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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푯대와 인생

빌립보서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638 추천 수 0 2009.12.14 16:5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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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빌3:13~14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8. 4. 20. 주일설교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삶의 푯대와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들은 삶을 성공시킬 여러 가지 계획프로그램을 세우고 훈련도 하고 열심히 노력도 합니다. 얼마간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도 하며 만족할 때도 있고 낙심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마음에 무언가 탁 트이지 않는 기분이 있고 무언가 안개 낀 것처럼 마음이 늘 불안합니다. 그 이유는 인생 전체를 관통하며 이끌어가고 삶에 불을 붙이는 삶의 목표와 꿈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일본인 작가 미네노 다쓰히로가 쓴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한 대학생이 우수한 성적을 받아 원하던 대학에 들어간 후 그만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비통하게 여긴 부모들이 애통하고 그 아들을 장례 지내고 난 다음에 아들의 일기장을 들췄습니다. 그 일기장에는 유서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저는 오로지 대학입시만을 위해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합격한 지금 그 모든 것이 헛되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의 만족을 위해서라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날마다 어떤 가치와 목적을 향해 살아가야 하는가를 본질적인 질문을 질문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의 삶은 성공시킬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이를 위해 훈련하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항상 마음속에 무엇인가 빈자리가 있고 안개 낀 것처럼 불안합니다. 그 이유는 인생전체를 이끌어 가고 삶을 깨뜨려 가는 목표와 꿈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일생을 살아갈 수 있는 목표와 꿈이 우리 마음속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바울 선생의 일관된 삶의 목표
사도 바울 선생은 일관된 삶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냥 막연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 전하는 사람이 아니었었습니다. 일평생에 그가 뛰어갈 수 있는 목표를 분명히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3절로 14절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뒤에 있는 것을 자꾸 거추장스럽게 돌아보면 거기에 잡히고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해서 달려간다. 그는 푯대가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동서남북 온갖 대에 마음을 흐트리는 것이 생길지라도 거기에 끌리지 아니하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그 푯대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름의 상이 바로 그 푯대인 것입니다.
바울의 인생 푯대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 즉 이방인의 사도 직분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기 때문에 온 천하 이방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 하겠다는 것이 그 삶의 분명한 푯대요, 목적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15절에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바울 선생에게는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기 위한 택한 그릇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는 하나님께 칭찬 받고 상 받기를 원했습니다. 잘했다고 칭찬받고 하나님이 상주시는 훌륭한 전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24절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다 같은 사람들이 운동장에서 뛰잖아요. 그러나 1등 하는 사람이 상을 얻는 것처럼 일심으로 앞을 보고 내어 달려야 일등을 하지 뒤를 돌아보면 일등을 못합니다. 저는 옛날에 800미터 선수여서 언제나 경기가 있으면 선수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800미터를 뛰는 데 제가 1등으로 달려가다가 마음에 교만한 생각이 생겼습니다. 아무도 나를 따라오지 못하지 하고 뒤를 돌아오는 틈에 사람들이 다 내 앞으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뒤를 돌아보다가 상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람은 한결 같이 한 목표를 향해서 뛰어야지 뒤를 살피고 좌우를 살피면 노력이 상실되고 도보가 낮아지고 승리를 잃어버리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방향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사는데 올바른 방향을 꽉 잡아야 돼요.
유명한 아인슈타인이 뉴욕에서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는데 잠시 후 승무원이 승객의 표를 조사를 합니다. 표를 걷는데 아인슈타인 박사 편에 오니까 뭐 표를 위포켓트에 찾고 안포켓트에 찾고 밑포켓트에 찾고 표가 있어야 말이죠. 그 승무원이 "아인슈타인 박사님 저는 당신을 잘 압니다. 속이고 탈분이 아니신 것을 아는데 표를 못 찾는 것 보니 내가 받은 줄 알고 그냥 지나가겠습니다." "고맙네." 그리고 그 승무원이 지나가서 전부 표를 고두고 30분 만에 돌아왔는데 지금도 또 표 찾는다고 야단이거든.. 자리 밑을 들여다가 보고 포켓트를 보고 "표 받은 줄로 생각하구요 제가 지나가겠다고 했는데 왜 지금도 표를 찾습니까?" 그러니까 "아니 그게 아니에요." "그게 뭡니까?" "표에 내가 내릴 역이 기록되어 있는데 내가 어느 역에서 내리는지 알 수가 없어 가지고서 표를 찾고 있습니다." 기차를 타기는 탔는데 어느 역에 내리는지 방향을 알지 못하면 큰일 아닌 것입니까? 우리 인생이 살기는 사는데 어디에 가며 어느 곳에 무엇을 하는지를 분명히 알지 못하고 방황을 하면은 우리 인생은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 열심히 합니다. 문제는 가야 할 장소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푯대를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향해서 달려가느냐. 오늘 여러분 무엇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입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옷 갈아입고 밥 잡수시고 출발해서 인생을 출발하는 매일매일의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그 생활 전체를 꿰뚫어 이끌어 가는 삶의 목표가 무엇인 것입니까? 그냥 사는 것입니까? 먹고 자고 깨달아 죽는 것입니까? 적은 일이든 큰일이든 나의 삶에 목표를 두고 뛰어야 나중에 후회함이 없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서 내 인생이 무엇인지 그 목표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자연도 다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장미꽃은 장미꽃으로써의 목표를 다하는 것입니다. 다리아는 다리아, 찔레꽃은 찔레, 봉숭아꽃은 봉숭아, 며느리밥풀 꽃은 며느리밥풀 꽃으로 자기의 크고 적은 존재에 불과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정주부로써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면 가정주부로써 일생을 잘살았으면 목표를 다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잘 기르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으면 자녀를 잘 길러내므로 목표를 다한 것입니다. 내가 사업가로써 일을 한다면 사업을 잘해서 나라에 기여하고 많은 사람에게 직장을 주는 것을 잘하면 그로써 내 인생의 목표를 다하는 것입니다. 크고 적은 목표가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해당해서 하라고 주신 일을 끝까지 잘 성취하여 좌왕우왕하지 않고 달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우리가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면 수많은 어려움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바울선생이 하나님의 부르신 부름을 향해서 달려가는 그 일생에 수많은 위험과 고통을 당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6절에 보면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데 하나님이 같이 계시므로 평안하게 아무 어려움이 없이 갈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수많은 위험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것을 이기고 나가는 것이 우리 인생여행인 것입니다. 고생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사는데 고생 안하는 사람 절대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7절에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바울선생의 인생은 수고하고 애쓰며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는 인생길을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었고 하나님이 같이하였습니다만 하나님이 같이 한다고 해서 인생 고난을 면제해 주지는 않습니다. 고난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극복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나는 왜 예수 잘 믿는데 우리 가정에 왜 이렇게 시련과 환난이 많으냐. 왜 남편이 가시가 되고 아내가 문제가 되느냐. 자식들이 고통을 갖다 주느냐." 그것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다 같이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어 문제를 극복하고 해결해 나가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문제가 없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해 나가는 것이 신앙인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바울선생은 복음을 전하다가 수많은 형벌을 당하고 감옥에 들어가서 고생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절로 25절에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그와 같이 말했었습니다.
바울선생은 수많은 형벌과 투옥을 당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꾸러지지 않고 일어났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벌써 거꾸러지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했을 것인데 오뚜기처럼 일어날 수 있는 것은 그의 속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향해서 나아갈 때 하나님의 생명이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육신의 생명의 힘으로 살기 때문에 힘에 부딪히면 무너지고 부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구주로 믿은 사람 중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이 속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생명이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부활의 생명이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으로 아무리 시련과 환난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넘어지더라도 오뚜기처럼 일어날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힘이 속에서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바울선생은 그 일생을 살아가면서 질병으로 많은 고통을 당했었습니다. 요사이 같이 좋은 의료시설이 없고 의사를 만나볼 수도 없는 처지에 약도 없는데 그는 몸에 고통을 당하면서도 온 구라파를 복음화 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로 9절에 보면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얼마나 몸이 아프기 때문에 그는 세번 주님께 간절히 구했으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몸이 약해서 바울선생은 무슨 병인지는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육신의 가시가 들어와서 수없이 가시가 몸을 찌르고 고통을 주는데 이것이 바로 사탄의 사자라고 말한 것입니다. 한번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 같은 기도의 용사가 두 번 기도하고 세 번 간절히 기도하고 이 사탄의 사자를 물리쳐 달라고 하니까 하나님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네가 계시를 너무 많이 받고 은혜를 너무나 많이 받았기 때문에 교만해지기 십상이다. 교만해지면 은혜도 떠나가고 하나님 은혜도 다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니 네가 깨어지게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사탄의 사자가 너를 괴롭히므로 하나님께 매달리게 만들어서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사역하게 만들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은 고통스러워야 매달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편안하고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기도 안 해요. 고통스러우면 주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고통이 적으면 적게 기도하고 많으면 많이 기도하고 고통이 크면 금식하고 철야하며 기도원에 가서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기도는 자기의 고통에 정비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생생활에 완전히 고통이 없는 삶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것은 신앙을 잃어버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에 불이 붙어 있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되고 기도는 괴로워야 기도하지 편안하면 기도를 안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무 일도 없는데 열심히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 보았습니까? 없습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타락하지요. 제가 50년 목회하면서 수많은 사람하고 카운셀링 했습니다. 병들고 고통스럽고 괴로울 때는 하나님이 이 병만 고쳐주시고 이 문제만 해결해 주시면 새벽기도도 열심히 하고 주일날도 열심히 나오고 철야기도도 하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런 말 수없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해주고 난 다음에 건강을 회복하고 문제가 해결되고 난 다음 그만 게을러져서 교회도 안 나오고 시름시름 세상을 향해서 나갈 때 제가 붙들고 카운셀링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럴 때마다 하는 말이 "병 나앗는데 뭐하려고 교회 나갑니까? 문제 다 해결 되었는데 뭐 열심히 해야 되는 것입니까?" 벌써 게을러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바울선생처럼 고통이 있는 것을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괴롭기 때문에 기도할 수 있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은 괴로워도 영적으로는 축복을 받고 영적으로 부흥하고 발전하게 되므로 감사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살면서 육신의 질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질병이 늘 다가오더라도 그를 기도하고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극복을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기도해서 극복할 수 있는 하나님의 힘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여 우리는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위험이냐 기근이냐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넉넉히 이긴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깁니다. 어떠한 일이 다가와도 이긴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길 수 있는 힘이 여러분 속에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눈에는 안보이지만 고난이 다가오면 이길 수 있는 힘이 속에서 넘쳐나는 것입니다.
바울선생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최후로 순교를 당했던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6절로 8절에 그는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고 말한것 입니다.
여러분 바울선생은 일생을 수많은 고통을 당하고 나중에는 순교의 재물이 되었지만 그는 목표를 달성시킨 것입니다. 온 이방에 복음을 증거하는 목표를 달한 것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이루었던 것까지 편만하게 복음을 전하였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신 소명을 따라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데 끝없는 난관과 고통이 다가왔으나 이를 다 극복하고 나갈 수 있던 것은 그의 속에 목표가 분명히 있었고 목표를 향해 나갈 때 하나님의 능력을 그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크고 적은 인생의 목표를 향해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나아갈 때 이를 할 수 있는 은혜가 여러분 속에 항상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시기 바랍니다.
존 번연은 "시험과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마틴 루터는 "시련이 없고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가 가장 위험한 시련이다. 왜냐하면 그때 인간은 하나님을 망각하고 유혹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수많은 위험에 처하고 고생하며 수많은 형벌과 투옥, 시련을 견디며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뛰어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2. 나의 50년 목회생활의 경험
저도 이제 50년 목회생활을 끝내고 은퇴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의 50년 목회생활을 돌아볼 때 정말 바울선생처럼 시련의 연속인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23살에 전도사가 되어 개척전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의 마음속에는 비장한 마음과 결심이 있었습니다. 목표가 있었습니다. 뭐냐, 나는 유수한 교회를 세우게 세계 역사에 남는 교회를 세우겠다. 그리고 빌리 그레함과 같이 온 천하만국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겠다. 두 가지 구름기둥과 불기둥 같은 인생의 목표를 분명하게 정했습니다. 많은 나의 동기동창들은 그런 꿈이 없었어요. 그냥 남의 교회 가서 목회하든지 적당하게 교회를 개척하면서 살아가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만 저는 마음속에 불타는 꿈이 있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 같이 내 마음속에 타올랐습니다. 유수한 교회를 세운 역사에 남는 교회를 세우고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증거 하겠다. 그러한 비장한 결심을 마음속에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목회를 시작하고 난 다음 제가 경험해 보니 그렇지가 않아요. 내 앞을 막는 태산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저는 육체의 병약한 몸이 큰 고통이 되었습니다. 육이오 사변 때 고난을 당할 때 못 먹고 폐병에 걸려서 허약해진 몸이 좀처럼 복구가 되지 않았습니다. 17살에 폐병에 걸려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그 이후로 부터 허약한 체질이 보강되지 않아서 항상 몸이 허약하고 연약했었습니다. 지긋지긋한 심장병으로 고생했습니다. 심장이 한번 뛰기 시작하면 200번 이상 뛰며 주저앉아야 되는 것입니다. 드러누워 있으면 죽음의 불길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오르락내리락 했었습니다. 한번 드러누우면 3시간씩 드러누워서 꼼짝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심장병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러한 고통 속에서 우리 최자실 목사님이 늘 기도할 때 조용기 전도사에게 강철 같은 심장을 달라고 그렇게 늘 부르짖었습니다. 평생을 심장의 고통으로 고생한 것이 기억이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출혈성 치질과 빈혈로 고생했습니다. 얼마나 피를 많이 흘렸던지 화장실이 피투성이가 될 때가 많았었습니다. 그래서 빈혈로써 늘 어지러워서 고통을 당하는 일생의 괴로움을 겪은 것입니다. 극도의 어지러움증과 육신의 허약으로 1964년 서대문교회 때 쓰러진 이후로 더욱 악화되어 내일을 기약할 수 없어서 언제나 유언장을 적어서 포켓트에 넣고 살았던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뼈저린 가난으로 말미암아 하루에 세끼를 먹지 못했습니다. 못 먹으니까 영양실조가 걸리고 뼈와 살만 붙어서 살았었습니다. 좀 잘먹어봤으면 좋겠는데 개척교회 도움도 없고 돈도 없고 헌금도 들어오지 아니하고 양식이 없으니까 언제나 밀가루 빵을 반죽해서 먹고 지냈었습니다. 그리고 도와줄 배경이 없는 슬픔이 괴로웠었습니다. 요사이는 모교회도 있고 총회도 있고 선교부도 있어서 도움의 손을 내밀 수 있지만 제가 개척할 당시에는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아무도 의지할 곳이 없고 오직 하나님 밖에 바랄수가 없어서 주야로 하나님께 하루에 5시간 이상씩 부르짖어 기도하고 주님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령운동을 하니까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때는 이단이다 사설이다 해서 엄청난 대외 대내적인 비난과 공격을 받아서 완전히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시편 23편 4절로 5절이 저의 마음속에 크나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23:6)
이 말씀을 붙잡고 핍박과 환난을 견뎌낸 것입니다. 저의 마음속에 못 말리는 인생의 두 가지 목표가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저는 늘 말했습니다. '주님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이 길을 따라갑니다. 따라 가다가 죽으면 죽겠습니다. 한국과 세계를 품에 품고 나는 살겠습니다. 유수한 교회가 세워지고 온 천하만국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그날까지 죽도록 뛰겠습니다.' 저는 그래서 경험한 것이 있습니다. 수없이 낙심되고 고통스럽고 거꾸러지고 괴로워지고 드러눕고 그렇게 할지라도 내속에 이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을 늘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주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운명과 환경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난을 당할 때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속을 바라보십시오. 속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은혜의 능력과 힘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넉넉히 극복하여 이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절대로 이 시련과 고난은 이길 수가 없다고 생각될 때도 예수님께서 기도할 때 속에서 능력으로 일어나서 붙들어 주시고 이길 수가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기기 위해서 부름을 받고 이기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깁니다. 우리는 도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돕는 자가 우리 속에 와서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 성령께서 여러분과 나와 항상 같이 계시므로 어떠한 사망의 세력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81편 10절에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께 입을 열면 주께서 능력과 은혜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뜻을 따라 무엇을 하든지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3. 우리의 삶을 후회 없이 살기 위하여
여러분 우리의 삶을 후회 없이 살기 위해서는 일생을 꿰뚫는 목표와 꿈을 품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 살았다고 후회하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내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그 시간에 내 인생은 헛되게 살았다. 잘못 살았다. 탄식하면 이미 때가 늦고 마는 것입니다. 인생을 후회 없이 살기 위해서는 내가 목표를 향해서 끝까지 뛰었으면 나는 목표를 향해서 뛰다가 인생을 끝마쳤다. 후회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다가 가니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사는 것이 참 좋은 것입니다. 저는 50년의 목회생활을 뒤돌아 볼 때 후회하지 않습니다. 불광동에서 1958년 천막을 치고 가마니 깔고 개척을 시작해서 서대문으로 오고 여의도로 오고 온 천하만국에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한 과거의 삶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후회하면 얼마나 원통하고 탄식스럽습니까?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뛸 대로 뛰었다. 더 이상 잘할 수도 없고 더 이하로 못할 수도 없다. 후회할 것이 없다. 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천하만국에 복음을 증거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목표를 분명히 하십시오. 그러면 그 목표를 향해서 뛰다가 언제 주님의 부르심을 받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일생을 꿰뚫는 목표와 꿈을 품으십시오. 왜 내가 세상에 태어났습니까? 지극히 작은 삶의 꿈도 목표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명이면 무엇이든지 OK입니다. 내가 주부로써 하나님을 섬기고 내가 가장으로써 하나님을 섬기고 사회인으로써 하나님을 섬기고 직장인으로써 하나님을 섬기고 사업가로써 하나님을 섬기고 무엇이든지 일생을 꿰뚫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섬기고 아버지를 섬기는 삶을 살았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가치 있는 삶을 산 것입니다. 헛된 쾌락을 위해서 살고 부귀영화를 위해서 살았다면 이는 세월이 흘러감과 함께 다 사라지고 말 것인 것입니다. 인생이 풍전등화와 같지 않습니까? 내 인생이 불에 꺼질 때 내가 가진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입니까? 내가 누구를 믿고 누구를 섬겼는가가 영원에 남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니라
하나님이 내 마음속에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뜨거운 소원을 주시고 그 소원을 따라서 살았다면은 후회함이 없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뒤돌아보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뒤에 자꾸 돌아보고 뒷일을 생각하지 말고 돌아온 지난 온 인생은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내가 울어도 못하고 힘써도 못하고 애써도 못합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가 버리는 거에요. 지나간 것을 자꾸 돌아보지 말고 새로운 삶의 길을 결심하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헛된 인생을 살았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습니다.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모셨으면 지금부터라도 우리 가정에서 내 생활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는 목표를 결정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
생명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로 헌신할 수 있는 목표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야 돼요. 화끈하게 인생을 살아봐야 되는 것입니다. 뭘 질질 끌고 살 필요 없어요. 화끈하게 내 생명조차 귀하게 여기지 아니할 정도로 나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달려간다. 그 목표가 무엇인 것입니까? 하나님께 받은바 사명 곧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 바울선생의 목표인 것입니다. 우리도 그것인 것입니다. 잘 먹고 잘 입고 잘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과거에 수많은 우리 한국의 대통령들이 권력을 행사하고 나는 새도 떨어뜨릴듯 하지만 다 자나가고 말았지 않았습니까? 권력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부귀영화도 지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청춘도 지나가고 말아요. 자기가 건강하고 이쁘고 아름답다고 자랑하지만 얼마 있지 않으면 거울을 들여다보면 쭈그렁바가지가 되어서 보기가 흉한 것입니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오직 유일한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만 남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내가 헌신하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나는 구역장으로써 일했다. 나는 지역장으로써 일했다. 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장로로써 살았다. 권사로 살았다. 안수집사로 살았다. 나는 평신도이지만 내가 있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힘쓰고 애쓰며 살았다. 그것이 여러분 나중에 하나님께 자랑할 수 있고 뒤돌아 볼 때 후회할 수 없는 삶을 산 것입니다. 다른 모든 인생은 다 후회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산 것은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서 사는 것만이 후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뒤로 물러가서 침윤에 빠지지 말고 앞으로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백절불굴의 신념으로 꿈을 추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어릴 때 무지개를 따라간 적이 있는 것입니다. 무지개 끝에 가면 황금이 꽉 차 있다는 그런 허망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무지개가 한우물에서 다른 우물로 연결된 줄로 알고 산을 넘고 들을 가로지르고 시내를 건너면서 가시에 찔리고 할퀴면서 무지개를 따라서 몇 시간이고 뛰어본 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허망하게 무지개를 잡지를 못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헌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향한 그 무지개를 향해서 뛰는 것은 결국 하늘나라에 도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이 주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외로운 인생이 아닌 것입니다.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 눈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아버지도 아들도 성령도 눈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기가 눈에 안보여도 우리 폐 속에 가득히 들어와 있는 것처럼 여러분 속에 은혜의 삼위일체 하나님이 들어와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능력을 주시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사는데 필요한 모든 힘과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셔서 넉넉히 이를 이루고 이룰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계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우리가 믿고 나가면 능치 못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항상 하나님의 인도와 도우심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속에 계신 하나님, 나를 이끌어 주시고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 계실 뿐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가운데 계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말씀합니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와 같이 있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 자리에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숨을 쉬듯이 성령이 우리 속에 와서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기 가운데 있는 것처럼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이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믿지 아니하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의지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목숨을 바쳐서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도우는 자 성령께서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고 학생은 선생의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에게는 성령님이 와서 도우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움을 구해야 도와줄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항상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며 의지하고 성령님의 도움을 간구하면 우리의 도우미가 되신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 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아니하면 응답하지 않습니다. 부르짖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찾아오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부르짖고 외치고 그럴 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멀리 떠나 구만리 장천 먼 곳에 계시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꿈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하나님과 함께 동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그냥 떠내려 보낼 만큼 한가한 인생이 아닌 것입니다. 인생은 쓰레기더미에 버리고 갈 인생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하나님께 영광과 칭찬과 찬양을 받을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정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목숨이라도 바친다. 내 있는 힘과 능력을 다 바친다. 그래서 주님께 영광을 받도록 하겠다. 일생을 여러분 이래도 살고 저래도 사는데 예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만이 보람차고 영원히 남는 인생이 되고 나중에 하나님께 나가서 칭찬과 찬양과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영광된 인생을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세상에 왜 태어났나요? 하나님께서 아무 목적 없이 인생을 태어나게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섬기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 부름을 받았는데 우리는 이 길을 버리고 자행자제하며 세상을 따라 오래산 것을 회개하고 자복합니다. 잘못된 삶을 청산하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 들어 왔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같이 하셔서 만난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그 은혜를 의지해서 열매 맺는 삶을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기적적인 인생을 살게 도와 주시옵시고 승리의 삶을 살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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