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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위해 버려야 삽니다.

빌립보서 빛의 사자............... 조회 수 1091 추천 수 0 2015.01.13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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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빌3:7-9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주를 위해 버려야 삽니다.

본문: 빌3:7-9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전북 전주의 한 교회에서 올 초부터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란 푯말을 붙인 상자를 만들고 신자들로 하여금 그 안에 그 같은 물품들을 넣게 했습니다. 그러자 엄청난 내용물이 수집됐습니다. 고급 양주에서부터 외설테이프, 추잡한 액세서리, 불량서적 등이 쌓였습니다. 교회에서는 이것들을 매월 정기적으로 불에 태워버리고 각자 새 생활을 다짐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경건하고 건전한 가정생활의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부흥운동도 일어나 교회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금을 얻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가득찬 은을 버려야 하고 다이아몬드를 얻기 위해서는 또 어렵게 얻은 그 금마저 버려야 합니다. 버리면 얻습니다. 그러나 버리면 얻는다는 것을 안다 해도 버리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쉬운 일이 아닙니다. 버리고 나서 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봐, 그 미지의 공허가 무서워서 우리는 하찮은 오늘에 집착하기도 합니다.

 

독수리 한 마리가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 있는 호수를 날면서 먹을 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마침 독수리의 눈에 죽은 양 한 마리가 둥둥 떠내려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순간 독수리는 쏜살같이 내려와서 양의 시체를 날카로운 발톱으로 꽉 움켜쥐고는 그 고기를 뜯어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죽은 양은 계속 물살에 따라 폭포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전혀 걱정하지 않고 고기를 뜯어먹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는 날개가 있어서 날 수 있으니까 폭포에 떨어지더라도 아무 상관없어!』 그러는 사이에 죽은 양은 점점 흘러 나이아가라 폭포에 와서는 물줄기와 함께 빠른 속도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독수리는 먹기를 중단하고 위로 솟구쳐 오르기 위하여 날개에 힘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독수리의 발톱이 죽은 양의 몸속에 깊이 박혀서 빠지지를 않았습니다. 결국 이 독수리도 양의 시체와 함께 폭포수에 휩쓸려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은가요? 썩은 송장과 같은 것은 아무리 붙들고 있어도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죽음의 길로 인도할 뿐입니다.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믿는 이는 썩어질 육신을 위한 일에 붙잡히지 말고, 그리스도 예수에게 붙잡힌 바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디든지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과거와 가족의 결점을 인정하고, 물려받은 것 중 거부하고 싶은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가령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이 자신에게 미치고 있다면, 그 사실을 단순히 부정할 것이 아니라,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항상 과거에 고정된 채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버려야 할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버려야 할 것을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스스로 버리지 못하면, 언제인가 다른 사람에 의해 버려지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과감히 버려버리면 그 만큼을 채워주는 더 큰 것이 반드시 생깁니다.

 

무엇을 얻는 데에는 크게 두 방법이 있습니다. 구해서 얻는 것과 버림으로써 얻는 방법입니다. 구해서 얻는 것은 그 얻음이 아무리 커도, 다음의 더 큰 목표가 생기기 때문에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나 버려서 얻는 것은 아무리 작아도 덤으로 얻는 기분이기 때문에 만족과 기쁨이 큽니다.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원하는 사람은 버려서 얻는 방법을 택합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예배당 뒤뜰에 있는 느티나무의 나뭇잎이 겨울이 왔는데도 다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시고는 『아쉬워서 못 떨어지는가 보다』고 생각하셨답니다. 그런데 과수원을 경작하는 권사님께서 나무 밑을 지나시면서 대뜸 『거름기가 없구먼』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즉, 겨울이 왔는데도 떨어져야 할 나뭇잎이 남아있는 것은 나무가 잎을 떨어뜨릴 힘이 모자라서 그런 것이고, 그런 나무는 추위를 견디지 못해 가지가 얼어 죽든지, 봄이 되어도 실한 새 싹이 올라오지 못합니다. 사실 저도 느티나무 분재와 은행 분재에 말라버린 잎파리가 그냥 붙어 있기에 지금까지 그대로 두었다가 며칠 전 날씨가 포근할 때 가벼운 빗자루로 살살 문지르듯 모두 떼어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버려야 깨끗한 새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자연의 교훈입니다. 버릴 것은 깨끗이 버리는 것이 봄의 새 역사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성도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봅시다.

 

첫째, 죄악을 버려야 합니다.(겔18:25-32, 히12:1-2)

미국의 어느 마을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번개와 함께 벼락이 쳤는데 한 신사가 논길을 걷다가 그만 벼락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이유는 쇠로 된 지팡이를 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지팡이를 아까워하지 않고 멀리 던져 버렸더라면 화를 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미련 때문에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악을 버려야 삽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사는 길은 오직 죄악을 버리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습니다.(살전5:22) 또 에베소서 4장31절에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 밖에 모르던 인색한 부자가 유대인 교사인 랍비를 만났다. 랍비는 그를 데리고 창가로 갔다. 『무엇이 보입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이번에는 거울 앞으로 데리고 갔다. 『무엇이 보입니까?』 『제 얼굴이 보입니다.』 그러자 랍비는 말했다. 『창문과 거울은 모두 유리로 돼 있으나 거울 뒤에는 수은이 칠해져 있어 밖이 안보이고 자신만 보게 되는 거지요. 마찬가지로 내면이 탐욕으로 칠해진 사람은 자기밖에 모르는 불행한 존재지요』 『탐욕은 만악의 뿌리』라고 할 수 있으며, 탐심은 곧 우상숭배입니다.(골3:5)

 

셋째,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중국 오나라의 왕이 강에 배를 띄워 원숭이가 많이 살고 있는 저산(狙山)에 올랐을 때의 일입니다. 많은 원숭이들은 왕의 일행을 보고 놀라서 놀던 곳을 버리고 달아나 깊은 숲 속에 숨었습니다. 그러나 원숭이 한 마리가 나뭇가지를 거머잡기도 하고 타고 다니기도 하면서 갖가지 재주를 오왕에게 보였습니다. 그러자 오왕은 그 원숭이를 활로 쏘았습니다. 그러나 원숭이는 재빨리 그 화살을 손으로 잡았습니다. 오왕은 다시 좌우의 신하를 시켜 끊임없이 활을 쏘도록 했습니다. 결국 그 원숭이는 화살을 손에 받아 쥔 채 죽었답니다. 원숭이는 교만한 마음에 재주를 자랑하고, 빠른 것을 믿고서 오만 방자하게 굴다가 결국 오왕의 손에 죽게 된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잠16:18, 잠18:12)

 

넷째, 어리석고, 나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인본주의 사상, 자기중심적인 생각, 자기 의(義), 자기 철학, 자기주장(가치관, 이데올로기)를 버려야 합니다.

주후 4세기에 그 유명한 성 어거스틴이 어느 날 신앙문제로 마음속에 깊은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의 갈등을 가지고 있는 중에 하루는 의미심장한 꿈을 꾸게 됩니다. 그가 천국문에 이르렀을 때 사도 베드로가 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이 천국문에 가까이 왔을 때 베드로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어거스틴이 대답했습니다. 『크리스천입니다』 다시 베드로가 말합니다. 『내가 보니 당신의 머릿속에는 철학자 키케로의 사상만 꽉 들어 있구먼요. 그리스도의 말씀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그러므로 당신은 철학자일지는 모르나 그리스도인은 아닌 것 같소』 이 말을 듣고 어거스틴이 깜짝 놀라서 꿈에서 깼습니다. 그러고는 각성해서 그가 오랫동안 숭상해오던 철학을 다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에 집중하여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거듭났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섯째, 자아를 버려야 합니다. (막8:35, 고전15:36)

돛단배를 타 본 일이 있으십니까? 요즘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돛단배는 바다의 주요한 운송 수단이었습니다. 요즘의 동력선에 비하면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지만, 그 당시 사공들은 그 작은 배로 폭풍우를 어떻게 이길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일단 폭풍우를 만나면 숙련된 사공들은 급히 돛을 찢었습니다. 그리고는 돛대를 잘라 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인생의 폭풍우를 만나 살아 남으려면 자아라고 하는 뻣뻣한 돛대를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실 수 있는 주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시107:28-30)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10:39)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눅9: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그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요12:24,25)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

 

여섯째, 거짓을 버려야 합니다.

항상 자기밖에 모르는 노신사가 기차에 올라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 바로 옆자리에 자기 여행용 가방을 올려놓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옆자리에 못않게 하고 편안히 여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차가 막 떠나려 할 때 한 소년이 와서 그 노인의 옆자리에 앉아도 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노인은 자리가 있다면서 내 친구가 곧 올 거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그 분이 올 때까지만 앉겠습니다.』 그 후 열차가 스팀을 내뿜고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소년은 그 여행용 가방을 창 밖으로 내던졌습니다. 그 노인이 대경실색하는 모습을 보면서 『친구분은 늦었어요. 기차를 놓쳤으니 가방이라도 놓치지 않도록 해 드려야지요』라고 설명했습니다.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하며(잠13:5), 거짓 증인은 패망합니다.(잠21:28) 그리고 거짓말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결코 들어가지 못합니다.(계21:27)

 

일곱째, 편견과 선입견을 버려야 합니다.

베이컨은 4가지 우상(종족, 동굴, 시장, 극장의 우상)을 말했습니다. 즉 편견과 선입견을 버려야 진리를 깨닫고, 진리가운데 거합니다.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에서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선입견 때문입니다.(마13:57)

 

여덟째, 나쁜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팻 로버슨 목사는 예일대 법학과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버지니아주 상원의원이며 은행통화위원장이었습니다. 팻 로버슨 목사는 구원의 확신을 체험한 날 퇴근시간에 한 잔 하러 가자는 친구의 요청을 뿌리치고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여보, 나 구원받았소』하고 외쳤습니다. 『당신 미쳤군요』하는 아내의 소리에, 『난 미치지 않았소. 난 구원을 받았단 말이오.』 그리고 그는 취침시간 쯤에 아무 말도 없이 찬장 문을 열고 거기 있던 위스키 병을 내려놓고 하나씩 마개를 열고 하수도에 쏟아버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콸... 콸... 콸...

『당신 왜 이래요? 얼마나 비싼 것들인데!』 하면서 아내가 달려와 마지막 술병을 움켜쥐려 했지만, 그는 그것을 빼앗아 다 쏟아 버렸습니다. 그는 술 먹는 습관을 버린 것입니다. 구원의 기쁨은 이렇게 버리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당신은 예수 믿고 무엇을 버렸습니까? 또 지금은 무엇을 버리고 있습니까?

성경에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1-2)하였으며,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잠9:6) 하였습니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습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담배, 술, 도박, 사치, 거짓말, 게으름 등의 나쁜 습관을 버리고 새 사람이 되어 기도하고 성경 읽고 가정예배 드리는 등의 새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이밖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즉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성경에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10:37)하였고,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7-9)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는 목숨까지 버릴 수 있어야 영생을 얻습니다.(마10:38-39, 막8:35)

 

사사기 8장 10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적인 미디안 군대의 숫자를 13만5000명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7장 3절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군대 숫자가 3만2000 명, 산술적으로는 4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셈입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싸움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을 향해 하나님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버려라』 무엇을 버리라는 것입니까?

먼저 하나님은 두려워 떠는 자를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돌아간 숫자가 2만2000명이고 1만 명만 남습니다. 그런데도 4절에 보면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남은 1만 명 중에 무릎을 끓고 마신 자 9700명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남은 이스라엘의 군대는 겨우 300명입니다. 처음 싸우겠다고 찾아온 3만2000명의 1%도 안 되는 숫자입니다. 이 1%도 안 되는 병사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 병사로는 어떠한 계획을 세우는 것도, 싸움도 불가능해 보입니다. 성경은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역사를 움직이시는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서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의 숫자는 로마 인구의 1%도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1%도 안 되는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을 창칼로 핍박하던 로마를 기독교국가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한국교회는 전체 국민의 20%를 웃도는 기독교인들이 있으며 5만 개가 넘는 교회가 곳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런 데이터만 보면 분명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공의가 하수처럼 흐르는 정직한 나라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서로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는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 작은 천국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사회는 어떻습니까? 절망의 어두운 그림자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시민들의 모습에서 기독교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을 이미 상실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버려야할 때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산술은 숫자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60만 명을 죽이시겠다고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의인 모세의 울부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마음을 돌리셨습니다. 갈멜산의 엘리야는 850명의 바알 숭배자들과 외로운 투쟁을 합니다. 그러나 순결한 믿음의 사람인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늘에서 불이 내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주님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버리셨습니다. 이 세상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시고 십자가에 벌거벗긴 채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바로 버림의 승리였던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은 오직 버릴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버려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따르기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물질과 명예에 대한 욕망도, 미워하는 마음도, 신앙적 편견도 다 버려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 세상은 그들에게 『바보』 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가지려고만 하는 이 세상의 흐름은 모든 것을 버릴 줄 아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소수의 거룩한 『바보들』에 의해서 새롭게 바뀔 것입니다.

 

찬송가 483장 (통 532장) 『구름 같은 이 세상』 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1. 구름 같은 이 세상 모든 부귀 영화 나는 분토와 같이 내어 버리고서 오직 천국의 복만 사모하며 사니 주여 내 작은 이름 기억하옵소서

2. 주여 보배 피로써 모든 죄 씻으사 나의 부정한 것을 씻어 맑히소서 흰눈보다 더 희게 죄를 씻었으니 지금 내 작은 이름 기록하옵소서

3. 죄가 하나도 없고 아무 병도 없는 영화롭고도 밝은 천국 올라가서 주와 같이 그곳에 길이 살리로다 이런 소망의 삶은 참된 행복이라

[후렴]

주가 나의 이름 보좌 앞에 놓인 어린양 생명책에 기록 하셨을까

 

바울 사도는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자기에게 유익했던 율법을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의 신앙 고백을 통해 「버림」에 대한 가치관을 말씀을 통해 정리하고자 합니다.

 

1. 오직 주를 위해 버려야 합니다. (빌3:7)

교수의 꿈을 품고 학문에 정진하던 한 젊은이가 드디어 선배 교수의 추천을 받아 명문 대학의 교수로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안정된 미래가 보장된 듯 하였습니다. 그때 그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감격적인 만남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헌신을 요구하셨습니다. 많은 고민이 뒤따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바라던 교수의 꿈을 포기하고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기꺼이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어부인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들의 직업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생업을 포기한다는 것은 가족 부양의 책임으로부터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명에는 희생이 뒤따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위해 살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일에 우선권을 두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무엇을 포기하셨습니까?

주님과 복음을 위해 죽고자 하는 자가 삽니다.(막8:35)

슈바이쳐가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 그에게서 가장 중요한 삶 중에서 3가지를 포기했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심취했던 바하의 음악을 포기했고, 두 번째는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대학교수직을 포기했었고, 세 번째는 풍요롭고 안락한 자신의 삶을 포기했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한 후 적도 아프리카의 오고웨 강변 랑바레네에 병원을 설립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그들을 위해 병을 고쳐주고 영적인 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포기했던 것에 대해서 결코 미련을 갖질 않았습니다. 고난 받는 자를 위한 자신의 헌신이 오히려 그의 마음에 기쁨과 감사를 갖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슈바이쳐의 희생과 사랑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더 큰 것으로 갚아주셨습니다. 슈바이쳐는 그토록 심취했던 바하의 음악을 포기했었지만 바하 협회는 모든 회원들이 참여하는 대대적인 연주회를 아프리카에서 열어주었고 대형 오르간을 선물했다고 합니다. 또한 존경과 명예가 뒤따르는 교수직을 포기했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평생동안 강의할 만한 강의 시간을 단 일년 동안에 모두 허락하셨습니다. 안식년을 맞아 귀국한 그에게 대학마다 앞 다투어 초청해서 그의 강의를 듣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풍요롭고 안락한 생활을 포기했었지만 그가 저술한 자서전을 비롯한 많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자신의 선택한 삶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어서 그 마음에 충만한 기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왜 주를 위해 버려야 할까요? 버림 없이는 새 것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망 없는 버림은 무의미 한 것입니다.

 

2. 「버림」에는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갈2:18)

이사를 해본 사람이라면 무엇을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게 됩니다. 버려야 한다고 목록을 적고 다짐을 해봐도 정작 이사하는 날에는 다시 하나하나 주워담고 있는 자신을 모습들을 쉽게 발견하게 됩니다. 쓰던 낡은 물건을 버리는 것도 그만큼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버려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는 자신의 신념을 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세상 것 가지고는 하나님 기쁘시게 못합니다. 아까워하지 말고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을 버려서는 안됩니다.

오래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편을 밀수하여 큰 재물을 모아보겠다는 어떤 여인이 아이를 업은 등에 아편을 감추고 압록강을 건너는데 기차 안 저쪽에서 국경 세관원이 나타나자 안절부절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침착하려고 무척이나 애썼으나 떨려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세관원이 점점 다가오자 차라리 차창 밖으로 그것을 버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편을 버린다고 한 것이 그만 깊이 감춘 아편 대신에 어린 아이를 창 밖으로 던지고 말았습니다. 세관원들이 다가와서 가진 것이 뭐 없느냐고 묻자. 『나에게는 어린 아이밖에 없습니다.』라며 내놓은 것이 바로 큼직한 아편 뭉치였습니다. 우리는 천국행 기차에 몸을 싣고 가고 있습니다. 창 밖으로 버려야 할 죄의 보따리는 버리지 않고 소중한 신앙을 버리는 잘못을 범하고 있지나 않은지, 버려야 할 세상의 욕심은 잔뜩 안고 생명을 버리는 잘못을 범하고 있지나 않은지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던 예수님의 부모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 예수님께서 동행중에 계신 줄 알고 하룻길이나 간 후 친족과 아는 자들 중에 예수님이 없는 것을 알고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와 사흘 후 성전에서 그를 찾아야 하는 그런 일은 없겠는지?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세상이 현혹해도 예수 그리스도만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3.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재물과 하나님,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미련 없이 버려야 합니다.

젊은 사업가인 워너 메이커가 하루는 장미화원을 잘 가꾼 한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 집의 주인은 그를 자신의 정원으로 데리고 나가 백장미와 흑장미 등 온갖 장미들을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장미꽃들을 꺾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몇 개의 덩굴은 꽃 한 송이만을 남겨두고 모두 가지를 쳐버리기도 하였습니다. 워너 메이커는 『아니, 왜 가지를 모조리 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좋은 장미 덩굴을 만들려면 가지를 쳐내야 합니다. 내가 가지를 쳐서 잃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지를 잘라내 잃는 것이 없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워너 메이커는 그 날부터 나누어주는 사업을 시작했고 결국 점점 더 큰 사업체를 갖게 돼 나중에는 미국의 대재벌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밀알은 썩어야 열매를 맺고 식물은 버려야 돌아온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유명한 비밀입니다.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도서 11:1).

 

4. 가장 소중한 것까지 버려야 합니다.(빌3:8) 목숨까지 버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모든 것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버림」의 대가로 영생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율법 신앙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을 위해 전 생애를 바쳤습니다. 바울은 율법을 버리고 복음을 취했습니다. 바울은 주를 위해 율법을 배설물과 같이 버렸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복음으로만 의롭게 됨을 확신했습니다. 바울은 복음만이 세상에서 가장 고상함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버리고 천국 시민권을 취합니다. 또한 율법아래서 얻은 시민권 버렸습니다. 복음 안에서 천국 시민권을 취합니다. 그는 오직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쫓아갔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기 생명을 버리고 주안에서 영생을 취합니다. 자기 생명을 주를 위해 버립니다. 따라서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 얻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뜻대로 행했습니다.

비움은 영성 생활의 시작입니다. 비움은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비우는 것입니다. 비움은 채움에 선행됩니다. 가득찬 컵에는 물을 부을 수 없습니다. 비움과 채움은 하나입니다. 채움이 없이는 비움이 없고, 비움이 없이는 채움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비우고 충만으로 채우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습니다. 충만은 비운 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은총입니다. 비움은 두 손을 펴는 것입니다. 두 손을 펴는 것은 항복과 육신의 뜻을 포기하는 것을 뜻합니다. 무조건 항복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신의 뜻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두 손을 펴는 것은 욕심과 육신의 힘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두 손을 펴고 두 팔을 벌릴 때 우리는 육체의 힘을 쓸 수 없게 됩니다.

인류의 비극은 인간의 무력함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 강한 욕망과 힘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지도력의 위험은 오히려 강력한 힘 때문에 생깁니다. 그 힘을 가지고 역사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모세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을 때는 애굽 사람 하나를 쳐죽였습니다. 그의 육신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광야학교에 입학시키셨고, 그곳에서 40년 동안 두 손 펴는 법을 배웠습니다. 두 손을 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세가 쥐었던 두 주먹을 펴기까지 40년이 걸렸습니다. 드디어 그가 두 손을 펴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성령님의 능력이 임했습니다.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이겼습니다. 200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냈습니다.

두 손을 펴는 사람이 되기 위해 부자가 되거나 많은 학위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만델라의 승리는 감옥생활 27년 동안 두 주먹을 펴는 법을 배운 데 있었습니다. 복수를 포기하고 용서와 화해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두 손을 펴는 것은 단순한 포기가 아닙니다. 두 손은 창조적인 개방성입니다. 더 큰 능력을 위해 자신을 여는 것입니다. 개방된 미래를 향해 열린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비움, 버림, 벗음, 그리고 잃음을 두려워 말라. 빈손을 가진 사람의 행복을 깨달으라. 에머슨은 『모든 것을 잃었을 때는 얻을 것이 있지만 모든 것을 얻었을 때는 잃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두 손을 펴십시오. 마음을 비우십시오. 육신의 힘을 빼십시오. 두 손을 펼 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빈손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충만한 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10:37)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는 목숨까지 버릴 수 있어야 영생을 얻습니다.(마10:38-39, 막8:35)

 

그런데 이 세상에 사는 우리들은 세상에 속한 애착 때문에 하늘에 속한 귀중한 선물을 놓쳐 버릴 때가 많습니다. 이제 후로는 어리석고 미련한자가 되지 말고 정신차리고 깨어 근신하여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좇는 성도가 됩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버려야 할 때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지 못하고 훌륭한 지도자가 되지 못합니다. 포기하는 만큼 버리는 만큼 더 큰 축복을 받고 승리자가 되고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처럼 주님을 위해 내가 가지고 있던 가장 소중하고 값진 것, 목숨까지 아낌없이 드리면 반드시 생명의 면류관 주실 것을 믿고 항상 감사와 기쁨의 생활하는 성도가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 우리 죄를 사하시려 죄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저희에게 거추장스러운 것을 벗어버리게 하소서. 홀가분하게 하소서. 자신을 줄임으로써 터널을 가볍게 통과하는 법을 체험으로 알게 하소서. 예수님을 위해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게 하소서.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힘입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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