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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라

베드로후 김동호 목사............... 조회 수 1167 추천 수 0 2012.01.24 17: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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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벧후3:8-13 
설교자 : 김동호 목사 
참고 : 2010.1.24 

1.jpg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라.

벧후 3:8-13.


학교 다닐 때 공부에 큰 취미를 가지지 못했었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지만 억지로 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학교 공부와 상관없이 그냥 제가 좋아하는 책을 읽곤 했었습니다. 신학 중에 제가 재미있어 했던 과목은 조직신학이었습니다. 교리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론, 예정론, 원죄론과 같은 것들을 다루는 신학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특히 예정론과 원죄론에 관심이 많아서 많이 읽었습니다. 결국 신대원은 졸업논문으로 예정론을 썼었고 대학원은 졸업논문으로 원죄론을 썼었습니다.


공부하는 쪽으로 발달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조직신학 책도 그냥 소설 읽듯이 읽었던 것 같습니다. 조직신학 쪽의 책을 얼마만큼 읽은 후에는 교리사 쪽의 책을 많이 그리고 제법 열심히 읽었습니다. 어찌 보면 딱딱하고 머리 아픈 내용일 수도 있었는데 저는 그것이 재미있었습니다. 교리사를 책을 읽다가 역사 쪽의 책들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학문하는 자세로 책을 읽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책은 읽었어도 학문적으로는 잘 모르고 정리도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 그렇게 책들을 읽은 것이 평생 제 삶과 목회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학문적으로는 몰라도 제 나름대로는 정리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균형입니다. 교리사나 철학사들을 읽다보니 학자나 사람들이 잘 치우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좌로 치우치거나 우로 치우치곤 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위로 치우치거나 아래로 치우치거나 하였습니다. 사상은 좌우로 신학은 좌와 우 그리고 상과 하로 치우치는 일이 역사 속에서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좌로 치우친 사람은 우를 보지 못하고, 우로 치우친 사람들은 좌를 보지 못하고 서로 자신만이 옳다고 상대방을 부인하고 정죄하며 싸웠습니다.


신학과 신앙은 좌우로도 흔들렸지만 상하로도 많이 흔들렸습니다. 보통 초월주의 신학과 내재주의 신학이라고 불렀습니다. 초월주의 신학과 신앙은 땅보다 하늘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내세주의적이고 영적입니다. 내재주의 신학과 신앙은 하늘보다 땅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내세보다 현세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정의와 자유 그리고 평등과 같은 것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노예제도가 있었던 미국의 경우 노예였던 흑인들의 신앙은 대체로 초월주의적인 신앙이었습니다. 저들은 이 땅에서의 삶이 너무나 힘들고 괴로웠기 때문에 죽은 후의 영원한 세상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왜정시대 때나 육이오 동란 때 그리고 보릿고개로 굻어 죽는 사람들이 있었을 60년 대 때에는 우리들의 신앙적인 관심도 땅과 세상이 아닌 천국과 하늘나라였습니다.


그러나 70년대 들어서면서 새마을 운동이 나타나고 소득이 높아지고 세상에서의 삶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서부터 예수 믿는 사람들의 관심도 점점 하늘나라로부터 땅의 세상나라로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를 믿으면 죽어서 천당 간다는 생각과 말이 점점 교회에서 줄어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으면 부자가 되고, 하는 일이 형통해 지고 병도 치유할 수 있다는 쪽으로 생각과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부터 교회는 급성장과 부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는 죽어서 가는 내세보다는 살아서 누리는 현세가 더 많았고 높았습니다.


기독교는 현세와 땅을 부인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물론 기독교는 내세와 하늘나라를 믿고 소망하지만 그렇다고 하여서 현세와 땅을 부인하거나 죄악시 하지 않습니다. 땅에서 부자로 살고 형통하며 성공하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성경에 나오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 중에는 부자도 있었고 세상적으로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최고의 권력이었던 왕들도 있었습니다.


저도 그와 같은 것들을 부인하지 않아 너무 내세주의적이고 세상의 부요함과 형통함을 거의 무조건 죄악시하고 반대하는 영지주의적인 것들에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법 교회 안팎의 논쟁거리가 되었던 고지론과 청부론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였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으로서 현세와 땅을 부인하고 너무 영적이고 내세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주장하는 것에도 찬성하지 않지만, 또 너무 현세와 땅에만 관심을 가지고 영적인 것과 내세를 잊어버리고 무관심하게 사는 것에도 찬성 할 수 없습니다.


땅과 현실을 부정하지만 땅과 현세는 잠시 동안의 일이고 하늘과 내세는 영원한 시간의 것이니 경중을 따진다면 아무래도 땅보다는 하늘이 중요하고 현세보다는 내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동안 너무 땅과 현세에 빠져 내세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잊어버린 채 신앙생활을 한 면이 없지 않아 많습니다.


이번에 아이티에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습니다. 수 십 만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나라가 폐허가 되었습니다. 붕괴되었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죽고 다친 사람도 우리의 마음을 참담하게 하고 아프게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과 고생이 죽고 다친 사람만 못하지 않기 때문에 온 세계의 사람들이 다 아이티에 집중을 하고 어떻게해서라도 저들을 도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이티에 재난이 일어난 것은 저들이 우리들보다 죄가 많아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13장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당시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18명의 사람이 죽은 것을 언급하시면서 저들이 너희들 보다 더 죄가 많아서 죽을 줄로 생각하면 안된다는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데 이번 아이티의 경우도 저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까닭은 우리 인간이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땅과 세상이 불완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땅이 저주를 받게 되어 처음 하나님이 창조하신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세상이 그 완벽함과 아름다움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세상에는 위험한 일 불안정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고와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번 아이티의 사고와 같은 사건은 인간의 죄와 타락으로 인하여 불완전해져서 안정성을 상실한 불완전한 세상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나타나는 자연현상 중에 하나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타락하여 하나님께 범죄 하면서 부터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처음 세상과 달라졌습니다. 완전함을 상실하였고 때문에 안전함도 함께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불안전하고 불완전한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질 그런 불완전한 세상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다시 만드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그 처소를 다 예비하시면 우리를 그곳으로 부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우리는 이곳을 떠나 그곳으로 가야만 합니다. 이곳을 떠남이 곧 죽음입니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이 곳을 떠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두신 저 곳으로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의 핵심적인 신앙의 내용입니다. 무너질 세상이고 우리가 떠나가야 할 세상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대충대충 이 세상을 무시하고 살라는 것이 기독교의 신앙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시민권은 이 세상에 있지 않고 저 세상에 있다는 것이 우리 기독교의 신앙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우리의 국적을 망각합니다. 우리가 어느 사람인지,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를 잊어버립니다. 아이티의 참상을 보면서 저는 새삼스럽게 그 동안 잊고 살았던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본질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나는, 우리는 이 세상이 무너질 세상인 것을 잠시 잊어버리고 천 년 만 년 이 땅에서 살 것과 같이 잘못 생각하고 너무 이 세상에만 집중하고 마음을 두고 산 것이 아닌가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아이티 사건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이티의 재난은 장차 이 세상에 임할 마지막 날의 예표와 같습니다. 그 날을 성경은 주의 날, 심판의 날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셔서 이 세상과 우리를 심판하실 때 세상은 마지막 날이 될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10)


아이티에 일어난 것과 같은 일이 종말에는 세상 전체에 임할 것이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이번 아이티에서 일어난 사건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종말의 날의 예표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예표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며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이 말씀은 무너지고 풀어질 세상에 마음 두고 거기에 보물을 쌓고 살아서는 안 되지 않겠냐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걱정하지 않고 천하태평으로 산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너무 지나쳤습니다. 우리의 삶은 무엇을 먹고 마실까의 삶에서 퍽 지나쳤습니다. 우리는 먹고 마시는 것이 너무 지나칩니다. 우리는 무엇을 입을까의 삶에서 퍽 지나쳤습니다. 우리는 너무 입고 걸치는 일에 목숨을 걸고 사는 것 같이 되었습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는 인색하고 무관심하며 오로지 남들보다 더 잘 먹으며 더 좋은 것을 입으며 땅에 보물을 쌓는 일에만 급급하며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새삼스럽게 권면하십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1-13)


물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다 풀어 없어지는 종말의 때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때를 모른다고 우리에게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종말의 때가 어느 때가 되든상관 없이 우리는 얼마 되지 않아 다 세상을 떠날 사람들입니다. 종말의 때가 혹시 우리 생전에 임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우리는 땅에 보물을 쌓으며 살 수 없습니다. 세상의 종말이 오기 전에 우리 인생의 종말이 먼저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종말이 아이티 처럼 먼저 오든 아니면 그냥 우리의 조상과 선배들이 죽음으로 세상을 떠나는 인생의 종말이 먼저 오든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은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세상과 인생이 종말로 무너질 때까지 우리는 먹고 입고 마시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과 인생이 무너질 것이라고 그 동안의 삶을 철저히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먹고 아무렇게 마시고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꼭 잘 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잠시 사는 이 세상에서도 이 왕이면 잘 먹고 좋은 것을 마시고 좋은 것을 입으며 세상적으로도 잘 사는 것을 원하실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지혜롭지 못합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무너질 세상에 과도하게 집착하며 살다가, 투자하며 살다가 종말을 당하게 되면 우리의 종말과 함께 그동안 우리가 집착하며 투자하였던 모든 것들이 먼지처럼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빌립보서에서도 오늘과 똑 같은 말씀을 바울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십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아멘. (빌 3:17-21)


망하고 무너질 회사의 주식을 사들이는 바보는 세상에 없습니다. 망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을 뿐 아니라 흥하고 번성할 회사에 투자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아이티만 아이티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온통 다 아이티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의 삶은 삶이지만 투자는 이곳에 하면 안 됩니다.


우리 교회는 보이지 않는 성전을 건축하는 교회입니다. 힘들고 좀 어렵지만, 세상적으로 보면 좀 어리석어 보이지만 여러분 우리가 선택한 것이 옳고 좋은 것입니다. 예배당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예배당은 예배당입니다. 예배당은 세상이 무너질 때 무너질 것에 속하는 물질입니다. 우리가 건축하려고 하는 성전은 눈에 보이는 예배당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입니다. 그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아이티처럼 무너질 때에도 무너지지 않을 영원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높은 뜻 교회들이 함께 열심히 짓고 있는 보이지 않는 성전은 튼튼하게 아름답게 잘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박스 공장도 크지는 않지만 계속 흑자 기조를 유지해 가고 있습니다. 블라인드 커튼 공장은 좀 어렵지만 잘 버텨가고 있습니다. 한 두 달만 잘 버티면 거기도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제 3 공장인 고마운 손은 정말 잘 나가고 있습니다. 명품 가방의 수주가 늘어가고 있고 자체 브랜드로 홈쇼핑에 런칭을 하였던 가방도 성공적으로 잘 판매가 되었습니다.


세상 식으로 말하자면 제 1공장과 제 3공장은 아주 성공적이고 제 2공장은 아직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식으로 말하자면 제 2공장도 아주 성공적이고 아름답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손해를 보고 있어도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들고 씨름하는 것 자체가 제 1 공장과 제 2 공장이 짓고 있는 아름다운 성전 못지않게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하나님 나라에 투자하는 일은 실패 확률이 제로인 게임과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쁘고 범사가 감사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투자하는 것은 무너지지 않고 손해 보지 않는 것인가 봅니다. 그 동안 만일 우리가 눈에 보이는 예배당에 먼저 투자하고 욕심을 부렸었다면, 그리고 만에 하나 아이티에서 일어난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었다면 우리는 잃어버릴 것이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많은 것이 사라졌을 때 우리가 건축하였던 것들만이 남았을 것입니다.


무너질 것에 최선을 다하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무너지고 망할 것에 욕심을 부리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입니다. 너무 먹는 것에 욕심을 부리지 마십시다. 너무 입고 걸치는 것에 낭비하지 마십시다. 너무 세상에 재산을 쌓고 늘이는 일에 올인 하지 마십시다.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그곳에 보물을 쌓고 투자하는 사람이 되십시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라>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모든 것이 다 무너지고 없어지는 날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정말 못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세상의 것이 다 무너지고 망하는 날에도 무너지지 않을 세상에 투자한 것이 많은 정말 잘 사는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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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드로후 종말을 바라보는 사람 벧후3:8-13  강종수 목사  2007-07-22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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