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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황무지에서도 꽃을 피웁니다

빌립보서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217 추천 수 0 2010.04.06 14:4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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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빌1:12-18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2003.6.15

 

세계 역사상 교회 음악 작곡가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요한 세바스챤 바하'일 것입니다. 그는 황무지같은 가정 환경 속에서 장미꽃같은 아름다운 음악작품들을 남겼습니다. 그의 음악은 황무지에서 핀 꽃과 같습니다. 그야말로 그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어릴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를 키워준 사람은 형이 있었지만 형은 자기가 먹여 살려야만 되는 동생을 몹시 미워하였답니다. 마리아와 결혼하였지만 일곱 자녀를 낳고 바하가 레오폴드 후작과 연주 여행을 떠난 사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바하가 집에 돌아 왔을 때는 이미 장례식까지 끝난 뒤였습니다. 다시 결혼하여 11명의 아들과 9명의 딸을 두었지만 그 중 10명의 자녀가 어려서 죽었습니다. 자식이 자신 보다 먼저 죽는 모습을 본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황무지 같겠습니까? 한 사람도 아니고 열 자녀가 말입니다. 그의 자녀 가운데는 정신 박약아가 있었다고 합니다. 노년에 자신도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고 말았고 뇌일혈로 쓰러져 반신불수까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둘째 부인 안나 마크달레나가 1760년 2월 27일에 죽었을 때 장례 치를 형편이 못되어 장례식은 빈민구제를 위한 조치로 치러졌다고 합니다. 참으로 황무지 같은 환경입니다. 그러나 처절한 상황 속에서도 계속 작곡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영혼을 완전히 사로잡을 만큼 웅장하고 장엄한 찬양과 경배와 감사의 노래들, 그야말로 불후의 명작들을 만들어내었습니다. 그는 독실한 루터교 신자였습니다. 그는 늘 말하기를 "모든 음악의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보내고 사람에게 즐거운 감정을 솟아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음악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다고 믿었고 음악을 그의 영광을 위해 쓰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 만민의 죄를 홀로 감당하시고 누구든지 못박혀 돌아가신 구주만 믿으면 구원 얻게 된다는 것을 굳게 믿으며 그 황무지 같은 인생 속에서도 장엄하고 경건한 음악의 꽃을 피웠습니다. 그는 자신이 작곡한 칸타타나 오라토리오의 마지막 부분에 항상 S.D.G라는 글자를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의 첫 번째 글자들입니다. 그리고 오르간 연주만을 위한 작품들의 첫 부분에는 I.N.J 즉, '예수 이름으로'라고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신앙의 힘이 황무지에서도 장미꽃을 피게 하였습니다. 현대 음악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바하의 가문에서는 약 200년 동안에 걸쳐 저명한 음악가 50여명이 나왔다고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때때로 참 황무지 같은 환경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건강으로 인하여, 경제적 궁핍으로 인하여, 풀 수 없는 복잡한 인간관계로 인하여 황무지같은 가정을 만날 때도 있고 황무지같은 직장을 만날 때도 있고, 신앙 생활에 황무지 같은 척박한 환경, 황무지같은 인생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황무지에서도 장미꽃을 피울 수 있겠습니까?

1. 우리는 황무지를 만나면 그 황무지를 퇴보가 아니라 진보의 기회로 사용합니다.(12)
인생은 항상 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푸른 초장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황무지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게되어 있습니다. 생로병사가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항상 봄만 있을 것으로 기대하거나 항상 푸른 초장만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음이며 인간의 교만입니다. 때로 황무지가 찾아옵니다. 질병의 황무지, 경제의 황무지, 실패의 황무지, 인간관계의 황무지, 신앙의 황무지, 가정 파탄의 황무지, 직장 생활의 황무지가 어느날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찾아옵니다. 이 황무지를 만나면 그것으로 퇴보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 진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은 어떤 유형의 사람입니까? 오늘 성경에 나오는 바울은 황무지로 인하여 더 진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자신이 당한 일이 오히려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당한 일이 무엇입니까? 13,14,17절을 보십시오. 로마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그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환경입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바울의 투옥을 보며 패배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괴롭고 고통스러운 환경을 복음의 진보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12) 복음의 퇴보가 아닙니다. 복음을 전파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복음 전파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기회가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두가지로 진보가 나타났습니다. 첫째는 바울의 매임이 죄를 져서 가 아니라 그리스도 때문 널리 알려지게 되어 2년 동안 옥에 있으면서 만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13)
그가 갇힌 시위대는 황제의 친위부대였는데 이 부대의 간부직의 임기는 16년으로서 황제의 임면(任免)에 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였답니다. 이런 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로마의 핵심 실력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제국을 복음화하는 기반을 닦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4:22절을 보십시오. 이미 황제의 궁정에 전도의 거점을 확보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성과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당시 죄수들을 지키는 군인들은 6시간마다 교대했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최소한 하루에 4사람 이상 전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그 일을 적어도 2년 간 계속할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그는 죄수의 몸이 되었지만 그 환경을 오히려 진보의 기회로 활용하여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둘째는 바울의 황무지같은 환경이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담력을 주었습니다.(14) 간증이 되어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바울이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고 신실한 성도들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황무지를 만나든 그것을 퇴보의 기회가 아니라 진보의 기회로 활용해야 합니다. 신앙의 인물들이 그랬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당시 최 강대국의 왕자였습니다. 자기 백성을 위해 일하다가 살인자가 되어 40세에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최 절정의 나이입니다. 왕이 될만한 나이입니다. 모세는 학문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원망할 수 있습니다. 40년 광야에서 목동으로 살아갑니다. 40년이라는 세월이 그에게 있어서는 퇴보의 기회가 아니라 진보의 기회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200만여 명을 광야에서 40년 간 이끄는 지도자로 쓰시기 위한 훈련의 기회였습니다. 다윗의 인내의 기간, 아브라함의 기다림의 기간이 다 퇴보가 아니라 진보의 기회였습니다. 어려움이 올 때 실패했을 때 고난이 닥쳐왔을 때 해석을 잘해야 합니다. 한번 실패로 그것이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실패란 인생의 위대한 스승이지, 장의사가 아닙니다. 실패할 때 그 때는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시기라고 인정하고 성공 시기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황무지의 과정을 통해 오아시스로 보내는 것입니다. 발명가 에디슨은 일정 전압에도 견디는 필라멘트를 연구하기 위해 13개월이나 계속된 연구에 몹시 지쳐 있었습니다. 그때 한 제자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선생님, 11만번이나 실패한 일인데요" 그러자 에디슨은 "실패는 무슨 실패,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11만가지의 방법을 알아냈는데 그래." 그는 이런 말하기를 "인생에서 실패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이 포기하는 바로 그 순간에 자신이 성공에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다." 라고 했습니다. 지금 실패가 영원한 실패가 아닙니다. 실패는 그것을 진보의 기회로 활용하라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신호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투루먼은 서른 여덟 살이던 1922년에 많은 빚을 지고, 일자리를 찾지 못한 실업자였습니다. 그러나 1945년에 미국에서 가장 높은 직책을 차지하면서 자유세계에서 가장 힘있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만약 그가 실패를 영원한 것으로 보았다면, 결코 곤경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주저 않자다면 그는 실패를 진보의 기회로 활용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죠지 워싱턴은 그가 치룬 전쟁 중에서 2/3는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전쟁을 이기므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꿀 한 숟가락은 꿀벌이 4천 2백번이나 꽃을 왕복하며 얻는다고 합니다. 영어사전 웹스터를 집필한 웹스터는 36년 동안 밤낮으로 이 일을 했습니다. 작곡가 죠셉 하이든은 8백 개의 작품을 작곡했는데 가장 유명한 천치창조라는 오라토리오는 66세가 되어서야 8백 번이나 반복하여 작품을 써본 후에야 나타난 것이라고 합니다. 레오날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도 8년 동안 2천 번이나 스케치해본 결과라고 합니다. 암흙같은 황무지가 있습니까? 퇴보의 기회가 아니라 진보의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12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나의 당한 일이 질병일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부부간의 절벽같은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자녀의 탈선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풀리지 않는 사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복음의 진보의 기회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2. 우리는 황무지를 만나면 그 황무지를 주변가치가 아니라 핵심가치에 집중하는 기회로 사용합니다.(18)
우아함을 좋아하는 여성 중에는 화장품을 피부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피부가 핵심가치입니다. 화장품은 주변가치에 불과한 것입니다. 피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화장품은 피부를 보존하고 피부를 건강하게 하는데 쓰임받는 보조품에 불과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아함을 좋아하고 화장품을 쓰는데도 색깔을 아주 따지면서 사용하는 아줌마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우아하게 화장을 하고 외출을 하는데 신호등 앞에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경찰이 보니 복잡한 네거리 신호대 앞에서 차를 세운 채 꼼짝도 않고 있는 것입니다. 교통경찰이 황급히 달려와 물었답니다. "부인! 신호가 바뀌었는데 왜 출발을 않으십니까?" "혹시, 차에 무슨 이상이라도 생겼나요?" 그러자 부인이 교통경찰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답니다. "마음에 드는 색깔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요!"
시간 지나면 다 없어질 것들은 주변가치에 목숨 걸고 사는 인생은 불행한 인생입니다. 일시적으로 유행들, 10년 지나면 부끄러운 일들, 시간 지나면 다 사라질 것들에 목숨 걸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사람은 황무지를 만나면 만날수록 자꾸 본질 아닌 것에 얽매이게 되어 있습니다. 늙어지면 사소한 며느리의 말도 괘씸합니다. 병들면 모두가 서운하게 느껴집니다. 실직하면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는 사소한 것에 얽매이기 시작합니다. 아내가 외출하여 밥 한끼 챙겨 주지 않으면 자신이 실직하니 무시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사소한 것들이 더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면 당할수록 주변가치에 더 신경을 씁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 나오는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핵심가치에 집중하였습니다. 바울이 감옥에서 집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복음입니다. 복음 증거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외모로 하든 참으로 하든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고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15). 그렇게 함으로 바울을 더 괴롭게 할 줄 알았습니다(17). 그러나 바울은 주변가치에 집중하지 핵심가치에 집중했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안 사람입니다. 어떻게 하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증거되면 되는 것을 그는 알았습니다. 사실 이 투옥은 복음 증거를 위해 바울이 스스로 택한 길(행25:11, 12; 26:31,32)이었습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주변가치에 얽매여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브닌나가 괴롭힙니다. 그 때 한나는 무엇을 합니까? 날마다 브닌나와 머리잡고 싸웁니까? 아닙니다. 핵심 가치를 한나는 알았습니다. 아이만 낳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가 부르짖습니다. 기도합니다. 울부짖어 기도합니다. 결국 한나는 사무엘을 낳아 민족 지도자로 만듭니다. 오늘 새벽에 나오는데 아내가 설교하러 올라갈 때 옷에 비듬이 묻었는지 한번 거울을 보라고 그래요. 물론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예배드리러 나와 목사님 옷에 비듬 몇 개 떨어졌는가만 세고 있다면 그것은 핵심 가치가 아닙니다. 비듬 보며 예배시가 내내 상상합니다. "비듬이 있는 것을 보니 머리에 부스러기가 있는가보다. 부스러기가 있는 것을 보니, 위장이 나쁜가 보다, 위장이 나쁜 것을 보니 몰래 술을 즐기는가 보다" 그리고 시험 들어 집에 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황무지가 다가오며 다가올수록 핵심가치에 집중해야 합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형에게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 명분 빼앗을 사기를 치고는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14년 이상을 삼촌 집에서 살면서 결혼도 하고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집에 돌아 오는데 세겜에서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창세기 34장에 보면 세겜 추장의 아들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반해 겁탈을 하였습니다. 아들들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세겜 족속의 남자들에게 할례를 하라고 해 놓고 다 죽였습니다. 세겜 족속이 가만히 당하고만 있겠습니까? 이제 전열을 가다듬고 연합군이 처들어올 상황입니다. 이 때 어떻게 합니까? 창세기 35장을 보십시오. 핵심 가치에 집중합니다. 형으로부터 살려고 갖가지 선물공세를 취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집을 떠날 때 약속했습니다.(창28:20-22)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이곳 즉 벧엘에서 하나님을 잘 섬길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형을 무서워하며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숙곳(창33:17)에서 머뭅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이 사건으로 인해 말씀에 순종하여 벧엘로 올라갑니다.(3,6). 죄를 청산합니다(2). 그결과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5) 복을 받습니다(9). 자손들이 복을 받습니다.(11-12)

3. 우리는 황무지를 만나면 그 황무지를 보며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이루어질 목표를 보며 기뻐합니다. (18)
대부분 황무지 같은 환경에 처하면 사람들은 세 가지 중 하나로 반응을 합니다. 첫째로 극복형입니다. 자신에게 불리하고 고통스런 환경을 하나님이 주신 시련으로 생각하고 극복해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둘째는 방종형입니다. 자신에게 불리하고 고통스런 환경을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포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포기형입니다. 그 환경을 준 대상자를 원망하며 불평하다가 결국 좌절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포기해버리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왜 자포자기하고 포기합니까? 환경만 보기 때문입니다. "왜 내가 감옥에 갇혀, 왜 내가 사업에 실패해, 왜 내가 병들어, 왜 우리 가정이 이렇게 어려움을 당해야 해..."등 그 황무지 같은 환경에 집착을 해 버립니다. 그것이 크게 보입니다. 손에 가시가 박히면 신경이 온통 그곳에 집중하듯이 우리 인생은 어려움이 닥쳐오면 그 어려움에서 생각이 벗어나지 못합니다. 생각이 황무지의 포로가 되어 절망해 버립니다. 그러나 바울을 보십시오. 자신의 환경은 지금 감옥입니다. 같은 신앙을 가졌다는 사람 중에서도 자신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 보면서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음이 증거되는 것을 보면서 기뻐하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어두울수록 별은 더 빛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있는 것은 불이 난다하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동기야 어떻든 전파되는 것은 복음이 되면 기뻐하는 것입니다(18). 자신의 처지와 자신의 문제가 아닙니다. 복음 사역, 복음이 증거되는 것 하나로 얼마든지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가 당한 수많은 고통과 아픔이 있다하여도 복음이 증거되면 그것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나는 조금 고난 받아도 주님 영광 드러나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면 그것으로 기뻐할 수 잇습니다. 그들은 불순한 동기로 복음을 전함으로 오히려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의 마음에 고통을 더 줄 것으로 생각했지만(17) 바울은 그들의 의도대로 되지 않습니다. 목표가 분명했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다 불리한 환경, 어려운 환경, 고통스러운 환경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으로부터 크나큰 유익을 얻지만 어떤 사람은 그 어려운 환경으로 말미암아 더 많은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질도 잃고 건강도 잃고 심지어 가장 고귀한 신앙까지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광야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십시오. 늘 환경을 보고 탄식하는 사람들입니다.
출3:7-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탄식을 보고 듣고 알고 내려와서 건져내고 인도해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런데 출14장에 가면 홍해가 앞을 가리고 있고 애굽군대가 뒤에서 추격해 오는 환경을 만납니다. 그 때 그들은 어떻게 합니까?
출14:10-12을 보십시오. 불평합니다. 지도자 모세를 원망합니다. 기적으로 건너게 했습니다. 그러나 사흘길을 가서 또 불평과 원망에 사로잡힙니다(출15:22-26). 물이 없습니다. 마라에 이르렀는데 쓴물이 나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원망합니다. 준비해 놓고 기다리시며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오아시스가 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오아시스가 나오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16 장을 보십시오. 신광야에 도착하였습니다. 위험한 환경이 다가 옵니다. 또 원망 불평합니다. 17장을 보십시오. 목마릅니다. 또 원망 불평을 합니다.(3절)
결정적으로 민수기 13장 25절에 가보십시오. 이제 가나안 땅이 앞에 놓여 있습니다. 무수히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여전히 황무지만 보고 있습니다. 28, 31, 32,33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했습니까? 14장에 보십시오. 환경 때문에 그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하였습니까? 근심합니다(1) 욕구불만의 포로가 됩니다.(2) 좌절하고 비판합니다(3,4) 그러나 그 환경을 주신 하나님을 보는 사람들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민14:8-9절을 보십시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기대를 가지며 기뻐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가 문제이지 환경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 하나님께서 좋은 결과를 주십니다. 그 결과는 우리에게 기쁨이 됩니다. 바울은 불리한 환경이 오히려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 줌을 크게 기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황무지같은 환경이우리에게 여러 가지 영적 유익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기뻐해야 합니다. 역경을 만날 때 너무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실의와 좌절에 빠지지도 말아야 합니다.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모든 환경이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으며 결국은 나의 유익이 된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오히려 황무지같은 환경을 오히려 기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황무지에서도 꽃을 피웁니다./빌1:12-18/2003.6.15/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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