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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몸으로!

빌립보서 정용섭 목사............... 조회 수 121 추천 수 0 2022.10.13 13:2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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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빌3:17-4:1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대구샘터교회http://dabia.net/xe/1049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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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보기 : https://youtu.be/VFSLar62hsM 

성경본문 : 빌립보서 3:17~4:1 

영광의 몸으로!

빌 3:17~4:1, 사순절 둘째 주일, 2022년 3월13일

 

거짓 교사들

 

오늘 설교 본문인 빌 3:17~4:1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거기에 나오는 단어와 표현 자체가 거칠고 공격적이어서 읽기가 편치만은 않습니다. 이 편지를 쓰는 당시에 바울이 감옥에 갇혔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빌립보 교회가 바울이 세운 유럽 교회 중에서 첫 번째이면서, 여러 번에 걸쳐 빌립보 교회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는 등, 오래 친밀한 관계를 맺은 교회에 신앙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벌어져서 이렇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 속사정을 따라가 봅시다.

 

바울은 17절에서 “나를 본받으라.”라고 말합니다. 잘난 척하는 게 아닙니다. 신앙의 방향을 바르게 잡으라는 권고입니다. 18절에서는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바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라고 표현한 일단의 사람들이 빌립보 교회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오늘 우리는 직접 들을 수 없고 바울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듣습니다. 그들이 볼 때는 오히려 바울의 가르침이 잘못되었겠지요. 오늘날 우리는 바울의 가르침이 당연히 옳다고 여기지만 당시 상황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바울은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에 속했습니다. 고군분투하듯이 자기가 이해하고 경험한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시 세계교회의 지도력을 행사하던 예루살렘 교회도 바울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눈물을 흘리면서 호소합니다. 이미 앞서 여러 번 말했으나 효과가 없었나 봅니다.

 

조금 앞에 나오는 빌 3:2절에는 그들을 향한 더 심한 표현이 나옵니다. “개들을 삼가고”라고 했습니다. 욕처럼 들리기는 하나, 상종하지 말아야 할 대상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격렬하게 비난한다고 해서 그들을 이상한 사람들로 보면 안 됩니다. 그들도 바울과 똑같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의 수제자인 베드로와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이끌던 예루살렘 교회에서 인정한 사람들입니다. 아무도 그들의 권위를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이 세운 교회지만 빌립보 교회가 그들을 거부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비유하자면 총회가 파송한 순회 설교자라고 보면 됩니다. 그들이 바울과 달랐던 핵심은 할례 문제입니다. 그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빌립보 교회에 가서 할례를 받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가 필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할례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바울의 가르침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이 볼 때 할례 강조는 육체를 자랑하는 태도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다고(빌 3:3)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합니다. 그래서 자신이야말로 참된 의미에서 할례파라고 주장합니다. 빌 3:4절 이하에서는 할례파들이 자랑거리로 삼는 것들이 자기에게도 차고 넘친다는 말을 길게 합니다. “나는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5절)

 

바울이 이 할례파를 ‘개’라고까지 비난하는 이유는 오늘 본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라는 표현이 나왔듯이 할례파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앙을 훼손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의 십자가를 명시적으로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그걸 부정한다면 아예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의 신앙생활에서는 십자가와 부활에 역행하는 사람들이기에, 즉 복음에 상반하기에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거칠게 그들을 비판했습니다. 왜 그렇다는 건지, 이상하지요?

 

바울이 쓴 갈라디아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갈 1:7, 8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절에 반복하여 저주를 쏟아붓습니다. 바울이 저주하는 그들이 바로 거짓 교사인 할례파입니다. 바울의 생각처럼 그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태롭게 할까요? 실제로 십자가의 원수들인가요? 그런 이들은 단칼에 제거해야만 할까요? ‘대동소이’라고, 웬만하면 작은 차이는 덮고 큰 틀에서 일치하니까 서로 관용을 베푸는 게 형제와 자매 된 그리스도인으로서 더 바람직한 게 아닐까요? 상대방이 들으면 모욕으로 느낄만한 언사를 내뱉는 바울의 태도를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

 

바울은 19절에서 그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을 네 가지로 묘사했습니다. 이를 살피면 바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첫째, 바울이 볼 때 할례파의 마지막은 파멸입니다. 할례파는 자신들의 삶을 완성하려고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유대교의 전통에서 온 할례는 그런 삶의 상징입니다. 할례파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도 그런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좋은 전통은 당연히 이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런 신앙을 추구합니다. 높은 점수를 받아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는 입시생과 비슷한 태도입니다. 그런 노력은 장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서 인정받습니다. 결과는 어떨까요? 바울은 멸망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여기서 우리의 삶이 완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완성될 수 없는 삶을 완성해야 한다는 강박에 떨어지니까 파멸하는 겁니다.

 

둘째, 그들의 신은 배입니다. 배를 신으로 삼는다는 말은 배부른 상태를 절대적인 가치로 여긴다는 뜻입니다. 포만감은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쾌감입니다. 로마 귀족들은 연회를 자주 베풀었습니다. 많이 먹고 많이 마시고 가무를 많이 즐겼습니다. 어떤 때는 먹는 즐거움을 자주 느끼려고 연회장 옆에 구토할 공간을 마련해두었다고 합니다. 먹고 토하고, 다시 먹고 토하는 겁니다. 현대인들이 노골적으로 이런 행태를 보이지 않겠으나 전체적인 삶의 방향은 비슷합니다. 자신의 인생살이에 무엇인가를 가득 채우려고 합니다. 옷도 많고 신발도 많고 가전제품도 많습니다. 그래도 만족이 안 됩니다. 다시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으로 갈아치웁니다. 스마트폰 회사가 돈을 버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할례파로 특징되는 당시 일부 빌립보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구원을 이 땅에서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제 불안한 실존을 견디지 못합니다. 일종의 구원파 신앙과 비슷합니다. 그런 신앙은 예수 십자가와 대립합니다. 십자가 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거와 같은 실존까지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들의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습니다. 할례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볼 때 할례는 몸에 상처를 내고 피를 흘리는 것이기에 부끄러운 일입니다. 위생이나 다른 이유로 유대민족이 할례를 고유한 전통으로 받아들였다면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걸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면서 자신들이 영광스러운 백성이라고 주장하니까 문제가 되는 겁니다. 특히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신앙의 본질로 삼는 그리스도인이 할례를 다른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십자가와 원수 맺는 겁니다. 십자가 신앙이 상대화되기 때문입니다.

 

넷째, 그들은 땅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네 번째가 앞의 세 가지를 다 포함합니다. 바울이 볼 때 거짓 교사들은 빌립보 교인들을 땅의 일에 매달리게 합니다. 나쁜 의도를 갖고 그렇게 하는 건 아닙니다. 의도와 동기는 좋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한 하나님의 뜻을 가장 바르게 알고 따라서 살았던 이들은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백성이 갖춰야 할 많은 규범이 있었습니다. 그런 규범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이 이 땅에서 성취할 수 있는 최선의 길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그것은 아무리 선해도 ‘땅의 일’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에서 가장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십시오. 그들은 교회에서 인정받습니다.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됩니다. 그들 스스로 교회에서 인정받음으로써 자기 인생이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성장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교회 직분자를 세우는 행사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이런 교회 행사가 때에 따라서 필요합니다. 문제는 그것만을 신앙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에 얻을 수 있는 업적에 매달리는 겁니다. 그런 업적으로 영혼의 안식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땅의 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땅의 일’을 전적으로 무시하거나 배격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인생 실패를 무조건 합리화할 수도 없습니다. 차안을 부정하고 무조건 피안만 바라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땅의 일에 소극적이고 무관심한 그리스도교를 조롱한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많습니다. 민중의 아편이라는 말도 있고, 집단적 히스테리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소위 생(生) 철학자인 니체는 가장 날카롭게 그리스도교의 유약성을 비판했습니다.

 

바울은 지금 여기 땅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역사적 책임을 외면해도 된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 문제의 핵심은 삶의 완성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냐, 아니면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런 차이를 어떤 분들은 실감하지 못하겠으나 실제로는 엄청나게 다릅니다. 이게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는 게 오늘 설교의 후반부 내용입니다.

 

영광스러운 몸

 

바울은 빌 20~21절에서 자기의 생각을 시(詩) 형식으로 적었습니다. 시는 은유적인 성격이 있다는 걸 고려해서 이 대목을 읽어야 합니다. 20절을 읽을 테니 들어보십시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

 

여기서 ‘땅의 일’과 대비되는 단어는 ‘하늘’입니다. 루터는 우리의 고향이 하늘에 있다고 번역했습니다.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는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데, 지금은 땅에서 살아야 합니다. 디아스포라의 운명입니다. 하늘은 공간으로서의 하늘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현대 물리학이 밝혀준 그 공간으로서의 하늘에는 대부분이 흑암 에너지가 있을 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늘이라는 메타포는 하나님의 생명이 은폐된 곳을 가리킵니다. 비유적으로, 태아에게는 어머니 자궁 밖은 은폐된 세계입니다. 바울은 그 하늘로부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라고 노래합니다. 사도신경도 그 사실을 말합니다.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는 종말에 우리는 참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 생명은 완성될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 우리는 디아스포라로서 이 땅의 질서와 한계 안에서 옹색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게 십자가 신앙입니다. 바울이 거짓 교사라고 부르는 그들은 지금 여기서 이미 완전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종말에서야 가능한 생명을 여기서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따르면 19절이 말하듯이 결국에는 파멸에 이르거나 거짓 자기만족에 떨어집니다.

 

21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실 그 종말론적 구원이 무엇인지를 찬송을 부르듯이 노래합니다. 「새번역」으로 읽겠습니다.

 

그분은 만물을 복종시킬 수 있는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화시키셔서, 자기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 문장에도 두 대립어가 나옵니다. 하나는 ‘우리의 비천한 몸’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에게 일어났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키리라고 노래했습니다.

 

여기서 비천한 몸이라는 표현은 인간 몸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비천한 몸은 땅의 조건에 지배받고, 결국은 죽어야 할 몸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실존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먹어야만 삽니다. 병들고 외롭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오히려 시기하고 미워합니다. 온갖 욕망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교만과 자기 자랑도 하늘 높은 줄 모를 정도입니다. 그런 조건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늙거나 사고나 병으로 죽습니다. 이런 인간의 실질적인 실존이 모두 비천한 몸이라는 표현이 가리키는 겁니다.

 

바울이 정작 말하려는 핵심은 우리의 비천한 몸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변화가 실제로 무엇인지 우리는 정확하게 모릅니다. 새처럼 공중을 날아다니는 건지, 돌고래처럼 바다를 마음대로 헤엄칠 수 있다는 건지, 모두가 미남 미녀로 변한다는 건지 모릅니다. 변화는 ‘새 창조’라는 사실만 분명합니다. 빅뱅으로 시작한 처음 창조를, 그것이 실제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듯이 새 창조도 아무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새 창조야말로 하나님의 전권에 속한다는 뜻입니다. 땅에서의 모든 한계가 무너지는 변화입니다. 일상에서 유비를 찾자면 애벌레가 나비가 되거나, 씨앗이 꽃으로 변하는 겁니다.

 

저도 그런 변화를 고대합니다. 저 스스로는 변화할 수가 없습니다. 노력하면 조금 나아지기는 하지만 고집스러운 태도는 고치지 못합니다. 저의 아내도 그런 저와 한평생 사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간혹 교인들도 힘들었을 겁니다. 제가 억지로 고치려고 해봐야 조금 달라질 뿐이지 큰 효과가 없었습니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처럼 잘해야 위선입니다. 만약 여기서 사는 동안 나에게 일어났던 일만으로 하나님이 나를 심판하신다면 지옥은 아니라 하더라도 천국에 직행할 자신은 없고 연옥에 가야 할 듯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의 영광스러운 몸과 똑같이 저를 변화시키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순간을 기다리면서 저에게 주어진 이 땅에서의 인생을 최선으로 살아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저와 비슷한 생각으로 오늘 이 순간을 살고 있을 겁니다. 이런 점에서도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라는 바울의 말을 저도 여러분에게 할 수 있습니다. 저를 따라오라는 게 아니라 예수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할 순간을 함께 기다리자는 권면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몸은 예수에게 일어난 부활 생명입니다. 비천한 몸이 당도할 죽음을 거쳐서 ‘살아있는 자’로 변화하는 생명입니다. 세상의 대통령이나 왕이라는 자리와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생명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그런 순간을 함께 기다린다는 점에서 여러분과 저는 거룩한 도반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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