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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불신앙 .....

요한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1855 추천 수 0 2010.11.09 12: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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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1:45-53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07·09·15

성도에게 일어나는 일은 그 어느 것 하나 무의미한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거기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깨어 있는 성도, 주님을 사랑하며 늘 교제하는 성도는 그런 메시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은 지금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 속에서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읽고 있습니까? 이것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눈앞에 있는 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마음이 완악해서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그러한 극단적인 예를 보게 됩니다.

 

표적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고 믿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에 그분을 믿는 것은 영생을 얻느냐 멸망을 당하느냐를 판가름하는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분을 알지도 못했고 믿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 오셨다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권세 있는 교훈을 선포하시고 놀라운 이적을 행하심으로 그 사실을 입증하셨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이적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이적을 소개하면서 ‘표적’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표적이란 뭔가를 나타내 보여주기 위한 이적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들 중에서 복음서에 기록된 것은 30가지 정도가 됩니다. 요한은 그중에서 7개를 골라서 기록했는데, 그 일곱 가지 이적을 모두 ‘표적’이라는 말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 모든 이적들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표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표적이 바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적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표적 중의 표적을 본 사람들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반응
  

나사로의 집에는 유족들인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기 위해서 온 유대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나사로의 가정은 유대인들에게 평판이 좋은 가정이었나 봅니다. 이렇게 마리아의 집에 문상을 왔던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시는 놀라운 이적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엄청난 이적을 본 유대인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첫 번째 반응은 믿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지 나흘이 지나 무덤 속에서 썩어가고 있던 나사로를 살리시자, 그것을 본 유대인들 중에 일부는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두 번째 반응은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이상한 일입니까? 그들은 자기들의 눈으로 분명히 본 것을 믿지 않았고, 의도적으로 그것을 말살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는 항상 이렇게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선포하실 때도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도 역시 그랬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전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하다가 사람들이 듣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전하다 보면 믿는 사람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전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반응을 좀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믿은 사람들
  

마리아의 집에 문상을 왔던 많은 유대인들 중에서 일부는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려내신 이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들이 저를 믿었으나”(45절)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심으로 생명의 주인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은 믿는 자를 죽음에서 일으키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었습니다. 이 분을 믿으면 죽어도 살 것이며,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생을 주실 분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살게 될 것이며, 영원히 죽지 않고 영광스런 천국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아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입니까?
  사람들에게 가장 큰 문제, 가장 두려운 것,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우리가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릴 때 그토록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불치의 병에 걸려 죽음을 향해 날마다 달려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기 전에 더 많은 일을 하고, 죽기 전에 더 많은 것을 누리기 원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기 전에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얻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는 누군가가 죽었을 때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이제 좀 살만 해졌는데, 이제 뭔가를 좀 이룰 수 있게 되었는데 죽었구나.” 죽음은 우리의 한계요 마지막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버립니다.
  그런데 우리를 이 죽음으로부터 건져주실 분이 오셨습니다. 그분은 죽은 자를 다시 살려내심으로 자신이 죽음을 정복하고 다스리심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을 받아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죽음은 더 이상 한계가 아닙니다. 죽음은 이제 더 이상 끝이 아닙니다. 이렇게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은 사람은 이제 아무것도 문제될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은 사람에게는 이제 한 가지 문제만 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결산하실 것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이제 더 이상 질병이나 문제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남보다 앞서려고 몸부림치며 살벌하게 살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는 일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서 좋은 것을 더 많이 누리며 살겠다고 발버둥치지 마십시오. 우리는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사는 동안에도 모든 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문제될 것이 무엇입니까? 모든 욕심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를 누리십시오. 오직 한 가지, 남은 생애를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시는 것을 보고 많은 유대인들이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이상한 일입니까? 이 사람들은 자기들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죽여서 사실과 진리를 말살하려고 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렇게 믿지 않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믿지 않을까요? 본문의 유대인들은 왜 그렇게 분명한 증거를 보고도 믿지 않았을까요?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믿지 않았던 이유는 자기들이 누리고 있던 기득권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를 장악하고 있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며 증오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유대 사회에서 출교시키기로 결의해놓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9장에서 나면서부터 소경되었던 사람이 예수님께 고침을 받은 후 바리새인들에게 출교당한 것을 보았습니다. 출교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추방되고 완전히 왕따 당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무서워서 예수님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적을 보고도 믿기는커녕 그것을 바리새인들에게 고자질하기에 바빴습니다.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의 하신 일을 고하니라”(46절)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고 복 받기를 원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 풍성한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복 받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믿는다는 것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때로 핍박을 당하기도 하고 손해를 볼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순교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복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 때문에 핍박과 손해를 당하는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성도의 진정한 믿음은 복을 받을 때보다 핍박과 손해를 당할 때 분명히 드러나고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신의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손해를 당하고 욕먹는 것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습니까? 금전적인 손해를 무릅쓰고 주일을 지킬 수 있습니까?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친지들에게 비난 받는 것도 감수할 수 있습니까?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손해 보거나 잃어버린 것이 없다면 그 믿음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소돔이 멸망을 당할 때 롯의 아내는 어떻게 했습니까? 뒤를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라는 천사의 말을 듣지 않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롯의 아내가 왜 그렇게 뒤를 돌아보았을까요? 롯의 아내는 그동안 먹지 않고 쓰지 않고 장만한 재산이 아까워서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어떻게 되는지를 경고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5-17) 세상에 마음을 뺏기면 결국 세상과 함께 망하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돈도 필요하고 재산도 필요합니다. 공부도 해야 하고 일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리하게 하거나 거기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그것 때문에 신앙생활이 소홀해져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탐심이며, 하나님보다 그것들을 더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가 됩니다. 유대인들은 이 세상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분명한 증거를 보고도 예수님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손해를 볼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삶 속에서 주님께서 항상 최우선 순위가 되도록 하십시오. 주님을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셨다는 소식을 들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하여 이 문제를 의논했습니다.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47절)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놀라운 이적을 많이 행하셨습니다. 완악하고 미심쩍어하던 유대인들 중에서도 이러한 이적을 보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분위기에 위기를 느꼈으며, 예수님을 더욱 시기하고 미워하며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따르게 되면 결국 민중봉기가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로마가 군대를 보내 진압하게 될 것이고, 그마나 지금까지 보장해주고 있던 모든 자유와 특혜를 모조리 빼앗고 유대를 완전히 짓밟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48절)
  그래서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무슨 명분으로, 어떻게 예수를 죽일 것입니까? 그때, 당시의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저희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49-50절) 가야바는 민족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 예수를 죽여야 한다고 말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에게는 예수님을 죽여야 한다는 명분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예수님을 안 믿고 증오하며 대적하는 데서 더 나아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성취되는 하나님의 뜻
  

대제사장 가야바는 이렇게 예수님을 죽여야 한다는 합리적인 논리를 제공했습니다. 그것은 매우 억지였고 정직하지 못한 것이었으며, 강퍅하기 그지없는 악한 마음에서 나온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은 이 가야바의 말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나온 예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51-52절)
  가야바의 말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죽으실 것을 예언한 것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말씀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자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의 메시지가 나올 수가 있단 말입니까? 성경은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과 심지어는 사탄까지도 사용하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탄과 악한 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서 발악을 합니다. 그런데 결국 그들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데 쓰임을 받게 되고, 그들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항상 이처럼 신비롭게 진행되어갑니다.
  가야바의 말에는 자기가 의도한 것보다 더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는 교만하여 강퍅하게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고 일시적으로 득세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놀라운 구원을 이루셨고, 가야바는 영원히 멸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악한 자들이 득세하거나 성도를 핍박할 때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면서도 득세하고 형통한 것 같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그들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시37:1-2)

사람들이 모두 자기 맘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쓰임을 받습니다. 악한 자들은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멸망을 당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는 하나님의 선하신 일에 귀하게 쓰임을 받고 영원한 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아무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거나 좌절시킬 수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뿐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쓰임을 받고 있습니까? 그리고 당신의 인생이 끝날 때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믿음에 굳게 서십시오. 어떤 손해와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믿음을 지키십시오.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귀하고 복되게 쓰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큰 상급과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남은 생애를 더욱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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