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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히1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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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18.6.24 주일예배 설교 여의도순복음교회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1장 1∼3절)
‘믿음,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 마음속에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을 위한 것이든 가족이나 친구를 위한 것이든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속에 바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생각’을 점검해봐야 합니다. 우리는 꿈을 갖고 또 믿고 또 입술로 믿음의 고백을 하며 이 세상에서 4차원의 영성을 체험해 삽니다만 이것을 가장 가깝게 하는 것이 생각인 것입니다. 생각은 우리가 감히 깊이까지 파헤쳐 들어가지 않고 그냥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가지고 살자니 생각이 생각 속에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여 좋은 것을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립니다. 생각에도 좋은 생각이 있고 나쁜 생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받고 죽임 당하심을 예언하셨을 때,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항변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6장 23절에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꾸짖은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베드로의 생각이 참된 생각인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고 그 배후에는 사탄의 역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 불신앙의 생각, 인본주의적인 생각들은 사탄이 뒤에서 심어주는 생각인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생각은 사망의 길로 인도합니다. 로마서 8장 6절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육신에 속하여 그 생각이 죄악으로 가득한 사람은 결국 사망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눈에는 안 보이지만 생각은 우리 마음에 꿈을 꾸고 믿음을 갖고 기적을 고백하고 하는 영적인 세계를 인도해주는 길인 것입니다. 좋은 생각은 믿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은 생각인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열두 해 동안 혈루병을 앓은 여자가 예수님 길을 가실 때, 몰래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옷에 손만 대어도 병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5장 28절에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생각이 좋은 생각입니다.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믿음으로 생각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각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꿈을 꿀 수 있고, 믿음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생각이라는 것은 꿈과 믿음, 그리고 말씀의 고백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1. 생각과 믿음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에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 중에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을 선택합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을 바라보고 꿈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2절에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꿈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 사이에 최대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이 노후 준비입니다. 100세 시대가 되니 노후 준비의 필요성이 커진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 열심히 재테크를 하고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꿈을 준비하지 않는 것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은퇴한 후 40%가 우울증을 겪습니다. 더 이상 꿈이 없으니까 무기력하고 우울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나이의 상관없이 꿈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도 꿈이 없으면 좌절하고 절망하고 나이 많은 사람 더 말할 필요 없이 꿈이 없으면 버림받은 심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버림받고 자기 자신에게 버림받은 삶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인 것입니다.
2. 마음으로 보는 것과 못 보는 것
마음으로 보는 것과 못 보는 것을 우리가 참조해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로 3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합니다. 보이는 만물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의 만물은 그 배후에 하나님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믿음으로 바라보면 그 믿음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8절에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육신의 눈을 의지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만나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포기합니다. 육신을 의지해서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서 말하고 살아가면 그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육신으로 눈에 안보이고 믿음으로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행하면 성령이 오셔서 기적을 행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만 따라 행하면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눈에 아무증거 안 보이고 귀에 아무소리 안 들리는 그런 상황 속에서 믿음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보고 시인하면 그 역사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5절로 7절에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믿음의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빌립은 믿음의 눈을 갖지 못했습니다. 남자만 오천 명, 부녀자 수만 명이 예수님께 몰려왔는데 예수님이 그들을 먹이겠다고 하는데 빌립은 눈으로 보아 도저히 할 수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어떻게 해야 될지 알고 계시면서 시험해보았는데 빌립은 시험에 낙제했습니다. 이것은 숫자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은 없는 것도 있게 하는 창조주 하나님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나오면 없는 것을 있게 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벧엘에 이르렀을 때, 가축이 너무 많아서 함께 동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롯에게 원하는 땅을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13장 10절에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야훼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야훼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고 말씀합니다.
롯의 눈에는 물이 넉넉한 소돔과 고모라가 마치 에덴동산처럼 좋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롯은 소돔을 선택했는데 창세기 13장 13절은 “소돔 사람은 야훼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고 말씀합니다. 이미 롯이 잘못된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굉장히 좋아 보였으나 실제 내용은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실제 눈으로 보기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위치였는데 빌립은 눈으로 에덴동산 같았다고 보았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과 하나님이 말씀해주시는 것과 상당히 다릅니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도 우리가 눈으로 보는 현재 남북이 서로 조화가 되어서 전쟁이 없고 평화한 나라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완전히 이루어지기는 눈으로 보이는 저 세상, 하나님의 뜻이 그렇게 이루어져야 기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고 하나님께 믿고 하는 염원은 이 세상에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만 보면 무엇이 좋은 것인지 무엇이 나쁜 것인지 정확히 구별하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은 롯과 달랐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눈에 좋은 것을 택하지 않고 하나님 보여주시는 땅을 택하여 갔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롯과 다른 것은 롯은 현재 눈 앞에 보기에 좋은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눈 앞 보기에 좋지 않더라도 나쁘더라도 하나님이 보여주는데 따라 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3장 14절과 15절에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월이 흘러가자 롯은 자기의 땅 하늘과 그 주민들과 함께 심판을 받았고 아브라함은 관대한 땅을 소유로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정탐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똑같은 땅을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것을 보았습니다. 열 두 정탐꾼이 40일 동안 정탐을 했습니다. 10명은 가나안 땅을 자기들이 묻히게 될 공동묘지로 보았습니다.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하다가 그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렇게 보지 않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보았습니다. 차이가 무엇입니까? 나머지 10명과 달리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눈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낙 자손이라는 두려움을 이기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땅의 아름다움과 풍성함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것은 오직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힘차게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어야 될것입니다.
3. 긍정적인 믿음
오늘 우리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들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5절에서 7절에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꿈과 소원을 이루게 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 마음에 꿈이 있고 소원이 있으면 그것은 믿음이 이루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보시고 죄 사함을 주시고 병을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9장 2절에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 사람은 죄도 사함 받고 병도 나은 것입니다.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은 참 위대한 것입니다. 제가 60년 전에 교회를 개척할 때, 아주 추운 날에 험하게 내복도 잘 입지 못하는 한 열 네 살쯤 되는 소년이 불광동 천막교회에 내가 기도하러 나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가 나타났습니다. “목사님, 나는 목사님을 만나기 위하여 부산에서 이와 같이 엎드려 기고 차를 얻어 타고 그래서 1년이 걸려서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나의 죽고 사는 운명이 여기 달렸습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이 그렇게 죽고 살고 달렸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나는 부산에 역전에서 구걸하는 사람인데 나에게 예수님을 전도하는 사람이 예수님은 죄도 사하시고 병도 고치시는데 오늘 직접 예수님하고 계시니 내가 서울 불광동에 가면 천막교회가 있는데 거기 조용기 전도사라는 사람이 있는데 가서 저녁에 기도하면 주님이 살릴 것이라고. 가진 돈도 없으니 그저 살려달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애를 보니까 무릎 이하에는 뼈만 남았어요. 정말 뼈 밖에 없어요. 무릎 관절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기도를 해야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내 제자들을 보고 “어깨를 붙잡아라. 너는 머리 붙잡고, 다른 애는 어깨를 붙잡아라.” 그러니까 나를 쳐다보고 “전도사님 미쳤습니까? 누구와 같이 감옥에 갈랍니까?” “가시고 싶거든 이 사람하고 혼자 가십시오. 우리가 보기에는 틀림없이 감옥에 갑니다. 발이 살이 안 붙어있는데 인조 발 같은 이것을 고치는 길은 뽑아가지고서 도로 붙이는 도리인데 그렇게 하려면 하십시오”라고 정색을 합니다. 그래도 저는 “예수 믿는 사람은 믿음으로 하는 것이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따라 해라” 그리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안 보이는 것을 보는 듯이 행하는 것이 믿음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난 다음 명령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은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그리고 힘주어 끌어 일으키니 그 소년이 손을 잡고 일어났습니다. 펄쩍펄쩍 뜁니다. 완전히 나아버렸습니다. 나는 정말 가슴이 메어지는 감격을 느끼는 기적을 거기에서 체험한 적이 있습니다.
4. 긍정적인 말
믿어도 부정적인 사람이 많습니다. 믿었으면 긍정적으로 해야 될 것인데 믿으면서 부정적으로 기도한다고 해서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보시고 죄 사함을 주시고 병을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긍정적인 말을 해야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지으실 때, 자기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대화를 하고 말씀을 나누는 사람들이었는데 하나님께 쫓겨나왔으나 그 말은 창조적인 능력이 있는 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린 다 쫓겨난 자손들이지만 내용을 보면 창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의 말에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걸 아직 개발하지 못해서 그렇지 엄청난 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입술을 통해서 말을 함으로 살아있는 동물들을 다 다스릴 수 있었고 사람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로써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로서 입술의 말로 환경을 변화시키고 창조할 수 있습니다. 입술을 통해 말을 하면 그 말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생각하면 제가 어릴 때, 경상남도 울주군 삼남면 교동리 31번지. 거기에서 태어나서 학교를 왔다 갔다 했는데 우리 아래채에 농부가 살고 있는데 그 집에도 나보다 나이가 세 살 많은 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아들을 보고 항상 하는 말이 “야 이 빌어먹을 놈아”였습니다. 그런 말만 하더니만 그 아들이 빌어먹고 벼락 맞고 고통을 당해서 다 세상에서 벌써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든지 모욕적인 언어대신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내 입술의 말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야훼 하나님과 우리가 대화를 할 수 있는데 우리의 말을 하나님이 갚아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과 가깝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3장 4절로 5절에 우리 입술의 말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심지어 많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것이 사람의 혀입니다.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말의 권세를 잘 알고 사용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예를 들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씀하고 또 히브리서 10장 39절에는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런가하면 은사로서 믿음도 있습니다.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 중에 믿음의 은사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심던지 그대로 거두는 자연의 법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것은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해야 좋은 결과를 거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신앙생활은 언제나 행복하고 기쁘고 평안하고 좋은 것을 생각하고 믿고 말하십시오. 우리는 오중복음을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는 것과 성결한 삶을 살게 해주시는 것과 병에서 치료받거나 저주에서 해방 되거나 부활과 영생을 주시는 것을 받거나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해야 됩니다.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생각하고 말하게 되면 그것이 생활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게 되는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죄를 짓고 지금은 쫓겨나와 있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다시 재건시켜서 하나님 자녀로 복구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지었는데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서 운명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해 보자. 나는 좋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평안하다’ 이와 같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행복한 말을 하십시오. 얼마 안 있으면 그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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