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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행복

빌립보서 조용기 목사............... 조회 수 1815 추천 수 0 2009.10.20 00: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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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빌4:4~7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6년 10월 22일 주일 2부 설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소박한 행복’이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생을 그저 덤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날이 그날이고, 또 그날이 그날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인생이 고통스럽다고 말합니다. 별로 살고 싶은 곳이 아니라고 탄식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삶이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살펴보면 소박한 행복은 다 가질 수 있고 누릴 수가 있습니다.
거창스러운 무엇이 있어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생활 중 소박한 가운데서 마음속에 찌릿한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본론]
1.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

삶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이 있으므로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인간은 아담의 타락으로 삶의 고향을 잃어 버렸습니다. 원래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만들어진 인생이 범죄 하므로 하나님을 버리고 에덴을 떠나서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사람들은 모두다 그 가슴속에 고향을 잃어버린 상실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 1: 4에 보면 “슬프다 범죄 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 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라고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아담 하와 이후로 에덴에서 나오고 난 다음 에덴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에덴에서 쫓아내신 이후에 에덴을 옮겨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제는 길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또 어디로 가는가, 혼돈 속에 빠져서 잃어버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렘17: 5에 “야훼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야훼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모두 다 저주받은 삶을 살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자연적으로 고향을 잃어버리고 갈 길을 잃어버린 우리들은 자기 상실증에 걸려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정체성을 상실했습니다. 내가 동물인지, 물질인지, 영혼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습니다. 가리켜 줄자가 없는 것입니다.
약 4:14 말씀대로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취생몽사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이냐, 여기에 대한 대답을 우리가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심령에 행복을 갖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고향과 길과 자기라는 정체성을 회복해야 우리가 마음에 평화를 갖고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2천 년 전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잃어버린 우리를 찾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더불어 우주를 창조하신 제2위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쓰시고 사람 가운데 오셔서 인간 가운데서 온갖 고통과 괴로움을 다 겪으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서 죄 값을 형성하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안개구름을 재끼고 하나님 앞에 우리 잃어버린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을 통해서 가장 큰 은총을 받는 것은 잃어버린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자녀도 아니오, 동물적인 인간도 아니요,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깊이 믿고 알게 된 것입니다.
사53: 6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고향인 하나님의 품을 찾았습니다. 우리는 항상 고향을 잃어버린 심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고향이 어디냐, 우리 아버지의 품인 것입니다. 아버지가 계신 곳이 바로 에덴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의 품을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가면 아버지의 품에 안길수가 있고 아버지를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고향을 찾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라고 했는데 우리는 이제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당당한 권세를 가지고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길을 알게 된 것입니다. 어디서 왔느냐, 우리는 아담의 후손으로써 세상에 왔는데 왜 사느냐, 예수를 믿고 하나님 섬기기 위해서 산다. 어디로 가느냐? 천국 영생복락으로 간다는 길을 우리가 찾은 것입니다. 길 잃어버리고 방황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밝히 길을 알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14: 6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잃어버린 존재가 아닙니다. 자기를 찾아서 당당한 자기의 신분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누굽니까? 물으면 벧전 2: 9처럼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되었다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말해도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만인 중에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셔서 택하여 자녀로 삼아주시고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고 제사장 노릇하고 하늘나라가 내게 임하여 있으며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어 하나님이 품에 품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분명한 자기의 신분을 선언할 수 있게 되어서 잃어버린 자기를 찾게 된 것입니다. 삶의 의미인 하나님, 삶의 가치인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 삶의 목적인 천국을 우리가 확실히 마음속에 얻게 된 것입니다.
요 6:40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했으며
요14: 3에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소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고향인 하나님을 찾았고, 길인 예수님을 모시고 잃어버린 내 자신을 찾았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아는 평안을 마음속에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스웨덴의 복음가수 레나 마리아는 두 팔과 한쪽 다리 절반이 없는 선천성 장애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창조의 뜻을 깨닫고 오히려 불구로 태어난 것조차도 감사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장애에 굴하지 않고 모험을 즐긴 결과 장애인 올림픽에서 수영 4관왕을 차지했습니다. 두 팔이 없고 한쪽 다리의 반이 없는 그가 수영에 4관왕을 차지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세계적인 복음가수가 되었습니다. 지금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신실한 청년과 결혼해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스스로를 저버리지 아니하고 좌절하고 낙심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하나님 안에서 기쁘고 행복하게 사니까 그의 삶속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일들이 늘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불구의 몸으로 올림픽에 나가서 수영 4관왕도 되고 가수가 되어 대중들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서서 찬송가 노래를 부르고 그러한 밝고 맑고 환한 인격에 감동한 젊은 청년이 프러포즈해서 결혼해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20세기 최고의 여류작가로 불리는 프랑스와즈 사강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소르본 대학에 재학 중이던 18세 때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소설을 발표한 천재 작가요, 인물도 아름다운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항상 인생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낙심하고 탄식하며 하나님을 등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신론자요,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이혼을 하고 도박에 빠지고 알코올 중독으로 폐인이 되고 약물 남용으로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고 만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저버렸습니다. 명예도 가지고 돈도 가지고 미모도 가지고 있었지만 항상 불행하고 불만족한 것으로 꽉 들어차고 최후에는 패퇴한 인생을 살다가 처참하게 죽고만 것입니다. 진정한 삶의 의미와 목적과 행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사람만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나는 환경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행복은 마음속에 있지 환경에 있지 않는 것입니다. 환경은 행복에 플러스 요건은 될 수 있어도 행복의 원인은 되지 못합니다. 환경이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행복은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겨서 빈 가슴속에 영원의 고향을 차지하고 인생의 길이신 예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따라가며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새로운 삶의 신분을 발견하고 살 때 비로소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인생을 밝고 맑고 환하게 살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살 때 하나님도 복을 주시고 사람들도 그러한 사람을 존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 살면서 아무리 환경이 좋고 천재적인 지혜와 총명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모르고 예수님을 등지고 사는 인생은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입니다.

2. 탐욕을 버린 겸허한 마음
탐욕은 인생에 파탄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모든 사람에게 분량대로 인생을 살도록 해주었습니다. 뱁새는 뱁새로 살아야 되지 황새가 될 수 없습니다. 황새는 황새로 살아야지 뱁새로 낮아질 수 없습니다. 이솝우화에 보게 되면 개구리가 황소처럼 되겠다고 공기를 들여 마셨다가 배가 터져서 죽었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분수를 뛰어넘는 것이 탐욕인 것입니다. 아담이 사람으로 지음 받았으면 사람으로 살아야지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것은 엄청난 탐욕입니다. 피조물이 어떻게 조물주가 되겠다는 것입니까? 탐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귀가 시험하는 것이지 탐욕이 없으면 마귀가 시험하지 않습니다. 거름 무더기가 있어야 똥파리가 찾아오지 거름 무더기가 없는데 똥파리가 찾아오지 않습니다. 탐심이 곧 우리를 파멸케 하는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약 1:14~15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한 것입니다.
탐심이 들어오면 부정한 방법으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온갖 범죄를 하게 되고 종국적으로 사망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아담의 탐욕은 결국 자기와 전 인류를 파멸로 이끌고 만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구약시대에 가장 위대한 왕으로써 다윗을 꼽고 있습니다만 다윗의 생애 속에 가장 처절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 있습니다. 자기의 부하인 우리아의 아내를 통간하고 우리아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우리아를 일선에 보내서 전쟁에서 죽게 만든 것입니다. 엄청난 죄악입니다. 그가 탐욕을 가지고 남의 아내를 탐냈던 것입니다. 자기에게도 충분히 많은 수의 아내가 있는데 남의 아내를 탐내었던 것입니다. 자기에게도 충분히 많은 수의 아내가 있는데 자기 아내를 제켜 놓고 남의 아내를 탐냈던 것입니다. 분수에 넘친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말하기를 “네가 원했으면 여기저기 더 주었을 수도 있는데 왜 남의 아내를 탐욕을 내었느냐?”고 꾸짖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그 탐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큰 심판을 받았습니다.
삼하12:10에 보면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얼마나 무서운 심판입니까? 남의 아내를 취하고 남편을 전쟁에 내보내 죽게 하므로 말미암아 다윗의 가정에 칼이 떠나지 않았는데 그 아들 압살롬이 죽이려고 반역을 일으켜 아들과 큰 전쟁을 치룬 일을 여러분이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14절에 보면 “이 일로 말미암아 야훼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마귀가 얼씨구나 좋다고 그 기회를 타서 다윗을 참소하므로 밧세바에게 낳은 아들이 병들어서 죽고 만 것입니다. 다윗이 탐욕을 품고 탐욕으로 행하므로 말미암아 그 삶에 파탄을 가져온 것입니다.
벤 플랜클린은 탐심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탐욕과 행복은 결코 서로 만나지 않는다. 그러니 이 둘이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겠느냐?” 또한 석유 재벌인 록펠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자가 행복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록펠러만한 부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부자가 행복하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했습니다. 통계에서 보면 사람이 어느 정도의 물질만 가지면 그 이후로는 물질과 환경으로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15평의 집에 사는 사람이 35평의 집을 얻을 때는 행복한데 35평을 사는 사람이 50평의 집을 살 때는 덤덤하고 별 볼일 없다는 것입니다.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이 좋은 옷을 사 입었을 때는 행복하지만 나중에 화려한 옷을 입었을 때는 별로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의 물질만 가지면 그 다음에는 물질을 아무리 가져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환경이 조그마한 플러스 요건은 될 수 있어도 전적으로 환경이 행복을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를 섬기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한 은혜 속에 있을 때 행복한 것입니다. 아담과 다윗은 그들의 탐욕으로 파탄에 이르렀습니다. 탐욕이 들어오면 아무리 많이 가져도 결코 만족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가 탐욕을 버리고 겸허한 마음으로 살 때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면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않고 살게 해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살 때는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살았지만 하나님을 따라 광야로 돌아왔을 때는 농사도 지을 수 없고 논밭도 없었습니다. 짐승도 기를 수가 없었습니다. 빈 손 들었습니다. 하늘만 처다 보았습니다. 그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하늘만 처다 보고 하나님만 의지했지만 헐벗지도 아니하고 굶주리지도 아니하고 배고프지도 아니하고 목마르지도 아니한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아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광야 같은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이 모자란다 할지라도 하늘을 쳐다보고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먹고, 입고, 마시고 살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마 6: 24~33까지 우리 다 같이 소리 내어 한번 읽으십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 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 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 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그 다음일은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신지라 거짓이 없으십니다. 인자가 아니신지라 식언치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인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구하고 살면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고 성수주일하고 십일조 드리며 말씀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신앙을 실천으로 살면 우리는 일상생활에 하나님이 돌보아 주심으로 염려 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소박한 행복을 누리고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선한 인간관계를 유지
우리는 어찌할 수없이 태어날 때부터 가족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만 지어놓지 아니하시고 하와를 지어서 두 사람이 함께 살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창 2:24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어찌할 수없이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어서 함께 살아야 되지 이 함께 사는 것이 없으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또 부부가 있으면 자식을 낳기 때문에 부모, 자녀의 관계가 원만해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 자녀가 원만하지 못하면 행복이 없습니다. 또 형제들이 있기 때문에 형제의 관계도 원만하게 이끌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 형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도 잘 맺어야 됩니다. 별 도리 없이 우리는 혼자 살지 않고 사회에서 함께 몸을 부딪히며 살아가기 때문에 이웃과도 올바른 관계를 갖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한 인간관계를 위해서 항상 주님께 의지하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아온 사람은 모든 사람이 나와 똑같이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개인의 경험이 다르고 개성이 다른 것입니다. 경험과 개성이 다른 사람을 보고 나와 똑같으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세계가 있고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세계가 있으니 이것을 인정하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벧전 3: 8에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 언제나 우리가 서로 좋은 관계를 갖고 살려면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롬12:15에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즐거워하는 집에 가서 울면 안 되고 우는 집에 가서 깔깔 거리고 웃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우리가 이웃에 동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서로 짐을 나누어지는 그러한 자상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인간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참는 것입니다. 첫째도 참고, 둘째도 참고, 셋째도 참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화를 내고 주먹을 휘두르면 큰 사고가 나지 않습니까? 국제 관계에도 또 참고, 또 참고, 또 참아서 전쟁을 하지 말아야 되지 전쟁을 하면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죽습니까? 무자비하게 죄 없는 청년들이 피를 흘리고 비명횡사하는 이런 전쟁을 안 하기 위해서는 국제관계도 참고, 또 참고 대화를 하고, 또 대화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부부간에도 참아야 되고, 부모 자식 간에도 참아야 되고, 형제간에도 참아야 되고, 이웃 간에도 참고 또 참고 또 참아야 문제가 해결되고 좋은 인간관계를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롬15: 5에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2-3)”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뛰어 나가서 얼싸안고 뛰고 구르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라는 것은 잠잠하게 이웃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마음, 관용하는 마음을 가진 것이 사랑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도 늘 마음이 부딪히잖아요. 잠잠하게 용서하고 화해하고 관용하는 마음, 이것이 부부간에 부모자식 간에 형제간에 이웃 간에 있을 때 우리가 인간관계를 올바르게 가질 수 있고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관계가 굉장히 우리 마음속에 슬픔과 고통을 가질 수 있습니다. 부부간에 불화하면 마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부모 자식 간에 상극이 되면 부모의 마음, 자식의 마음도 깊은 슬픔에 차이게 되는 것입니다. 형제간에 싸워도 괴롭고 이웃 간에 싸워도 마음에 평안하지 않습니다. 마음에 평안과 행복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인간관계를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 이해하고 동정하고 인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도록 끊임없이 우리가 노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갈 5:13~14에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4. 건강을 감사하고 관리
건강함을 감사하고 즐기는 우리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건강할 때 건강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러나 건강을 잃고 보면 얼마나 건강이 소중한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건강 주신 것을 감사를 해야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건강한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합니까? 오늘도 병원에 가보십시오. 환자들이 줄을 서서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고통가운데 있는 것입니까?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만 해도 절대로 행복하고 즐거운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시 6: 2에 보면 “야훼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야훼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라고 시편기자가 간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103: 2~ 3에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라고 말한 것입니다.
병을 치료받고 건강함을 가져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에서 호의호식하고 살아도 몸이 아프면 짜증이 나고 좋은 것이 하나도 없고 고통만 꽉 들어찬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늘 건강을 달라고 기도하고 건강함을 감사, 찬송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감사로 제사를 드린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했는데 평소에 건강할 때 건강을 감사하지 아니하면 나중에 병들 때 아무리 고쳐달라고 해도 응답이 잘 오지 않습니다. 있는 것을 가지고 감사를 하면 하나님이 나중에 기쁘게 기도를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에 살면서 건강에 투자를 해야 돼요. 건강에 투자를 하지 않고 자연히 건강해 지지는 않습니다. 건강에 어떻게 투자를 합니까?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잠17:22)”고 했으니까 우리가 마음에 즐거움을 항상 가지고 평안을 가지고 살려고 투자를 해야 돼요. 노력을 해야 돼요. 마음에 평화를 깨고 흔들고 마음에 화평을 잃게 하는 것은 피해야 돼요. 우리가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마음에 즐거움과 평화가 다 사라지잖아요. 그런데 이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서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고 말씀 읽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늘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잠17:22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만 즐거워할 뿐 아니라 이웃에 즐거움을 주는 약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웃을 즐겁게 하면 이웃에 양약이 되어 주고 이웃에 마음에 근심을 끼치면 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고 아내가 남편을 약이 되게도 하고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약이 되고 독이 되고 자식이 부모에게 약이 되고 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에게 기쁨을 주고 평안을 주면 양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에게 근심을 끼치면 우리가 남을 죽이는 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언제나 이웃에 양약이 되고 독이 되지 않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16:11에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고 주의 은혜 속에 있으면 마음의 즐거움이 주님께로부터 오며 평안도 주님께로부터 오므로 우리 속에 양약이 역사해서 질병을 이기고 건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즐거움과 평안은 우리의 건강에 절대적인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식생활에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굶어죽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너무 잘 먹어서 많이 먹어서 죽는 사람은 굉장히 많습니다. 신현균 목사님이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자기가 평양에 가서 고려호텔 사우나탕에 사우나를 하러 가니까 젊은 애들이 잘 먹어서 살이 잘 찐 애들이 사우나를 왔더랍니다. 북한에서 호텔에 와서 사우나를 할 정도면 보통 고급 집 자녀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이 신현균 목사님 보고 하는 말이 “우리는 김정일 동지의 지극한 돌보심과 사랑으로 잘 먹고, 잘살며 사우나탕에 와서 사우나도 하는데 남한은 전부 거지가 되어 헐벗고 굶주리며 미국 놈들이 완전히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한다고 그러는데 남한에 있는 것 참 불쌍하다.”고 그래서 신현균 목사가 허허 웃으면서 “남한에는 먹을 것이 너무 많아서 개도 고양이도 다 살이 쪄있어.” 그리고 난 다음 처다 보니까 “그런 거짓말 하지 말아라.” 그래서 신 목사님이 배가 굉장히 남산만큼 나왔거든요. 그래서 자기 배를 툭툭 치면서 “봐! 굶은 사람 배나온 놈 봤어? 우리나라의 문제는 너무 많이 먹어서 나처럼 배가 남산만큼 나왔기 때문에 배에 기름 빼려고 내가 사우나탕에 들어왔지 않느냐.” 그러니까 배를 가만히 보더니만 아무 말도 안하더랍니다. 오늘날 사실은 배가 홀쭉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배가 남산만해서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식생활에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너무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지 말고 절제할 수 있어야 우리가 건강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건강에 조심하기 위해서 걸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앉아있고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걷는 기회가 없으므로 건강을 손상시킬 때가 많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많이 걸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성경 고전 6:19~20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는데 여러분 몸이 여러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살아있을 동안에 이 성전을 건강하게 보수하고 유지하는 것은 여러분의 책임인 것입니다.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건강에 투자해야 됩니다. 건강을 위해서는 적당한 운동을 하고 음식도 웰빙 식을 먹어야 합니다.
WHO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 인구의 10%에서 30%가 고혈압을 앓고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운동으로 체지방을 줄이고 야채를 많이 먹고, 소금은 적게 먹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국립 심장-폐-혈액연구소인 NHLBI에서는 고혈압을 막기 위해서는 하루 30분 이상 운동하고 체중을 관리하며 야채와 저지방 낙농 식품을 즐겨야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하버드 의대와 오키나와 국제대학이 25년간 세계적인 장수촌인 일본 오키나와 주민들 생활을 연구한 끝에 발표한 장수의 비결이 이러합니다. 먼저 신선한 물을 많이 마시고 야채와 잡곡을 많이 먹고, 동물성 음식과 술 담배를 먹지 말며, 운동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지니면 오래 산다.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물론 죽고 사는 권세는 하나님께 있지만 하나님께서 건강을 우리에게 내어 준 이상 잘 돌보아야 오래 유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람이 살면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했는데 아무리 못살아도 70이상은 살아야 될 것이요.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이 언제나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기쁨으로 충만하면 양약이 몸속에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식생활을 조심해서 하고 늘 운동하며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면 건강해지고 소박한 행복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먼저 이와 같이 식생활 개선과 운동에 투자를 해야 건강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병원에 가서 우리 몸의 건강을 조사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병원과 세상병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병원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병원에 입원하는 것입니다. 기도할때마다 하나님 병원에 입원하십시오. 하나님 아버지는 내가 너의 병을 고치는 야훼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하늘나라 병원 원장은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출15:26에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야훼임이라”고 했으니 우리는 우리 병원은 영적인 병원인 하늘나라 병원의 원장인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고 하늘나라 약은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벧전 2:24에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의사가 되시고 예수님이 나의 약이 되시므로 언제나 의사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여러분 치료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예수님이 우리의 치료약이기 때문에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는 이 약속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항상 입으로 시인하며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지식과 믿음이 다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와 같은 믿음과 지식이 없는 사람은 하늘나라 병원에 입원하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이 의사인 것을 모르고 예수님이 약인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억지로 남 따라서 했다가는 큰일 납니다. 그런 믿음이 없는 사람은 세상병원에 가고 세상 약을 먹고 세상에 의지해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치료함을 입어 건강을 얻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고 탐욕을 버린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선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건강을 감사하고 관리하는 이 네 가지 삶의 조건을 잘 조절하면 소박한 행복을 가질 수 있습니다. 놨다, 놓았다 떠들썩한 행복이 아니라 남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용하고 잠잠하게 인생을 즐기고 기쁘게 살다가 주님나라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 모두는 세상 환경을 통해서 행복을 얻을 만큼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것 가운데서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수가 있사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다 발견했사오니 행복합니다. 아버지여 주안에서 탐욕을 버리고 겸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삶으로 행복합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시여, 우리는 선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이해하고 동정하고 인내하고 살아남을 가지고 삶으로 행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원장이 되시고 예수님이 우리의 약이 되셔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해서 치료받고 건강하게 사니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모두다 행복을 계산해 보게 하여 주시옵시고 행복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시고 행복을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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