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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빌4:1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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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참고 : | 세광교회 http://sk8404.or.k |
일체의 비결 - 자족
빌 4:10-13
04.9.26, 낮
강남에 가면 말죽거리라는 동네가 있었습니다. 좋은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부자들이 모여 살면서 그 동네가 개포동이 됐습니다. 왜 그 동리가 개포동인가 하니 사람이 하도 살기가 더럽고 지저분한 동네라서 개도 살기를 포기했다고 해서 개포동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자들이 거기 가서 살기 시작하면서 호화찬란하기 시작했습니다. 개포동 신문에 우리는 아직도 이 동리를 개포동이라 부르고 삽니다. 왜냐하면 개도 포기한 동네가 이제는 개도 포텐샤를 타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환경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환경에 누가 거기 있느냐 여하에 따라서 환경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누가 그 집에 사느냐에 따라서 지저분한 집이 될 수도 있고 깨끗한 집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 누가 모이느냐에 따라서 그 교회가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될 수도 있고 초라한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삶의 비결을 깨달은 한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바울입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풍성하게 살 수 있는 삶의 비결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바울은 그 어떤 경우에도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풍부한 삶을 살았습니다. 물론 인간적으로 볼 때 바울의 생애는 그렇게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굶주리고 헐벗고 병들고 매맞고 괴로워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모든 삶에 대한 일체의 비결이 있었습니다. 일체의 비결을 가진 사람은 자족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본문은 사도바울의 자족함을 누리는 그의 삶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그는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비천에 처할 줄 알았습니다.
본문 12절 상반절에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오히려 비천에 처하기를 원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고, 많이 배웠으며, 바리새파에 속한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그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서 일평생 주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으로 인해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그와같은 비천한 처지에 대해서 단 한번도 불평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주인되신 예수님이 자기의 삶을 통해서 존귀를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시면 그것으로 족하게 여겼습니다.
사도바울은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았습니다.
첫째로 모든 것의 근원은 하나님이심을 아는 사람입니다.
록펠러는 33세에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43세가 되었을 때는 미국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53세 때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그는 행복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였지만 참 기쁨과 행복은 소유하지를 못했었습니다. 그때까지 그는 엘러피쉬어라는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 병은 머리와 눈썹이 빠지고 몸이 말라가는 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의사로부터 '이런 상태로는 1년 이상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라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사업이 너무나 잘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먹을 수가 없어서 하루에 그저 우유 몇 잔으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1년 이상 살기가 힘들다는 말을 듣고 그 날밤 그는 밤새도록 괴로워하다가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만이 모든 것이 되신다'고 하면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성실하게 교회를 다녔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뉴욕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리버사이드교회를 혼자 지어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록펠러재단을 만들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쓰게 했습니다. 그는 55세를 넘기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했는데 98세까지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1808년 비엔나에서 대작 「천지창조」가 연주되었습니다. 물론 그곳에는 작곡자 하이든도 참석했습니다. 연주가 끝난 다음 감격한 청중들은 모두 기립하여 하이든에게 갈채를 보내고 환호하였습니다. 당시 하이든은 몹시 늙고 병약하여 자기 힘으로 일어설 수도 없었던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하이든은 그 우렁찬 갈채를 감당할 수 없어 두 다리를 떨면서 일어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No! No!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 작품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오직 은혜로 된 것이지 내 작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하나님께 박수를 보냅시다." 그리고 의자에 앉다가 실수하여 뒤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말이 하이든의 마지막 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영원히 우리가 외쳐야 할 말입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신앙인들 가운데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봅니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했습니까?”물으면 한결같이 그들은 대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는 자격이 없는데 별로 한 일이 없는데 이런 복을 누린다는 고백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깨달음의 은혜를 받아야 풍성한 삶이 가능해 집니다. 성공이 가능해 집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3장 5절에서 '우리의 만족은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의 근원은 하나님이심을 알 때 풍성한 삶을 살게 됨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모든 환경에 자족함을 주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입니다.
자족할 줄 안다는 것, 곧 우리가 매일 매일의 삶에 만족하면서 산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은혜입니다.
의사이면서 유명한 소설가인 크로닌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가난한 광부들이 모여 사는 광산촌에서 의사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간호사가 억울하게 오해를 받고 좌천되어 환경이 열악한 그 곳 병원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이 간호사는 억울하게 쫓겨온 데다가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하면서도 아무런 불평이 없었습니다. 불평이 없을 뿐 아니라 항상 생글생글 웃었고, 늘 여유 있고 자신만만했습니다. 그리고 병원 진료시간이 끝나도 제일 늦게까지 일을 하곤 했습니다. 이 간호사를 주목해 보던 크로닌이 열심히 일하면서도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그녀에게 '당신은 당신이 가진 가치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그것을 아실 텐데 말이예요'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간호사는 '제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신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습니까?' 라고 하더랍니다. 그 말이 그때까지 헌신적인 믿음을 갖고 있지 못했던 크로닌의 마음 속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그것이 그녀가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당당하게 일하게 했던 삶의 비결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곳, 어떤 위치에서 일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세째로 범사에 자족할 수 있게 하는 예수 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13절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했습니다.
사실, 빌립보서 4장 13절은 본래의 진정한 의미와는 상관없이 일부 목회자에 의해 남용되어 왔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는 문장은 [못할 것이 없다]는 적극적 사고방식의 근원이 되어 좋은 결과를 얻기도 했습니다.그러나 13절 전(前)에는 12절이 있고, 12절 전(前)에는 11절이, 11절 전(前)에는 10절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11~12절에서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고 말하면서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배부를 때에는 배부르다는 사실 때문에… 방탕하거나, 나태해지거나, 교만해지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며 배고플 때에는 배고프다는 이유 때문에… 비굴하거나,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범사에 주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은 자족함에 대한 말씀입니다.
어떤 삶,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승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문맥을 따라 볼 때 이 말씀은 "비록 내가 힘들고 어려워도, 잘 되고 편안해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부족하지만 내게 힘 주시는 그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 <자족>은 당시 스토아(Stoa) 철학의 개념으로는 자기 의지의 힘으로, 환경을 극복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자기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을 뜻합니다. 다른 말로 외부인이나 사물들, 사건들에 구애받지 않고 버틸 수 있다는 뜻입니다.
●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자족은 스토아 철학의 개념과는 다릅니다. 바울이 말하는 자족은 절대자 하나님께 의존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절대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기 때문에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족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사도바울은 능력주시는 자, 주 안에서 자족함의 은혜를 누렸습니다. 우리도 주 안에서 모든 환경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늘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바라보았습니다. 비천에 처할 때도 자기의 비천함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풍부에 처할 때도 풍부함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주님이 주시는 힘을 공급받아서 모든 환경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비천할 때 나의 비천함을 바라보면 낙심하기가 쉽습니다. 또 반대로 우리가 풍부할 때 나의 풍부함을 바라보면 교만하기가 쉽습니다. 내가 처한 여건과 환경을 바라보지 마세요. 우리의 시선을 변함없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고정시켜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도 주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모든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기뻐한 것은 교회가 보내준 선물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기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그의 인생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였고, 그가 살아가는 이유도 예수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행복했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며 어떤 풍랑도 감히 우리를 넘어뜨릴 수가 없습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찬송하며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시는 예수 안에 언제나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인들 가운데에는“온도계”와 같은 사람이 있고“온도 조절기”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온도계는 날씨가 추우면 내려갑니다. 날씨가 더우면 올라갑니다. 이런 사람은 환경에 따라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신앙생활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기쁨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그러나 온도조절기는 날씨가 추우면 온도를 올리고, 날씨가 더우면 온도를 내려서 온도를 조절합니다. 환경에 지배당하는 삶이 아니라 환경을 지배하는 삶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크리스챤의 삶의 모습입니다. 온도조절기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스티븐 코비는 "네가 태어나던 날 세상은 웃고 너는 울었다. 이제 네가 세상을 떠나는 날 너는 웃고 세상을 울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온도조절기와 같은 삶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살면서 언제나 삶을 조절하면서 자족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일체의 비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승리하는 삶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풍요로운 삶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인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영원한 삶의 비밀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삶에 대한 일체의 비결을 가짐으로 모든 환경과 문제들을 해결하여 나가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빌 4:10-13
04.9.26, 낮
강남에 가면 말죽거리라는 동네가 있었습니다. 좋은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부자들이 모여 살면서 그 동네가 개포동이 됐습니다. 왜 그 동리가 개포동인가 하니 사람이 하도 살기가 더럽고 지저분한 동네라서 개도 살기를 포기했다고 해서 개포동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자들이 거기 가서 살기 시작하면서 호화찬란하기 시작했습니다. 개포동 신문에 우리는 아직도 이 동리를 개포동이라 부르고 삽니다. 왜냐하면 개도 포기한 동네가 이제는 개도 포텐샤를 타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환경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환경에 누가 거기 있느냐 여하에 따라서 환경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누가 그 집에 사느냐에 따라서 지저분한 집이 될 수도 있고 깨끗한 집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 누가 모이느냐에 따라서 그 교회가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될 수도 있고 초라한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삶의 비결을 깨달은 한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바울입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풍성하게 살 수 있는 삶의 비결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바울은 그 어떤 경우에도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풍부한 삶을 살았습니다. 물론 인간적으로 볼 때 바울의 생애는 그렇게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굶주리고 헐벗고 병들고 매맞고 괴로워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모든 삶에 대한 일체의 비결이 있었습니다. 일체의 비결을 가진 사람은 자족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본문은 사도바울의 자족함을 누리는 그의 삶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그는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비천에 처할 줄 알았습니다.
본문 12절 상반절에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오히려 비천에 처하기를 원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고, 많이 배웠으며, 바리새파에 속한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그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서 일평생 주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으로 인해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그와같은 비천한 처지에 대해서 단 한번도 불평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주인되신 예수님이 자기의 삶을 통해서 존귀를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시면 그것으로 족하게 여겼습니다.
사도바울은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았습니다.
첫째로 모든 것의 근원은 하나님이심을 아는 사람입니다.
록펠러는 33세에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43세가 되었을 때는 미국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53세 때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그는 행복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였지만 참 기쁨과 행복은 소유하지를 못했었습니다. 그때까지 그는 엘러피쉬어라는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 병은 머리와 눈썹이 빠지고 몸이 말라가는 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의사로부터 '이런 상태로는 1년 이상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라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사업이 너무나 잘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먹을 수가 없어서 하루에 그저 우유 몇 잔으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1년 이상 살기가 힘들다는 말을 듣고 그 날밤 그는 밤새도록 괴로워하다가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만이 모든 것이 되신다'고 하면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성실하게 교회를 다녔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뉴욕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리버사이드교회를 혼자 지어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록펠러재단을 만들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쓰게 했습니다. 그는 55세를 넘기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했는데 98세까지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1808년 비엔나에서 대작 「천지창조」가 연주되었습니다. 물론 그곳에는 작곡자 하이든도 참석했습니다. 연주가 끝난 다음 감격한 청중들은 모두 기립하여 하이든에게 갈채를 보내고 환호하였습니다. 당시 하이든은 몹시 늙고 병약하여 자기 힘으로 일어설 수도 없었던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하이든은 그 우렁찬 갈채를 감당할 수 없어 두 다리를 떨면서 일어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No! No!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 작품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오직 은혜로 된 것이지 내 작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하나님께 박수를 보냅시다." 그리고 의자에 앉다가 실수하여 뒤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말이 하이든의 마지막 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영원히 우리가 외쳐야 할 말입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신앙인들 가운데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봅니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했습니까?”물으면 한결같이 그들은 대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는 자격이 없는데 별로 한 일이 없는데 이런 복을 누린다는 고백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깨달음의 은혜를 받아야 풍성한 삶이 가능해 집니다. 성공이 가능해 집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3장 5절에서 '우리의 만족은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의 근원은 하나님이심을 알 때 풍성한 삶을 살게 됨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모든 환경에 자족함을 주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입니다.
자족할 줄 안다는 것, 곧 우리가 매일 매일의 삶에 만족하면서 산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은혜입니다.
의사이면서 유명한 소설가인 크로닌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가난한 광부들이 모여 사는 광산촌에서 의사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간호사가 억울하게 오해를 받고 좌천되어 환경이 열악한 그 곳 병원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이 간호사는 억울하게 쫓겨온 데다가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하면서도 아무런 불평이 없었습니다. 불평이 없을 뿐 아니라 항상 생글생글 웃었고, 늘 여유 있고 자신만만했습니다. 그리고 병원 진료시간이 끝나도 제일 늦게까지 일을 하곤 했습니다. 이 간호사를 주목해 보던 크로닌이 열심히 일하면서도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그녀에게 '당신은 당신이 가진 가치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그것을 아실 텐데 말이예요'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간호사는 '제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신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습니까?' 라고 하더랍니다. 그 말이 그때까지 헌신적인 믿음을 갖고 있지 못했던 크로닌의 마음 속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그것이 그녀가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당당하게 일하게 했던 삶의 비결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곳, 어떤 위치에서 일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세째로 범사에 자족할 수 있게 하는 예수 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13절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했습니다.
사실, 빌립보서 4장 13절은 본래의 진정한 의미와는 상관없이 일부 목회자에 의해 남용되어 왔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는 문장은 [못할 것이 없다]는 적극적 사고방식의 근원이 되어 좋은 결과를 얻기도 했습니다.그러나 13절 전(前)에는 12절이 있고, 12절 전(前)에는 11절이, 11절 전(前)에는 10절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11~12절에서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고 말하면서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배부를 때에는 배부르다는 사실 때문에… 방탕하거나, 나태해지거나, 교만해지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며 배고플 때에는 배고프다는 이유 때문에… 비굴하거나,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범사에 주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은 자족함에 대한 말씀입니다.
어떤 삶,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승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문맥을 따라 볼 때 이 말씀은 "비록 내가 힘들고 어려워도, 잘 되고 편안해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부족하지만 내게 힘 주시는 그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 <자족>은 당시 스토아(Stoa) 철학의 개념으로는 자기 의지의 힘으로, 환경을 극복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자기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을 뜻합니다. 다른 말로 외부인이나 사물들, 사건들에 구애받지 않고 버틸 수 있다는 뜻입니다.
●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자족은 스토아 철학의 개념과는 다릅니다. 바울이 말하는 자족은 절대자 하나님께 의존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절대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기 때문에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족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사도바울은 능력주시는 자, 주 안에서 자족함의 은혜를 누렸습니다. 우리도 주 안에서 모든 환경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늘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바라보았습니다. 비천에 처할 때도 자기의 비천함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풍부에 처할 때도 풍부함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주님이 주시는 힘을 공급받아서 모든 환경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비천할 때 나의 비천함을 바라보면 낙심하기가 쉽습니다. 또 반대로 우리가 풍부할 때 나의 풍부함을 바라보면 교만하기가 쉽습니다. 내가 처한 여건과 환경을 바라보지 마세요. 우리의 시선을 변함없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고정시켜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도 주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모든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기뻐한 것은 교회가 보내준 선물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기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그의 인생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였고, 그가 살아가는 이유도 예수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행복했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며 어떤 풍랑도 감히 우리를 넘어뜨릴 수가 없습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찬송하며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시는 예수 안에 언제나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인들 가운데에는“온도계”와 같은 사람이 있고“온도 조절기”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온도계는 날씨가 추우면 내려갑니다. 날씨가 더우면 올라갑니다. 이런 사람은 환경에 따라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신앙생활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기쁨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그러나 온도조절기는 날씨가 추우면 온도를 올리고, 날씨가 더우면 온도를 내려서 온도를 조절합니다. 환경에 지배당하는 삶이 아니라 환경을 지배하는 삶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크리스챤의 삶의 모습입니다. 온도조절기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스티븐 코비는 "네가 태어나던 날 세상은 웃고 너는 울었다. 이제 네가 세상을 떠나는 날 너는 웃고 세상을 울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온도조절기와 같은 삶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살면서 언제나 삶을 조절하면서 자족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일체의 비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승리하는 삶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풍요로운 삶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인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영원한 삶의 비밀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삶에 대한 일체의 비결을 가짐으로 모든 환경과 문제들을 해결하여 나가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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