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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빌립보서 빛의 사자............... 조회 수 1900 추천 수 0 2014.04.02 11:5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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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빌3: 12- 14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인생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본문: 빌3: 12- 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미국 뉴 저지주의 상원 의원인 모르우씨가 뉴욕시를 떠나는 기차를 탔을 때 그는 기차표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차표를 제시하기를 기다리던 역무원이 「모로우씨,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상원의원이신데 설마 표를 안 사셨겠어요. 그러나 후에 표를 찾으시면 우편으로 보내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모로우씨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의 어려움은 그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제가 가는 행선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기차표를 지금 꼭 찾아야만 합니다.」 미상원의원 모로우씨는 정확한 행선지를 모른 채 기차에 탔던 것입니다.

오늘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삶의 분명한 목표가 없이, 인생을 아무런 계획성도 없이 살아가기 때문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저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시세에 따라 이리저리 요동하면서 살다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쉬임없이 지금도 가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는 종착역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자는 운전을 열심히 하되 목적지 없이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운전자가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자입니까? 열심히 달리고 또 기름을 새로 채워 달리지만 목적지를 모르는 채로 달리는 운전자,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운전자가 되기를 결코 바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어떤 대학에서는 지능지수, 학력, 환경 등의 조건이 비슷한 젊은 사람을 25년 동안 조사하였습니다. 조사내용은 ‘목표가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조사대상자 가운데 3%는 분명하고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10%는 분명하지만 단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60%는 목표가 모호했으며 27%는 목표가 없었습니다. 25년 뒤, 이 조사대상자들의 상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분명하고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있던 3%는 거의 모두 사회 각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성공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자수성가한 사업가나 업계의 지도자, 사회의 저명인사가 된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분명하지만 단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10%는 대부분 사회의 상류층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각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의사, 변호사, 기술자, 고위경영자 등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목표가 모호했던 60%는 거의 모두 사회의 중류층이나 하류층의 삶을 살았습니다. 나머지 목표가 없었던 27%는 대부분 사회의 최하위에 속한 삶을 살았습니다.

목표는 추진력을 가져다 주고, 불필요한 시간낭비를 막습니다. 그리고 목표는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커다란 역할을 합니다. 어떤 목표를 선택하느냐, 얼마나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인생도 달라집니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기도하면서 꾸준히 노력하십시오.

“그러므로 나는 목표 없이 달리듯이 달리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허공을 치듯이 권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고전9:26)

그런데 목표를 가지되 움직이지 않는 목표, 흔들리지 않는 목표를 가져야합니다.

어떤 소년이 서울에서 공부하다가 방학이 되어 농촌에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땀을 흘리며 밭을 가시는 것을 보고 그것을 도와드릴 생각이 나서 소년은 소를 몰고 밭을 갈았습니다. 서투른 쟁기질로 한참 갈다 보니 아버지가 간 밭의 고랑은 똑바르나 자기가 간 고랑은 구부러졌습니다. 아버지는 이것을 보고 "처음 보습질을 할 때는 앞에 목표를 세우고 나아가야 똑바로 갈 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소년은 그 말씀을 마땅히 여겨서 둑에 풀을 뜯고 있는 황소에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역시 고랑은 똑바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황소가 자꾸 움직이니까 너의 고랑도 구부러지는 것이니 움직이지 않은 것에 목표를 두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앞에 우뚝 솟은 포플라 나무에 목표를 두고 밭을 갈았더니 비로소 똑바로 갈 수가 있었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야고보서4:14-16)

옛날에 어느 시골노인이 서울 사는 딸네 집을 찾아왔습니다. 몇 년 사이에 어찌나 변했는지 이 집이 저 집 같고, 저 집이 이 집 같아서 노인은 당황해 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친절한 젊은이가 노인에게 도와드릴 것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노인은 딸네 집을 찾아왔는데 도무지 어느 집인지 모르겠다고 사정 이야기를 했습니다. 젊은이는 주소도 모른다는 노인의 말에 난처해져서 그럼 혹시 딸네 집에 다른 집과 달랐던 무슨 특징이 없었던가를 물었습니다. 노인은 한참 생각하더니 무릎을 탁 치며 「이제 됐다.」 싶은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있었지, 있었고말고. 내가 그때 기억해 두기를 잘했지. 우리 딸네 집 담장 위에 누런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네.」 노인은 보이는 것이 영원하리라는 생각으로 표적을 삼았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비 본질의 것들에 현혹되어 삶의 목표를 그것에 둘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것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천국, 사랑, 믿음, 소망 그러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지만 크리스천 삶의 목표들입니다. 우리가 잘못 된 삶의 목표, 헛된 꿈들은 결국 삶을 절망으로 이끕니다. 우리의 모든 수고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과 무관한 것일 때 다 헛되고 무익한 것입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고 무엇인가를 위해서 죽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충성하고 헌신할 수 있는 대상이나 목표를 갖지 못하면 허무주의자가 되고 생의 행복감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생명과 정열을 다 바칠 수 있는 인생의 목표나 신념을 가질 때 우리는 생의 충실감과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인간 심령 속에 부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목표나 방향이 없이 여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이 귀중한 생명이 인생의 목표로서의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만날 때 그것은 더욱 빛나고 힘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의 목표와 푯대는 무엇입니까?

미국의 로저 밥슨 기자가 아르헨티나의 한 정치지도자를 만났습니다. 국민들로부터 가장 추앙받는 그 지도자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밥슨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유럽의 백인들이 먼저 정착한 곳은 북미가 아니라 남미였습니다. 지하 자원과 물도 북미에 비해 부족하지 않습니다. 기후도 좋습니다. 그럼에도 왜 북미가 남미보다 잘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밥슨 기자는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지도자가 웃으며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분명한 이유가 있다. 남미는 스페인사람들이 황금을 구하러 찾아온 땅이다. 그러나 북미는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을 위해 찾아온 땅이다. 여기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인생과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한 인간의 삶도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그 부르심의 목표인 소망도 하나였습니다.”(엡4:4)

러시아의 단편소설 『외투』의 이야기입니다. 한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노인에게 “당신의 평생 소원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매번 “아주 고급 외투를 갖는 것이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노인은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평생 열심히 일하며 저축을 했고, 드디어 그는 꿈에 그리던 그 외투를 샀습니다. 그날은 성공한 날이자 목적을 이룬 날이었기에 큰 기대감과 흥분된 마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외투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만 강도를 만나서 비싼 고급 외투를 강탈당했습니다. 그 노인은 절망했습니다. 단순히 고급 외투를 강탈당한 것이 아니라 성공과 함께 행복을 강탈당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날 이후 그 노인은 좌절의 늪에 빠졌고 너무 속상한 나머지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소유가 결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데도 우리는 계속 속고 삽니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소유한 것보다도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기뻐하십시오.

1923년 시카고의 에지와트 비치 호텔에 당시 미국 최대 부호였던 9명이 자리를 같이했을 때 미국의 대표적인 신문들이 '20세기의 신화'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때는 황금 만능 시기였습니다. 그들은 돈만 번 것이 아니라 큰 회사의 사장들이었기 때문에 교육도 많이 받았고 명성도 있는 성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 표준으로 볼 때 스타이고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25년 후인 1948년에 그들이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하나는 미치고 셋은 파산해서 빛에 쫓겨 도피 생활을 하다 죽었으며 둘은 출옥해서 자살 직전에 있었고 셋은 자살했습니다. 한 사람도 행복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인생의 궁극 목표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애의 기로 어디에선가 주님의 내게로 오라는 음성을 거부하고 다른 것을 목표로 상아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유명한 사람들이 인생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비참한 최후를 마쳤거나 허무주의로 살고 있습니다.

동양 최대의 성자이고 인도인의 태양이었던 간디도 죽기 전에 자신은 괴로운 사람이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부지런히 뛰어 보았지만 그것은 궁극의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사람은 창녀가 되었든지 세리가 되었든지 구두닦이가 되었든지 간에 자기의 길을 또박또박 걸어갈 줄 압니다. 푯대가 있고 초점이 있고 목표가 있습니다. 우리는 목표가 있는, 인생의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5)

18세기 영국의 정치가 윌리엄 윌버포스는 25세에 예수를 믿고, 인생관이 바뀌었습니다. 출세의 길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는 대영제국의 노예제도를 폐지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정치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30세에 영국하원의원에 당선되었고, 그 후로 오직 노예제도 폐지 운동에만 전념하였습니다. 그가 48세 되던 해, 영국의회는 노예무역폐지를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노예폐지의 비전을 세운 지 35년 만인 62세가 되던 해에 노예제도가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 그는 64세에 정계에서 은퇴하였고, 그의 나이가 72세 되던 해에 대영제국 전역에서 노예해방법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리고 노예해방법이 통과된 지 2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오로지 노예제 폐지라는 한 가지 사명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온전히 희생하였습니다. 그는 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회고하였습니다. 나를 일평생 재촉하신 이는 주님이셨다고...

링컨은 어렸을 때 “노예해방”을 인생의 목표로 정하고, 이를 위해 정치계에 투신하여 여러 차례의 실패를 딛고 마침내 꿈을 이루었습니다. 간디는 어렸을 때 “인도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일생을 어려운 인도 국민을 위해 살았습니다. 제 인생의 목표는 “많은 사람을 옳은 길, 의로운 길로 인도하는 것”(단12:3)이었습니다. 앞으로의 남은 삶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고,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기쁨과 희망과 복음(진리) 전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후일 내가 하나님 앞으로 간 후에 후손들이 나를 가리켜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헌신한 사람’으로 평가해주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과 복음 전파를 위해 헌신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순교하기 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 7, 8)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여러분은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가시렵니까? 여러분이 소망하고 있는 것은 이루어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갈릴리공동체의 목표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복음전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마6: 9,10, 눅17:21, 롬14: 17)

아무쪼록 성도여러분 모두가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목표에 헌신과 열정을 다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기도: 사랑의 주님, 나의 달려갈 목표와 길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달려갈 길이 향방 없는 자처럼 내 달음질과 수고가 헛되지 않게 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성과 판단이 흐려져 어리석게 살지 않도록 지켜주옵소서. 날마다 내가 주님을 바라보며 적극적인 마음으로 살도록 해주소서. 목표를 향해 서두르지 말고 거기서 돌아서지도 말고 희미한 과거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슬퍼하지도 말고 숨겨진 미래를 두려워하거나 물러서지도 않고 내 몸과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기쁨에 찬 마음으로 주님을 푯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해주십시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금언:

0 인생은 날아가 버릴 세상의 거품을 위해서 낭비하기엔 너무도 짧고 소중하며 고통스럽다. 또한 영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주변에서 어슬렁거리기에는 천국은 너무나 멋지고 지옥은 진정 끔찍하며 영원은 참으로 길다.(존 파이퍼)

0 길을 걸어가려면 자기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합리적이고 선량한 생활을 영위하려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기와 그리고 타인의 생활을 어디로 이끌어 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톨스토이)

* 묵상:

0 내 인생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0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십니까?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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