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성도의 신분 변화

요한복음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459 추천 수 0 2010.01.27 13:39:50
.........
성경본문 : 요3:1~15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9. 1. 18. 주일3부 설교 (원로목사님)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성도의 신분 변화”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니고데모는 나이가 지긋이 들었습니다. 그는 바리새교인으로 한평생을 살았습니다. 바리새교인은 철저히 율법주의자들인 것입니다. 율법에 입각해서 모든 것을 보는 아주 매섭고 사나운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유대인의 관원이었습니다. 지위가 높았고 그로 말미암아 돈도 많고 부자였습니다. 또 성경은 말하기를 그는 유대인의 선생이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학자요, 높은 선생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율법을 지키고 관원생활을 하고 유대교의 선생으로 유대교를 가르치고 했지만은 그 마음속에 황량함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언지 모르게 마음이 텅 비었습니다. 허무하고 무의미하고 마음이 착잡합니다. 어떻게 해서 이 마음에 공허를 채울 수 있을까 싶어 연구하다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에 대한 족적을 살펴보니까 보통일이 아닙니다. 놀라운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는데 앉은뱅이가 걸어 나가며, 장님이 눈뜨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심지어 죽은 자도 살아나는 것을 보고 그는 결심을 했습니다. ‘이 예수님을 만나 보아야 되겠다.’ 그러나 자기 같은 신분으로 낮에는 만나볼 수 없고 밤에 어두울 때 어두움을 의지해서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가서 예수님을 만나자 마자 그는 하는 말이 “랍비여! 랍비는 하나님께로 온 선생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지 않고는 이런 표적과 기사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당장 말씀하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당신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같이 나이 많은 사람이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서 또 태어날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내가 말하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肉)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육으로 난 사람은 육을 아무리 잘 먹여도 육이고, 잘 입혀도 육이고 교육을 잘 시켜도 육에 불과한 것입니다. 육에서 변하지 않습니다. 소는 언제나 소지요. 닭은 닭이고, 개는 개고, 말은 말입니다. 육으로 난 사람은 언제나 육입니다. 성령으로 나지 않고는 하늘나라와 통하지 않습니다. 육과 영이 어떻게 통합니까? 안통하지요.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나서 죽은 영이 살아나면 하나님과 통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성령으로 거듭나는지 알 수가 없어요.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그렇게 니고데모가 물으니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심이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서 뱀에 물린 사람마다 바라보고 낫게 한 것처럼 나도 너희를 대신해서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높이 들려서 속죄제물이 될 터이니 나를 보고 믿는 자마다 거듭나게 만들어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론>
1. 새로운 피조물
여러분 우리 모든 예수 믿는 사람들은 거듭나서 첫째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피조물 아담과 하와의 자손인데 아담과 하와는 영혼이 죽었습니다.
성경에는 창세기 2장 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
범죄 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영혼이 죽고 나니까 이제는 육체가 온 몸과 마음을 다스립니다. 영적인 사람이 되지 않고 육적인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영혼이 죽은 상태로써 육은 감각적인 세계에 살고 이 세상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전혀 모르는 캄캄한 밤 속에 사는 것입니다.
노벨상 수상작가인 헤밍웨이는“인생에는 목적이 없다.그리고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물을 필요조차 없다. 나는 필라멘트가 끊어지고 전기 흐름이 끝난 텅 빈 전구와 같다.” 그리고 사냥총으로 머리를 쏴서 자살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영적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육체를 가지고 감각적으로 살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을 따라 사는 곳에는 결코 만족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몸의 가장 중심인 영(靈)이 죽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영이 죽었기 때문에 결코 만족이 없습니다.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돈이나 쾌락을 다 가진다고 해도 그것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일생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우리가 누렸던 지위, 명예, 권세, 돈, 평안, 쾌락은 안개와 구름같이 사라져 버리고 지금 없습니다. 영원한 것은 물질 속에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품에 안기지 않고는 결코 마음에 평화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져도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니고데모가 체험한 것이 그것입니다. 유대교 율법도 지키고 관원이 되어 높은 지위도 얻고, 돈도 가지고, 유대인의 선생으로써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도 마음에 텅 빈 마음, 공허한 마음, 무엇이든지 잃어버린 심정, 고독한 마음 이것을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어서 예수님을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하나님 없이 노벨상을 타도 노벨상이 마음에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우리 본체인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결코 평안함이 없습니다. 돈을 가져도 평안하지 않아요. 권력을 가져도 만족하지 않아요. 명예를 가져도 평안하지 않아요. 쾌락을 가져도 평안하지 않아요. 왜냐, 우리의 본체를 잃어버리고 어떻게 평안합니까? 어린 아이가 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손에 빵을 쥐고 있더라도 부모를 잃어버리고 산중에 혼자 내버려 놓으면 그 좋은 옷이 만족을 합니까? 그 빵이 그에게 맛이 있을 턱이 있습니까? 부모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어린아이는 울고, 울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추운 겨울날 벌거벗고 비바람이 눈바람이 치는 들판에 외롭게 서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얼마나 춥겠습니까? 추운 겨울 눈바람이 치는데 몸은 발가벗고 들판에 서 있으면 그 육체적 괴로움이 극한에 도달할 것입니다. 바로 영혼의 괴로움이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광야에서 벌거벗고 눈보라치는 곳에서 방황하는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그 영혼에 결코 평안과 만족과 기쁨과 영광이 없습니다. 더구나 이 세상이 끝나고 육체를 떠날 때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허무하게 사는 사람은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지는데 그 떨어지는 고통이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 마음에 허무와 공허, 외로움과 절망이 불길처럼 타오릅니다.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간구하기를 나사로를 보내어서 손가락에 냉수 한 방울을 축여 달라고 한 것입니다. 한 숟가락도 아닙니다. 냉수 한 방울입니다. 그처럼 생명수가 그리운 것입니다. 그처럼 좌절과 절망이 무서운 것입니다. 예수를 안 믿고 이 세상을 살다가 떠난다는 것은 너무나 몸서리나게 두렵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왜 제가 이 말을 하느냐면 하나님께서 한번 제게 그런 체험을 해주셨습니다. 예수님 없이 이 세상을 떠나서 가는 사람들의 절망을 마음속에 느끼게 해주었는데 정말로 너무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마음이 전혀 공허하고, 혼돈하고, 허무하고, 텅 비고, 외롭고, 무의미하고 좌절과 절망이 소용돌이치는데 그 가운데서 얼마나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이 있는지 나는 하나님이 나를 영원히 버린 줄 알고 정말 두려워했었습니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그러나 성령께서 말하기를 이것은 지옥에서 느끼는 고통의 지극히 적은 부분에 불과하다. 정말 지옥에 들어가 사는 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고 전도해서 한 사람이라도 지옥에 빠지지 않도록 말하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지옥에 가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지옥에 갈 바에는 차라리 안 태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운지 인간의 말로써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지옥인 것입니다.
오늘 영국에서는 무신론자들이 버스에 “하나님은 아마 없을 것이다. 마음껏 즐겨라!” 그 광고를 써붙여 놓았는데 하나님이 없으니 마음대로 즐겨라. 즐긴다고 즐거워지나요? 술이 영원한 쾌락을 줍니까? 마약이 영원한 쾌락을 줍니까? 음란과 방탕이 영원한 쾌락을 줍니까? 잠시 동안 즐거웠으나 그 후에는 뱀과같이 물고 독사와 같이 쏩니다. 희락이 많으면 슬픔도 더 크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인간의 즐거움은 언제나 잠시 반짝하고 그 다음에는 긴 밤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더구나 지옥은 영원한 절망과 고통의 처소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옥에 가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영이 살아나고 영적 세계를 깨닫고 믿음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옆에 우편 강도, 좌편 강도가 있는데 한 강도는 깨닫지 못하고 내내 예수님께 욕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강도는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주여, 주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 주님이 당장 말씀하기를 “오늘날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주인 것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 들이고 시인하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와서 하나님과 통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육은 영과 통하지 않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언제나 육이요, 하나님과는 절벽으로 담이 쌓인 것입니다.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으면 우리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과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굽니까? 우리의 고향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아야 비로소 행복합니다. 돈이 행복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쾌락이 행복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권력이 행복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명예가 행복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길은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 하나님으로 나가는 길이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5절로 6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물은 회개를 말합니다. 회개하면 예수님이 오셔서 성령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신령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육의 사람이 아니요, 영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 역사에 신유 역사를 크게 드러낸 김익두 목사님이 계시는데 젊었을 때는 무지무지한 깡패였습니다. 사람들이 시장에 나가면 성황당 앞에서 돌멩이를 던지고 기원을 하기를 “오늘 김익두를 안 만나게 해주시옵소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만큼 사나운 사람이고 모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김익두가 사람들에게 통지서를 보냈어요. “김익두는 죽었다. 장례 지냈다.” 사람들이 전부 박수를 치고 좋아했습니다. “어허~ 그 놈 잘 죽었다. 시원하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고 난 다음 보니까 두루마기를 입고 성경을 들고 시장터에 와서 예수 믿으라고 고함을 치는 것입니다. “저것 죽었다고 하는 게 왜 또 살아났냐?” 그래서 한 사람이 양동이에 물을 잔뜩 담아가지고서 머릿속에 확 부어 버렸었습니다. 옛날 같으면 절단이 났을 것인데 물을 털털 털고 그 사람을 정면을 쳐다보면서 하는 말이 “여보~ 당신 김익두가 죽었기에 다행이지. 옛 김익두였으면 당신 오늘 박살났어~ 김익두가 죽은 것을 고맙게 생각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김익두는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중생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우리가 죽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새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우리는 계산적인 삶을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육신으로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을 계산합니다. 내게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 내게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 도움이 안 되느냐. 계산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사는 사람은 계산하지 않고 믿음으로 삽니다. 주님이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안 된다면 안 됩니다. 오늘날 신앙이 자라지 못한 사람은 항상 육으로 살기 때문에 계산을 합니다. “십일조, 어이쿠 아까운 십일조를 왜내? 주일날 하루를 쉬어야지 왜 교회를 왜가? 봉사, 내가 왜 봉사를 해? 내 밥 먹고 무엇이 있느냐?” 계산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은 계산하지 않고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예수 믿고 의롭게 된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에 “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안 믿는 사람이 계산해 볼 때 산이 내 명령한다고 들려서 바다에 던질 턱이 없습니다.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마라. 그러나 믿는 사람은 무조건 하고 하나님 말씀 하시니까 그대로 된다고 믿고 산보고 물러가라고 믿음으로 명령하면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계산적인 인생을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사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고 거듭나지 않고는 절대로 신령한 사람이 될 수도 없고 영적 세계를 이해할 수도 없고 믿음으로 살수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러분의 옛날 삶은 지나가 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옛사람은 장례지내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태어나서 영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영적으로 통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찬송을 부르는 것도 영의 세계에 통하기 때문에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도 영적 세계로 통하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전혀 찬송과 기도가 없는 것은 영적 세계와 캄캄한 담이 막히고 통하지 않기 때문에 안 통하는 곳에 어떻게 찬송을 부르며 안 통하는 곳에 전화기 들고 고함쳐 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믿음이 약한 사람이 있고, 강한 사람이 있겠지만 그러나 약하면 약한 대로 강하면 강한대로 하늘나라와 통합니다. 교통이 있습니다. 교제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옛날에는 전혀 모르던 하늘나라를 알게 된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세상에서 술 먹고, 담배피고 부인을 때리고 마약중독에 걸려서 살던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교회를 나오기 시작하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들이 그를 찾아와서 조롱을 했습니다. “야! 너 우리하고 모이지 아니하고 너 교회가고 이제 가정 중심이 되었다 하는데 우리 물어보자! 너 예수 믿고 교회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성경은 누가 적었느냐?” “몰라.” “교회는 누가 세웠느냐?” “몰라.” “그 목사님은 무슨 설교 하더냐?” “몰라.” “봐라.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무슨 교회 간다고 야단이냐?” “그러나 한 가지는 내가 알아.” “뭐 아는데?” “술과 마약이 싫어졌어! 그리고 마누라를 때리고 애들을 겁주던 그 생활이 사라졌어. 마누라하고 애들하고 있는 시간이 좋아. 그리고 교회 가는 날이 기다려져. 나는 그것이 변화된 것을 알아! 그 이외에는 아직 아무것도 몰라!” 그렇습니다. 교리를 모르더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그 마음속에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내가 알고 남이 아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 말하기를 자기가 예수 믿는 것을 개가 먼저 알더랍니다. 왜 그러냐니까 평소에는 개가 오면 발로 차버리기 때문에 개가 주인만 오면 돌아앉았는데 예수를 믿고 집에 오니까 개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곁에 오더랍니다. 얼굴이 달라지고 느낌이 달라졌기 때문에 개가 먼저 알고 주인을 반겼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2. 새로운 국적
둘째로, 예수 믿으면 새로운 국적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국적이 다라지는 것입니다. 내가 며칠 전에 텔레비젼을 보니까 불란서 여인으로써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사는 이다도시 자매님이 인터뷰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불란서 여자로 태어나서 불란서에서 교육받았지만 한국 남자하고 결혼해서 한국 국적을 얻었다. 나는 국적이 한국 사람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인터뷰를 들으면서 눈도 파랗고, 얼굴도 하얗고, 머리도 노랗고 완전히 불란서 사람인데 국적이 한국 사람인 것입니다. 초창기에는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 사람으로 사람들이 인정하고 받아주기를 원한다는 말을 듣고 사람의 얼굴 모양새나 색깔이 문제가 아니라 국적이 중대한 문제구나. 그 분은 더 이상 불란서 법을 받지 않습니다. 한국 법아래 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국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얼굴이 달라지는 것 아닙니다. 작은 키가 커지는 것도 아닙니다. 몸무게가 무거운 사람이 말랑말랑 빼빼해지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무엇이 달라지느냐. 나의 국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마구의 나라 백성이 하늘나라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마귀의 나라 백성일 때는 하나님을 모릅니다.
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없으니까 마음대로 즐겨라. 영국의 버스에 무신론자들이 광고 낸 것처럼 하나님은 아마 안 계실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대로 즐겨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을 따라 마음대로 즐겨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정욕대로 살면 부패하고 행실이 가정하고 선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물적인 인본주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쾌락주의로 삽니다. 동물주의적인 인본주의 인생관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사람이 사는데 무슨 목적이 있느냐. 영원한 목적도 없고, 영원한 삶도 없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그냥 살다가 죽으면 그뿐이다. 정말 허무맹랑한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2절로 3절에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의 나라 백성일 때는 동물적인 인본주의로 살기 때문에 세상 풍조를 따라 살았습니다. 세상이 가는대로 따라 살고 내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아무도 육체를 제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결과 그들은 부패하고 부정하고 불안한 삶을 산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택해서 그 사랑의 아들나라로 옮겨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옛사람과 똑같이 얼굴도 같고 옷도 같이 입고 말도 같이 하고 몸무게도 같고 키도 같아도 속에 국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랑의 아들나라 백성이 되면 예수님의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로 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뭡니까?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는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수렁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면 구원받는 것입니다. 죄악에 빠져서 마귀의 올무에 걸려 허우적이는 사람을 해방시켜 주는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죄악에서 해방시켜 주고 세속과 마귀에서 자유를 주고 지금 병에서 고쳐주고 저주와 가난에서 해방시켜 주고 죽음과 절망에서 건져내 주는 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믿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오면 구원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꿈을 얻게 되고 희망을 갖게 되고 그런 마음에 자화상을 갖게 되는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면 이제는 세상을 섬기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2장 30절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첫째도 하나님 사랑, 둘째도 하나님 사랑, 셋째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해서 잘살려고 하면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경제적으로 오늘날 어렵습니다. 그런데 여기 성경은 말하기를 집을 구하라. 직장을 구하라. 돈을 구하라. 그렇게 말하지 않았었습니다. 먼저 하늘나라와 하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내가 더하여 주마. 순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봉사하고 하나님의 의인 예수님을 잘 믿고 모시고 받들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자동적으로 보호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집이 필요하면 집을 주시고 쌀이 필요하면 쌀을 주시고 돈이 필요하면 돈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력하고 무능력한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면 다른 것은 자동적으로 더하여 주시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먼저 할 것, 먼저 하면 나중할 것은 그대로 다 따라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먼저 할 것을 먼저 하지 않기 때문에 나중할 것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오면 하늘나라 백성이 되면 하나님이 기르는 양입니다. 산이나 들에 내동댕이치는 양이나 염소가 아닌 것입니다.
시편 95편 7절에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지. 여러분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이 여러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여러분을 돌보시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눈에 안보이지만 하나님은 이 시간에 여러분의 목자로써 여러분을 돌보고 계신 것입니다.
시편 100편 3절에 “야훼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하나님 백성이요,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입니다.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이기 때문에 물 부족이 있을 수가 없고 양식의 부족이 있을 수가 없고 짐승에게 습격을 당하여 찢길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겠다고 했는데 사람들은 짐을 맡기지 않습니다. 짐을 내려놓지 않습니다. 짐을 내려놓지 않고 자기가 잔뜩 지고서 하나님 날 가볍게 걸어가게 해 주시옵소서. 짐을 책임져 주시옵소서. 주님은 짐을 내려놓아라! 내려놓아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짐을 내려놓으면 주님이 맡아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짊어지고 있으면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내려놓으면 주님이 짊어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이 우리를 기르시는 목자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느 경매장에서 그럴듯한 물건을 팔려고 나가서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갑니다. 값싼 경매장이니까.. 그런데 거기에 낡은 바이올린 하나가 왔습니다. 사람들이 껄껄 웃었습니다. “빵 하나 가격밖에 안되겠다. 다 낡은 바이올린에 줄도 다 헐었으니 그 낡은 것을 누가 사가느냐?”고 웃었습니다. 그러자 어느 할아버지가 한 사람이 오더니 바이올린을 좀 달라고 하더니만 바이올린을 켜는데 기가막힌 음악이 나옵니다. 바이올린이 잘된 것이 아니라 타는 할아버지가 음악가였었습니다. 사람들이 전부다 감탄을 하도록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난 다음에 그 경매장 주인이 “이 바이올린을 살 사람 손드세요?”하니까 가격을 평가하지 않고 사겠다는 사람이 손을 들었던 것입니다. 바이올린은 그 자체가 낡았고 줄이 다 낡았지만 타는 사람이 실력이 있어서 바이올린을 잘 타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좋은 음률이 난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낡은 바이올린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할 낡은 바이올린입니다. 우리에게 마귀에게 맡겨 놓으면 우리는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고 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받아서 인생을 타주는 이가 누굽니까?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들어 사용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이 비웃고 손가락질해도 주님이 여러분이 일류 인생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백성은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일류이기 때문에 일류의 손에 우리가 들리니 우리도 일류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학교 교육을 잘못 받았어도, 집안이 좋지 않았어도, 사회적인 지위가 없어도, 어렵고 고통스럽게 고학을 해서라도 예수를 믿으면 예수님이 그 사람을 들어 사용하십니다. 일류학교를 나오고 외국에 유학을 가고 학위를 많이 가지고 온 세상 사람이 박수치는 사람보다도 이 못난 사람을 주님은 들어서 머리가 되고 꼬리 안 되게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이 잘나서가 아니라 그를 사용하는 주인이 예수님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다. 나는 못나고 보잘 것 없지만 예수님이 나를 들어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나도 일류가 된다.” 왜 일류가 된다는 말은 소리가 적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고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이 누군가를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인이 예수님이면 우리가 주의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력한 분이 아닙니다. 저 하늘과 이 땅을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입니다.

3. 새로운 생명
셋째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신분이 어떻게 달라지느냐.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의 육체의 생명이 아니라 새로운 신령한 생명을 얻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가 예수 믿는다는 것은 그 실제적인 내용은 예수님이 날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짊어지고 나의 불의와 추악을 걸머지고 내 병을 짊어지고 내 저주를 짊어지고 내 죽음을 대신 짊어졌기 때문에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하나 된 체험을 우리는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4절로 5절에 “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침례 받는 것은 물이 바로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무덤에 예수와 함께 들어갔다가 물무덤에서 부활한 것을 상징하기 위해서 우리가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되 아직 신앙이 깊지 못한 사람은 예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 예수님이 날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구나. 그러나 신앙이 좀 깊어지면 아,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구나. 저 십자가에 예수님이 나와 함께 못 박혀서 나의 죄, 나의 불의, 추악, 나의 저주, 절망, 나의 질병을 다 대신 청산했구나.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와 하나된 것을 우리가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에서 우리가 살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활해서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4절로 6절에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것이 다 ‘함께’입니다. 나 혼자 죽고 나 혼자 장사지내고 나 혼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내 버리고 함께 부활하사 함께 하늘에 앉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믿고 사는 생활은 우리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오셔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그 전능한 능력으로 우리의 짐을 같이 짊어지시고 함께 시련도 통하고 고난도 통하고 영광도 함께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을 뿐 아니라 부활에서도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생명으로 우리가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삶의 주인이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값 주고 나를 사셨으니 이제 나는 내 것이 아니요, 예수님의 것입니다. 마귀에게서 예수님은 우리를 건져내 주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보혈로 죄 없는 분이 죄를 대신하고 부패하지 않는 분이 부패한 우리를 대신하고 병 없는 분이 병 있는 우리를 대신하고 저주받지 않은 그분이 저주를 대신하고 죽지 않은 그분이 죽음을 대신해서 우리와 더불어서 주님이 십자가에 죽고 장사지내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주인은 누굽니까? 우리를 위해서 값을 지불하고 살려주신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신 것입니다. 마귀가 주인이 아닙니다. 세상이 주인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이 주인이 아닙니다. 남편이 여러분 주인도 아니고, 아내가 여러분 주인도 아닌 것입니다. 날 위하여 죽었다가 날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뜻대로 우리가 살고 우리 주인을 섬기고 삽니다. 예수님이 나의 의로움이 됩니다. 나는 의로운 행동을 한 적이 없어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것밖에 없는데 예수님이 날 대신 죄를 다 갚아주고 의롭다 하는 도장을 받아서 우리에게 주며 네 것이다. 의로움의 도장을 주십니다. 의로움이 뭔지 압니까? 한평생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상태가 의로운 상태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는 상태가 의로움이고 마귀가 참소할 수 없는 사람이 의로움인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이런 의로움은 절대로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짊어지고 몸 찢고, 피 흘려 처참한 고통을 당하시고 그 값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을 값 주고 사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선물로 의롭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은 의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내가 값을 지불하고 의롭게 된 것 아닙니다. 행위가 없어, 값도 없는데도 그냥 주님이 의로움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의 성결입니다. 나는 거룩하고 깨끗하지 못합니다. 항상 더러운 생각하고 더러운 말하고 더러운 수렁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성결하게 살아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고 의롭게 된 것입니다. 성령이 여러분을 거룩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령이 여러분을 깨끗한 생각을 하게하고, 깨끗한 말을 하게하고 깨끗한 삶을 살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예수님을 찬미하고,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면 성령께 잡혀서 우리가 거룩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의 건강이 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내가 병이 들었든 불구자든 아프든 그것은 나의 체험이고 성경은 말하기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네가 나음을 얻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내가 성경말씀을 믿을 것이냐 내 경험을 믿을 것이냐. 계산적으로 살 것이냐? 믿음으로 살 것이냐?” 는 우리가 선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네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갔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예수님은 나의 건강이라고 생각하고 믿고 말하는 여러분 되십시오. 그리스도의 건강이 여러분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잘나서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여러분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 다같이 읽어 보십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원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부요하신 분인데 왜 이 세상에 집도 없이 정처없이 들에서 주무시고 얻어 잡수시고 살았습니까?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 때문에 여러분 때문에 예수님의 일생은 지극히 가난하게 태어났고 가난하게 살고 나중에 벌거벗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로 부요케 하기 위해서 가난하게 되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려 함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다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이제는 가난이 물러가고 저주가 물러갔습니다. 주께서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조용기가 그렇게 말한 것 아닙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함없는 주님께서 저희 가난하심으로 인하여 너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 했고 저가 십자가 걸머지므로 우리의 저주를 청산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복 있는 사람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복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믿으면 하나님 말씀대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믿으면 믿음이 실상이 되고 현실은 믿은 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증거가 있으면 그 증거대로 실체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 영원히 변치 않으므로 말씀을 믿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나는 영생을 얻었는지 안 얻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영생이 누굽니까? 영생이 바로 예수님이 바로 영생인 것입니다.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영생이 있고 예수님이 없으면 영생이 없어요. 순복음교회 나오기 때문에 영생을 얻는다. 어느 장로교에 나가기 때문에 영생을 얻는다. 아니에요. 교회는 예수님이 우리를 만나주는 장소에 불과한 것입니다. 영생은 예수님이 영생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에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영생은 예수님이 영생이기 때문에 예수를 내 구주로 모셔 들이고 내 구주라고 내 입으로 시인하면 모두 다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구주되십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시므로 나는 영생을 얻었다. 장차 영생을 얻을 것이 아니라 이미 영생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미 예수께서 부활이므로 예수를 마음에 모신 사람은 부활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장차 부활할 것이 아니라 이미 부활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장차 영생을 얻을 것이 아니라 이미 영생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여러분과 같이 계시면 여러분은 이미 부활과 생명을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선생님이 학생들 앞에서 꽃바구니를 들고 나왔어요. 그래서 “이것이 무슨 바구니니?” 그러니까 애들이 “선생님 꽃바구니에요. 꽃바구니” 그리고 선생님이 꽃을 다 옮겨놓고 난 다음 비린내 나는 생선을 잔뜩 집어넣고 난 다음 들어서 “이것은 무슨 바구니니?” “생선 바구니에요. 생선바구니” “똑같은 바구니인데 왜 전에는 꽃바구니라고 하고 이제는 생선 바구니라고 하니?” “전에는 내용이 꽃이고 지금은 비린내 나는 생선 아닙니까?” 그렇게 말했습니다. 맞았어요. 여러분 우리가 똑같은 나입니다. 조용기가 김용기도 안 되고 박용기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도 조용기고 예수 믿고 난 이후에도 조용기입니다. 그러나 내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속에 마귀가 들어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내가 누굽니까?” “조용기 세상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난 다음 묻습니다. “나는 어떠한 사람입니까?” “예수 사람입니다. 천국인입니다.” 세상을 가지고 있으면 세상 사람이고 천국을 가지고 있으면 천국 사람인 것입니다. 쓰레기를 담고 있으면 쓰레기 같은 인간이고 깨끗하게 만들었으면 정결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속에 누구를 모셨는가가 우리가 그와 닮아져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왔다 갔다 한다고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왔다 갔다 한다고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고 성결하게 되고 축복을 받게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있어야 우리가 중생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예수가 있어야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고 예수가 있어야 우리가 새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나 깨나 예수, 사나 죽으나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 우리 상상을 뛰어넘는 변화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우리는 그 변화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니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거듭났으니 거듭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생명을 얻었으니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야 되고 새로운 국적을 가졌으니 새로운 국적으로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예수 천국 내 천국.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은 영원한 영광중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꼭 마음속에 깊이 모시고 사십시오. 예수를 놓치면 천국도 놓치고 생명도 놓치고 지옥의 자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는 삶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고 텅비고 공허하고 허무하고 맹랑한지 여러분 체험 안 해본 사람 모릅니다. 지옥에 떨어지고 난 다음 후회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살아있을 시간에 허무맹랑하고 절망적이고 좌절이고 고통 가운데 빠진 사람은 예수를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환경이 여러분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없을 때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어렵고 거칠지라도 예수님이 계시면 예수님은 마른 땅에 냇물 같고 큰 곤비한 땅에 바위 그늘 같고 비가 올 때 우산 같고 우리의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다 같이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아버지, 예수 믿고 변화 받게 만들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신분이 변화 되었습니다. 아버지! 키가 변화된 것도 아니고 몸무게가 변화된 것도 아니고 이름이 변화된 것도 아니고 얼굴이 추인에서 미인이 된 것도 아닙니다. 우리 마음속에 주님이 들어오므로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을 감사합니다. 새로운 국적으로 가진 것을 감사합니다. 새로운 생명을 가진 것을 감사합니다. 모두다 예수님의 생명을 갖고 예수님의 국적을 갖고 예수님의 은혜 속에 살게 만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며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같이 있겠다고 하신 예수님, 오늘 이 자리에 와 계심을 감사합니다. 우리 속에 계심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몸속에 계심으로 우리는 예수 사람이 되고 하늘나라 사람이 된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 아직 예수를 모시지 않은 사람은 이 육체를 떠나기 전에 예수를 빨리 모셔서 그 절망적인 고독과 허무와 공허와 좌절과 고통 가운데 있는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306 요한복음 생명의 떡 예수 요4:26-35  우제돈 목사  2010-04-10 2849
305 요한복음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1:17-30  우제돈 목사  2010-04-10 2198
304 요한복음 나중이 더 좋은 포도주/ 나중이 더 좋은 사람 요2:1-11  이정수 목사  2010-04-04 3337
303 요한복음 예수 믿는 기쁨이 있습니까? 요10:10  이정수 목사  2010-04-04 2414
302 요한복음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요5:1-16  이정수 목사  2010-04-04 2989
301 요한복음 경계를 넘어서 요4:5-15  정용섭 목사  2010-03-30 2275
300 요한복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요14:1-6  조용기 목사  2010-03-29 3618
299 요한복음 진리의 성령 요16:5-16  우제돈 목사  2010-03-23 2217
298 요한복음 또 다른 양들 요10:7-16  우제돈 목사  2010-03-23 1663
297 요한복음 우리는 서로 사랑합니다. 요13:34-35  김필곤 목사  2010-03-21 2694
296 요한복음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는 믿음 요4:46-54  김필곤 목사  2010-03-21 2845
295 요한복음 부활의 주님을 만나자! ..... 요20:1-18  이정원 목사  2010-03-17 2447
294 요한복음 사랑과 계명 요14:15-21  정용섭 목사  2010-03-13 3514
293 요한복음 보이지 않는 현실성 요20:19-29  정용섭 목사  2010-03-13 2313
292 요한복음 보혜사 성령님 요14:25~26  조용기 목사  2010-03-12 3708
291 요한복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요15:1-4  조용기 목사  2010-03-12 4162
290 요한복음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요1:1-14  우제돈 목사  2010-03-11 2696
289 요한복음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라 ..... 요13:12-17  이정원 목사  2010-03-03 2184
288 요한복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요2:1∼11  우제돈 목사  2010-02-27 3450
287 요한복음 내 나라는 요18:33∼38  우제돈 목사  2010-02-27 2193
286 요한복음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요14:15-26  정용섭 목사  2010-02-16 2521
285 요한복음 인생 경기장에서 성도가 누리는 기쁨 요16:20-24  김필곤 목사  2010-02-14 2330
284 요한복음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평안을 누리는 삶 요14:25-31  김필곤 목사  2010-02-14 3017
283 요한복음 누가 내 어머니인가? 요19:25-27  정용섭 목사  2010-02-10 3341
282 요한복음 저 분은 주님이십니다! 요21:1-14  정용섭 목사  2010-02-10 2483
281 요한복음 죄인을 구원하시는 예수님 요4:4~10  조용기 목사  2010-02-08 3261
280 요한복음 길을 찾는 사람 요14:1~6  조용기 목사  2010-02-08 2753
279 요한복음 가장 귀중한 만남 요1:35-42  김필곤 목사  2010-02-06 3045
278 요한복음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요20:11-18  김필곤 목사  2010-02-06 2513
277 요한복음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요20:24-29  이정원 목사  2010-02-03 2362
276 요한복음 마리아의 나드 향유 요12:1-8  정용섭 목사  2010-01-29 7625
» 요한복음 성도의 신분 변화 요3:1~15  조용기 목사  2010-01-27 2459
274 요한복음 주님의 은혜 요1:1-18  최장환 목사  2010-01-23 2419
273 요한복음 포도주 사건의 실체와 의미 [2] 요2:1-12  정용섭 목사  2010-01-20 4682
272 요한복음 빚단련 요19:30  조용기 목사  2010-01-18 1684
271 요한복음 부족한 중에 감사하는 믿음 요6:4-13  김필곤 목사  2010-01-16 2913
270 요한복음 서로 사랑하라 요15:9~13  박노열 목사  2010-01-02 1900
269 요한복음 성만찬 공동체 요6:52-59  정용섭 목사  2009-12-29 2957
268 요한복음 하늘생명의 밥 요6:22-33  정용섭 목사  2009-12-29 2465
267 요한복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 요9:1~7  조용기 목사  2009-12-29 2458
266 요한복음 니고데모의 고민 요3:1~17  조용기 목사  2009-12-29 8113
265 요한복음 의미의 반석 요1:1-18  길희성 형제  2009-12-28 1967
264 요한복음 장애, 장애가 아닌 인생 요9:1-7  김필곤 목사  2009-12-26 2864
263 요한복음 이때를 위하여 ~ 요12:20~30  박노열 목사  2009-12-25 1611
262 요한복음 참빛 요1:9-13  강종수 목사  2009-12-20 1953
261 요한복음 사랑의 계명과 기쁨 요15:9-17  정용섭 목사  2009-12-15 2226
260 요한복음 사랑과 행복 나누기 요3:16  조용기 목사  2009-12-14 2552
259 요한복음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요18:33-40  이동원 목사  2009-12-10 2382
258 요한복음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요1:1-14  이동원 목사  2009-12-10 2719
257 요한복음 예루살렘 성전과 예수의 부활 요2:13-22  정용섭 목사  2009-12-10 1863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