 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울어도 못하고 힘써도 못하고 애써도 안 된다. 작두에 열손가락을 다 잘라 버려도 마음속에 도박하고 싶은 생각은 여전히 있으니 도박을 할 수 밖에 없으니 날 좀 변화시켜 주세요.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시기에 당신이 이렇게 선하고 착한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까? 나도 좀 데려다 주십시오." 그래서 그 부인이 목포 순복음 교회로 데려갔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그는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자 속이 변화되어 버리고 만 것 입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도박이 사라지고 도박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고 부인을 미워하던 생각도 없어지고 새사람이 되어서 그 교회에 평신도 같이 되고 그 다음에는 집사가 되어서 몽당 손으로 헌금을 거두면서 봉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열 손가락 다 잘라도 속이 변화 안되면 여전히 그 사람인 것입니다. 손가락 없는 도박쟁이인 것입니다. 그러나 손가락을 다 자르고도 도박쟁이로 남아있는 그 사람이 예수님이 들어와서 거듭나니까 새 사람이 되니까 옛사람은 사라지고 새사람으로 변화되자 도박을 하지 않는 훌륭한 크리스챤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러므로 왔다갔다 한다고 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인간의 힘으로 아무리 지키려고 한다고 해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야 되는 것입니다. 속이 새사람이 되어야 되는데 어떻게 새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영국에 유명한 부흥사였던 휫필드는 청년 시절에 죄악 가운데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죄에서 벗어나 구원받길 원했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죄악에 물든 모든 생활을 스스로 금지 했습니다. 사치를 거부하고 누더기 옷을 입고 최소한의 음식만 먹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은 금식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주었으며 밤마다 기도로 지새곤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러한 행동을 해도 마음에 평안이 오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존 웨슬리를 만났습니다. 유명한 부흥사인 존 웨슬리를 만나서 그에게 자기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존 웨슬리가 「영혼 속의 하나님 생명」이라는 책을 하나 주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휫필드는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거듭나지 아니하면 절대로 힘쓰고 애쓰고 노력한다고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길로 그는 주님께 엎드려서 "주님, 성령으로 거듭나게 해 주시옵소서. 내가 죄를 회개하오니 예수님 내 안에 들어와서 나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기도했는데 마음에 성령이 임하시고 놀라운 평안이 다가오자 굉장한 변화가 다가와서 그는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훗날 그가 부흥사가 되어서 수많은 지역을 다니며 전도 할 때에 가는 곳마다 '당신은 거듭나야 한다'고 외친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물은 회개를 말하는데 회개하면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거듭나지 못합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육신으로 태어날 때도 우리의 힘으로 태어나지 못하지 않습니까? 부정 모열로 어머니 속에서 10개월 지내서 자연히 태어나는 것이지 우리 힘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태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거듭나는 것도 우리의 힘으로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성령이 오셔서 거듭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변화 받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7절로 9절에 예수님께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신비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 보고 "저 밖을 바라보아라." 바람이 마침 확 부니까 나무가 흔들흔들 하고 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춤을 춥니다. 안에서는 바람이 부는 것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무를 보니까 나무가 출렁거리고 잎사귀가 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보니까 바람이 부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거듭난다는 것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가 없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서 그 사람이 변화되면은 사람의 행동에서 변화가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악을 좋아하던 사람이 선을 좋아하고 세상을 좋아하던 사람이 하늘나라를 좋아하고 교회를 미워하던 사람이 교회를 찾아오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는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그를 보고 '아, 저 사람 성령으로 거듭났구나.' 그렇게 알 수가 있지 사람이 임의로 불며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 나무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보니 나무가 바람에 불리는 것을 알 수 있고 바람이 있는 것을 알지 않느냐. 조용하면 바람이 불지 아니하면 나무가 가만히 있을 것 아니냐. 바람이 불면 나무가 흔들리지 않느냐. 사람에게 아무 변화가 없으면 아무리 종교를 믿어도 성령이 역사했다는 증거가 없지 않느냐. 성령이 역사했다는 증거는 변화가 다가오는 것이다. 사람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야 거듭났다고 할 수가 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3년 반 동안 따라 다녔지만 변화가 안다가 왔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날에 열흘 동안 기도하니까 하늘에서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들렸었습니다. 성령은 바람과 같습니다. 강한 바람같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에게 믿음, 소망, 사람, 의 평강, 희락을 주시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선과 온유와 절제 같은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성령 안에서 변화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변화 받지 아니하면 믿었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교회 왔다 갔다 하면서 변화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 이름만 가지고 세상에서 세상을 따라 살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이 자랑을 따라 살므로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고 예수쟁이라고 욕을 얻어먹고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비평하게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거듭나지 아니하고 변화되지 아니하고 기독교는 이름만 가지고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세상에 평론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성령께 의지하면 반드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거듭나는지 그 방법은 모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신비에 속한 것입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창문 안에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나무가 흔들리는 것만 보고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변화 얻는 것을 보고 성령이 역사한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령이 오셔서 여러분을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회개하면 성령이 오셔서 여러분을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변화시키면 먼저 내가 알고 이웃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 말하기를 "예수 믿고 중생해서 집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개가 안다"고 말했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개를 발로 차고 개를 욕을 하고 하던 사람이 예수 믿고 나면은 개부터 벌써 쓰다듬어 주고 사랑해 준다는 것입니다. 변화가 벌써 환경에서 다가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킨다고 애를 쓰면서 위선의 생활을 살았고 변화된 체험을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유명한 소설가였던 톨스토이는 「나의 회심」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5년 전 나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나의 전 생애가 변했다. 이전에 욕망 하던 것을 욕망하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이전에 구하지 않던 것들을 갈구하게 되었다. 이전에 좋지 않게 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중요한 것으로 보이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것들이 이제는 중요한 것이 되었다. 나는 소위 행운의 무지개를 좇아 살았는데 그 허무함을 알게 되었다. 거짓으로 나를 꾸미는 것이나 여인들과의 타락한 생활이나 술 취해 기분 좋은 것이 더 이상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없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그전에도 정교회를 나온 교인이었습니다. 교인이었으나 변화가 없는 것이니 가짜였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 글을 쓸 때 5년 전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 변화 받아서 그가 거듭나게 됐다는 증거를 한 것 입니다. 왔다 갔다 하는 것이 크리스챤이 아닙니다. 여러분 속에 성령으로 변화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자 톨스토이는 새 인생을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님 믿고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서 변화 받은 것을 체험했습니까? 그것을 체험하고 있습니까? 체험하지 못했으면 "하나님이여 성령으로 거듭나서 내가 변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 됩니다. 억지로 지어먹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톨스토이가 말하는 것처럼 속에서부터 변화가 와서 옛날에 좋아하던 것이 지금은 좋아하지 않게 되고 옛날에 세상이 즐겁던 것이 즐겁지 않게 되고 옛날에 더럽던 것이 이제는 좋아하지 않게 되고 세상을 따라가던 것이 하나님을 따라가게 되고 옛날에 오기 싫던 교회가 오게 되고 읽기 싫던 성경이 읽게 되고 듣기 싫던 설교가 듣기 좋게 되고 스스로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자기도 깜짝 놀랍니다. 이런 성격이 내게 없었는데 내속에 어떻게 이렇게 변화가 다가오느냐. 자기도 놀란 그러한 생활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진실로 예수 믿는 것입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교회 왔다 갔다 하고 아무리 종교를 가져도 아무리 율법을 지켜도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이 영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토레이 박사는 "성령 받기 전에는 모든 것이 남의 탓으로 보였으나, 성령을 받으면 다 내 잘못으로 느껴졌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령 받기 전에는 육으로 살 때는 모든 것이 나라 탓이요, 이웃 탓이요, 남편 탓이요, 아내 탓이요, 부모 탓이였는데 성령을 받고 변화 되니까 내가 깨어지고 내가 변화 받으니까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구나. 스스로 회개하고 겸손하고 낮춰지게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3. 예수님이 깨닫게 하심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변화 받을 수 있는 길을 보여준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구약성경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약성경을 통해서 니고데모에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요3:14-15)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주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다가 하나님이 불 뱀을 보내서 물리게 하시매 수많은 사람이 뱀독이 올라서 죽었습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나와서 회개하고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하니 모세가 기도하니 하나님이 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매달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높이 매달고 "누구든지 뱀을 쳐다보는 사람은 뱀독에서 해방이 된다"고 하니까 뱀독이 올라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놋 뱀을 바라보자 마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놋뱀에서 해방되고 다 죽음에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아담과 하와가 뱀에게 물려서 사망의 독이 올랐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에게 속아서 선악과 따먹고 사망의 독이 올라 그 후손들 대대로 뱀독으로 죽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모든 세계는 사망에 묶여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고 마음으로 죄의 노예가 되고 육체적으로 죽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누가 이 뱀독에서 해방시킵니까? 종교가 해방시켜 줍니까? 아니요. 율법 행위가 해방시켜 줍니까? 아니요. 인간의 노력과 수단으로 해방됩니까? 아니요. 이 뱀독을 고쳐줄 자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하기를 뱀독을 고쳐야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을 수 있으니까 내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높이 십자가에 들려서 너희들 모든 죄를 다 짊어지고 이 독을 내 보혈이 능력으로 청산해 버리고 말 것이니 남녀, 노유, 빈부, 귀천 할 것 없이 나를 바라보고 믿는 자는 성령의 능력으로 죄악의 독이 해소되고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민수기 21장 7절로 9절에 바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야훼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 하였사오니 야훼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나도 뱀처럼 매달려야 된다. 내가 너희를 위해서 마귀의 모든 독을 해소하기 위해서 뱀처럼 매달릴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3절로 15절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누구든지 남녀, 노유, 빈부, 귀천, 동서양을 막론하고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그리스도를 쳐다보고 믿는자마다 거듭나서 변화를 받고 구원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거듭나야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새롭게 된 사람은 말도 새롭게 하고 생각도 새롭게 하고 행동도 새롭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새롭게 되지 않은 사람이 아무리 새로운 말로 말을 하려고 해도 안되고 새로운 생각을 하려고 해도 안되고 새로운 행동을 하려고 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됩니다. 새로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죄사함을 받고 성령이 와서 거듭나면 새로운 사람이 되고 새말을 하고 새 생각을 하고 새로운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니고데모에게 그 길을 보여준 것입니다. "네가 율법을 지켜서 구원 받기도 하지만 육의 사람이 아무리 율법을 지켜도 빛난 육의 사람이 되지 영의 사람은 안된다. 거듭나야 된다. 거듭나면 자기 힘으로 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자연적으로 율법을 지키게 되는 것이다. 자연적으로 율법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좋아서 해야지 억지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거듭나기 위해서는 니고데모야 예수를 믿어야 된다. 십자가에 못박힌 나를 믿어야 된다." 그 성경에는 니고데모가 그날 믿었다는 말은 없는데 나중에 보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을 때 그 시체를 아리마데 요셉이 내려서 무덤에 넣으려고 할 때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을 가져와서 그 몸에 바르는 일을 도왔던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속으로 믿고 거듭난 체험을 했다고 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마다 구원을 받는다. 정말 여러분 오늘날 은혜의 시대에 얼마나 좋습니까? 행함으로 구원 받으려면 행할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율법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여러분께서 모두다 성경에 기록된 613개의 육법을 다 지킬 사람 누가 있는 것입니까? 그중에 간추린 십계명도 지킬 사람이 별로 없는데 613개의 율법을 다 지키고 하나님 앞에 통과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율법 행위로 구원받을 사람은 없어요. 천하에 없어요. 율법 종교가 사람을 구원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믿음으로 변화된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변화를 누가 받나요? 특별한 사람이 받나요? 성경에는 믿는 자마다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로 17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은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주어졌으나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 준것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은 율법에서 봐서 심판해서 정죄해서 지옥으로 보냅니다만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피로써 용서하고 보혈로 씻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롭게 만들어 구원해 줄테니 내게로 오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서 왔고 남녀, 노유, 빈부, 귀천을 차별하지 아니하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는 구원을 얻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을 수가 있지 않습니까?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도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라"
우리 행위로 구원 받았으면 우리가 자랑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선물은 공짜로 주는 것입니다. 우리 굿피플이 저 어려운 동남아 사람들에게 가서 쌀과 약과 아름다운 것을 그냥 선물로 공짜로 준것처럼 주님은 우리의 행위를 따라서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선물로 믿는 자마다 공짜로 주시는 것입니다. 안 믿으면 못 받아요. 믿으면 받을 수가 있어요. 믿으면 하겠네. 주 예수만 믿어서 그 하신 일을 믿고 주께 나아가면 구원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육을 받은 사람도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도 유식한 사람도 무식한 사람도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내 구주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로 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예수님이 나의 구주된 것을 마음에 믿고 예수님은 나의 구주라고 내 입술로 고백하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당장 와서 거듭나게 만들어 주고 변화 받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아닐 수 있습니까?
찬송가 135장 "갈보리 산 위에" 는 조지 버나드 목사님이 작사, 작곡한 곡입니다. 그는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1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슬픔과 고통을 오직 믿음으로 이겨냈습니다. 어느 날 조지 버나드 목사는 십자가에 대해 집중하며 묵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십자가 너무 험하다. 바라보기도 괴롭다. 그 다음에는 고통 받는 십자가를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이 몸 찢고 피흘려 얼마나 고통을 당했는가. 그렇게 묵상하면서 기도를 계속하고 있는데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의미가 마음에 너무나 명확하게 새겨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홍수처럼' 십자가의 은혜가 쏟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때 즉시 펜을 들어 쓴 것이 바로 이 찬송입니다. 특별히 3절에서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를 뜨겁게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면서 불 뱀에 물려 고통을 겪을 때 모세가 광야에서 든 뱀을 바라봄으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은 그와 같이 자신도 십자가에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보혈을 의지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조지 버나드 목사는 십자가를 바라보자 구원의 은혜가 비와 같이 마음에 쏟아졌다고 말한 것입니다.
찬송가 135장 '갈보리산 위에' 3절을 우리 다같이 한번 불러 보십시다.
험한 십자가에 주가 흘린 피를 믿는 맘으로 바라보니
나를 용서하고 내 죄 사하시려 주가 흘리신 보혈일세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기독교 신앙이란 십자가의 복 예수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끌어안고 사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아침에도 십자가를 바라보고 점심때도 십자가를 바라보고 저녁에도 십자가를 바라보고 자나 깨나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끌어안고 주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 보혈의 은혜, 성령의 은혜가 비와같이 쏟아져서 우리를 거듭나고 변화 받고 새로워지고 새로워지고 용서받고 또 용서받고 하루에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를 받고 새로워지고 새로워지고 하나님께 가까워지고 그 십자가를 통하여 기도할 때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응답이 우리에게 쏟아지게 되고 우리가 하나님 성령으로 새 힘을 얻게 되고 능력을 얻게 되고 성령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끌어안지 않고 승리의 신앙생활을 할수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 끌어안지 않고 변화 받지 않습니다. 십자가 끌어안지 않고는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빛난 면류관 받을 때까지 십자가를 끌어안고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바라보고 그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선한 행위로 구원 받는 것 아닙니다. 집안의 혈통을 통해서 구원 받는 것 아닙니다. 교회나 교파를 통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다 수단이요, 목적이 아닙니다. 목적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바라보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예수만 바라보면 오늘 이 시간에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용서와 의와 영광을 받고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를 붙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결론>
인간의 구원은 율법의 행위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는 더러운 걸레 같다고 성경은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좋은 일을 행해도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더러운 걸레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믿고 거듭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행하는 행위는 아름다운 행위가 되지만 거듭나지 않고 인간의 힘으로 하는 행위는 더러운 걸레와 같은 것입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의 신비한 역사로 영생을 얻게 되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이 땅에 생이 끝나면 영원한 천국으로 당당하게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는 관념 없이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죽음의 그 순간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희망이 없는 절망한 사람은 죽음의 그 순간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우며 그 때 이후로 지옥에 떨어져서 영원히 영원히 지옥 불에서 고통 당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내가 감히 어떻게 지옥불 에서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으면 주께서 내가 다 이루었다. 내가 너 대신 고통 당하고 내가 네 대신 피를 흘리고 내가 네 대신 죽고 지옥불의 고통을 당하고 네 죄를 내가 다 갚았으니 나만 의지하면 내가 너를 은혜로써 구원 하겠다고 하시니 이 얼마나 좋은 복음인 것입니까? 이것이 복된 소식이요, 이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일평생을 율법을 지키며 살았고 율법주의로 살았지만 하나님과 교통이 안되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해본 적이 없었습니다만 예수님의 생애를 보고 감동하고 감격했습니다. 기사와 이적이 넘쳐나고 생명의 역사가 넘쳐난 것을 보고서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께서 오신 분인 줄 알고 그리스도에게 왔다가 의외로 율법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으므로 거듭나서 구원을 받는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예수를 바라보면 마귀의 사망에서 해방되고 구원을 받는 진리를 깨달아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체험한 것을 오늘 우리는 모두다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것입니다. 갈보리 십자가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지금도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를 구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성령의 역사로 거듭나고 변화 받게 되는 것입니다. 변화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 나무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거듭났는지 안 거듭났는지 알 수 없으나 우리 행위가 변화되고 마음의 생각이 변화되고 삶의 생각이 변화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의 변화의 역사가 일어난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변화 받으십시오.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되십시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흑암의 세계에서 건져 내사 그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긴 새로운 국적을 가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된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도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들이 아닙니까? 니고데모는 보통 사람보다 훌륭한 것은 율법을 엄숙하게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율법주의자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육을 아무리 장식해도 영이 되지 아니한 다는 것은 새롭게 태어나야 영이 되는 것이니 새로 태어나는 길은 예수 믿는 길밖에 없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아버지여 그러므로 육은 장식하지 말고 육은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성령으로 생각하고 성령으로 말하고 성령으로 행동하며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보혜사 성령님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합니다. 바람같이 불같이 생수같이 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마음을 사로잡아 주시고 성령으로 변화시켜 주시옵시고 새사람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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