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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보기)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전부가 죄다/외.

로마서 궁극이............... 조회 수 37 추천 수 0 2023.09.13 19: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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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롬14:23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토요 교역자 대상 신학 및 성경공부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고난을 겪게 되는데, 일반사람들은 편안하게 살기를 원하지 고통과 고난을 겪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 중에는 안 믿는 사람들의 생각으로 예수 믿는 것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고난의 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 천국에 대해, 구원에 대해 말을 해 주는데 인간들이 알아듣게 하려고 인간들이 쓰는 용어로 기록했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려면 용어 속의 개념을 바로 알아야 한다. 성경을 인간의 오각의 오감성 그대로 깨달으려고 하고 그대로 느끼려고 하면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실 때 내가 너희를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간다이렇게 생각하셨겠느냐, 당신의 백성들의 구원과 영원한 행복을 바라보며 기쁘게 지고 가셨겠느냐? 후자다. 우리는 성경에서 약속한 것을 영원으로 늘려서 현실에서 가지는 거다. 그래서 믿는 우리는 현실에서 주님으로 인해, 복음으로 인해 고난을 겪더라도 미래의 결과를 바라보며 기쁘게 가야 한다. 이게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거다. 그러면 우리에게 뭐가 고난이고 고통이냐? 아무리 물질적으로 부자로 살더라도 성경에 눈이 안 열리는 게 고난이요 고통이다.

 

 

구약성경에 다윗이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누구누구를 죽여라고 했는데, 솔로몬이 이들을 살려놓으면 어떻게 되느냐? 신정통치가 안 된다. 그러니 죽여야 한다. 그리고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고 하자 하나님께서 너는 사람을 많이 죽였기 때문에 아들 솔로몬이 짓게 하겠다라고 했는데 그 이유가 뭐냐? 성전은 무기나 권력이나 인간의 힘으로 짓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로 짓는 거라는 거다. 그래서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주셔서 성전을 짓게 한 거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얻어서 생과 사를 가르는 재판을 했다. 목사님의 설교도 일종의 생과 사를 가르는 재판이다. 그래서 목사님들은 교회 안에서 신앙 사상적으로 생과 사를 가르는 재판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살릴 것을 살리지 못하고 죽일 것을 죽이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가 세상화 된다. 이룰구원으로 되는 것은 생이요, 이룰구원이 아닌 것은 아무리 활동을 많이 할지라도 사(). 목사는 설교에서 이게 명확하게 나와야 교회가 잘 다스려지고 신정통치가 잘 된다.

 

 

지혜의 왕인 솔로몬이 많은 이방 여자를 데려오니 이 여자들이 자기가 믿던 신을 마음에 가져왔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안에 그들의 신전까지 세웠다.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은 망한다. 교회가 이방정신을 하나하나 받아들이다 보면 어느새 온 교회가 이방화 된다. 그래서 목사님들은 오래 믿은 사람이건 금방 교회에 나온 사람이건 마음속에 뭐가 들었는지를 알아서 허물 것은 허물고 새로 세울 것은 세워줘야 한다.

 

 

진리의 목사라면 어느 교회에 들어가든 성도들 속의 뽑을 것은 뽑고, 세울 것은 세우고, 부술 것은 부수고, 새로 바를 것은 새로 바르고, 불에 태울 것은 불에 태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룰구원의 정로로 가게 해야 한다. 아무리 건물이 크고 많은 사람이 모이더라도 그 교회의 교인들이 진리의 정로로 가지 않는다면 이 교회는 생명 길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간 거다. 진리본질에 꼭 붙어 있는 교회는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의 발등상으로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이게 나오게 된다.

 

 

일반세상에서는 무엇을 죄라고 하느냐? 행동으로 인명과 재산에 피해를 주면 죄라고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죄라고 하느냐? 하나님 앞에서의 죄는 에덴동산에서의 죄를 찾으면 알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생명과는 먹지 않고 선악과를 먹는 게 죄다. 먹으라고 한 생명과를 안 먹는 것도 불순종이고,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는 것도 불순종이니 다 죄다. 이게 가장 근본적인 죄의 개념이다. 그런데 일반세상은 생명과를 안 먹는 게 큰 죄인 줄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도 안 죽였는데 왜 그게 죄입니까?’라고 한다.

 

 

죄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의 재판관은 하나님께서 말씀하는 죄를 찾지 못한다. 그러나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는 우리는 세상사람들의 하나님 앞에서의 죄를 찾을 수 있다. 이게 하나님 자녀의 수준이다. 그런데 오늘날 목사님들이 무엇을 죄라고 하느냐? 우리 목사님들이 말씀의 이치대로 바로 서면 하나님께서 기뻐 보시는 건데 이런 면에 예민하지 못하다.

 

 

세상이 우리를 알아주지 않지만 우리는 석가와 대화를 한다면 석가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밝히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석가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 석가가 무엇을 안 먹었느냐? 생명과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인간으로 지으신 목적에서 벗어났다. 만일 석가가 하나님을 찾으려고 했다면 하나님의 역사가 석가에게 갔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하나님의 본질을 입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본질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본질은 진리인데, 우리가 하나님의 본질을 입는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 함축된 말이냐?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으로 온전케 되는 게 포함된 거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본질을 입고 온전케 되느냐? 이질이 들어있으면 본질이 아닌데, 이질성은 임시성이고 변질이 되는 거다. 그러니까 온전이란 영원히 가는 거고, 영원히 효력을 볼 수 있는 거고, 영원히 존귀 영광이 되는 거고, 영원히 행복한 것인데, 이것을 영적으로 말하면 성령의 영감성의 사람으로 되는 거다.

 

 

하나님의 속성이나 성품을 말할 때는 시간적으로도 활동적으로도 따져 들어가라. 하나님의 말씀은 빈말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는 이 세상에서 마치는 게 아니라 영원한 효력이 되는 구원이 들어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다는 것은 영원히 썩지 않고, 변질 변동되지 않고, 시대적 바람을 타지 않는다는 거고, 어떤 상황에서도 기복이 없다는 거다. 이런 속성이 인격적으로 함축이 된 게 하나님의 본질이다.

 

 

성경은 이 세상에 두기도 부족하다고 했으니 이 성경 안에 숨어있는 무한한 계시를 캐내서 보여주기도 벅찬 건데 오늘날 목사님 중에 하나님의 본질을 모른 채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이런저런 것을 모아서 설교하기도 한다. 이것은 성경에 없는 말이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도 아니면서 힘만 쓰고 정성만 드리면 신앙인 줄 안다.

 

 

우리 기독교는 이방종교와 다르게 하나님의 성품으로 온전케 되는 거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일반 사회 윤리 도덕적인 개념을 기준으로 죄를 짓지 말아라. 선행을 하라. 의를 행하라하고 있다. 교회가 일반 사회 윤리 도덕적인 개념으로 외치면 사회의 시녀가 된다. 오늘날 사회의 시녀가 된 교회가 얼마나 많으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신 것은 잘 먹고 잘살라는 게 아니라 교회의 훈련장소로 주신 거다. 구약 때 애굽을 출발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간 것을 신약에서 광야교회라고 했다. 계시적으로 보면 이 세상은 광야다. 이 광야에서 사건 환경을 통과하면서 말씀을 따라 살면 하나님의 성품으로 온전케 된다.

 

 

에덴동산은 세상과 교회를 비유로 보여준다. 이 에덴동산에서 지키고 다스리고 통치하고 지배하라고 했으니 이 세상은 교회가 말씀을 따라 살면서 영능의 실력을 닦는 곳이다. 교회라는 용어가 없더라도 말씀이 있고 성도가 있으면 교회다. 오늘날 교회인 우리에게도 생명과를 따먹고 지키고 다스리고 통치하고 땅에 편만하라는 명령이 들어있는 거다. 그러니까 세상은 교회가 생명과를 먹고 자타의 구원을 위해 다스려야 할 곳이다. 즉 자타의 구원을 이뤄가는 교회가 주격이고 세상은 교회를 위한 이용물이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이룰구원의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 우리가 성경 보고 설교 듣는 것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입기 위한 목적으로 밥을 먹으면 이것도 이룰구원이요, 하나님의 성품을 입기 위한 목적으로 일을 하면 이것도 이룰구원이요, 하나님의 성품을 입기 위한 목적으로 공부를 하면 이것도 이룰구원이요, 하나님의 성품을 입기 위한 목적으로 잠을 자면 이것도 이룰구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이룰구원을 이루라고 가는 곳마다 사람이나 시간이나 사건이나 물질이나 환경을 동원하시는데, 남을 두들겨 패고 싸우는 것만 죄로 보지 말고 그날그날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이룰구원을 이루지 않는 것도 죄로 여겨야 한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지 말고 나의 이룰구원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런 정신으로 살면 연관 관계적으로 나로 인해 타의 이룰구원도 되어진다. 자기의 현실에서 이 구원을 놓치면 죄다. 이 죄는 지옥에 가는 죄가 아니라 이룰구원을 이루라고 준 사건과 환경과 존재와 시간을 구원을 이루지 않고 흘려버린 죄가 되는 거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 천년왕국을 안 믿는 사람이 많은데, :을 문자 그대로 사건을 나열해서 보면 일부 불신자들이 천년왕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는 이미 마귀를 천 년 동안 무저갱에 가둔 상태인데, 불신자들이 천년왕국에 들어와서 보니 이곳이 참 좋다. 이것도 비유로서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뜻이 들어있다.

 

 

천년왕국이 왜 좋으냐? 사자가 곁에서 놀아주고, 호랑이가 곁에서 놀아주고, 아이들이 독사의 굴에 손을 집어넣어서 독사와 장난을 한다. 에덴동산에서도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기 전에는 그랬을 거다. 그런데도 아담과 하와가 뭐가 부족해서 생명과는 안 따먹고 뱀의 꾐임을 받아서 선악과를 따먹었는지 참으로 한스런 일이다.

 

 

그러면 오늘날 목사님들 같으면 에덴동산에 데려다 놓으면 마귀의 꾐에 빠지지 않겠느냐? 아마도 대부분 빠질 거다. 자기의 무엇을 보면 빠질 것 같으냐? 성경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를 알기 때문에 자기를 에덴동산에 데려다 놓아도 선악과를 안 따먹고 생명과를 먹겠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왜 빠질 것 같다고 하는 거냐? 영의 눈으로 보면 지금 우리의 현실에도 생명과도 있고 선악과도 있는 것인데, 현실에서 선악과를 따먹는 것을 보니 그렇다.

 

 

생명과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인데, 교회에서 교훈적으로 이 주님을 먹이지 않고 예수 믿어서 세상에서 부자 되고, 사업이 잘되고한다면 이것은 선악과를 먹이는 거다. 마귀의 가르침이다. 마귀가 예수님께 한 세 가지 시험도 이 안에 들어있다. 이런 교훈을 받으면 믿음이 안 자라고 영인성장이 없다.

 

 

이 땅 위에는 성령과 악령이 공존하고 있는데 목사님의 설교가 성령의 감화로 된 건지, 악령의 감화로 된 건지 무엇을 보면 아느냐? ‘성령께서 일을 하는구나. 악령이 일을 하는구나하는 것을 무엇을 보면 알 수 있느냐? 교훈을 하고 일을 하는 목적성을 보면 금방 드러난다. 그러면 성령의 운동은 목적이 어디로 가느냐? 하나님의 온전을 목적으로 이룰구원의 이치를 명확하게 밝힌다. 반면에 악령의 운동은 교훈이나 일의 목적이 세상으로 들어가 있다.

 

 

천년왕국에서 하나님께서 무저갱에서 마귀를 풀어놓으니 이들이 마귀의 미혹을 받아서 마귀와 한 덩어리가 되어서 진리의 성도들이 사는 성을 정복하려고 한다. 천년왕국에서 왜 이런 일이 있는 거냐? 이것을 왜 지금의 나에게 비유적으로 들고 와서 보여주는 거냐? 그리고 이들이 하나님의 불의 심판을 받는데,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거냐? 지금의 내 속에 사단 마귀의 유혹과 미혹을 받을만한 요소가 없는지 철두철미하게 점검해서 바로 서라는 거다. 앞으로 천년왕국이 오는데, 지금의 자기를 그곳에 갖다 놓으면 그곳을 다스리고 누리는 데 손색이 없겠느냐? 지금의 너는 성경을 봐도 그 뜻을 다 아느냐?

 

 

:에 바벨론이 나오는데, 이 바벨론은 말세에 각 분야에서 인본주의 정신으로 건설된 최고의 것을 말하는 거다. 정치적인 바벨론, 문화 예술적인 바벨론, 과학적인 바벨론, 종교적인 바벨론 등 많은 바벨론이 있는데 이 중에 종교적 바벨론이 엄청나게 크고, 기독교 종교적 바벨론 안에도 정치적인 바벨론, 문화 예술적인 바벨론 등등이 파고들어서 권세를 부리게 된다.

 

 

이런 것이 교회 안에서 종교적 형태를 띠고 구복주의로 나가기도 하고, 구국주의로 흘러가기도 하고, 사회주의로 흘러가기도 하고, 신비주의로 흘러가기도 하고, 극기 극복주의로 나가기도 하고, 현세주의로 흘러가기도 하고, 초절주의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슨 주의냐? 예수님은 무엇을 증거하셨느냐? ‘하늘나라를 말씀하시더라. 천국복음을 말씀하시더라라고 했으니 예수님의 모든 가치판단 평가가 무슨 주의냐? 내세주의다. 그러면 목사님들은 무슨 주의냐? 목사님 중에는 적당주의가 많다.

 

 

:에 해를 입은 여자가 나오는데, 해를 입은 여자가 아이를 낳으려고 할 때 용이 이 아이를 집어삼키려고 해서 이 아이를 살리려고 광야로 도망을 갔는데, 이것을 예수님 탄생 때의 일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것만 아니라 이룰구원의 도리를 말해주는 거다.

 

 

:에서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라고 했는데, 마귀는 예수님에게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했다. 당시에 성전 꼭대기를 사람이 올라갈 수 있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왜 지붕 위에서 내려오지 말라는 말을 했을까? 이유는 자기가 신앙 사상적으로 높이 올라가 있는 곳에서 세상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라는 거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살면서 성전의 제일 높은 자리, 즉 종교적 명예영광을 탐낸 분이 아니다. 초월이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100% 죽는다. 신앙적으로 말하면 신앙의 높은 차원에 있는 사람이 세상 것을 소원 목적하고 취하면 자기의 신앙생명과 성도라는 위치와 신분이 하락이 된다. 우리는 이런 것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신앙을 가져야 한다. 초절적인 신앙은 안 된다.

 

 

종교적 바벨론은 조직도 크고, 덩어리도 크고, 물질도 풍부하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세권과 교권이 합세 되어 있기 때문에 권세도 크다. 예수님 당시에도 교권과 세권이 합세해서 예수를 붙잡아 죽였다. 우리가 설교를 들을 때는 이런 것을 봐야 한다. ‘말세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는 것은 말세가 되면 교권과 세권이 합세 된 신앙이 많다는 거다.

 

 

노아홍수 때도 교권과 세권이 합세 되어 있었다. 즉 하나님의 아들들이, 즉 가인의 후손들이 세상과 합세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영의 눈으로 보면 홍수가 나기 전에 이미 그들의 신앙사상이 홍수에 빠진 거다. 자신들이 세상의 홍수에 빠진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홍수가 나게 한 거다. 사람이 매를 맞는 것은 매를 맞기 전에 이미 매를 번 거다. 결과를 보고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파는 덩어리도 크고 조직도 크다. 이 파에 들어오지 않으면 이단 소리를 듣는 시대였다. 반면에 예수파는 예배당 건물도 없었고, 이 집 저 집, 이 산 저 산, 이 바닷가 저 바닷가로 돌아다니며 예배를 드렸고, 사람 숫자는 끽해야 열두 명뿐이었다. 오늘날 이런 교회가 있다면 기독교계에서 이단이라고 할 거다.

 

 

당시의 바리새파 사람들은 화려한 성전건물에서 성의를 입은 대제사장들과 제사장들과 율법사와 서기관들의 주재로 엄숙한 순서와 절차를 거치며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다. 오늘날 예수 믿으면서 덩어리 큰 것에 신경을 쓰는 자들은 바리새파 교인들의 영을 받은 건데, 이런 자들은 666운동에 들어있는 거다.

 

 

‘666’이 무엇을 말하는 거냐? ‘666’을 사람에게 붙여서 말하면 안 되고 정신과 사상에 붙여서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없이 인간의 수단으로 최고 최대로 커진 것을 말하는 건데, 종교적 바벨론으로도 보고, 과학적, 예술 문화적으로 그 이상 없는 최고를 말하는 거다.

 

 

그런데 교회에서 666을 보통 뭐라고 하느냐? 적그리스도라고 하는데, 뭐가 적그리스도냐? 성경에 육적, 옛사람 부패성적, 마귀적이라는 의미의 말이 있는데, 예수님 당시에 외식주의자들인 바리새 교인들은 여기에 안 들어가느냐? 들어있다. 외식운동은 거짓이나 이단이나 악령운동의 온상이다.

 

 

모세에게 주신 오경은 장차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를 말해주는데 바리새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세의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고 외우고 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대적하고 죽였다. 그러니 이 바리새 교인들이 예수님의 적이냐, 적이 아니냐? 적이다. 오늘날 예수 믿으면서 껍데기를 구하고 가견적 현상적 불에 타질 것을 구하는 교인들이 많은데, 이들은 천국 것을 주려고 하고 천국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려는 주님과는 의사적으로 대립이니 그 신앙정신은 적그리스도성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고 하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생각해서 주여, 그리 마옵소서라고 하자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했는데,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지 않았으면 누가 베드로가 적그리스도인 줄 알겠느냐? 누가 사단의 짓이라는 것을 알겠느냐? 우리는 표면과 액면 속의 이면을 알아야 한다. 상대가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의 신앙정신과 목적관을 보고 호응하든지 멀리하든지 하라. 목적관이 세상으로 되어 있으면 이 사람은 이미 주님으로부터 끊어진 거다. 성령님의 인도와 역사로부터 끊어진 거다.

 

 

예수 믿으면서 덩어리 큰 것에 신경을 쓰고 있다면 이 사람은 ‘666’ 중에 한 가닥으로 나온 거다. :의 다른 곳에서는 이게 짐승으로 나온다. 짐승으로 말하는 것은 주님의 인격과 성품으로 성장하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자연적 본능적으로 산다는 거다. 예수 믿으면서 세상에서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자연적 본능적인 것을 구하고 있다면 짐승이다. 질을 보고 하는 말이다. 성경을 들고 덩어리 큰 것을 염두에 두고 말을 하면 진리신앙이 아니다.

 

 

교회는 자기도 진리로 커지고 교인들도 진리로 커지면서 질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진리 때문에 교인의 숫자가 적어지든 가난해지든 천국복음으로 인해 환난과 고난을 받는다면 이건 복이다. 반면에 덩어리가 크든 작든 진리로 되지 않은 것은 앙화다.

 

 

우리 주위의 교회가 예배당 안에 아직 사람이 앉을 곳이 많이 있는데도 예배당 건물을 크게 지으니 이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보고 어느 목사님이 자기 교회의 건물도 크게 지어야겠다고 해서 교인들의 집을 전당 잡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큰 예방을 지었다고 한다.

 

 

예배당을 새로 지으면서 교인들에게 이 일을 위해 입을 크게 열어서 큰 소리로 끈질기게 집중 기도를 하라고 했을 거고, 예배당을 짓는 일에 열심히 충성봉사를 하면 천국에 가서 큰 상급을 받는다고 했을 텐데 이렇게 해서 큰 예배당을 지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거냐?

 

 

그런데 예배당을 짓느라고 지은 빚을 다 갚지도 못했는데 imf가 와서 대출금도 못 갚고, 이로 인해 예배당 건물을 싸게 넘겼고, 교인들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가정이 깨졌다고 하는데, 이렇게 하는 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고 하나님께서 원하는 거냐? 그리고 결과가 이렇게 되면 목사가 사단 마귀의 짓을 한 거고, 뒤탈이 없이 일이 잘 마무리되면 성령님의 역사로 된 거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시켰는데, 이 주님을 믿는 기독자가 사람을 자랑해야 하겠느냐, 건물을 짓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하겠느냐, 죄에서 해방시키는 일에 협조 동참해야 하겠느냐? 주님이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시킨 것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나 하나를 살리려고 달라붙은 거다.

 

 

세상의 그 누구라도 사람을 눈에 보이지 않는 죄에서 해방시키지 못한다. 그러면 죄에서 해방이 뭐냐? 교도소에 가서 죄인을 끄집어내는 거냐? 죄가 뭐냐? 죄가 눈에 보이느냐? 손에 만져지느냐? 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 죄를 지으면 마음이 어떤 상태가 되느냐? 숨으려고 하고 어두운 곳을 찾게 된다. 죄는 추상적인 게 아니라 분명히 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니 어떤 상태가 되었느냐? 자기 마음에서 부끄러워지고 불러도 숨어서 안 나오려고 하게 된다. 부끄럽다고 할 때 갖가지 상태가 있다. 실력이 없으면 부끄럽고, 못나면 부끄럽고, 죄를 지으면 부끄럽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질이 낮은 상태로 사는 것은 죄다.

 

 

교회는 사람을 진리이치의 실력을 키워서 부끄러움에서 탈출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 목사님의 설교 속에는 한 이치 한 이치마다 이게 들어있어야 한다. 이게 구원이고 자유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물질을 많이 가지는 것은 좋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이치를 깨닫는 면이 부족하고, 없고, 가난한 게 죄인 줄을 모른다. 성경에 주는 자가 복되다고 했는데, 자기가 진리에 부족성이 되면 다른 사람에게 주지 못한다. 이것도 죄다.

 

 

교회의 사랑은, 주님의 사랑은 사람을 죄에서 풀어낸다. 본질이 아닌 것, 미달 된 것을 성장시키고, 낮은 차원에서 높은 차원으로 올리고, 모르는 것을 알게 하고, 미련한 사람을 똑똑하게 하는 게 사랑이다. 이게 복음의 역할이다. 성경을 들고 예수 믿어서 세상에서 부자가 되고 만사형통 되고하는 것은 사람을 주님의 사랑에서 멀어지게 하는 거다.

 

 

사람을 죄에서 풀어내려면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밖에 없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이 없기 때문에 이 일을 못 하고 오직 교회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 이를 위한 교훈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를 주는 거다. 세상사람들은 모두가 선악과를 따먹고 죄에 빠져있기 때문에 하나님도 모르고 사람이 온전케 되는 것도 모른다. 교회는 사람을 여기에서 건지는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존귀 영광자로 올리는 일을 해야 한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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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 (계시보기)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전부가 죄다/외. 롬14:23  김경형목사  2023-09-13 37
707 로마서 하나님의 영 롬8:6-11  정용섭 목사  2023-08-25 75
706 로마서 생명 왕권 롬5:12-19  정용섭 목사  2023-08-25 38
705 로마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 롬1:1-7  정용섭 목사  2023-06-09 83
704 로마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 롬8:5-8  김중곤 목사  2023-05-25 289
703 로마서 (계시보기)성도는 세상법 위의 생명법으로 살아야 한다. 롬8:2  김경형목사  2023-04-16 43
702 로마서 (계시보기)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롬1:17  김경형목사  2023-02-11 61
701 로마서 (선교주일)복음에 빚진자 롬1;14-16  전원준목사  2023-02-02 138
700 로마서 하나님 사랑의 확증 롬5:1-5  강승호목사  2023-01-19 163
699 로마서 하나님의 영과 양자의 영 롬8:14-17  정용섭 목사  2022-11-16 178
698 로마서 (계시보기)신앙은 질이다. 롬6:19  김경형목사  2022-05-19 77
697 로마서 (계시보기)'왜'가 있어야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외) 롬3:23  김경형 목사  2022-05-12 50
696 로마서 (계시보기)숯불을 머리에 쌓아 놓으라는 의미.(외) 롬12:20  김경형 목사  2022-05-01 164
695 로마서 섬김의 축복(신년) 롬 12;10-13  전원준목사  2021-12-30 563
694 로마서 아브라함의 믿음, 우리의 믿음 롬4:13-25  정용섭 목사  2021-07-18 322
693 로마서 하나님의 상속자 롬4:13-25  강승호목사  2021-02-24 271
692 로마서 구원의 사역이 영원토록 롬16:25-27  강승호목사  2021-01-29 180
691 로마서 바울의 영성, 이 시대를 따라 살지 않는 것 롬12:1-2  허태수 목사  2021-01-19 396
690 로마서 구원의 사역이 영원토록 롬16:25-27  강승호목사  2020-12-29 121
689 로마서 구원의 사역이 영원토록 롬16:25-27  강승호목사  2020-12-23 82
688 로마서 원하는 것과 구하는 것은 분명 다릅니다. 롬10:1  김기성 목사  2020-12-13 329
687 로마서 하나님의 긍휼하심 롬11:1-2a, 29-32  정용섭 목사  2020-12-08 129
686 로마서 기다림의 은혜를 아십니까? 롬9: 1-18  김기성 목사  2020-12-06 348
685 로마서 새 생명 안에서 산다는 것 롬6:1-5  김기석 목사  2020-12-04 265
684 로마서 몸의 속량을 기다리며… 롬8:12-25  정용섭 목사  2020-12-01 142
683 로마서 성령님이 우리안에서 일하시는 세가지 증거 롬8: 9-11  김기성 목사  2020-11-29 508
682 로마서 영의 생각을 따르는자 롬8: 1-11  김기성 목사  2020-11-22 337
681 로마서 나를 건져낼 것이다 롬7:20-25  김기성 목사  2020-11-02 212
680 로마서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라 롬6:1-11  김기성 목사  2020-10-25 380
679 로마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특권 롬5: 1-5  김기성 목사  2020-10-18 321
678 로마서 하나님이 믿어지는 복 롬4: 1-5  김기성 목사  2020-10-13 267
677 로마서 의와 생명 롬5:12-19  정용섭 목사  2020-10-11 110
676 로마서 예수님의 아이디를 아십니까? 롬3:21-26  김기성 목사  2020-10-04 288
675 로마서 내 안에 숨겨진 것들 롬2:1-5  김기성 목사  2020-09-29 314
674 로마서 매어 사는 것을 복으로 여기는 사람들 롬1:1-17  김기성 목사  2020-09-20 327
673 로마서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설자 롬14:1-12  강승호목사  2020-09-17 224
672 로마서 사랑의 빛 외에는 롬13:8-14  강승호목사  2020-09-01 425
671 로마서 사랑으로 모든 것을 행하라 롬12:9-12  강승호목사  2020-08-25 280
670 로마서 거룩한 산제사 롬12:1-8  강승호목사  2020-08-20 323
669 로마서 은사와 부르심에 롬11:13-16,29-32  강승호목사  2020-08-15 182
668 로마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자 롬10:10-15  강승호목사  2020-08-11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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