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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1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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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 성경에 초보를 버리고 했다. 어린아이가 장성을 해서 이가 튼튼해지면 이 이로 호두도 깨고 알갱이도 골라먹게 된다. 교회에서는 신앙이 초보로 머물면 안 된다. 즉 문자적으로 예수를 믿으면 안 좋은 사건을 만나면 ‘죄를 지어서 그렇다’ 라고 하게 된다.
세상에는 별별 희한하게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많은데, 자기의 기업이 앞서고 믿음이 뒤따르면 어떻게 되겠느냐? 한 마디로 자타의 이룰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면 다 세상에 속한 건데, 이렇게 믿는 사람은 예수이름을 가지고 세상에 속한 짓을 하게 된다. 이런 것에 속지 않으려면 방편 이전에 교회의 교훈을 구별 분별해서 본질로 나가야 한다. 이렇게 되면, 첫째는 자기가 자기에게 안 속는다.
자기가 안 좋은 일을 당한 후에 ‘너 때문에’ 라고 하는 것은 이미 늦었다. 내가 진리본질을 모르면 다른 사람에게 속기 이전에 자기가 자기에게 속고 있는 거다. 사건에 관한, 사물에 관한, 물질에 관한 것을 기준으로 진단을 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은 선악과다. 이런 지식의 기준으로는 사건의 원인을 밝힐 수 없다. 진리지식이 자기의 기준적 지식이 되어야 한다.
◆ 야곱이 밧단아람의 외삼촌 집에서 벧엘로 돌아오기까지, 그리고 요셉이 총리로 있는 애굽에 들어갈 때까지 어려운 사건을 수없이 겪었는데, 그 이유가 다른 사람이 아닌 야곱에게 있다. 야곱이 외삼촌 집으로 도망갈 때 밤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너를 다시 돌아오게 할 테니 그 때는 벧엘에 거하며 여기에서 단을 쌓으라고 하셨는데도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돌아와서 형을 만난 후에 벧엘이 아닌 벧엘 근처의 세겜성에서 세겜의 아비 하몰의 아들들의 땅을 사서 거기에 단을 쌓고 기거했다.
여기서 야곱의 딸 디나가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다가 그곳의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 추장 세겜이 디나를 강간하여 욕되게 했고, 그러자 야곱의 아들들이 그곳 사람들을 할례를 핑계로 멸해버렸고, 이에 야곱이 그들에게 보복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단을 쌓으라고 하셨다. 야곱은 자신이 외삼촌 집으로 도망을 갈 때 나타나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방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게 한 후에 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이방신상과 귀중품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벧엘로 와서 단을 쌓았다.
사랑하는 딸이 수치를 당했을 때 아비로서 마음 상하는 것을 뭘로 표현할 거냐? 어쨌든 이 일을 계기로 세상에 속한 부요성 안일성 물질적 욕망성을 다 묻고 하나님 앞에 약속했던 대로 벧엘로 돌아와서 하나님께 단을 쌓았는데, 야곱이 이런 고초를 겪은 것은 물질 소원 목적으로 들어가 있는 신앙 때문이었다. 이 야곱은 계시 등용물로서 야곱의 일생은 믿는 우리들에게 물질성적 신앙의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말해준다.
야곱이 나중에 요셉을 만나러 애굽으로 가서 바로 왕 앞에서 하는 말이 자신이 걸어온 세월이 험난했다고 했는데, 이 말을 좋게 해석하면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말할 수 없는 시련과 연단을 받았다는 건데, 우리 입장에서는 자기가 몰라서 고생을 하던, 알면서도 신앙을 지키느라고 고생을 하던 다 구원을 이뤄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다른 사람은 견딜 수 없는 것을 자기는 견디고 이겨나가는 것은 특수한 은혜다. 특수한 진미다. 솔로몬이 여자 천 명을 데리고 누리는 것은 특수진미가 아니라 특수재앙이다.
우리는 안 믿는 사람들과는 정 반대의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 안 믿는 사람들은 일반 도덕성을 기준으로 하고 살지만 우리는 그런 것들은 자타의 구원에 활용성이다. 일반과다. 우리는 신적 도덕성을 기준으로 생각을 하는 거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이라면 교훈을 통해 성도들을 영적인 면으로 이치를 밝혀줘야 한다.
◆ 성경은 문자 속에 영적인 이치를 넣어서 기록을 한 것인데, 영적인 것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라서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기록이 되었다. 성경을 단순히 문자적으로만 보고 깨달으려고 한다면 성경은 일반 책만도 못하다. 성경은 성령님의 감화 감동을 입는 사람이 기록을 했으니 성경을 읽고 깨달으려면 마찬가지로 성령님의 감화 감동을 입어야 깨달을 수 있다.
처음 믿는 사람은 영적인 면을 볼 수 있는 눈이 없기 때문에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보게 된다. 그러다가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성령님을 따라 살게 되면 그 다음에는 문자적 표면적인 성경말씀의 이면에 어떤 하나님의 뜻이 있는지를 깨달아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서 이 모양이 됐구나. 사람의 마음의 중심의 소원 목적이 어떠하니 어떤 삶을 살게 되는구나’ 하고 성분과 성격과 성질적으로 사람을 깨닫게 된다. 이래야 자기 속을 살피고 고쳐나갈 수 있는 눈이 열린다.
이를 위해 자기 머리를 성령님으로 기름칠을 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의 만남, 대화, 활동 이런 게 다 자기 마음과 머리에 성령으로 기름칠이 되는 거다. 그래서 자기 몸을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에 적절하게 쓸 줄 알아야 한다. 가만히 있는 사람은 아무 것도 못 한다.
◆ 롬12:20에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라고 했는데, 실지로 사람의 머리 위에 숯불을 피우면 어떻게 되느냐? 사람이 숯불에 타 죽는다. 그러니까 사람을 죽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원수를 사랑해서 감화 감동을 받게 하라는 의미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먼저 원수관이 바로 되어 있어야 한다. 세상에는 믿는 사람 주위에 이단자도 있고 사단 마귀도 있는데, 예수 믿는 사람은 이들에게도 잘 해 줘야 하느냐? 그건 아니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원수로 삼고 있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으니까 믿는 우리가 인인 간에 육적인 면에서 원수를 맺어서는 안 되고, 영적인 면의 원수라면 이는 사단 마귀 노릇을 하는 자이니, 성경에는 이런 자들에게는 한두 번 경계를 한 후에 듣지 않으면 이방인처럼 여기라고 했으니까 우리가 그렇게 한 후에는 하나님께서 처치하시도록 맡기면 된다.
육적인 면에서 이웃은 다 사랑할 자들이니 불신자라도 내 편에서 그들을 원수 시 해서는 안 되고 사랑해야 하겠는데, 감화 감동을 받게 하라고 했으니 일반개념으로 입히고 먹이고 등 두들겨 주고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방편을 통해서 상대가 감화 감동을 입을 수 있는 어떤 인생철학이 들어가야 한다. 먹이고 입히기만 하고 진리가 가는 게 없으면 의미가 없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안 믿는 사람이 믿는 나를 원수 시 할 때와, 믿는 상대가 신앙이 어려서 나를 원수로 삼을 때가 있을 때 내가 어떤 사람에게 다가가는 게 더 좋겠는지? 아무래도 믿는 이에게가 더 좋고, 이해도 빠르고, 감화 감동을 빨리 입을 수 있다.
화를 내어도 해가 질 때까지 품지 말라고 했다. 화를 안 풀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하시겠느냐? 그러니까 하나님의 심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걸 늘어뜨려서 보면 주님 재림 시까지 화를 품고 있으면 회개할 기회가 없다. 그런데 믿는 우리도 육성이 강해서 끝까지 화를 품고 원수를 삼는 일이 있다. 목회자에게도 이런 게 있다. 이건 하나님께 고쳐달라고 해야 한다. 안 믿는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일반적인 은혜를 받았으면 그 사람을 원수 시 하면 안 된다. 그런데 진리를 받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그것도 믿는 사람에게 일반은혜를 받고 있으면서도 원수 시 한다면 참으로 아찔한 거다.
해가 질 때까지 노를 품고 있으면 그 다음은 어떤 면으로건 하나님의 진노가 들어온다. 그래서 해가 지도록 화를 품지 않으려면 지나가는 것은 붙잡지 말아라. 시간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물질성에 속하는 것은 다 지나가는 것이니 붙잡지 말아라. 흘러 내려오는 물을 막고 있으면 어떻게 되느냐? 언제까지 그 물을 막고 있겠느냐? 큰일 날 일이다. 이치를 어기지 말아라.
보통은 일반적인 것을 베풀어도 감화 감동을 받는데 믿는 우리 입장에서 하나님의 것으로 베풀 때 상대가 진리를 아는 자라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자라면 얼마나 성령님의 감화 감동을 크게 받을까?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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